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기르는 일의 위험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구실 뒤안에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어디 그런 생명이 숨어 있었던 건지, 딱딱한 씨앗을 땅에 묻고 물을 주었더니 사나흘 만에 땅바닥을 가르고 싹이 움트는 게 너무 신기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면 눈에 띄게 자라 있는 것도 놀랍고, 어느 새 솎아낼 만큼 무성하거나 열매를 맺는 것도 내가 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특했다.

자식이든 작물이든, 혹은 국민이든 ‘기르는 일’에는 공통점이 많다. 농작물의 영양분을 빨아 먹거나 성장을 방해할까봐 보이는 족족 잡초를 뽑았는데, 푸코가 근대 인종주의를 생명 권력(우생학)의 탄생과 함께 조망하며 자국민의 생명을 우량하게 기르기 위해 방해가 되는 종들을 가차 없이 제거하는 파시즘이야말로 생명을 기르는 통치술이라고 했던 기억이 퍼뜩 났다. 작물을 튼튼하게 기르기 위해 진딧물을 손가락으로 비벼 죽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내 모습에서 파시스트의 그림자를 본 후 잡초와 벌레에 무심하려고 애썼다.

작년에 한번 지어봐서 올해는 더 능숙해진 것 같다. 열무 씨앗을 뿌린 후 비닐을 덮어 주었더니 비둘기도 못 먹고 습도도 유지되고 온도도 적당해서, 그렇지 않았다면 60% 정도밖에 안 되었을 텐데 90% 이상이 발아에 성공했다. 그리고 빨리 자랐다. 열무김치를 담궈 먹은 후 그 자리에 또 열무 씨앗을 뿌리고 비닐을 덮었다. 그런데,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였다. 이미 날씨가 더워진데다 비닐까지 씌웠으니, 열무 싹은 트자마자 90% 이상이 타죽어 버렸다. 비둘기가 무서워서, 또 생산성을 높이자고 씌웠던 비닐이 여린 싹에게는 견디기 힘든 열기를 뿜어낸 것이다.

매이에게도 이렇게 하지 않나 돌아보게 된다. 엄마, 아빠 둘 다 키가 작아서 매이도 그럴까 꽤 걱정했다. 갓난 아기 때는 거의 달마다 의학서적에 적힌 개월별 평균체중과 비교했고 이유식을 뗀 다음에는 매이 좋아한다는 핑계로, 또 성장기에는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무엇보다 ‘귀차니즘’의 발로로 저녁에는 밥 대신 (국산은 비싸고, 미국산은 무서워서 호주산) 소고기를 구워서 먹인다. 그리고 또래 아이들만 보면 몇 개월이냐고 물어보며 속으로 매이의 키와 비교하곤 한다. 어쩌다 매이보다 개월 수는 많은데 키가 작은 아이를 만나는 날이면 나와 아내는 몇 번이고 그 이야기를 반복하며 쾌재를 부른다.

매이의 키가 평균치를 상회하는 데에는 (아마도) 웃지 못할 이유가 있다. 신생아 때 젖이 잘 나오지 않아서 분유를 함께 먹였는데, 산후조리원에서 먹인 것과 다른 회사 제품은 숟가락 용량이 다르다는 걸 몰랐다. 깨알같이 적힌 사용설명서는 보지도 않고, 으레 표준화 되어 있으려니 생각하고 산후조리원에서 일러준대로 두 수푼씩 타서 먹였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먹인 분유회사의 숟가락 크기는 산후조리원에서 먹인 것보다 2배로 컸던 것이다. 두 달이 지나서야 지금까지 2배로 진한 분유를 매이에게 먹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내는 친구인 소아과 의사에게 전화해서 계속 문제가 없을까 물었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는데, 고농도 분유를 계속 먹이면 탈수가 일어나서 뇌와 신장에 무리가 가서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매이는 분유만 먹인게 아니고 젖도 같이 먹어서 희석이 되었을 것이고, 기간이 아주 길지는 않아서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는 답을 듣고서 겨우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매이에게 좋게 작용한 면이 있었다. 고농도 분유를 먹은 탓에 목이 마른 매이가 모유를 죽자고 빨아대서 처음엔 잘 안나오던 모유가 한달 쯤 지났을 때부터 잘 나오게 되어 분유를 먹이는 양은 점점 줄어들었다. 혼합수유를 했던 아기는 대개 젖이 말라 주로 분유만 먹게 된다고 하는데, 매이는 아주 드물게 완전모유수유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방주사를 맞히러 간 보건소에서 신장을 재주었는데, 태어날 때 평균보다 작았던 매이가 고농도 분유를 먹이는 동안 성장 그래프가 현저하게 높아졌다. 지금까지 매이는 그 때의 성장률(그때는 상위 1%였다)을 야금야금 깎아먹으며 간신히 평균치를 유지하고 있다. 단기 속성 성장 요법을 실수로 쓴 셈이다.

우리 부부의 ‘정상 신장’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타자에 대한 공포는 ‘배운’ 탓인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매이가 주류에 대한 욕망으로 소수자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얼마 전 TV에서 필리핀 엄마를 둔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의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른 한국 아이는 안 놀아 주는지, 중국 조선족 엄마를 둔 친구하고만 노는데 ‘순혈’ 한국인 남자 아이들이 다가와서 “웨어 아 유 프럼. 너 흑인이지? 필리핀으로 가” 하며 떠미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경악했다. 저 남자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결핍감 때문에 저토록 혼혈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걸까? 저 아이의 부모는 어떤 사람들이며, 무슨 생각을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전수한 것일까? 매이는 설마하니 저러지는 않겠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타자에 대한 공포는 민족주의에만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타인의 문화와 권리와 취향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다문화주의에도 있다. 얼마 전 새로 발견한 동네 놀이터에서 매이와 함께 모래 장난을 하고 있는데 한 남자 아이가 거칠게 다가와 매이의 장난감을 만졌다. 그러자 한눈에 봐도 꽤 세련된 아이 엄마가 화들짝 놀라며 “방해해서 죄송하다”며 자기 아이의 손을 끌고 데려갔다. ‘그럴 것까지 뭐 있나? 같이 놀면 되지.’ 오히려 나와 매이가 머쓱해졌다. 요즘 젊은 부모 중에는 저런 사람들이 꽤 있다.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심성, 타인의 향락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그 ‘정치적으로 올바른’ 감수성 이면에는 나의 사적 소유인 몸, 나의 사적 소유인 향락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 감각이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매이또래의 또 다른 남자 아이가 다가와 매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 트럭을 빼앗았다. 매이가 “왜 그래? 매이 꺼야” 해도, 같은 나이라도 여자 아이에 비해 언어 구사력이나 사교성이 덜 발달한 남자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 아이는 아무 말도 않고 장난감을 뺏어 논다. 그러고는 진득이 노는 게 아니라 이내 팽개친다. 또 매이한테 와서는 장난감 삽을 빼앗아서 한두 번 모래를 파헤치더니 내팽겨 친다. 방금 전의 일도 있고 해서 나는 그 아이한테 “응, 너도 모래장난 하고 싶구나. 같이 하자” 라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어슬렁거리다가 또 다가와 매이가 들고 있던 게 모양의 플라스틱 용기를 뺏어서는 그 안에 담긴 모래를 매이 머리에 쏟아 부었다. 그동안 잘 참던 매이도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한테 그러면 안 되지” 하며 천천히 매이의 머리를 털어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남자 아이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매이의 놀이를 방해할 궁리만 했다. 나는 가방에 싸 온 과자를 꺼내 매이에게 하나 주고 그 아이에게도 “먹을래?” 하며 건넸다. 마치 사나운 개 어르듯이. 그 아이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받아먹었다. 나는 매이에게 한번, 그 아이에게 한번, 이렇게 번갈아가며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와 매이는 제비새끼처럼 입을 쫙쫙 벌리며 내가 넣어주는 과자를 번갈아 받아먹었다. 나는 마치 야생마라도 길들인 양 기분이 좋아서 그 남자 아이와 치기 장난을 하며 놀았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타자의 영역을 침해할까 두려워 타자와 더불어 사는 것을 피해서야 안 될 일이다. 더불어 살려면 엉켜야 하고 엉키다보면 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폭력 자체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폭력을 공통 ‘관계’의 힘으로 바꾸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그날 매이와 그 남자 아이는 깜깜해질 때까지 오손도손, 아웅다웅, 티격태격 엉겨 놀았다. 각자 부모의 손에 이끌려 헤어질 때 매이는 “안녕, 내일 또 만나” 했고, 그 남자 아이는 엉엉 울며 집에 안 가겠다고 버텼다. 거친 것 같아도 가만히 보면 남자 아이도 귀엽다.

– 매이 아빠

응답 2개

  1. 탱탱볼말하길

    그 남자 아이는 매이가 참 부러웠겠다. 엉엉 울다니! 야생마를 알아주고 길들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거라서 헤어지기 싫었던게 아닐까요, 오호~

  2. 안티고네말하길

    마지막 문장이 정말 참 귀여운 느낌. ” 거친 것 같아도 가만히 보면 남자 아이도 귀엽다.” 낯선 남자아이가 머리에 모래를 부어서 엉엉 울기도 했다지만, 매이는 참 대단한거 같아요. 무서웠을 수도 있을텐데. 같이 잘 놀면서, 거친 남자아이의 귀여움을 이끌어냈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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