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정경미의 시경읽기> 소개

- 정경미

울음과 울림 사이

시경은 몇 년 전, 우응순 선생님의 강의 때 처음 만났다. 그때까지 나는 시경이라고 하면 가수 성시경을 먼저 떠올렸고. 그저, 사서삼경 할 때 삼경-시경, 서경, 역경 중의 하나인 옛날 경전 정도로 알고 있었다. 경전이라고 할 때 느껴지는 묵직한 부담감. 그래, 선인들의 지혜가 많이 들어 있는 훌륭한 책이겠지. 듣도 보도 못한 한자들이 빼곡한 이 책에서 재미를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웬걸? 우응순 선생님이 워낙 강의를 재미있게 하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경전이라는 말의 권위에 주눅들어 접하기 어려웠던 시경은 뜻밖에도 너무너무 생기발랄하고 유쾌하고 무엇보다 신선했다. 요즘 가요들 몇 년만 지나도 흘러간 옛노래가 되어버리는데 수천년 전의 노래가 이렇게 새로울 수가! 강의를 들으면서 안 졸아보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던 듯. 수천년 전 사람들의 삶이, 그들이 느꼈던 슬픔과 기쁨들이 나에게 너무나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날 시집가는 아가씨를 축복하는 노래 「도요桃夭」를 읽으면서 내 마음은 분홍물이 들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아픔을 노래한 「권이卷耳」를 읽으면서는 내 마음에도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버림받은 여자의 슬픔을 노래한 시 「백주柏舟」에서 “근심이 많은 마음이여 빨지 않은 옷을 입은 것과 같구나!”[心之憂矣 如匪澣衣]와 같은 구절에서는 가슴을 쳤다. 닻도 돛도 없이 홀로 강물에 둥둥 떠가는 잣나무 배와 같이 의지할 곳 없는 여자의 탄식에서.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는 여자의 근심이 내게로 흘러와서 내 마음 속의 근심을 풀어주었다는 거다.

그래,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슬픔이 슬픔을 만났을 때 슬픔은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수천년 세월의 벽을 뚫고 내게 전해지는 그 여자의 슬픔이 나의 슬픔을 건드렸고, 그 여자의 슬픔과 나의 슬픔은 함께 어딘가로 흘러갔다. 나는 이때 시경이 가진 감응感應과 소통疏通의 힘에 놀랐다.

이렇게 나는 몇 주 간에 걸친 강좌에서 처음 만난 시경을 읽으면서 웃고, 울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떻게 한 권의 책이, 수천 년 전의 노래가 이렇게 나를 흔들어 놓을 수가 있는가. 온몸의 세포를 활짝 열어놓고, 세포마다 다채로운 빛깔의 물이 들게 하고, 오장육부에 사무치고, 뼛속까지 저리게 할 수가 있는가. 나는 강좌가 끝나고도 혼자 열심히 시경을 읽었다. 그러다 이런 저런 강의를 통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 시경을 함께 읽을 기회도 갖게 되었다.

시경을 혼자 읽다가 청소년들과 글쓰기를 하는 강좌에서, 노들의 친구들과, 도서관의 인문학 강좌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 함께 읽으니 시경의 감응력이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함께 시경을 읽은 친구(주로 청소년)들은 시경을 위대한 경전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했다. 「기욱淇奧」의 제목을 따서 ‘끼요옷’이라는 감탄사를 만들었고, 「도요桃夭」를 읽고는 ‘꽃순이 아가씨 시집가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모과木瓜」를 읽고는 좋아하는 친구에게 모과를 선물하는 풍속이 생기기도 했다.

혼자 울면 ‘울음’에 그치지만, 함께 울면 ‘울림’이 된다. 나에게 고전의 바다를 선물한 책. 시의 아름다움을 전해준 책. 내가 이 책에서 받았던 감동을 더 많은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 시경과 함께 울어 보자! 시경과 함께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 보자!

– 필자 소개 : 나, 정경미. 한 번 하면 끝까지 하는 기이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도서관의 그 많은 자리 중에 내가 늘 앉는 그 자리에 앉아야 공부가 된다. 분식집의 그 많은 메뉴 중에서 내가 늘 먹는 그 음식을 먹어야 먹은 것 같다. 하루는 공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배가 출출해서 분식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들어서자, 서빙하는 아줌마가, 나는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주방에다 대고 “오뎅국”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내가 늘 앉는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아줌마는 황급히 그 자리를 치워 주었다. 늦은 시각이라 손님이 없어 그 자리 빼고 다른 자리는 다 비어 있었는데! 난 너무 창피해서 혼자서는 그 분식집을 다시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 정경미(수유너머 구로)

응답 1개

  1. 박카스말하길

    어머나! 사진 속 경미쌤이 제가 알고 있는 경미쌤이 맞나요? 무지개 스웨터가 너무 잘어울리세요^^
    시경, 슬픔을 잡아 먹는 슬픔을 들려주는 글이라, 성시경의 노래보다 애절하겠죠! 귀를 쫑끗 세워놓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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