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개 같은 내 인생(My Life As A Dog)은 도시게릴라를 꿈꾼다.

- 박경석

‘개 같은 내 인생’은 스웨덴에서 만든 영화제목이다. 어릴 적에 영화제목에 끌려서 호기심으로 본 기억이 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기에 개 같은 내 인생이라 했을까? 그런데 영화의 내용에서 별로 개같이 힘든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제목에서 나타난 ‘개 같은’은 한국식으로 해석하면 욕이 되지만, 스웨덴 관습에서 ‘개 같은’은 좋은 뜻이라 한다.

호기심에 끌려 보았던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처럼, 나는 중증장애인의 개 같은 삶이 유쾌한 사람의 삶으로 바뀌는 꿈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꾸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 때문에 학령기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중증장애인들이 검정고시 공부를 하는 공간이다. 물론 검정고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삶에 필요한 다양한 자립생활훈련과 교육을 진행하고, 학생들은 처음이나 다름없는 사회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말하기 위해 길거리 투쟁도 마다하지 않는 공간이다.

어느 날 30세 중반의 뇌병변장애 1급인 남학생 한 명이 내게 물어왔다. ‘선생님, 제가 개새끼입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왜 그러냐? 무슨 일이 있냐?’라고 했다. 그는 ‘노들에서 공부 배우기 전까지 저는 거의 집구석에만 처박혀 살았는데요. 아침에 부모님이 출근할 때 밥 먹고 집 잘 봐라 하고 나가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집 잘 봤냐 밥 먹어라 하고. 그렇게 초등학교도 다녀보지 못하고 30년 넘게 살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명색이 교장인데 차마 학생에게 ‘그래, 개새끼 맞아’라고 할 수가 없어서 ‘개새끼는 무슨, 그런 말을…’하며 넘어갔다. 그러나 진실은 영락없는 집 지키는 개새끼보다 못한 삶이다. 골방과 시설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중증장애인의 현실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본주의의 폐기물로 전락한 삶이 바로 그들의 삶인 것이다.

노들장애인야학에는 자본의 가치로 보면 자본주의의 폐기물로, 개 같은 인생으로 전락한 중증장애인 50여명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자본의 세상은 경쟁과 효율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한다. 성공한 사람은 경쟁에서 이긴 사람을 말하고, 대다수가 성공을 꿈꾼다.

그러나 다른 꿈도 있다. 자본의 가치에 적당히 맞추어 꾸는 꿈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와 성공을 꿈꾼다. 나는 그런 꿈을 노들에서 꾸고 있다.

노들은 ‘노란들판’의 줄임말이다. 가을 녘 곡식이 풍성하게 자란 노란들판을 보며 함께 평등하게 나누는 유쾌한 꿈을 꾸는 곳이다.

100년 전 헬렌켈러는 미국의 방송국 쇼프로그램에서 ‘자본주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쓸모보다 목숨이 길어요.’라고 대답했다한다. 장애극복과 인간승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3중고의 장애를 가진 장애여성이 내린 자본주의에 대한 평가다. 물론 그녀는 불굴의 노력을 통해 자본의 사회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다수 장애인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불평등은 자본이 신처럼 숭상하는 경쟁의 가치 속에서 해결될 수 없다.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일부 살아남거나 자본주의 폐기물로 전락하거나이다. 가치가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장애인만을 위한 변화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변화이다.

그래서 노들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고 길거리로 함께 나가는 것은 유쾌하다. 노들에서 개 같은 내 인생이 유쾌하게 변화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가치에 똥침을 날리는 도시게릴라의 꿈을 함께 꾸며 공부하고 투쟁할 수 있기에.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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