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음악회에 다녀와서

- 김융희

음악회에 다녀와서

– 노음악가의 사모곡과 눈물

산넘어 저 하늘이 그리운 것은
멀고 먼 고향이 그립기 때문,
멀고 먼 고향이 그리운 것은
고향의 어머니가 그립기 때문,

고향의 어머니가 그리운 것은
어머니 보다 더한 사랑이
더한 사랑이 없기 때문.

“바리톤 박수길 독창회.”
성악가 생활 50년을 감사하는 독창회에서
세 번째 앵콜 송으로 부른 “그리움”이란 곡이다.

고희에 이른 노성악가는 이 노래를 부르며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북이 고향으로 가족과 어머니를 두고 어린 나이에
홀로 월남, 정상의 음악가가 되기까지 갖은 역경을 극복하며
천신 만고의 삶을 살아온 그 동안의 긴 여정을 돌아보며
준비한 독창회이었기에 감회가 유달랐을 것이다.

이 번 말고도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며 눈물 짖는
그 분의 모습을 가끔 보아왔기에 나는 더욱 숙연해 진다.

대학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국립 오페라를 이끌며
음악과 더불어 살아온 그동안 삶이 화려한 만큼, 그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마음속 깊이 세겨져 있나 보다.

부모 형제와 함께 하면서 고향이 가고 싶으면 언제나
다녀올 수 있는 그런 처지가 전혀 아닌,
어머니 품에서 한창 사랑을 받으며 소꼽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고향을, 어린 나이에 전쟁을 피해 홀로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천신만고 역경을 걸으며 살아온 삶이,
그 분의 예술을 더욱 빛나게 하는 원천은 아니었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문득 해본다.

성악 50년을 자축하는 독창회 준비의 변으로
“노래를 시작하면서 성악이라는 음악의 한 영역 속에서
50년을 성악가로 대접을 받으며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그냥 감사할 뿐” 이라고 초대장에 쓰여 있다.

벌써 몇 주가 흐른 일이지만 아직도 마음의 한 구석에 남아
나를 애잔하게 하는 음악회였기에 화사첨족이 되었다.

항상 들어도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가곡,

[나의 팔이 수천개라면 혼자 물방아 돌려가며
깊은 산속의 나무 바위 모두 없에 버릴텐데
나의 사랑 아가씨 나의 진심 알겠지
아~ 힘 없는 나의 팔, 올리는 일도 나르는 일도
모든 일이 힘든 일 뿐, 나의 몸은 지치네
하루 일을 끝내고 모여 앉아 지친 몸과 맘을 쉬노라면
주인께서 우리에게 “모두 열심히 일했소” 다정하게 칭찬하면
예쁜 아가씨 웃으며 “모두 편히 쉬어요”
나의 사랑 아가씨 나의 진심 알겠지]

– 첫 번째 스테이지,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아간 아가씨”중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흰 눈위에 떨어져
뜨거운 내 맘의 슬픔 눈 속에 녹아 버리네
파란 싹이 돋아나고 따스한 바람 불어오면
얼었던 땅은 녹아 내리고 부드런 눈도 녹으리.

내리는 저 눈 내 슬픔 알까, 가는 길을 말해다오.
나의 눈물 흘러가면 작은 냇물 반기리
냇물 따라 흘러가서 마을 지날 때
나의 눈물 뜨거워지면 그 곳은 내 님 사는 집.]

– 두 번째 스테이지, 연가곡 “겨울 나그네”중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금빛 광채 빛나는 황혼 노을 구름 사이로
히미한 빛 피어나고 나의 창가에 잠기네
나의 탄식, 나의 두려움, 나와 네게 있으랴
아니, 난 나의 가슴속에 너의 하늘 간직하리라
나의 마음 부서지기전 불타는 빛을 적시고
그 빛을 음미하리라.]

-세 번째 스테이지, “저녁 노을에” 중에서

제 2부에서는 우리 가곡들로

김연준의 “그대여 내게로”와 “안타까움”, 서경선의 “들꽃”
백경환의 “길”, 강창식의 “귀거래행”
김성태의 “산유화”, 김동진의 “진달래 꽃”이 불리어졌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열화와 같은 박수 갈채,
장내는 긴장의 고요와 흥분의 환호로 시종일관이다.
나도 분위기에 어울려 다 놓아 버린 채, 손바닥이 얼얼이다.
다사 분망의 현대인들에게 이런 기회가 가끔은 있어야할
분명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보내주신 두 장의 초대권을 나의 아내가 함께 할 수 없었다.
동행할 동료를 찾지 못한 나는, 뒷풀이로 마련한 멋진 음악당과
잘 어울러진 녹음의 켐퍼스에서의 가든파티는 불참했다.

우리의 판소리나 대중가요 음악회에서는 전혀 아닌
순수 음악회를 관람하면서 늘 이해 못한 나의 아쉬움이 있다.
음악은 듣고 감동하며 즐기는 것이라면 어떤 격이나 룰에서
좀더 자유스러운 분위기이면 안될까?

판소리 굿판에서 추임세나 가요제에서 환호처럼, 음악회에서도
음악가의 열창이 있다면 관객의 감동도 함께 했으면 하는데…
무지의 소치려니 소양도 부족하고 경망스런 나는 도대체 힘겨워
때로는 엉뚱한 실수로 나를 당황케하는 관람 분위기의 적응이다.

노래가 끝나도 박수를 보낼 때가 있고, 다음 곡을 조용히 기다리는
때가 있고… 때로는 별로 흥이 있는 것 같지 않는 형식적 긴 박수.
앵콜송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박수, 등 등.
너무 격을 차려 경직된 분위기나 형식에 치우쳐 음악의 감동을
놓쳐버린 것 같아 이 무지 문외한은 늘 아쉬웠다.

그런데, 오늘 독창회는 평소의 그런 음악회가 전혀 아니었다.
노음악가의 진솔한 노래에 절대적 호응의 관객들은, 분위기도 좋았고
감동도 한층 더했다.
모처럼의 좋은 음악회에 초대해 주셔서 고마웠고,
다른 바쁜 일로 아내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아쉽다.

– 김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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