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나는 연애를 모른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어떤 기억

좋아하는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이 대다수인 커뮤니티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면서 ‘잘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대학 새내기였던 나에겐 대단하게만 느껴졌었다. 서로 ‘자기’라고 호칭하는 여자친구와 손을 꼭 잡고 걸어다니면서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뿜어내기도 했고, 찌질하거나 무지한 동기들에게 호통도 잘 쳤고, 어르기도 잘 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회의 장을 맡고 있었고, 여성학 모임에도 열심이었다. 나는 그녀의 카리스마가 좋았다. 그녀는 내게 준 책 속지에, 나를 보면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며 “이렇게 만난 것을 하늘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각인되어있는 기억은, 남자친구의 손을 붙들고 걸어가는 아련한 뒷모습.

어느 날,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들 쉬쉬하면서 죽음의 원인을 수군거렸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쉽게 찾은 이유는 바로 연애였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영정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잔인한 이들은 화장터 앞에서 임신이었던 것 아니냐며 정황을 밝혀낼 방법을 늘어놓거나 죽음의 이유를 단정하며 말로 비수를 꽂았다. 유골을 뿌리러 떠난 검은 바닷가에서 나는 다짐했다. 당신처럼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신념 혹은 스스로를 꺾지 않고도, 난 잘 살아내겠다고. 어떻게든, 살겠다고.

삶이 전쟁인 나날들이 있었다. 외부의 적은 모호해져 간다는데, 웬일인지 여자들의 삶은 그리도 팍팍해 보였다. 어떤 이는 ‘혁명의 적’이 연애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커플들의 지배에 맞서 솔로레타리아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우리의 비루한 일상은, 강의실에서 노골적인 성차별, 성희롱이 버젓하게 자행되어도 꿈쩍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운동권과 진보진영의 가부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람들이 따르고 좋아하던 부총학생회장이 연애관계를 빙자한 성폭력 사건으로 뒷말이 무성했다. 과내에서는 데이트 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너무 빤한 시나리오지만, 가해자는 고개 뻣뻣이 들고 다니며 되려 자기가 마녀사냥의 희생자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단과대 건물에 그저 여학생들의 공간을 하나 만드는데도 진이 다 빠졌다. 남자들이란, 아예 대화의 상대가 되지 않거나, 아니면 토론해야하는 관계였다. 난 정말로 다들 어쩌면 그렇게 쉽게 연애들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의 손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잡설

나는 철갑을 두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아의 벽이 단단하면 할수록, 다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못되게 굴고 싶었고, 착한 여자라는 평가가 싫었다. 웃음을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의 “사귀자”는 말에, ‘이미 사귀고 있는 거 아닌가? 아는 사람으로, 선후배로, 친구로, 섹스파트너로, 애인으로… 대체 뭘로 사귀자는 말이지?’라고 생각하며 엉뚱한 표정만 지은 적도 있으니 좀 꽉 막혔달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말하는 연애는 간단했다. 연애를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말에 돌아온 대답이라고는, 화장을 하라거나 살을 빼라거나 헐렁한 티 쪼가리를 벗어던지고 좀 붙는 옷이나 치마를 입으라는 조언들이었다. 소울메이트를 운운하면, 눈이 너무 높다는 반응이었다.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두 존재가 어떻게 몸과 마음을 나누고 애틋함을 갖게 되는지, 그 경이로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없었다.

더구나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떠오르는 그 이성애적 각본들이 허접하게 느껴졌고 어떤 면에서는 싫기까지 했다. 연애 관계 속에서 당연하다고 치부되는 어떤 식의 전형성, 결혼이라는 제도적 관계로만 한정짓고 고착되는 닫힌 상상력,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두려움, 섹스를 둘러싼 불공정한 모함과 편견들.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채, 그저 연애하라고? 아, 재미없어. 난 연애보다는, 그저 편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관계들로 숨통이 트이는 것이 더 좋았다. 자연스럽게 여성주의자들과 친구가 되었다.

한 때는 원나잇 스탠드를 해야 된다고 외치기도 했지만, 글쎄… 그것 역시 곧 시들해졌다. 일종의 판타지였던 것을 알게 되었달까. 어차피 그것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거라서, 호감이라는 것이 이어지면 마찬가지로 연애라고 규정해야 하는 무엇이 될 수도 있는 게 썩 시원치가 않았다. 진정 내가 원하는 관계의 깊이는 그저 하룻밤 쿨하게, 그리고 바이바이, 그 이상이었다. 개인사를 덮어둔 채로 서로의 삶에 대한 앎이 부실한 상대와 맞는 아침은 그저 서걱거리기만 했다. 실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겁이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는 사랑을 원했지만, 연애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좋은 섹스를 하고 싶었지만 굳이 남자일 필요는 없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와는 무척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온 사람과 만나면서, 아주 잠시 행복하고 자주 비참해져본 적도 있는데. 누구를 만나던,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러지 못할 때, 상처투성이로 소금밭을 걷는 것처럼 아팠다. 한편으론. 오르가즘은 혼자서도 가능했으니 굳이 애타게 특별한 타인을 찾아야 할까. 스킨십과 같이 ‘남의 살’이 땡길 때를 제외하곤, 대체로 연애보다는 우정이 훨씬 나았다. 정 애인이 없으면, 친구끼리 잘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간혹 있지만, 난 그건 싫다. 일단 뭔가 존재의 화학작용이 있어야지, 먼저 물리적으로 애쓰는 건 그다지… 애니웨이.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연애들

아마 연애의 이야기는 외부에서 규정하는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독백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각각의 연애들에 씌워지는 색깔과 맛이 다 다르겠지. 돌이켜보면, 나의 20대는 ‘살기 위해’, 내가 무엇에 신나하는지, 어떤 관계로 행복해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등을 탐색하며 여러 우회로를 거쳐 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애라는 것이 그렇지 않나. 결국 친밀한 타인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더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부딪히는 접점이 고통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꼭 ‘연애 관계’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우회로를 다 설명해 무엇할까.

적어도 지금의 내게 분명한 것이 있다면,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연애하지 않고 있던 나의 상태가 그리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연애 관계 밖의 사랑에 취해 충만한 삶을 예찬할 수도 있고, 굳이 ‘남녀 관계’가 아니더라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인생의 우연과 자신의 선택이 결합해 ‘발견’되고 ‘확장’될 수도 있으며, 관계를 배타적으로 닫아두지 않고 ‘삼투압’이 가능한 상태로 상상할 때 ‘의미 있는 타인’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들… 이다. 더 나아가면 사람이 항상 사람과 연애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이나 사물과 연애할 때도 있고, 불특정 다수와 연애하듯 살 수도 있다. 너무 연애의 남발인가? 이쯤 되면, 나는 어쩌면 ‘연애’를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누가 좀 안다면, 같이 한번… 까이꺼 뭐, 컴온 베이베.

– 어둠의 왼손

응답 12개

  1. 행복말하길

    사십대 여인님 첫글 솔직한 의견이라고 봅니다. 다만 조금 포장되지 않은 솔직함이라
    어둠의 왼손님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거나 기분이 상하시지 않았나 싶네요.
    관점과 표현의 차이로 서로에게 작은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동물과 사물 불특정 다수, 즉 모든 존재하는 것과의 연애는
    트렌드 연애의 비해서는 무겁고 다소 재미가 떨어진다거나
    여전히 외롭거나 허전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뭔가의 제한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죠
    그로 인해 조금 더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는 장점도.
    트렌드 적인 연애의 단점은 가볍고 뭔가 제한되는 느낌이지만
    반면에 가벼움이 주는 즐거움도 있으며
    사람 대 사람의 경험으로써 인간관계의 대한 것들을 얻을 수 있어요.

    저는 아직 연애를 못 해봤습니다. 사람 대 사람의 연애가 두려워요
    트렌드적인 연애는 더더욱.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아마도 제 개인적인 일(연인이 아닌 어떤 소중한 사람과의 헤어짐)의 아픔이 너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관심있거나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사귀자는 말을 들었을때도 관심있으면서도 좋아하면서도 거절했죠. 튕기는 게 아니었어요. 순전히 형체를 알 수 없는 큰 두려움 때문이었죠. 저의 모순적이면서도 이기적인 두려움을 이길만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기면
    연애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강렬한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터무니 없는 수동적자세라 고민입니다. 시작도 전에 두려움인데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싶어요ㅋㅋ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연애를 모르는’ 저이기에 공감하고 갑니다~

  2. 쾌지나 칭칭 나네말하길

    7년간의 긴 연예를 막 끝내고 혼자 몇개월을 지내면서 연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 제 연애관은 제가 하고 싶으면 됩니다.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패스~ 다른 상대를 찾으면 됩니다. 어릴 때 ‘내 짝을 어떻게 찾지’라며 두려워 했던 감정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시간을 흘려보니 내짝의 부재를 두려워 하기전에 연애를 시작할수 있을 정도로 인구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삼십대를 지나가고 있는 여인말하길

    공감되는 글입니다. 제가 여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연애 이외의 다른 공감으로 충분히 인간관계가 충족되는 경우들을 종종 봐왔으니까요.
    트렌드적인 연애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내 방식대로 관계를 맺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가능한 얘기입니다.
    음… 너무 피상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는, 연애 관계에서의 어떤 행복과 비참함의 기저에는 뭔가 나아닌 다른 개체가 나를 인정해주길 바라는, 하지만 그것이 온전할 수는 없는 욕구가 깔려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트렌드”적인 면은 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의 짝을 찾아 헤매고 갈구하는 건 그런 욕구 때문은 아닐런지 생각해봅니다. 그건 단순한 부분이 아니겠죠. 단지 “욕구다”그렇게 치부할 만한 부분은 아닐거라는…
    사십대 여인님~
    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남에게 권하고자 하는 입장이라면, 인식의 차이에서부터 인정하고 말씀하시는게 옳은 것 같네요. 웹상에서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오해의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님의 답글을 볼때는 단도직입적으로 “너는 연애를 모르는구나, 계산하고 따지지 말고 연애부터 해봐라”그렇게 해석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볼때는, 어둠의 왼손님의 글은, 이미 그런 단계의 반응도 초월한 내용인 것 같아요. 냉소적이지 않잖아요?

  4. 지나가던 20대.말하길

    정말 공감합니다. 마치 제 마음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글이었습니다.

  5. 사십대 여인말하길

    제목만 읽지 않았습니다. 다 읽고 느낀 감상이…솔직한 듯하면서 뭔가 중요한 말미를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의 조언이 원글을 쓰신 분께는 주제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인정합니다. 밤새 고민하며 쓴 글에 처음 달린 댓글이 하필 이런 것이어서 상처를 받으셨다면 사과드리지요. 하지만 몇즐로 남의 삶을 재단하였다는 비난은 여전히 과합니다.

    더구나 제 댓글이 지나가다 님의 ‘그 잘난 “연애” 경험이 고작 저런 훈계를 늘어놓을 “자신감”의 근원이라면 그것도 슬프고 허접한-‘ 이라는 적대적 발언을 들을만큼 날이 선 것이었다고 인정하긴 더욱 어렵습니다.

    원글님께서 저의 ‘고작 저런 훈계’ 따위는 안 들은 것으로 하면 그뿐입니다. 하지만, 난데 없이 ‘그 잘난 연애의 경험’이라고 재단하는 지나가다 님의 ‘근거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입니까?

  6. 지나가다말하길

    아름다운 글, 적잖이 고개 끄덕이며 읽었어요
    열 명의 여인이 있다면 열 가지의 연애가-
    연애 상대가 꼭 사람, 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삼투압이 가능한 상태에서 의미있는 타인들과의 관계 확장..
    그렇게도 행복하다고 주장되는 “연애”가 지나치게 협소하고 지루해지는 순간.

    그나저나-
    사십대여인님은 글을 안읽고 제목만 읽으신듯
    그 잘난 “연애” 경험이 고작 저런 훈계를 늘어놓을 “자신감”의 근원이라면 그것도 슬프고 허접한-

  7. 해피말하길

    저도 연애를 하고는 있지만 연애를 잘 모르고,
    게다가 연애에 대해 별로 생각 해 본적도 없는데,
    님 글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봅니다.

    연애에는 ‘하고 싶다, 하기 싫다’의 의지만으로 설명하긴 힘든…..
    의도를 넘는 뭔가 우연적인 만남의 요소가 더 필요한 듯도 싶고.
    그런 우연하고 어려운 만남에 성공했다 치더라도
    그 만남의 순간이 시절인연이 아니면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설명은 이성(혹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 국한 될 뿐

    어둠의 왼손님 말씀대로 연애대상을 ‘주변 모든 것들’로 확대한다면
    언제나 무언가와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애정어린 가슴으로 찐하게 부대끼면서 살아내는 것 자체가 연애라고 본다면
    그건 현실의 삶 전체에 해당하는 것일테니,
    굳이 인간(혹은 이성)이라고 제외시킬 필요도 없겠지만
    그 대상이 인간(혹은 이성)이건 아니건 아무 상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흠…. 그러고 보니 세상만사 다 연애일 수 있는건데,
    왜 굳이 인간(혹은 이성)과의 연애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는지를 질문 할수도 있겠네요.
    왜 그랬을까요? ㅡㅡ*
    흠…. 뭔가 시작과 다른길에서 막을 내리는 듯 싶지만
    님의 잼나는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은 여기까지…. ^^;;;;

  8. 이십대여인말하길

    유려한 글솜씨만 빼고는 ‘와 내가 쓴 글 같다’라고 생각될 정도로 너무나 공감가는 글 잘 보았습니다. 20대 중반이 넘어가도록 연애 한번 안해본 저에게 주변에서는 ‘아주 이기적’이고 ‘뭔가 결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더라구요. 연애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고도 말씀하시죠. 그렇다고 해서 (연애과잉) 시대정신에 영합해서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저 또한 어둠의왼손 님처럼, ‘살기 위해’ 제가 무엇을 사랑하고 열망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하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것 또한 삶과의 뜨거운 연애가 아닐지 모르겠어요.

  9. 매이삼촌말하길

    뭐, 연애가 꼭 특정한 걸로 규정될 필요 없지요. 각자에게 맞는대로! 개인사를 되씹어본 시간 잘 봤습니다.^^

  10. 어둠의 왼손말하길

    사십대 여인/ 제목을 너무 말 그대로 받아들이셨나요? 밤새 고민해가며 개인사를 뒤집어보고 되씹어본 시간이 좀 허무하네요. 커플칭송 연애과잉의 시대에 연애를 ‘모른다’고 해서 쉽게 몇 줄로 남의 삶을 재단하시는 것은 아닌지. 제가 맺어온 관계들이 ‘연애’라고 불려지지 않았을지라도, 자아의 발전을 훈계하실만큼 자아에 미치는 농도가 옅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제안하시는 바의 호의는 알겠지만, 그건 제 몫의 선택일 겁니다.

  11. 사십대 여인말하길

    연애를 두려워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혹은 자기 욕망 앞에 아직도 솔직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동성이든 이성이든 누구하고든 진지한 연애를 하는 것은 자아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요. 공연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마음을 열고 일단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히네루’를 날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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