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소속감

- 매이아빠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소속감

“대함~민국” 어디서 배웠는지 매이가 월드컵 구호를 흉내낸다. 아직 “짜짝~작 짝짝” 새마치 장단의 박수는 못치고, 어설프게 손바닥을 두세 번 부딪치고는 불경스럽게(?) 가운데 손가락만 편 양 손을 앞으로 쭉 내민다. “푸하하. 매이야 그게 뭐야?” “응, 대함~민국 하는 거야” 나는 그 의도치 않은 불경스러움이 재미있어서 “이렇게? 대한~ 민국” 하며 매이처럼 ‘성(性)스러운’ 가운데 손가락을 곧추세워 양 손을 앞으로 쫙 폈다. “짜짝~작 짝짝.”

그 불경스러운 손가락 때문이었을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루과이에 석패했다. 매이는 무책임하게(?) 이상한 손동작만 가르쳐주고 정작 시합 때는 엄마 젖을 물고 잠들어 버렸다. 아내는 편하게 경기를 보려는 작전으로 일찌감치 매이에게 젖을 물리고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덕분에 나는 만화 틀어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매이와 시청권 다툼 없이 시합을 볼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매이는 일부러 잠든 척했다는 듯이 눈을 떴다. 예의 그 “뽁” 소리를 내며 엄마 젖에서 입을 뗀 매이는 “어 오늘 대함민국 하는 날인데” 하고 묻는다. 아내가 “응, 매이야. 벌써 했어, 매이 자는 동안에. 근데, 우리가 졌어” 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매이는 “응? 졌어? 엄마가?” 라고 묻는다. “음..우리가 졌어” 하며 아내가 손으로 원을 그리자, 이번엔 “매이가? 매이가 졌어? 언제?” 하며 황당하다는 듯 쳐다본다. “아니, 엄마랑 매이가 진 게 아니라 우리나라 팀이 졌다구.” 라고 내가 설명지만, 매이는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뭘 졌다는 것인지’ 의아스러워 했다.

매이는 계단 올라올 때도 아내와 경주를 하며 다 올라와선 꼭 “와, 매이가 이겼다, 만세” 하고, 가금씩 엄마에게 팔씨름을 청해서 자기가 이기면, “엄마, 매이 힘 쎄지?” 하고 의기양양해 할 만큼 승부욕이 있다. 그런 매이로서는 자신의 행위와 관계없이 무조건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못내 억울한 모양이다. 하기야 매이는 ‘우리나라’라는 추상적 범주의 의미가 뭔지, 그게 엄마랑 자기랑 무슨 관계인지, 축구팀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은 뭐고 그 팀의 승패에 따라 울고 웃는 건 또 뭔 짓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을 어떤 추상적 집단의 소속원으로 인식하고 그 집단의 대표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이상하고 어려운 일인가?

어린이집은 어떨까? 매이가 생후 10개월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 눈도 뜨기 전에 아빠에게 안겨 가서는 하루 종일 놀고 밥 먹는 곳인 어린이집에 대한 소속감은 어떨까? 지금 다니는 영주어린이집은 매이를 다 키워주신 고마운 곳이지만, 4세반까지만 있어서 내년부터 다닐 윗 학년이 없다. 우리부부는 한달 전쯤 내년에 다닐 어린이집을 미리 알아보고, 유나가 다니는 영락어린이집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대기 번호 6번 이었다. 내년 2월까지 결원이 있으려나 했는데 며칠 전에 전화가 왔다. 결원이 생겼다며 8월부터 다닐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앞의 다섯명은 어찌 된 걸까? 유령회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성대한(?) 수료식과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두고, 아내가 그토록 소원하던 앨범도 받고, 내년 3월 초에 새 어린이집에 입학하는 게 가장 아름다운 일이겠지만, 그때도 영락어린이 집에 빈자리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매이 입장에서는 지금의 어린이집이 2년 반(매이의 일생에서는 거의 대부분)동안이나 집처럼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공간이고, 매이를 정성으로 키워주신 다섯 명의 선생님들과 매일 올망졸망 부대끼며 노는 친구들과 헤어져서 낯선 사람들과 새로 적응하는 게 힘들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이번에 옮기면 대기번호 따위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좀 식상해진 상태에서 변화를 주어 새 친구들, 새 선생님들과 생활하는 것도 매이한테 나쁘진 않을 것 같고, 어차피 내년에는 옮겨야 할 것을 미리 옮기는 것이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옮기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저녁에 매이한테 조심스럽게 물어 봤다. “매이야, 매이 지금 다니는 영주 어린이집 말고 다른 어린이집에 가면 어떨까?” 이렇게 물으면서도 매이가 이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까 의심스러웠다. 태어나서 줄 곳 영주 어린이집만 다녔는데, 다른 어린이 집이라는 것을 어찌 알까? 그런데 매이는 “와, 신난다?” 하며 좋아하는 게 아닌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어디 간다’는 말에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매이야, 새 어린이집 가면 예쁜 선생님(담임선생님을 그렇게 부른다)도 못보고 최문기(매이의 남친)도 못 보는데 그래도 좋아?” 라고 소속을 옮겼을 때 일어날 구체적인 변화를 알려줬다. 그러자 매이는 “응, 코 자구 나서 어린이 집 가면 최문기 볼 수 있어” 란다. 역시 못 알아들었다. “매이야, 새 어린이집 가면 지금 친구들은 못 보게 되는 거야. 대신 새 친구들 많이 사귈 수 있어. 새로운 선생님도 많고” 라고 재차 설명했다.

그러자 매이는 손가락을 볼에 대고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더니 “언제? 내일?” 하고 묻는다. “아니, 내일은 아니고 한 달 후에” 이번엔 ‘한 달’이라는 날짜 설명이 걸렸다. 과거는 한 달 전이든 어제든 모두 “아까”라고 하는 매이에게 한 달이라는 추상적 시간의 간격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서른 밤 자고’ 라고 말하려다가 아차, 숫자도 다섯까지 밖에 못 세지, 싶어서 말았다.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나에게 매이가 “매이가 키 이만큼 크면 가?” 라며 자기만의 측정법을 알려줬다. “아니, 그만큼 크지는 않고 아주 조금, 요만큼 크면 가” 나는 손가락 한 마디를 보여주면서 과연 한 달 동안 매이가 그만큼 클까 의심스러워하며 대답했다. 겉돌기만 하는 질의 응답 끝에 나는 “그래서, 매이야. 어린이집 옮기는 거 좋아?” 라고 날치기 통과를 시도했다. “응, 매이, 어린이집 가면 최문기 만나.” ‘으이그!’ 실패다.

그런데 다음날 밤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매이 담임선생님께서 매이가 자기 새 어린이집 간다고 자랑했다고 하시네. 원장 선생님께도 아직 말씀 못드렸는데” 라고 곤혹스러워 했다. 요즘 매이는 가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한 발 앞서서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서 선생님께 말하다니, 어린이집을 옮기는 게 뭘 의미하는지 매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매이야, 정말 매이가 선생님한테 어린이집 옮긴다고 말했어?” ‘만화’를 보는 매이에게 물었다. 매이는 그게 뭐 대수란 듯이 “응, 영주어린이집, 재미없어…심심해…지겨워.” 라고 말한다. “지겨워?” 지겨운 게 뭔지 아는 걸까? 그러고 보니 어제 아내한테 “매이도 영주 어린이집이 지겨워졌을 수 있어.”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매이가 그걸 들었나 보다. 정말 매이는 어린이집을 옮기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들은 걸까? 정말 2년반 동안 똑같은 선생님, 똑같은 친구들하고 지내는 게 지겨워진 걸까? 그래서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들과의 생활을 꿈꾸고 있는 걸까?

일요일에 어린이집 건물 3층에서 하는 영주교회 유아부에 매이를 데리고 다녀온 아내는 매이가 또 아침에, “엄마 우리 어디가?” 해서 “교회간다” 고 하니까, “와 신난다. 매이, 어린이 집은 싫구, 엘리베이터 타구 3층 가는 거는 좋아, 빨리 가자, 늦겠다” 하며 재촉을 하더란다. 아내는 정말 어린이집에 식상한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하며, 새 어린이집에 가기로 한 결정이 잘한 것 같다고 한다. 어차피 7월 22일부터 4일간은 아내가 ‘다함께’에서 하는 ‘맑시즘 2010’에 참가하면서, 거기서 밤늦게까지 무료로 운영하는 놀이방에 데려갈 예정이다. 벌써 여름마다 3년째 가게 된 ‘다함께 단기 놀이방(?)’에서 적응훈련을 거치고, 7월 마지막 주에는 휴가를 갈 예정이니, 휴가 후에 새 어린이집으로 등교하면 바람이 잔뜩 든 마음으로 여긴 또 얼마동안 다닐 휴가처인가 생각하며 얼레벌레 적응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게 매이의 사랑, 최문기는 잊혀지려나? (흑,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응답 1개

  1. 마리오말하길

    잘 다니는 어린이집을 옮기는 건 글쎄요..영락어린이집이 아니라면 3월에 새롭게 반을 구성하는 5세반 유아원, 유치원은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혼자 옮겨오는 매이를 위해 영락어린이집에서 과연 오리엔테이션이랄까 신입생 적응훈련 같은 그런 종류의 배려를 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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