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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한 시간 노동은 얼마입니까?

- sros23

당신의 한 시간 노동은 얼마입니까?

해마다 6월이 되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서울세관 주변이 소란스럽다. 별관 4층에 입주해 있는 최저임금위원회 때문이다. 노동자위원(9명), 사용자위원(9명), 공익위원(9명)들이 모여 다음해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심의하고 6월 29일까지 노동부장관에게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데, 심의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란 건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위원들은 “노동생산성” “고용불안 해소” 운운하면서 인상률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버티기로 일관한다.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현실화”를 주장하며 집회도 하고 철야농성도 해 보지만 녹록치 않다. 심지어 회의실 점거로 압박을 해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공익’위원들이 있지 않느냐고? 노동부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위촉하는 공익위원들이 누구의 편을 들어줄까? 외제차와 고층빌딩이 즐비한 강남 한복판 길바닥에 앉아 뙤약볕 아래서 절로 쏟아지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그래도 한 달에 100만원은 받아야 하지 않냐”고 외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삼복더위에 패딩점퍼를 입고 있는 장면을 보는 것만큼 낯설다.

생계비도 안 되는 최저임금 4,110원

2010년 1월부터 12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급 4,110원이다. 8시간 근무하는 일급으로 계산하면 32,880원이고, 주40시간 근무하는 월급으로 환산해 보면 858,990원이 된다. 하루 8시간씩 한 달을 꼬박 일해도 월 100만원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100만원을 채우려면 하루 8시간 이상 노동을 하거나 휴일에도 근무를 하는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위원회가 2009년 5월에 발표한 보고서 <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주요 노동 ․ 경제 지표 분석>을 보면, 2008년 기준으로 미혼 단신(單身) 노동자의 월 생계비는 119만원인데, 그해 법정 최저임금은 월 78만원에 불과했다. 최저임금 수준이 미혼 단신 노동자의 생계비 수준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보여준다. 4인 가족일 경우를 가정해보면 “노동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최저임금법(제1조 목적)의 도입 취지가 더욱 무색해진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2011년 최저임금으로 시급 5,180원을 요구하고 있다. 하루 8시간 일하면 41,440원을 받을 수 있고, 주40시간 노동으로 환산하면 1,082,620원이 된다. 4,110원에 비해 26%가 높아지는 금액으로 인상율이 꽤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2009년 전체 노동자들의 월평균 정액급여인 2,166,477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경총, 전경련, 상공회의소 등에서 추천한 사용자위원들은 최저임금 ‘동결’안을 들고 나왔다. “과도하게 상승한 최저임금을 고려할 때 동결이 필요하다”라는 게 동결을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다. 한 술 더 떠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적정 최저임금은 36.2% 삭감된 시급 2,624원이지만 제반 여건을 고려해 동결안을 제시한다”며 노동계위원들을 자극했다.

어이없는 주장

< 최저임금 사용자 위원(안)>을 살펴보면, 2000~2010년의 명목임금상승률과 물가상승률이 각각 연평균 5.9%, 3.1%인데 비해 최저임금인상률이 9.5%이므로 고율의 인상이 누적됐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1988년과 2009년을 비교했을 때 국민총소득과 국민총생산은 각각 7.65배, 7.57배 늘었는데 비해 최저임금은 7.33배에 그치고 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최저임금제도의 취지가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고 임금의 최소수준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물가상승률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짓이다. 또, 노동생산성과 관련해서 2001~2009년 부가가치 기준 노동생산성증가율이 연평균 5.3%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인상율이 과도하고 누적해서 36.2%를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불변 GDP’를 ‘전체 임금노동자수’로 나누는 방식의 노동생산성 계산이 “노동생산성의 상승이 상품의 단위당 가치를 반드시 저하시키지는 않는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명목)최저임금인상률과 (실질)생산성증가율을 단순 비교한 대목은 무식(無識)을 가장해 본질을 호도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최저임금의 실상

사용자들의 기본적인 속성이 임금노동자의 잉여노동을 통해 이윤을 얻는 것이라긴 하지만, 동결도 모자라 오히려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런데, 사용자들이 원하는대로 법정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이들이 실제로 있다. 2009년 법정 최저임금이 시간당 4,000원 이었는데 2009년 8월에 4,000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210만 명이었고, 2010년 3월에 법정 최저임금 4,110원도 채 못 받는 노동자는 211만 명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경우 더 심하다. 청년유니온이 올해 4월 전국 주요 도시 편의점 427곳의 아르바이트생 444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는 경우가 66%에 달했다고 한다. 최저임금이 보장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되지 않을까? “최저임금이 4,110원이라는 건 알지만 4,000원만 받아요. 다른 아르바이트의 시급도 비슷하고 생활비가 떨어져 여유가 없었거든요. 처음부터 최저임금이 안 되는 줄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말을 하기도 힘들어요. 수도권 외의 지방 편의점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시간당 2,800원을 받는 경우도 많아요. 그들에 비하면 내 처지는 다행이죠.”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도 그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 그 착취구조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실업률은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이라도 일을 한 사람은 취업자로 구분하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정부 통계에 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 18시간 미만 취업자 중 추가취업희망자 등을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2004년도 9%대에서 2005~2008년 10~11%로 상승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된 2009년에는 12%를 넘어섰다. 15~29세 청년실업자는 정부 통계만으로도 올해 2월에 10년만에 최고치인 10%를 기록했다. 청년층 ‘실질’실업률은 더 높다는 얘기다. 이런 고실업률은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일지라도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세상에 실업자는 많고 너희들한테 줄 돈은 없다!”는 사용자들의 변치 않는 신념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보장해주면 그만일까

그렇다면 최저임금제도를 제대로 적용받고 있는 이들은 그나마 다행일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여기, 노동시간을 줄여 실질임금을 삭감하는 사례가 있다. 서울메트로(서울지하철)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월 209시간(주휴포함)에서 174시간(월 21.67일)로 줄여 임금을 삭감했다. 이 경우 시급제 최저임금을 보장하더라도 월 급여는 상당히 줄어든다. 가뜩이나 부담스러운 가계부에 더욱 무리가 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혹자는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서울메트로 청소용역 노동자가 10명이었다고 가정하면 전체 노동자가 월 2,090시간 청소했을 게다. 한 사람의 노동을 월 174시간으로 줄이면 전체 청소시간은 1,740시간으로 줄어든다. 월 350시간의 청소시간이 비게 된다. 지하철 역사가 저절로 깨끗해 졌거나 무인 청소기계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350시간을 보충할 2명의 노동자를 더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는(혹은 서울메트로와 계약한 하청회사는) 노동자를 더 채용할 생각이 눈꼽 만큼도 없다. 왜? 노동 강도를 높이면 되니까. 그간 209시간 동안 10명이 하던 청소를 8명이 174시간에 마치면 된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부당한 걸 알지만 눈물을 머금고 빗자루를 들 것이다. 앞에서 봤던 아르바이트생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황당한 기간제법

세상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무척 많다. 2007년 7월 1일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기간제법(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시행됐다. 기간제 노동자를 2년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취지야 그럴듯하다만 이윤(노동력 착취)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용자들이 어디 고분고분하게 제도를 따르겠는가? 2년이 되기 전에 해고(계약해지)했다. 일례로, 한국은행에서 운전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간제법이 시행되면서 “파견업체와 고용계약을 맺지 않으면 한국은행에서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은행에 직접 고용돼 매년 암묵적으로 계약을 갱신해 왔는데 하루아침에 파견회사와 고용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이전과의 차이점은 파견회사 몫으로 임금이 20%정도 줄어드는 것과 2년 후에는 한국은행에서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던 기간제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압박하고 고용을 불안하게 한 사례다.

최저임금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 제1회 민주노총 최저임금 UCC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면접을 보러 갑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에는 지난해 경제 위기로 실직한 한 가장이 올해 봄 선반 관련 일자리를 찾아 경기도 시화공단을 헤매면서 겪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http://nodong.org/2010/ucccontest/minpay_contest.htm) 이 구직자가 첫 번째 면접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우리가 현대차 2차 하청인데 자동차업계 구조가 수익은 1차에서 다 가져가요. 그래서 단가가 상당히 낮아요.” “시급 4,110원인데 하루에 잔업 2시간하고 토요일 일요일 일을 해야죠. 기본급만 가지고는 생활이 안돼요.” 두 번째, 세 번째 면접에서도 조건은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려 만든 최저임금제가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임금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매일 밤 9시까지 일을 하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특근을 해도 적자 생활을 면할 수 없다면 이런 임금구조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2008년 기준 연간 2,256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연간 1,764시간이고, 2,000시간이 넘는 곳은 한국과 그리스뿐이다. 몇 해 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연봉이 6천만 원도 넘는다는 신문기사가 세간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비정규직도 가만히 있는데 배부른 정규직들이 매년 파업으로 국가 경제를 위협한다”는 게 비난의 요지였다. 하지만, 시급으로 지급되는 현대자동차에서 연봉 6천만 원을 받으려면 근속연수가 어느 정도 된 노동자가 잔업과 특근을 기본 노동시간의 2배 가까이 채울 때나 가능하다는 사실은 거론되지 않았다. 또 산업재해 말고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과로사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금속노조 조건준 활동가가 쓴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라는 책을 보면 “현대차에서 365일 중 351일을 일하다 죽은 노동자에 대한 얘기들이 한참을 떠돌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자본가들에게 빼앗긴 잉여가치를 ‘노동일(시간)의 연장’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조건준 활동가는 이 같은 제조업 노동자의 삶을 ‘잠일술 세대’라 호명한다. 하루 24시간 중 10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보내는데 쉬는 시간과 출퇴근을 합치면 12시간 가량 된다. 나머지 12시간 중 6~8시간을 잔다면 남는 시간은 기껏 4~6시간인데 이 시간마저도 상당 부분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동료들과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노동하는 기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장시간 노동을 탈피하기 위해 금속노조는 지난 40여 년간 유지해 왔던 ‘주야맞교대제’를 ‘주간연속 2교대제’로 바꾸자고 요구해 왔다. 연간 평균 2,500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 작업장 현실을 연평균 1,900시간 이하로 바꾸고 시급제를 월급제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당연하게도, 노사간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 중 하나가 월급제방안이다. 노조는 그간 장시간노동을 조장해온 시급제를 임금보전방식의 완전월급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 반면, 사측은 생산물량에 연동되는 임금보전방식을 고집할 뿐 아니라 시급의 단순합산에 생산성연동수당과 변동급을 더하는 단순월급제를 주장하고 있다. 월급제 전환에 대한 경총의 시각을 들어보자. 경총이 발행하는 월간지에 매일경제 기자가 투고한 글의 한 대목이다. “노조가 주장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의 핵심은 월급제 전환이다. 생산량에 따라 급격하게 변동될 수 밖에 없는 급여를 고정시켜 노동자 생활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생산량에 따라 인건비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월급제로 고정시키면 요즘과 같이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는 시기와 경기가 회복돼 생산량이 급증하는 시기나 급여를 똑같이 줄 수 밖에 없다. ‘임금의 경기 연동’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사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다.”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형성된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확보하고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과 자본가의 이윤(잉여가치 착취)을 최대화하는 것. 대립이 불가피한 계급간 충돌 지점이다. 그리고, 시급제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을 노동일(노동시간)으로 나누어 지급하는 시간당 노동의 평균가격이라는 불합리한 환상을 심어왔던 것과 더불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시켜 왔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최저임금위원회 앞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여성연맹 조합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회와 농성을 하고 있을 것이다. 6월 29일 최저임금 심의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딱 천 원만 올려서 생활임금 쟁취하자”는 가슴 절절한 외침이 꼭 이뤄져야 할텐데, 인상된 시급 5180원으로도 생활임금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투쟁은 2011년에도, 2012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의 ‘주간연속 2교대제’도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돼 왔지만 아직까지도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효율성’ ‘임금의 경기 연동’ 운운하는 경총의 태도를 이겨낼 힘을 만들지 못하면 ‘월급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 및 건강권 확보’가 어떤 형태로 왜곡될지 모른다. 최저임금법 제1조 ‘목적’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노동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말에 그 답이 있다.

– 이영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교육선전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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