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편집자의 말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연애

6월 2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보느라 날밤을 새웠습니다. 월드컵보다 더 긴장되고 흥분되더군요. 월드컵이야 내가 뛰는 것도 아니고 내 삶과 별 상관없는 경기지만, 선거는 나와 내편의 투표가 승패를 결정짓는 데 동참하고 또 그 결과에 따라 나와 내 아이의 삶이 바뀔 수도 있기에 가슴 졸일수밖에 없더군요. 연애할 때를 빼고 이렇게 가슴 졸이며 날밤을 새운 게 또 언제였나 싶습니다. 지난 촛불집회 때도 느꼈는데, 연애는 꼭 이성하고만 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때론 정치의 장에서도 우리는 몸을 섞고 영혼을 섞고 열정을 섞으며 뜨겁게 연애를 합니다.

이번호(19호)와 다음호(20호) 동시대 반시대 주제는 ‘연애’입니다. 대중과 하는 정치적 연애 말고요, 한 명의 다른 개인과 하는 ‘진짜’ 연애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것도 정치적이긴 마찬가집니다. 정치가 권력(힘)의 행사를 통한 사회적 관계의 재조정이라면, 연애는 확실히 정치적입니다. 연애만큼 힘이 센 관계가 또 있을까요? 연애만큼 사회적 관계의 촉진이나 해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있을까요? ‘수유너머’도 핵심 회원의 연애문제 때문에 연구실이 공중 분해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잘 되도 문제고, 깨져도 문제고, 행여 ‘부도덕한’ 연애라도 드러날라치면 공동체는 걷잡을 수 없이 분란에 휩싸이고 맙니다. 좋은 삶의 기술을 공부하는 곳이라지만 정작 연애의 윤리에 대해서는 너무나 서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올 봄부터 연구실에 연애 커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커플의 공명과 공동체의 리듬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혹시 불편한 관계라면 그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획을 진행시키면서 대상과 주제가 확장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와 모종의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연구실 친구들, 친구의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가 모였습니다. 자기네들은 너무 좋은데 사회가 불편하게 여기는 ‘동성(연)애’도 있고,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 십상인 십대 녀와 이십대 남의 연애도 있습니다. ‘가난’이라는 이 시대 연애의 치명적 조건을 공동체로 해결하는 ‘빈집’ 식구들과 수유너머 친구들의 이야기는 공동체와 연애의 행복한 조합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밖에서 규정되는 불편함은 오히려 연애의 불길을 더 타오르게 합니다. 정작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커플 안에서 발생하는 온갖 ‘애매 판명한’ 성 정치학적 문제일 텐데요, 사귀는 사람의 ‘못된’ 습속과 욕망으로 인한 불편사항들, 제보 바랍니다. 아, 연애 문제를 다룬다면서 정작 연애에서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는 담지 못했습니다. 결혼과 함께 연애는 졸업해 버린 사람들, 폭압적인 외모지상주의와 소심함 때문에 연애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커플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는 ‘솔로레타리아트’들의 목소리는 방명록과 댓글로 청해 들을 수 있을는지요.

–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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