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2호] 매이와 몽이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매이와 몽이

예전에 아내가 어떤 분의 강의를 듣고 와서 그분의 우스갯소리에는 뿌리 깊은 남근중심주의가 있었다며 불쾌해한 적이 있었다. 자본주의에서는 상품가치가 노동 시간으로 계산된다면서, 그런 식이라면 ‘아이’의 가치는 5분여의 섹스시간으로 계산되어야 한다고 비꼬았다는 것이다. 아내 생각에, 그분은 무의식적으로 아이가 남자의 사정(射精)을 위한 섹스노동에 의해 생산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음담패설을 해서(아내는 음담패설을 좋아한다), 혹은 인간의 가치를 상품가치와 비교해서(그분도 인간의 가치가 상품가치로 환산되는 자본주의를 비판했다)가 아니라, 아이를 ‘생산’하는 ‘노동’이 섹스라고밖에는 생각 못한 남근 중심적인(혹은, ‘수정란’ ‘정자’, ‘기원’ 중심적인) 사고 때문에 불쾌했다는 것이다. 대리모의 현실이 증명하듯, 아이를 생산하는 노동은 섹스를 하는 남성이 아니라 열 달 동안 배속에서 태아를 기르고 죽음의 고통을 감내하며 출산하는 여성에 의해 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섹스에 의해 생긴다는 말은 아이를 낳는 데 함께 한 남성의 노동 역시 축소한 발언이다. 대부분의 예비 아버지가 그렇듯 매이를 잉태하고 나서 나는 아내의 ‘임신노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밥하고 청소하는 거야은 그전부터 해오던 일이었고, 애기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는 ‘감정노동’이 한층 배가되었다. 더구나 출산 전 2개월 동안은 장애인 활동 보조자로서 다른 노동은 거의 할 수 없었다. 8개월을 접어들면서 재난 수준의 질환이 아내를 덮쳤다. 각막에 스크래치가 생겨 두 눈을 붕대로 감고 있어야 했고, 설상가상 계단을 내려오다 고관절 근육이 수축되면서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시각 장애에 중증 장애까지 겹친 것이다. 끼니때마다 밥을 떠 먹여줘야 했고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바퀴 달린 의자에 올려 주고 내려 줘야 했다. 그때의 장애 경험 때문인지 아내는 장애 관련 영화에 대한 평론을 자주 쓴다.

사실 임신 중 아내를 위한 감정노동의 일등 공신은 내가 아니라 ‘몽이’였다. 몽이는 아내가 동네 아줌마한테서 얻어온 잡종견이다. 젖비린내가 심하게 나던 그놈은 우리 집에 오자마자 먼저 있던 ‘하늬’(말티즈 순종)의 밥그릇을 차지할 정도로 적응력 만빵의 잡견이었다. 첫날부터 똥오줌 눌 곳을 제가 정하고 매뉴얼을 보고 하듯 자신의 영역과 역할을 똑 부러지게 아는 성격 좋고 똑똑한 강아지였다. 그에 비해 몽이보다 세 달 전에 식구가 된 ‘하늬’는 선천성 고관절 탈구에(수술하느라 60만원이 들었다)  입맛 까다롭고, 성격은 히스테리에 분리장애, 약자 특유의 공격성까지 두루 갖춘 총체적 ‘찌질이’였다. 잡종 만세!

아무튼 임신 후 아내의 정서적 태교를 담당한 것은 몽이였다. 두 눈을 붕대로 칭칭 감고 꼼짝도 할 수 없는, 게다가 호르몬 폭발로 극단적인 감정 기복 상태의 아내를 정서적으로 안정시켜준 것이 몽이다. 소파에 누워 있는 아내의 배에 착 달라붙어서 꿈벅꿈벅 졸다가도 문득 생각난 듯이 아내의 얼굴을 핥아주곤 했다. 남들은 예쁜 연예인 사진을 보며 태아의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지만 아내는 몽이를 보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몽이만 같기’를 바랐다.

매이가 태어나고 나서 주위 사람들이 개는 어떻게 할 거냐, 버려라, 남 줘라, 말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매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줬지 나쁠 리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설사 좀 나쁜 영향이 있더라도 이미 식구가 된 이상 강아지들을 쓸모없는 상품 취급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매이가 뒤집기를 할 때쯤 몽이는 아내 품에 안긴 매이에게 애정공세를 퍼부었다. 손을 핥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얼굴, 심지어 입술까지 핥았다. 약간 멈칫했는데, 웬걸, 매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혀를 내밀며 몽이의 ‘프렌치키스’에 화답했다. 몽이와 매이의 낯 뜨거운 애정 행각을 지켜보며 아내는 첫 키스의 추억이 너무 날카로워서 나중에 애인이랑 키스할 때 실망할까봐 걱정했다.

병균에 감염되면 어쩌냐고들 하지만 직관적으로 몽이와의 키스가 해로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내 친구 중에 소아과 의사가 있는데, 강아지와 함께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아토피에 적게 걸린다는 논문도 있다고 한다. 그래선지 초기의 아토피성 피부질환도 점차 없어졌다. 개털은 또 어쩌냐고들 하지만(아내나 나나 청소를 너무 귀찮아해서 정말 개털이 많다) 기관지염을 일으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개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라고 받아쳤다.

감염을 막기보다는 면역력을 기르는 게 낫다는 지론이 청소를 게을리 하는 빌미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10개월부터 집 앞에 새로 생긴 어린이집에 매이를 보냈다. 덕분에 감기는 자주 걸릴지 모르지만 사회성은 엄청 빨리 키웠다. 자고 있는 애를 들춰 업고 맡겼다가 가장 늦게 데려오고 토요일 한 나절도 꼬박꼬박 맡긴다. 엄마랑 붙어 있는 것보다 어린이집에서 제대로 된 밥 챙겨먹고 노는 것이 엄마나 매이 모두에게 좋다고 생각해서다.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는 신종플루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이 있으니 타미플루 처방을 받자는 의사의 말을 씹고 그냥 감기약만 챙겨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다행히 신종플루가 아니었다.)

죽자 살자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는 어린이집이 우리보다 더 잘 먹여주고 놀려줘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내와 나의 자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기적이지 않냐고 하겠지만 나나 아내는 좀 이기적인 부모가 되려 한다. 우리가 행복해야 매이도 행복할 수 있을 거다. 행복은 더불어 생기는 법, 매이의 행복을 위해 나의 불행을 감내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매이나 이상한 부모나, 힘들겠지만, 서로 적응해가며, 또 서로 변해가며, 최적의 행복함수를 찾아낼 것이다.

– 매이 아빠

응답 11개

  1. 알라말하길

    메이 너무 예뻐요~
    육아 일기 일주일에 두 번 연재해 주시면 안 되요? ㅋㅋ

    • unzeit말하길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삼년 동안 평생할 효도 다 한다고 하더군요. 요즘 ‘매이'(메이, 아니죠)가 꼭 그렇네요. 고슴도치 아빠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위클리 수유너머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 돌아온 개털말하길

    매이와 몽이의 저 눈매와 배치는 거의 영화 포스터급이군요.
    근데
    뒤에 보이는 핑크 내복에 회색 양말의 저 종아리의 주인공은 도대체 누구?
    지금 발견한 나름 사진의 얼룩이네 ㅎㅎㅎㅎ

    • 몽이말하길

      아마도….신종플루에 걸려 널부러져 있던 매이 부모 중의 한 분으로 사료되옵니다만….

  3. 장동건말하길

    몽이와의 프렌치키스라니ㅎㅎ 저도 나중에 애인과 키스하고 실망할까봐 걱정이…;

    • 매이아빠말하길

      뭥미? 장동건님은 어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을 가지고 있삼? 그리고 아직도 애인과 키스한번 하지 않았다는 말?…음, 장동건…

    • 걸어다니는 죠스말하길

      매이 아빠님의 센스는,, 온라인에서도 빛을 발하는 군요. 장동건님의 댓글은 그저 ‘매이가 나중에 커서 애인과 키스하고 실망하는 것이 나도 걱정된다” 인거 같은데요 ㅋㅋ 장동건님이 왜 키스를 한 번도 안해봤겠습니까?! 1등끼리 연애하는 세상인데 ㅋㅋ

  4. 매이 엄마말하길

    몽이는 우리 부부에게 양육에 대한 근거없는(?) 자신감을 심어준 고마운 존재이지요. 그냥 개새끼을 데려다 키우니 개가 되더라…우리가 뭘 특별히 공부하고 알아서 더 해준 것도 없는데, 그냥 개새끼인 탓에 자라니까 의젓한 개노릇을 하는 개가 자연히 되더라…하는 확신 같은 것 말이죠. 매이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 새끼이니까…그리고 (늑대젖을 먹고 자란 소년 뭐 그런게 아니라) 사람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사람이 되겠죠. 사람은 개와 달라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하겠지만…뭐 적당히 부모를 닮고 적당히 부모를 지양한 사람이 되겠죠. 무엇을 닮고 무엇을 지양할 것인가는 매이의 몫일 테구요. (그리고 개는 농촌에 사는 경우는 동물과의 접촉이 더 많겠죠?)

  5. 익명말하길

    헐. 아기와 개라….정말 저래도 되는 것인가? 지금은 괜찬다지만 나중에도 괜찬을지. 정말 매이의 부모라는 사람들은 저런 사진을 버젓이 올려놓고, 애가 아파도 어린이 집에 보냈다고 그것도 자기들 자유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놀랍네요. 애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러니 자신들이 특이한 생각을 가졌다고 특이하게 키우지 마셔요. 애가 불쌍합니다. 그게 바로 학대 아닌가요?

    • 지나가던 개털말하길

      소아과 의사의 말을 참고하고 있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이가 아파도(뭐, 죽을 만치 아픈 건 아니었구 감기 증상이었다잖아요)
      어린이집에 보내고 부모가 자유시간 가졌다는 게
      오히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덜 생각하는 게 아닌가요?
      좀 거리가 있어 보이잖아요.
      이 정도론 인류사 혹은 인류문화학적 – ㅋㅋㅋ – 관점에서 보면 아예 특이한 축에도 못 낄 것 같구…
      이걸 학대라 하면 웬만한 건 다 학대가 되어버려 진작 분노해야 할 학대가 숨을 곳이 많아지겠지요.

    • 지나가던 꼬꾸닭털말하길

      특이하지 않은 양육방법은 뭘까요?
      다들 자기들의 특이성으로 아이를 키우는거 아닐까요?
      관념에서 밖에 존재하지 않는 에 대한,
      그와 더불어 갖게되는 에 대한 어떤 상상.
      제법 자란 청소년들과 만나다 보면,
      그런 상들 때문에 느끼는 결핌감이 아이들에게 주는 고통이
      훨씬더 문제라고 느껴지곤 해요.
      아마 매이 부모님과 더불어 자란 매이는
      그런 상을 갖게되지 않을것 같아 전 안심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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