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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고향

- 소모뚜

제2의 고향

지난 토요일 저녁 2010남아공 월드컵에 한국팀이 그리스팀을 2대 0으로 이겼습니다.

저는 친구와 함께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월드컵 첫 경기에 한국팀이 이겼으니 참 기쁘고 다음 경기도 기대가 됩니다. 2002년도에도 4강까지 올라갔던 한국팀을 응원하느라 저와 이주민 친구들도 광화문광장으로 갔었고 대~한~민~국~ 라고 힘껏 함께 외쳤던 것이 기억 납니다.

한국-스페인 경기 때 한 이주민 친구가 스페인팀 쪽으로 돈을 걸었지만 한국팀이 스페인팀을 승부차기로 이겨서 자기는 돈은 잃었지만 한국팀이 이긴 것을 기뻐하며 함께 대~한~민~국~ 라고 외치며 광화문거리에 행진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미등록 노동자였던 그 친구는 지금은 이미 강제추방을 당했습니다. 그 때 그 친구가 하는 말은 “스페인팀이 이길 가능성이 많아서 돈을 걸었지만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한국팀 쪽에서 응원을 했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와서 한국에 정들었기 때문에 한국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돈 잃었지만 기분은 참 좋다”고 말 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그 얘기를 하는 친구를 보고 저는 그의 말에 진심을 느꼈습니다. 왜냐면 저도 그랬으니까요. 한국에 들어온 지 3년이 되는 1998년도에도 월드컵이 있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각 팀이 자기 나라 애국가를 부릅니다. 그 때 마다 저는 애국가를 진지하게 부르고 있는 선수들을 보고 감동 받았습니다만 그들이 부르고 있는 애국가는 저에게 아무 느낌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에게는 눈물이 나 올 정도로, 닭살이 나고 부르고 있는 동안 애국자가 되는 느낌이 오게 하는 애국가는 오직 버마애국가 뿐 이였습니다. 또한 한국에 들어와서 “동해물과 백두산…” 으로 시작하는 한국 애국가를 처음 들었을 때도 아무 느낌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7년이 되는 해. 2002년도 월드컵. 우리 회사에서는 한국팀 경기 때는 잠깐 기계를 멈춰 놓고 회사동료들과 함께 축구경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팀과 하는 경기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경하게 됐는데 한구팀이 16강, 8강 또한 4강 까지 올라 갈 수록 저의 심장도 빠르게 떨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팀과 스페인팀 경기 때. 저와 이주민 친구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도 다 같이 빨간 티를 입고 대~한~민~국~ 외치면서 말이죠. 어려운 경기 이였지만 결국에 한국팀이 스페인팀을 이겨서 4강으로 올라갔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매우 기뻐서 경기가 끝났는데도 집에 안가고 한국인들과 함께 대한민국이라고 외쳐 하나가 되어 길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이 때 한국인들과 우리 이주민들 모두 다 같이 애국가를 부릅니다. 그 동안 저에게 아무 느낌이 없었던 한국애국가를 저는 제 자신도 모르게 눈물 글썽거리면서 닭살도 나면서 아주 기쁘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버마애국가를 부를 때 느낌처럼 말입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저는 내가 왜 이렇게 되냐 라고 생각을 해보니 나도 인간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답을 찾았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꿈이 태어날 수 있는 곳. 실천 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삽니다. 자기 나라 안 에서도 이동하고 또한 다른 나라로 이동해서도 삽니다. 오랫동안 머물게 되는 곳, 매일 보게 되는 사람들, 그 곳의 풍경들 등에 정이 듭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끊을 수 없는 쇠사슬 같은 정이 생깁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끊기 힘든 줄이 정이라는 줄”이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입니다. 비록 버마에서 태어나서 버마애국가를 불려 왔지만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가보니 이곳이 내 나라, 이 나라 사람들이 내 나라사람들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문제. 이 나라사람들의 아픔. 이 나라사람들의 즐거움. 그 모두가 나의 문제. 나의 아픔. 나의 즐거움으로 되어 갑니다. 왜냐면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정들 줄 알고 사랑 할 줄도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표적 단속으로 강제추방 당한 미누씨가 추방당한 이유는 한국 내 문제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 왔는데 이곳에서 문제가 생길 때 나와 상관없다고 하며 이를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은 사람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미누씨 같은 한국인들의 진정한 친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어난 나의 친구들의 아픔과 기쁨이 나의 아픔과 기쁨으로 변해가는 것이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는 한국애국가를 부를 때 버마애국가를 부를 때처럼 같은 느낌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여기가 나의 제2의 고향이니까.

– 소모뚜(이주노동자의 방송 www.mwtv.kr)

응답 1개

  1. 말하길

    이곳에 함께 산다는 것의 끈끈함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군요. 한국 정부의 이주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사회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이곳에 끈끈하게 우리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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