편집실에서

편집자의 말 – 삶을 내맡기라고 부추기는 시대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삶을 내맡기라고 부추기는 시대

가족 중에 많이 편찮으신 분이 계신가요? 지난 호 <수유칼럼>의 최정은 대표님 글을 읽은 후 저도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제가 중3 때 처음 쓰러지신 후 생명을 다투는 수술만 세 차례를 받으셨죠. 건강이 잠시 회복되었다가도 병이 곧잘 재발했고 연세가 드시면서 점차 몸이 나빠지셨습니다. 지금은 최대표님의 아버님처럼 의식도 많이 흐릿하시지요. 지난 일요일에는 공원에 잠시 모시고 갔는데, 자녀가 어찌되느냐는 어느 노인의 물음에 아들 다섯에 딸 다섯이라는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으셨죠.

지난 25년 가까이 가족들이 참 열심이었습니다. 여느 가족 못지않게 가족들 팀워크가 좋은 편입니다. 아버지 병이 가족들의 우애를 상당히 높여 놓은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힘든 게 사실입니다. 지금도 수발의 상당 부분을 떠안고 계시는 어머니나 누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중증환자나 장애인이 있는 경우 대개 가족들은 버티다, 버티다 어느 선에선가 무너지게 됩니다. 가족 중 누군가 사회생활을 접어야 하고, 웬만한 부자가 아니라면 생계도 파탄이 나니까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가족들은 그를 포기해버립니다. 시설로 보내는 거죠. 중증 환자 자신의 심정은 말할 것도 없겠죠.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그리고 언제든 포기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습니다. 가족에게 일방적으로 돌봄의 짐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정말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게 없다면 국가 존재 이유를 알 수가 없겠죠.

하지만 돌봄에 있어 국가적 지원을 받는 것과 별개로 삶의 관리를 국가에 넘기는 문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 경험인데요. 저희 아버지도 국가에서 제공하는 노인돌봄서비스를 받으셨습니다. 가족이 일정액을 부담하면 국가에서 상당한 금액을 지원해서 생활도우미를 파견해주더군요. 아버지가 전혀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족들이 큰 고생을 하던 터라 그 제도가 얼마나 고맙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일도 잘 거들어주셨지만, 의식이 흐린 아버지와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있다는 생각에 제 자신이 어떤 끈을 놓았나 봅니다. 언젠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데 아버지가 저보다는 아주머니를 더 편안히 대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작은 몸짓을 자주 놓친 반면 아주머니는 그 의미를 빨리 알아채셨으니까 당연한 것이었죠. 아버지를 누군가에게 의탁할수록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지금은 가족 중 한 사람이 도우미 자격증을 땄고 일정한 정부 지원을 받으며 아버지를 직접 돌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몇 주, 주말에 아버지와 찜질방에도 가고 공원산책도 하면서 아버지와의 교감을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달라붙어야 목욕도 산책도 가능한 일이었습니다만 또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너무 거칠게 단정하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근대 사회는 우리에게 삶의 관리를 위탁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서로의 삶을 직접 챙기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삶이 서로 엮이는 것은 피곤한 일이라고. 그러니 노인을 양로원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라고. 심지어 자기의 죽은 몸뚱이조차 동료나 가족보다는 상조회사에 맡기라고 합니다. 기업은 보험상품을 내밀고 정치인은 복지제도를 내밉니다. 근대 사회가 총체적인 생정치(biopolitics), 생경제(bioeconomy)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시장사회와 복지사회도 그렇게 멀리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어느 쪽이든 나와 관계하는 타인의 삶을, 아니 심지어 나 자신의 삶을 골칫거리 해결하듯, 해결사에게 내맡기라고만 하니까요.

지난 주 밀양의 이계삼 선생님이 보내주신 이반 일리치의 글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 년 전 위대한 기독교의 사상가들은 자선을 제도화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군요. 평범한 기독교인들은 언제 대문을 두드릴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여분의 이불과 묵은 빵조각과 양초를 준비해두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5-6세기 이후 교회가 권력화 되고 국가 기구가 되면서, 국가는 교회를 일종의 돌봄 기구로 제도화했답니다. 교회가 자선 기구로 제도화되자 평범한 가정에서는 언제 올지도 모를 가난한 이방인의 방문을 준비하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죠. 일리치의 글을 읽으며, 이 수고로움의 면제가 교회와 기독교인의 타락을 낳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우리 삶이 기업과 국가에 이렇게 크게 좌우될 수 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혼자’ 산다는 사실일 겁니다. 문제를 함께 풀 동료가 없을 때 우리는 돈과 제도로 문제를 풀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개인이, 한 가족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당포에 물건 맡기듯 삶을 내맡기라는 근대 사회의 부추김에 넘어가기도 싫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혼자 떠맡지 않으면서 제3자에게도 떠넘기지 않는 것, 그런 ‘함께’의 길이 있을까요. 이번 주 <동시대반시대>, 도시에서 마을을 이루며 함께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의견 기다립니다.

– 고병권(수유너머R)

응답 4개

  1. 고추장말하길

    해피님/ 우리 서로 ‘동료’인 것 맞죠? ^^ 맘이 강하신 분이라 걱정은 않습니다만, 몸 건강은 좀 챙기셔야 할 것 같다는 게, 제가 해피님 보고 간혹 드는 생각입니다.

    박종식선생님/ 위클리에서 뵈니까 느낌이 새롭네요. 박선생님 아버님께서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목요일날 뵙겠습니다.

    서교동님/ 교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기독교인이 어떻고 교회가 어떻게 말해버렸습니다. 제 이야기는 항상 반쯤은 접고 들어주셔야해요^^;

  2. 해피말하길

    집에 아픈 부모님이나 환자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고개 끄덕일 글인것 같습니다.
    근데….. 전 요즘, 그냥 혼자인 제 삶에서조차 그런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 동안 삶의 아주 미세한 부분들까지 나도모르게 ‘그 무엇’에 내맡기고 살것을 강요당하고,
    아니 뭐 강요라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내맡기고….. 살았구나 싶은…..

    ” 한 개인이, 한 가족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당포에 물건 맡기듯 삶을 내맡기라는 근대 사회의 부추김에 넘어가기도 싫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 가끔 추장님이 쪽집게 도사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때 그때, 별말 아닌듯한 몇줄로 사람 울리기도 하고,
    때론 콕 꼬집어서 내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정리 해 주기도 하고…..

    “문제를 함께 풀 동료가 없을 때 우리는 돈과 제도로 문제를 풀 수밖에 없습니다.”
    그 ‘동료’ 라는 말이 추장님이 찾아가는 답인 듯 싶은데…..
    저는 이제야 ‘문제’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으니,
    죽기전에 뭔가 답의 실마리라도 잡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늘 파이팅 하셔야 하는거 알죠? *^^*

  3. 박종식말하길

    어려운일에 함께할수있는이의 존재가 더욱감사해지는 세상입니다.
    늘 나를 돌이켜보게하는 고선생님글 잘 읽고있습니다.

  4. 서교동말하길

    교회 권력과 맞서 싸우는 일도 해야 하고 참, 할 일이 많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누구에게 의탁하는 삶을 예수께서도 바라지 않으셨는데 바리사이들과 교회 사목자들이 그걸 제도화하고 이용한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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