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청년유니온의 존재

- sros23

지난 일요일 명동에서 열린 최저임금권리찾기 캠페인 모습. 젊은 사람들의 호응이 상당했어요.

지난 일요일 명동에서 < 청년유니온> 위원장인 김영경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날 청년유니온이 주최한 ‘최저임금 권리 찾기 캠페인’이 있었거든요. 청년유니온 잘 아세요? 한국에서는 처음이 아닌가 싶은데요. 만 15세부터 39세까지 가입하는 세대 노동조합입니다. 비정규직, 정규직, 심지어 구직 중인 사람들까지 모두 포괄하는 일종의 일반 노동조합입니다. 지난 3월 13일 창립식을 가졌어요. 하지만 노동부가 조합 설립신고서를 계속 반려하고 있어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부가 반려하면서 든 핵심 사유는 구직자가 조합원 자격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구직자는 사업장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거죠.

하지만 ‘노동조합법’의 ‘근로자’ 규정에는 사업장 규정이 없이 “임금이나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되어있습니다. 즉 당장에 해당 사업장이 없다는 게 조합원 자격 자체를 박탈할 근거는 아니라는 거죠.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제외하고 고용 관련 정책을 다루는 다른 법들에는 ‘사업장’ 규정이 없고 ‘근로자’ 규정에 ‘취업할 의사를 가진 자’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4년엔가 대법원은 서울여성노조의 “조합원에 실업자, 구직중인 여성이 있다”는 이유로 노조 설립신고를 반려한 노동부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지요.

지난 일요일 명동에서 열린 최저임금권리찾기 캠페인 모습. 젊은 사람들의 호응이 상당했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입니다. 김영경씨는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하더군요. “공사에 계약직으로 취업한 친구가 있어요. 1년 계약했고 1년 연장이 가능하다고 했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취업했지만 2년 뒤에는 반드시 실업자가 된다는 것이죠.” 방금 취업한 사람과 방금 해고된 사람의 차이가 어떤 면에서는 크지 않다는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란 고용과 해고가 불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달리 말해서 잠재적 해고상태로 고용이 이루어집니다.

창립총회 때의 모습. 마이크를 잡은 이가 위원장 김영경씨

법이나 제도는 물론이고 학문적으로도 노동자 개념이 갱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 노동연구원 패널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처음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사람 중 90%는 그렇게 쭉 갈 수밖에 없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뭔가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상황을 지칭하는 걸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형태의 고용이 되어버렸다는 거죠. 그렇다면 취업과 실업을 확연히 나누는 개념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논리 도식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노동부만이 아닐 겁니다. 지금까지 이런 운동을 기존 상급노동기구에서 제기하지 못했던 것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통념을 노동운동하는 사람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노동조합은 직장이 있는 사람들,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말이지요.

김영경씨는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습니다. 오히려 과거 노동운동과 상황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유니온을 출범시킬 때 민주노총 쪽에서도 도움을 주셨죠. 어떤 부채감을 가지신 것 같아요. 뭔가 자신들이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처럼. 하지만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는 거죠. 아무래도 노동조합은 정규직 중심으로 짜여 있고 정규직 노조가 자기 문제 아닌데 무언가를 협조한다는 게 쉽지 않겠죠.” 김영경씨 말처럼 제 생각에도 민주노총이 부채감을 가질 것은 없어 보입니다. 청년유니온이 던진 메시지를 자기 갱신의 선물로 받을 수 있는지는 관건이겠지만요.

청년유니온이 얼마 전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답니다.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에 의해 대부분의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보니 구직자와 취업자 사이에서 반복실업과 반복취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조건, 게다가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다 보니 단시간 알바를 하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위한 노동조합이 건설될 수 없다면 자신의 권익을 어떻게 보장받아야 하느냐”고 물었더군요.

청년유니온의 설립이 무너뜨린 것은 노동자에 대한 규정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청년유니온은 다양한 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청년실업에 대한 문제제기나 청년인턴실업급여 지급과 청년 고용할당제, 최저임금현실화 등은 그래도 상상 가능한 운동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대학등록금 인상반대나 학자금대출제도 개선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고시원과 PC 방 문제를 주거권 차원에서 제기합니다. 마치 한국 사회 ‘가난한 사람들’의 모든 요구를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영경씨는 이 모든 것들이 대의가 옳아 하는 운동이기 이전에, 자신들의 삶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합니다.

“조사해보니 대개 1100만 정도의 학자금대출 빚이 있더군요. 일자리를 구해도 110-120만원 벌까 말까 하는데, 매달 50만원 가까이가 학자금 빚 갚는 데 날아가요. 그러니 우리에게는 등록금 문제가 아주 중요해요. 학자금 대출제도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고요. 고시원 문제도 마찬가지에요. 집이 없으니 소위 ‘고시원 난민’이 많아집니다. 고시원 들어가는 이유 뻔하잖아요. 보증금으로 낼 목돈이 없으니까요. 국가가 보증을 해주는 제도 같은 게 마련되어야 하지요. 이런 문제들은 정말 시급해요.”

노동운동이 여타의 사회운동과 연대해야 한다는 말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청년유니온의 운동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남의 일이지만 내 일처럼 싸운다’는 게 아니라 ‘그게 바로 내 일이다’고 말하는 거죠. 외적인 연대가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가 그런 연대로 구성되어 있는 겁니다. 존재들끼리 연대하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유니온은 한편으로 노동조합이므로 노동운동을 하는 거지만 동시에 그것은 사회운동이기도 하지요. 마치 노동자, 대학생, 홈리스 등 가난한 이들의 모든 문제가 다 노동운동의 주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영경씨는 이런 존재 방식이 특별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겪는 일이라는 듯 말하더군요. “집이 어려워 대학 다닐 때부터 온갖 알바를 했어요. 대학 다닐 때는 구내식당에서 십여 만원 받고 알바를 했죠. 편의점 알바를 한 적도 있고요. 수업시간 전까지 편의점에서 일해야 했죠. 방학 때는 고깃집 알바도 하고. 휴학하고는 대형마트 판매직도 했고, 기름 가게 경리를 보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학원강사도 했고…”

말 그대로 온갖 직종을 가로질렀고 온갖 존재들을 가로지른 셈입니다. 좋든 싫든 그런 존재 방식의 현재성을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둘러싼 온갖 문제들이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 대한 긍정이고, 각자가 처한 조건에서 싸워나가는 것이 사실상 동일한 투쟁임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청년유니온. 회원이 이제 110명 정도라고 하니 전국조직(?) 치고는 적은 수입니다. 하지만 들뢰즈(Deleuze)의 표현을 따 말하자면 “단 한 사람의 성원으로 구성된다 해도 셀 수 없는 역량을 갖고 있는 집단”이 있지요. 기존 척도를 문제 삼고 그 한계를 드러내는 집단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숫자와 상관없이 사회를 이행시킬 무한 잠재력을 갖습니다. 김영경씨는 노동부가 청년유니온의 설립신고서를 계속 반려하고 있는 이유는 유니온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합니다. 애들이 모였을 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제가 보기엔 노동부의 직관이 부당한 것이기는 하지만 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청년유니온을 응원합니다.

– 고병권

응답 10개

  1. zziraci말하길

    다시 읽어도 멋지다!!!

  2. vega말하길

    관리자님, 쓰고보니 카피한 인용부분이 지워진채로 댓글이 등록되었어요.. 빠진부분을 채워서 바로 위에 다시 올렸으니 이 글은 삭제해주셔요. ^^;

  3. vega말하길

    최저임금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어요, “처음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사람 중 90%는 그렇게 쭉 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요.. 왜 그런 것일까요? 고병권 선생님과 글을 읽으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맨 처음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시작했지만 그 일이 자기 적성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일이었다면 일을 하면서 따로 별도의 (대기업)취업준비를 하지 않더라도 일하는것이 곧 배움의 장이 될 수도 있는것 아닐까요?

  4. 김노자말하길

    제 블로그로 퍼갑니다. ~

  5. 말하길

    블로그에 담아갈게요 ^^
    좋은 글 감사해요~

  6. 만으로 30대말하길

    장년유니온도 결성해야겠습니다!!!

  7. 김영경말하길

    안녕하세요. 인터뷰했던 김영경입니다.
    어쩜 이렇게 재미있고 신나게 글을 써 주실 수 있는지… 왕 감동입니다.
    너무 감사드리구요. 열심히 할께요 ^^*
    수유 너머 식구님들도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구요.
    꼭 사무실 놀러 가서 밥 얻어 먹을께요.
    안녕히 계세요…총총총

    • 고추장말하길

      감동은 김영경님과 청년유니온이 준 거지요. 전 제가 받은 감동을 전하고 싶을 뿐이고요^^ 그나저나 한 번 더 뵐 기회가 곧 마련될 것 같습니다. 저희 식구들 중 청년유니온을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꾸 부추겨서…^^

  8. 말테말하길

    우와 완전 멋진데요? 블로그나 홈페이지가 있을까요? 좀더 알고 싶어요.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