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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 – 게이의 19금 격정멜로

- sros23

전선인터뷰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 ‘게이의 19금 격정멜로’

김조광수는 제작자 겸 감독이다.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정치색이 강한 16mm 단편영화를 만들다가 1999년 <해피엔드> 기획과 홍보를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청년필름을 설립해 <와니와 준하><질투는 나의 힘><올드미스다이어리><후회하지 않아>등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2007년 커밍아웃 이후에는 <소년, 소년을 만나다><친구사이?>등 퀴어 영화감독으로도 직접 나섰다. 그 밖에 각종 동성애 운동을 주도해온 인권활동가이다. 꿋꿋한 소신과 말랑한 감성, 꽃무늬 셔츠를 너끈히 소화하는 곱상한 외모와 자아 검열을 거치지 않은 수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덕에 마니아층을 거느렸다.

‘불편한 연애’계의 아이콘 김조광수. 그에게 요청했다. 진부한 동성애 담론이 아닌 발랄한 동성연애 실화를 들려달라고. 그러니까, 동성애를 논할 때 흔히 반복되는 동일화 기제, ‘동성애는 이성애와 다르지 않아요. 소수자의 사랑도 인정해주세요’ 라는 방어적인 주장이 아니라 ‘이성애자 너희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르는 동성애만의 알싸하고 달달한 그 무엇’을 말이다. 만남의 장소가 신촌 아트레온 13층 카페. 참새 한 마리 얼씬 대지 않는 햇빛만 푸지게 쏟아지는 야외다. 지상이 아닌 옥상이라 참으로 다행이었다. ‘하늘만 허락한 사랑’ 19금 연애사를 듣기엔.

문란하면 어때?

‘광수와 화니는 햄 볶아요~’ 그의 블로그 최근 포스팅 제목이다. 야들야들한 분홍색 햄볶음 이 담긴 정갈한 음식사진. 아래에는 레시피 대신 염장질 사연이 달렸다. 사귄지 6년째지만 여전히 햄 볶는다고 우리들 예쁜 사랑 계속 지켜봐 달란다. 긴 세월 지고지순한 사랑의 금자탑을 쌓아올리는 그가 말문을 열었다. 누가 게이를 문란하다 하는가.

“동성연애는 이성연애보다 당연히 화끈할 수밖에 없어요. 이성연애는 학교나 직장, 모임에서 지켜보면서 호감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데 게이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난 이성애자들한테 우리가 문란한 이유는 너희 때문이라고 말해요. (성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놓았고. 누가 동성애자인 줄도 모르니까 일상공간에서 연애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어요. 주로 클럽이나 바에서 만나고 외모로 판단하는데 언제 또 만날지 모르니까 호감을 느끼면 바로 모텔로 가서 ‘최고의 밤’을 보내는 거죠.

설사 또, 문란하면 어때요? 남녀의 자유연애가 크게 문제되지 않듯이 우리도 그런 것뿐이고 우린 흠집도 없어요. 에이즈 위험이 있긴 하지만 이성애자도 마찬가지고. 레즈비언은 더 자유롭게 만나서 해보고 안 맞으면 헤어지더라고요. 어떤 레즈비언 커플은 섹스 없이 정서적 친밀감만으로도 관계를 유지하고. 게이는 그건 불가능해요. 남자들이 성적욕망이 충만한데 그런 남자 둘이 만나니까 더 스파크가 튀죠. 이성애자를 잣대로 동성애를 문란하다고 보고 자기는 순수한 척 고상한 척하는데 그런 공격에 대한 반작용으로 저는 더 즐거운 척 표현해요.”

제발 취향 좀 물어봐줘

문란이 웬 말이냐. 동성연애의 비애는 자유롭게 사랑하지 못함에 있다. 일단 사랑의 작대기를 이리저리 긋기에는 모집단이 너무 작다. 거기다가 게이들의 성적취향까지 까다롭기 그지없다. 예컨대 쌍커플 있는 남자는 느끼하다, 눈썹 짙은 남자가 좋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안 된다 등등 이상형이 구체적이다. 운이 좋아 외모가 끌려도 성적만족 이상의 공감이 있어야 관계가 지속되므로 금세 깨지는 커플이 많다.

또 게이는 대부분 섹스 포지션이 정해져 있다. “난 top인데 외모가 맘에 들었어도 그도 top이면 관계가 안 이뤄진다. bottom이면서 맘에 드는 상대를 찾아야 한다.” 단, top 포지션이 일상에서까지 남근의 권력을 발산하는 건 아니다. 가부장적 질서의 성역할로부터 게이커플은 비교적 자유롭다.

아빠빠, 뚱빠, 슬림빠도 있다. 아빠빠는 아빠 같은 상대를 좋아하는 ‘부성결핍’ 게이의 취향을 일컫는다. 게이는 아버지랑 친해지기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부성을 연인에게 찾기도 한다. 아빠들끼리도 사랑하고, 아빠와 아들의 연령대도 사귄다. 날렵한 몸매를 선호하는 슬림빠, 반대인 뚱빠도 있다. 뚱빠는 게이들 사이에 ‘스테디셀러’로 통한다. 또 대개 뚱은 뚱끼리 정분을 쌓는다. 그래서 동성애자가 아니라 ‘뚱보애자’라고 부른다.

동성애자들의 만남은 클럽이나 바, 그리고 인터넷 카페 등 소모임에서 이뤄진다. 사이버공간을 중심으로 직업별 나이별 취미별 등 오만가지 모임이 생기는 추세다. 가끔 소개팅도 한다. 그도 커밍아웃을 하고서 몇 번 ‘만남의 자리’에 끌려 나갔다. 그런데 주선자가 귀띔도 안 해주고 약속장소에 웬 남자랑 나와 있기 일쑤다. 저 사람 누구냐고, 왜 온 거냐고 물으면 그제야 선심 쓰듯 말한다. “게이야. 함 만나봐.”

“저는 항상 강조해요. 우리도 취향이 있다. 제발, 나의 취향을 물어봐줘(거의 절규). 한번은 소개팅 하고 영화 <매트릭스2>를 보는데 옆에서 자더라고요. 아무리 다급해도 설마 그런 사람이 제 취향이겠어요?”

동성애자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갈망한다. 세상의 박해를 당하는 터라 반대급부로 더 순수한 사랑을 찾으려 애쓴다. ‘난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거야’라며 소녀취향을 고집하는 연애교 진성당원들이 많다. 그는 좀 다르다. 이상형에 일관성이 없다. “뚱 빼고 다 된다.” 그 정도면 관대하고 폭넓다. “그래서 아마 나는 여자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남자를 사랑한 ‘위험한’ 운동권

처음 안 것은 중3 때다. 또래 친구들은 여학생한테 관심을 보이는데 남자에게 자꾸 맘이 쏠렸다. 친구들이 청량리에서 사온 빨간 책을 보여주면 어김없이 남성의 몸에 시선이 꽂히고 좋아하는 친구의 바지로 눈이 갔다. “걔도 발기했을까 궁금했다” 그 때가 한참 비디오가 보급될 즈음인데 친구네 모여서 포르노를 보고 너도나도 자위를 했다. 그리고 여성의 육체에 반응하는 친구들에 흥분하는 자신을 보았다. ‘난 남자를 좋아하는 구나’ 확실히 인식했다.

“그 즈음 어떤 남학생이 고백해왔어요. 좋아한다고.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야지 생각하고 조금씩 마음을 표현했지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받아주는 경우도 있었어요. 키스 정도는.”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의 독서모임을 대학까지 이어오면서 세상에 눈떠갔다. 83학번이다. 5.18 광주 비디오를 보고 분노가 폭발해 운동판에 뛰어들었다. 워낙 스타일이 독특해 프락치로 오해받는 일이 잦았다. 전대협 문화부장을 맡고 구속된 이후에야 프락치 혐의를 벗었다. 그럴수록 게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만약 안기부에서 알면 전대협 도덕성에 심한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었다.

“‘전대협 호모소굴’ 이런 기사가 날 수 있었죠. 혼숙만으로도 문제가 됐으니까. 만에 하나 형사가 강간할 지도 모르고 성고문 당할까봐 두려워서 숨겼어요. 또 운동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엄숙했는데 NL이 엄청 보수적이거든요. 동성애를 ‘미제의 썩은 문화’라고 비난했으니까(웃음) 커밍아웃은 엄두도 못 냈지요.”

남들 위장 취업 할 때 그는 위장 연애를 했다. 성정체성을 속이기 위해 후배 여학생과 교재를 시작했다. 커플로 지냈지만 스킨십은 전혀 없었다. 데이트를 가도 손을 안 잡고 심지어 여행을 가서도 잠만 잤다. 단 가투 나갈 때만 ‘동지의 손’ 맞잡고 연인으로 위장했다. 그렇게 3년을 지내던 어느 날 후배가 머뭇머뭇 입을 뗐다. “선배, 나도 성적욕망이 있어요.” 헤어졌다. 차마 말 못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성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인생사 새옹지마. 학생운동판에서 억눌렸던 성적욕망은 군대에서 만개했다. 군대는 성적 금기의 공간이자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횡행하는 위험한 장소다. 역시나 그에게도 추파를 던지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그 중에 하사관이 있었다. 동성애자는 아니었으나 사려 깊고 괜찮았다. 그라면 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거래를 제안했다. ‘애들 좀 정리해줘. 그럼 응해줄게.’ 계급장으로 다 막아줬다. 마음 편히 지냈다. 남자들을 줄 세우며 권력 감정도 맛보았다. 아이러니다. 한국사회 어딜 가나 ‘게이라서’ 눈치보고 움츠러들던 그가 가장 자유와 해방을 누린 공간은 학생회도 거리도 아닌 ‘군대’였다.

동성결혼추진 ‘뿌린대로 거두리’

“복학하고 종로로 가투를 나갔을 때 최루탄을 피해서 파고다 극장엘 갔어요. 지옥의 묵시록을 보려고요. 근데 극장 안 분위기가 야릇한 거야.^^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곳이란 걸 금방 알았죠. 거기서 어떤 형을 만났는데 자기는 스웨덴으로 이민을 간대요. 스웨덴은 동성결혼이 합법화 돼 있다고. 그 얘길 듣는 순간 ‘바로 이거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할 일은 이거구나 싶었죠.

나는 왜 그동안 게이라는 것을 숨길 생각만 했을까. 현실을 도피하는 형의 태도가 비겁해보였고, 그 형의 매력이 사라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동성애운동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 다음부터 내가 하는 모든 연애는 운동의 인적기반 확보를 위한 일이 됐어요. 운동권 시절에도 연대사업 하고 온다며 파고다 극장엘 가고 그랬으니까.”

게이로 사는 일이 곧 인권운동이었다. 연애가 연대 사업이었듯이 동성애가 희화화 되거나 괴물처럼 그려지는 것이 싫어서 퀴어영화를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어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모색하는 식이다. 애인과는 19살차이. 그가 대학교 2학년 때 태어난 사람과 사귄다 하여 주위에서는 ‘유괴범’으로 불린다. 아무려나,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니 둘이서 손잡고 웨딩마치 울리는 꽃길 걷고픈 마음 굴뚝이다.

“애인이 커밍아웃을 아직 안했는데 하는 대로 호주제 폐지처럼 헌법 소원 내고 공개적으로 싸워보려고요. 동성결혼 합법화 이루어서 꼭 결혼할 거예요. 그동안 뿌린 축의금이 얼만데!”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커플은 불이익이 많다. 회사에서 가족수당, 연금 등 복지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또한 애인이 아팠을 때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도 없다. 일 년에 한 두 번 만나는 형제는 사인할 수 있어도 막상 살 맞대고 사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 서류상 관계의 증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동성애의 사실혼 관계를 나타낼 길이 없어요. 남녀가 살면 당연히 섹스를 하고,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 살면 당연히 섹스 안 한다고 판단하잖아요. 남녀 중에 섹스를 하지 않는 무성애자들도 있는데 그들은 이성애자라는 이유로 사실혼 관계가 입증이 쉽고. 그래서 동성애의 법적혼 만큼 사실혼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해요.”

커밍아웃 자존감 높였다

동성애자의 가장 큰 난관은 커밍아웃이다. 최초의 관문은 나. 존재물음의 과정은 길고도 고되다. 가까스로 정리해도 부모 앞에서면 또 다시 좌절한다. 어떤 동성애자들은 엄마아빠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부모에게 밝히지 못하다가 서른이 넘어 맞선 자리에 끌려 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호모포비아들은 커밍아웃에 대해 ‘너 편하자고 부모형제 가슴에 대못 박는다’고 비난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그는 단언한다.

“커밍아웃하기까지 그 순간의 힘든 시기만 견디면 부모님과 더 많이 가까워질 수 있어요. 저는 그랬어요. 감춤 없이 속내를 다 터놓으니까 오히려 사이가 깊어졌어요. 운동권 게이들은 커밍아웃이 좀 쉬워요. 예전에 운동하면서 부모랑 한번 부딪혀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나 는 사귀던 친구랑 집안 대소사에 같이 다니면서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눈치 챘거든요. 부모님에게 동성친구랑 지내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믿음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 같아요. 부모님은 생각보다 강해요.”

사회적인 커밍아웃은 그도 나름 곡절이 많았다. 영화판에서는 지인들 중심으로 알음알음 서서히 알려졌다. 그런데 영화제작자 입장에서 공식적인 커밍아웃이 쉽지 않았다. 영화제작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캐스팅도 해야 하고 투자도 받아야하는데 대기업이 보수적이라서 “혹시 나로 인해 영화 제작 전반에 피해가 갈까봐” 염려스러웠다.

그즈음 게이커플이 나오는 영화 <와니와 준하> 시사회에서 어떤 기자가 공개적으로 물었다. 당신 게이 아니냐고. 시사회가 끝나고 가는 길에 전화까지 해서 재차 물었다. 기사화 하지 않겠다고 달래가며 집요하게 추궁했다. 끝까지 부인했다. 뿌리를 잘린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분하고 억울해서 펑펑 울었다.” 결심했다. 언젠가 꼭 커밍아웃 하리라.

영화와 영화 사이.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부었다(황동규). 2006년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를 제작하면서 ‘김조광수는 게이’라는 유쾌한 존재긍정이 가능했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넘자 다음 단계의 성장이 일어났다. 커밍아웃 이후 제작자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그는 <소년, 소년을 만나다> <친구사이?>등 퀴어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청년필름에서 만든 영화가 대여섯 편 되니까 불이익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제작자가 게이라서 싫어? 그럼 관둬! 이렇게 되고. 지금은 자연스러워졌어요. 커밍아웃이 장점이 많아요. 우선 김조광수의 골수팬들이 생겼어요. 내가 뭘 하더라도 지지해주니까 힘이 돼요. 돈도 모아주고 ‘당신 할 수 있어요’ 믿고 응원해주니까. 매사에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가끔씩 불편도 하죠. 목욕탕에서 아는 사람을 봤을 때. 처음엔 “와 반갑다 잘 지냈느냐” 안부를 묻다가 그 사람이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물러서요. 쟤 게이란 게 번뜩 생각이 난 거야. 자기 껄 가리고 황급히 뒤돌아서 가거든요. 꼭 볼 것도 없고 식(식성)도 안 되는 것들이 그래요. 웃기잖아요. 난 꼭 쫓아가서 등 탁탁 치고 말해주죠. 나, 니 꺼 안 보고 싶거든!”

동성연애, 그 쏠쏠함에 대하여

목욕탕 얘기가 나온 김에 마저 하자면, 게이라서 행복한 이유를 백 가지쯤 댈 수 있지만 목욕탕에서 느끼는 ‘말초적 행복감’을 빼놓을 수 없다는 그. 목욕탕이 아니라 선남탕이다. 남자 목욕탕이 그렇게 물이 좋진 않지만 그런대로 눈요기가 되고 대학가 목욕탕에 가면 그래도 좀 괜찮은 편이라며 입 꼬리를 씨익 만다.

“동성연애의 가장 좋은 점은, 신체구조를 서로 잘 알잖아요. (성감대가) 비슷비슷해요. 이성이라면 성관계를 갖다가 거기 말고 딴 데라고 말하기도 뭐한데 쾌락의 지점이 어딘지 우린 서로 잘 아니까, 육체적 쾌락의 만족도가 높아요. 또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정서적으로 여성적이라 양성 골고루 이해가 깊으니까 문화 예술같은 창조적인 분야에서 일하기도 좋고요.

그리고 둘 사이에만 몰입할 수 있는 거. 이성애자 친구들 보면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느라 힘들더라고요. 아닌 걸 알면서도 아이 학원에 보내고 연수 보내느라 돈 들고 고민하고. 그런데 우리는 에너지 뺏기는 데가 없잖아요. 애인이랑 산책하다가 그래요. “우리 참 행복하다” 게이지만 행복한 게 아니라 게이라서 행복해요.”

파란만장 난바다를 헤쳐 온 생. 그렇기에 적어도 끔찍한 회색빛 삶은 피했다. 일상의 평균치에 급급한 인생, 지리멸렬한 사랑은 아니다. 남들이 뭐라던 제 사랑을 한다. 재미가 쏠쏠하다. 명동이나 종로에서 버젓이 연인과 진한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어머 게인가 봐~” 화들짝 놀라는 토끼눈들에 승리의 브이를 들이 대며.

절박한 사랑, 수월한 이별

동성연애의 또 하나의 매력은 ‘에로티시즘의 무한 생성’이다. 이성애는 연애 ‘감정’이 없어도 결혼 ‘생활’이 가능하다. 무수한 갑남을녀들은 결혼의 장막을 치고 공식적으로 연애휴업에 들어간다. 하고 싶은 사랑보다 해서는 안 되는 사랑이 더 많은 사회적 규범을 충실히 따른다. 반면에 동성애 사회는 연애 ‘불황’이 없다. 가부장제 이전의 사회에서처럼, 결과에 전혀 개의치 않는 쾌락을 힘닿는 데까지 즐길 수 있다. 다만, 사랑이 뜨겁기에 관계는 헐겁다.

“제도적 법적 구속이 없으니까 짐 싸면 끝이에요. 그걸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싫은 데도 틀에 묶여 있는 게 더 문제 아닌가요? 마음이 떠났는데 왜 굳이 관계를 유지해요?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그런 거 없어요. 나이 들어서도 다른 사람 만나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어서 좋죠.

또 찰나의 위험성과 같이 살잖아요. 부모님이 오시면 서둘러 방 빼고. 그 친구는 아직 커밍아웃 안했기 때문에 길가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슬며시 제 손을 놓거든요. 그럼 따지죠. “왜 쟤한테 내가 부끄러워?” 티격태격 싸우고, 늘 긴장이 있고 사건 사고가 있어요. 세대차이 극복이요? 처음 만나고 1년 넘어서면서 그 벽이 없어졌어요. 얘랑은 평생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외부 장애물이 클수록 내부 결속력은 공고해지는 법, 그들이 ‘이쁜이~’ ‘자기야~’를 부르며 수년 간 ‘대낮부터 닭살행각’을 벌이는 비결은 게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점도 많지만 장점이 훨씬 많은 동성연애의 충만한 감성세계를, 그는 스크린으로 넓힐 작정이다. 가족주의와 성차별주의를 양축으로 하는 이성애주의의 시각에서 나오는 퀴어 영화는 편견과 연민에 갇힐 수밖에 없기에 직접 메가폰을 잡는다.

‘즐거운 척 지랄하는’ 퀴어영화

“이성애감독의 온정주의가 싫었어요. 니네 동성애자들 힘들지? 내가 한번 보듬어 줄게 라는 식의 시선이 아니라 난 더 밝고 유쾌한 퀴어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잽 날리면서 메롱 하는 얄미운 타입이랄까. ‘저것들이 불행해야 할 것들이 왜 즐거운 척 지랄이야 찌그러져 마땅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도록 난 일부러 해피엔딩으로 할 거에요. 이성애자들도 영화관에서 러브 환타지를 꿈꾸는데 우리는 왜 못 꿔요.”

요즘 장안의 화제작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동성애 커플 태섭(송창의)과 경수(이상우)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떤 측면에서는 나보다 더 게이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며 “공중파 드라마가 이 정도일진대 그간 우리나라 퀴어영화가 지나치게 소심한 측면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수현 특유의 대가족 캐릭터를 활용해서 동성애를 수용하는 가족의 다양한 입장과 태도가 드러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안방극장이다 보니 스킨십이 올드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점이라고 한다. TV에서 ‘커트’된 동성(연)애의 격정멜로를 오래지 않아 극장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은유

응답 5개

  1. 윤미정말하길

    형!

    나 기억할라나?
    난 형 소식을 종종 듣게 되는데….
    예전에 형이 나 좋아한다는것도 의도적이었던거죠? ^^

  2. 윤미정말하길

    형!

    나 기억할라나?
    개벽 87 미정이….
    난 형 소식을 종종 듣게 되는데….
    예전에 형이 나 좋아한다는것도 의도적이었던거죠? ^^

  3. 탱탱볼말하길

    김조광수님… 볼때마다 느끼는 건데….. 장국영 닮았어요. ;;; (쿨럭)
    그나저나, “친구사이?” 재밌게 봤습니다. 전반적으로 유쾌하면서도 디테일한 부분도 좋았고요. 10대, 20대 시리즈는 이미 만들었고, 지금 30대 시리즈 만들고 있다는데 기대가 됩니다. ^^

  4. 북극곰말하길

    ㅎㅎㅎ 느무느무 재미난 인터븁니다. 잘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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