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부가 삶이 되는 곳
우리는 동네로 놀러간다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아침 7시. 동네의 초등학교에 일군의 아저씨들이 모였다. 각자 가지고 온, 혹은 빌린 트럭을 타고 동네교회 (목양교회), 대안학교 (이우학교), 생협 (이우생협), 지역쎈터 (좋은친구쎈터)로 이동해 당일 마을어린이날 행사에 필요한 물품, 책상, 의자, 천막, 음향기기 등을 싣고 온다. 속속 도착한 아줌마들과 함께 <가면 만들기>, <친환경 설거지수세미 뜨기>, <부모님을 위한 음양오행 상담코너> 등 행사부스와 김밥, 매실, 팥빙수, 뽑기 등 먹거리 부스가 설치되었다.
정확히 10시, <제4회 어린이날 동네잔치 : 너희는 어디에서 놀러가니? 우리는 동네에서 놀거당!! >의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날 주최 측은 예상 인원 500명을 기준으로 김밥 1000줄, 핫도그 500개, 유기농 쥬스 350개, 구운 달걀 600개, 팥빙수 500인분을 준비했지만, 낮 12시 이미 접수한 사람이 700명을 넘겼다. 긴급회의 결과, 동네 유기농쿠키가게에서 기증한 300개의 쿠키를 활용해 참가한 모든 사람에게 먹거리를 나눠줄 수 있었다. 딸아이와 함께 와서 하루 종일 가면도 만들고 게임도 하고 공연도 보고 게다가 각종 먹거리까지 공짜로 받은 지역의 어느 주민이 물었다.
“검은색 티셔츠 입고 행사 진행하고, 부스 운영하고, 먹거리 나눠 주는 분들은 모두 어디에서 나왔나요? ”
아마도 동천동 동사무소 직원이거나 아니면 용인시청 소속의 자원봉사요원쯤으로 생각한것일까? 동네에서 손주를 데리고 나왔다는 어떤 할머니는 “저기 검은 티 입은 사람들은 일당을 얼마나 받나?”라는 질문을 하신다. 이 할머니 역시 ‘돈도 되지 않는 일’을 수십명이 일사분란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700명이 넘게 참가한 이날 동네 어린이날 잔치는 거슬러 올라가면 2004년, 지역에서 ‘공동육아 고학년 방과후’를 만들어 운영하던 몇몇 부모들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원을 따지는 건 무망한 일! 중요한 건 햇수로 7년이 흐르면서 지역엔 대안학교, 생협, 작은도서관, 인문학공간, 방과후교실, 지역쎈터, 쿠키가게 등 다양한 거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새로 생긴 거점들과 이미 지역에 존재하던 초등학교, 교회, 성당 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사람과 돈과 활동이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 결과 이제는 말 그대로 마을의 ‘누구나’/‘아무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즐거운 ‘경험’, 따뜻한 ‘기억’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기억이 있는 한 마을은 늘 현재적인 것으로 ‘재생’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소위 신도시 ‘개발’로 서울 부심이 된 곳이다. ‘난개발’의 대명사이자 365일 공사가 진행되는 곳. 그러나 아직 서울에 비해 공기도 좋고, 동막천과 광교산의 생태계도 살아있고, 개발 이전의 도농복합지역의 풍모를 부분적이나마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이전부터 고기교회, 목양교회, 동천동 성당 등 마을의 종교적 거점이 존재하고 있었고 작은도서관 운동의 대명사인 ‘느티나무 도서관’이 동천동 근처인 풍덕천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2007년 풍덕천 시대를 마감하고 반듯하고 예쁜 건물을 지어 동천동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마을이 좀 더 역동적인 네트워크를 갖게 된 것은 2004년 ‘도시형 중등 대안학교’인 이우학교가 이곳에 세워지면서 활동적인 젊은 학부모들이 대거 이곳에 이사를 오게 되면서부터이다.
대안학교는 처음부터 ‘지역’에 대한 구상, 즉 대안학교가 기존의 학교처럼 지역에서 고립된 섬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과 배려가 존재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구심이 되어야 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생활협동조합 및 신용협동조합, 지역화폐운동, 학교도서관 개방과 학교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활동 등이 대안학교가 꿈꾼 지역 네트워크의 구체적 상이다.
그런데 대안학교가 만들어지고 7년이 지난 지금, 이 지역에서의 ‘마을 만들기’는 대안학교의 기획이라기보다는 마을에서 일상을 꾸리고, 좋은 삶을 꿈꾸며, 그것을 이웃과 함께 나눈 마을 사람들의 직접적인 삶-운동의 결과물이다.
아이를 동네의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공동육아 방과후’ (이후 ‘무지개방과후 교실’) 가 만들어졌고, 장을 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울퉁불퉁 공사길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동네의 안전한 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건강한 먹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생협을 이용하고, 그 생협이 자리를 잡기 위해 힘을 보탰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지역의 낙생저수지에 골프연습장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법적인 소송을 위해 마을에 살고 있는 변호사가 도움을 주기도 했고,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마을 교회나 성당 교우들이 힘을 보태기도 했다. 2008년 촛불집회정국에서는 자기 집 베란다에 ‘광우병 소 수입을 반대합니다’라는 플랭카드도 걸고 마을에서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을을 광화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대안학교의 학부모가 되면서 마을에 자리를 잡았지만, 마을에서의 삶은 학부모라는 단일한 정체성에서 벗어나서, 마을의 더 많은 공간과 접속하는 것이고, 매일 매일 더 많은 낯선 이웃과 접속하면서 친구가 되는 삶이다.
마을에서 마을을 만든다
마을의 경계가 어디일까? 아니 마을의 물리적 경계를 지을 수 있을까? 전 근대사회는 자연적인 지형이 마을의 물리적 경계를 형성했다. 산과 강 혹은 개울과 논밭을 경계로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빨래터와 우물터, 대장장이와 방앗간, 의원, 그리고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때로는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이나 외지에서 들어온 떠돌이까지 한 마을을 형성했다.
그러나 지금, 마을은 집들이 있고 사람들이 있다고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아파트 바로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혹은 인사 한마디 없이 수년을 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게 현재 우리네 삶이지 않는가? 반상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이웃과 인사하고, 자기 아이를 통해 아이 친구의 부모와 만나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대부분집단적 이해관계가 걸린 공동의 현안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주는 지역현안, 혹은 내 아이 성적과 관련된 정보의 공유 및 사교육의 조직화)이다.
그렇다면 지금 마을은 어떻게 다시-형성될 수 있을까?
가르치지 않아도 누구나 배우는 곳 – 4만권의 장서를 보유한 느티나무 도서관. 이곳에선 아이들이 책을 읽고 싶을 때 뿐만 아니라 숨고 싶을 때도 찾아와서 적당한 구석에 앉아 있는 곳이다. 가난한 아이들도 마음을 붙이고 자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이다.
책 뿐 아니라 주변의 나무도 돌멩이도 책 못지않은 배움을 주는 곳 – 밤토실 도서관. 이 곳은 방과 후의 아이들이 책가방을 던져놓고 놀러 나가는 곳이고, 엄마들이 아이들 책을 함께 읽는 곳이고, 주민들이 작은 독서모임을 여는 곳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마을의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세상의 스승을 모셔다 배움을 청하기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밤토실 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마을의 우물터나 빨래터에 가깝다.
마을도서관은 책을 빌려보는 곳만이 아니라 마을 사랑방으로 마을의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곳이죠.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가방은 도서관에 두고 마음껏 뛰어노는데 엄마들도 이곳에 아이가 있다면 안심할 수 있어요…..그러면서 마을의 변화들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 박영주 밤토실도서관 관장)
‘무지개방과후교실’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을 학교다. ‘생태탐사’는 꽃과 풀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지역의 ‘아줌마’가 이끌고, ‘자연미술놀이’는 <이야기 숲>이라는 작은 예술교육단체의 교사 한명이 전담한다. 그 교사가 마을에서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토요서당’을 열기 위해서 멀리 혜화동에서 선생님을 모셔왔다. 오가는 시간과 드는 품과 비교해 받는 비용은 너무나 작아,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 그래도 선생님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꼬박꼬박 아이들을 가르치러 오신다. 비록 아이들은 결석을 할망정. ‘세계사교실’에선 최근 부모들의 역사공부모임이 만들어졌다.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들도 역사교육을 하고 싶다는 바램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공부모임이 만들어진 경우다. ‘수학교실’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저학년에게 계산이나 성적을 위한 수학이 아니라 사유로서의 수학을 가르치는 곳인데, 여기서 공부한 친구들은 매년 수학캠프를 열어 성남의 지역아동쎈터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친다. 아이들만 배움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부모들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데 바로 수학캠프기간 동안 아이들 밥을 해주는 일이다. 2006년에는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 프로젝트인 <마을가족만들기>를 진행하기도 했고, 이 경험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 제작을 지원하는 ‘점역동아리’ 에 마을 주민이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탈근대사회에서 마을은 이제 자연적 공간도 아니고, 단순한 지리적, 물리적 공간도 아니다. ‘마을’은 행정구역상의 ‘지역’ 단위로 환원되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국가의 부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을은 국민/지역민의 호명으로부터 탈주하여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안하는 곳이며, 낯선-이웃을 서로 돌보는 -이웃으로 다시 세우는 곳이고, 더 많은 탈주선과 접속하면서 물리적 공간성의 한계를 뛰어 넘는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곳이며, 저절로 주어진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자발적 운동으로만 현존하는 역동적 공간이다.
완전한 지식과 완전한 삶 : 문탁네트워크
마을 스와라지 운동을 펼쳤던 간디의 목표는 단지 제국주의의 지배를 끝내는 것이 아니었다. 마을 스와라지 운동은 착취가 없고, 중앙집권화 된 권력이 작아지고, 모든 사람이 어엿한 한 인간으로 성장할 기회를 온전히 누리는 세상에 대한 비전이다.
간디와 함께 나이탈림이라는 새로운 교육운동을 펼쳤던 비노바바베 역시 모든 가정이 학교가 되고, 모든 들판이 실험실이 되며, 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들에서 일하고 병자를 돌보며 마을을 청소한다는 말을 듣는 ‘마을’을 꿈꿨다. 하루 종일 배우고, 하루 종일 일하며 하루 종일 즐기는 것이 가능한 곳! 그곳, 마을은 삶의 문제를 배움의 과제로 껴안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완전한 삶과 완전한 지식은 마을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공간을 표방하며 만들어진 ‘문탁네트워크’는 그런 완전한 삶과 완전한 지식을 지향하는 곳이다. 자기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화폐교환관계에 의존해야 하는 불완전한 삶과의 결별, 삶과 무관한 앎, ‘전문성’이라는 미명하에 아카데미에 갇혀 있는 불완전한 앎에 대한 극복! 어떻게 앎과 삶을 일치시킬 것인가? 공부를 통해 ‘친구/이웃과 함께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작고 단단한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50평짜리 반듯한 공간에서, 기획하는 강좌마다 열흘 안에 마감이 되고, 7~8개의 세미나가 진행되고, 주방에서 매일 정갈하고 소박한 밥상이 차려지고, 마을 주민의 땅 한 귀퉁이를 얻어 텃밭농사를 짓는 ‘문탁네트워크’가 문을 연 지는 불과 넉 달. 그 시작은 우연이었다.
직장을 그만둘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람, 앞으로 뭘 하면서 인생의 후반기를 보낼 지 고민하는 사람, 아이 문제로 심란한 사람 등이 의기투합해 일단 함께 공부를 해보자, 세상을 구원하기 전에 내 자신부터 구원해보자며 한 집의 거실에 모여 세미나를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그런 점에서 문탁네트워크는 출발부터 누구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자기-교육’을 공통의 과제로 삼은 셈이다.
세미나는 ‘자기-교육’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공부법이다. 각자 하고 싶은 공부와 나누고 싶은 공부로 세미나를 기획한다. 처음엔 ‘비전세미나’라는 이름이 붙은 단 하나의 세미나로 출발하였는데 일리히 읽기를 통해 가치를 제도화하는 근대문명의 작동방식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모스나 폴라니 등의 경제인류학 텍스트들을 읽어가면서 화폐와 교환이 아니라 나눔과 선물로 이루어지는 관계를 고민했다. 이 공부는 더 많은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삶을 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의욕으로 나아갔다. 공간이 형성된 후 세미나는 회원 각자의 욕구에 의해 다양하게 분화되어 논어강독세미나, 불교세미나, 문학세미나, 니체세미나, 가족세미나 등이 만들어졌고, 새로운 세미나가 만들어질 때마다 새로운 친구들이 접속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통해 친구를 만나고 삶의 비전을 찾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세미나는, 그러나 일정한 ‘강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독서모임과는 구별된다. 어려운 책도 읽어야 하고, 글쓰기도 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지만, 그 누구에게 전적으로 의존함이 없고, 누구든 가르칠 수 있지만 누구든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독점할 수 없는 배치. 그것이 함께 하는 ‘자기-교육’의 과정이고 랑시에르가 말한 바, ‘해방’의 과정이다.
강좌 역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그들을 가르치거나 깨우치기 위해 기획되지 않는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수익사업도 아니다. 강좌를 기획하는 가장 큰 원칙은 문탁 회원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강좌로 조직하는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게 있지만 내부의 교사가 없을 때, 외부에서 교사를 초청하는 자기-교육. 그것이 강좌다. 1,2월에는 <논어>를, 3,4월에는 <의역학 강좌>를 진행했고, 5,6월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기초한의학을 배우는 <삶과 몸>이 진행되고 있다. 7,8월에는 <시경>과 <과학과 근대성>의 두 강좌를 열 예정이다.
또한 강좌 역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곳이다. 강좌를 통해 새로운 이웃을 만나가는 과정은, 그러나 친구를 ‘조직’하는 일은 아니다. 그건 함께 공부하는 기쁨을 ‘전염’시키는 일이고, 더 좋은 삶에 대한 꿈을 ‘함께’ 꾸는 일이며,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공통의 실천을 모색하는 일이다.
2008년 어느 날, 내겐 내 앞가림 말곤 할 수 있는 일도 능력도 딱히 없다는 생각에, 소녀가장생활이 대충 마무리가 될 50세가 되면 이것저것 다 버리고 칩거에 들어가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미안은 소인인지라 일단 여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 최저생계비를 산출한 후 적금을 붓기 시작하였고, 50세 생일을 D-day로 삼아 카운트다운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논어를 만났고, 문탁네트워크의 ‘사람들’을 만났다. 以文會友라.
사람들이 모이는 듯 싶더니, 공부방이 생기고, 강좌가 생기고, 퍼즐이 생기고, 어어어 하는 사이에 문탁네트워크는 그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준비하신 분들의 수고는 모르는 배부른 수강생의 시각-ㅅ-). 그 과정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문득, 나는 나의 무기력증의 원인을 알았다. 뭐든 혼자서 하려던 게 문제였던 것이다.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일단 저지르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못 하는 건 벗님네들 모셔다가 함께 하면 되는 것을.
오늘 아침 출근해서, 컴퓨터 모니터의 D-day counter를 없애버렸다. 하고 싶고, 함께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 얼굴에 철판 깔고 문탁네트워크에 모인 분들께 신세를 마구 지려고 한다. 이것저것 가르쳐 달라고, 같이 하자고 막 징징거리려고 한다. 언젠가는 보답할 날도 오지 않겠는가. (문탁네트워크 논어강좌 수강생 후기)
최근 문탁네트워크에는 <마을과 경제>라는 세미나가 만들어졌다. 화폐가 아닌 선물의 관계를 어떻게 우리 마을에서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대전에서 이미 지역화폐운동을 해본 사람, 마을에서 무지개방과후교실을 꾸준히 운영하면서 지역화폐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 일리히와 선물세미나를 통해 새로운 삶의 비전을 실험해보고 싶은 사람, 지역화폐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함께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낸 용인의 의료생협활동가와 용인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의 주부활동가, 단지 “세미나 시간이 맞고, 책들도 괜찮은 것 같아서” 참여한다는 마을 주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론적 소양도 살아온 경험도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모여서 이제 함께 책을 읽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 서로의 경험에서 배울 것이다. 감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의 실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 차이를 생산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마을 주민을 표로 생각하는 정치인이나 아니면 마을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는 자본이 아니라면, ‘마을’을 기획하거나 ‘마을’ 단위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허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 집을 세미나실로 개조하거나, 친구들과 공부모임을 만들거나,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작은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자기 삶을 조금만 바꾸고, 그걸 이웃과 함께 나눈다면 아마도 마을에서는 매일 매일 새로운 마주침이 일어나고, 그 마주침은 늘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배움이 사건이 되고, 사건이 삶이 되는 곳, 마을! 어느 곳에서나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 이희경(문탁네트워크)1- 이 글은 <시민교육>2호에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