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思無邪, 혹은 불량가요의 힘!

- 정경미

노래의 책, 시경

『시경詩經』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그러니까 중국의 주周나라 때부터 춘추시대 때까지 황하강 유역의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던 노래를 공자가 모아서 엮은 책이다. 원래 311편인데 이 중에 6편은 제목만 전하고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경의 시가 300편 가량 되기 때문에 시경을 ‘시詩’ 혹은 ‘시삼백詩三百’이라고도 부른다. 시경은 쉽게 말해서 노래 책이다. 여기에는 여자들이 불렀던 노래도 있고, 남자들이 불렀던 노래도 있고, 농부가 불렀던 노래도 있고, 전쟁터에 나간 병사가 불렀던 노래도 있다. 각양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불렀던 오래된 노래의 책, 그것이 바로 시경이다.

시경이 건전가요라고?

공자는 “시경의 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논어, 위정)라고 하였다. 사무사思無邪! 생각과 행동에 사악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경은 사무사다”라고 하니까, 흔히 “시경의 노래들은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다”라고 생각한다. 즉, 요즘으로 치자면 ‘건전가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아雅’나 ‘송頌’은 임금의 덕을 칭송하고 후대의 자손들에게 올바른 덕을 권장하는 계몽적인 내용이므로 건전가요라고 할 수 있지만, 국풍風의 시들은 내용이 별로 건전하지가 않다. 오히려 점잖지 못한 연애시들이 많다.

將仲子兮 無踰我里 청컨대 그대여 우리 마을로 넘어오지 마세요
無折我樹杞 내가 심은 버드나무 꺾지 마세요
豈敢愛之 畏我父母 어찌 그것이 아깝겠어요 부모님이 두렵답니다
仲可懷也 父母之言 그대가 보고 싶지만 부모님의 말씀도
亦可畏也 두렵답니다

정풍鄭風에 나오는 「장중자將仲子」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 아가씨는 연인을 기다린다. 그러나 아가씨를 좋아하는 도령은 아가씨의 마을에 살지 않는다. 도령이 아가씨를 만나려면 담장을 넘어야 한다. 이것은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도령과 만나고 싶다. 하지만 부모님이 혼내실까 두렵다. 이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가씨는 그래서 이렇게 노래한다. 도령님 도령님 보고 싶은 도령님, 우리 집 담장을 넘어오면 안 돼요 돼요······ 아니, 이건 도대체, 도령보고 담장을 넘어오라는 건가. 넘어오지 말라는 건가.

관관저구 재하지주··· ‘요조숙녀窈窕淑女’와 ‘전전반측輾轉反側’이라는 말이 나와서 유명한 시 「관저關雎」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반쪽은?”이라고 하면서 짝을 구하는 노래이다. 강가 모래섬에 저구새가 광광 소리내어 짝을 부르는 것과 같이 군자가 자기에게 어울릴 요조숙녀를 찾는 노래이다.

「표유매摽有梅」는 혼기를 맞은 여자가 배우자에게 빨리 와서 자기를 데려가라고 한다. 매실이 떨어집니다. 열매 일곱 개 남았네요. 날 데려갈 그대는 좋은 날에 오기를! 매실이 떨어지네요. 열매 세 개 남았네요. 날 데려갈 그대는 지금 오기를! 매실이 다 떨어졌네요. 광주리에 주워 담습니다. 날 데려갈 그대는 말이라도 건넵시다!

「도요桃夭」는 복숭아 꽃이 만발한 날 시집가는 아가씨를 축복하는 시이다. 인생에서 가장 환한 때는 언제일까. 여자에게는 아마 시집 가는 날일 것이다.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되고, 새로운 공동체의 당당한 주인이 되는 때. 나무로 치자면 꽃이 활짝 피는 때이다. 이런 봄날 시집가는 아가씨의 모습을 복숭아꽃 만발한 자연의 풍경과 함께 노래했다. 도지요요 작작기화 지자우귀 의기실가··· 「도요桃夭」를 소리내어 읽으면 내가 마치 복숭아꽃이 만발한 봄날 시집가는 아가씨나 된 듯 마음이 환해진다.

연인들 사이 선물을 주고받는 시로 「모과木瓜」가 있다.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주었네. 나는 그녀에게 옥돌을 주었네.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녀랑 친해지고 싶어서··· 옛날 사람들은 좋아하는 이에게 모과를 주었나 보다. 이런 정표를 받은 남자가 가만 있을 수 있나. 옥돌을 준다. 모과를 받았는데 옥돌을 주다니. 손해 보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선물은 장사와 다르지.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치자면 모과나 옥돌이나 소중하기는 똑같다.
시경에는 연애시와 함께 근심이 가득한 노래가 많다. 시경에서 휘파람은 즐거운 때 부는 흥겨운 가락이 아니라 근심을 푸는 한숨소리이다. 전쟁 때문에 남편과 헤어진 여인의 슬픔을 노래한 시(「중곡유퇴中谷有蓷」), 행역 나갔다 돌아와 보니 나라가 망해서 기장과 피만 수북이 자라는 황폐한 옛터를 맥없이 비틀거리며 걷는 시(「黍離」), 가난 때문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유랑민의 비애를 노래한 시(「갈류葛藟」), 정복전쟁에 끌려간 병사가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고향의 집으로 나 돌아갈래 외치는 시(「동산東山」)도 있다.

즐겁되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순화하고 풍속을 교화한다는 유가儒家의 본래 취지에 따르자면 시경의 연애시들, 근심이 가득한 노래들은 별로 권장할 만한 노래들이 못 된다. 그건 ‘사무사思無邪’가 아니라 오히려 ‘사邪’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런데 공자는 왜 이런 노래들을 사무사라고 했을까? 공자는 「관저關雎」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즐겁되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傷]

낙이불음 애이불상. 시경의 시 「관저關雎」를 두고 공자가 평했던 이 말이 이후 동양의 정통 시론이 되어 왔다. 그래, 시란 무릇 그래야지. 즐거움을 노래하되 경박하지 않게! 슬픔을 노래하되 청승맞지 않게! 무릇 시는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되 그것이 지나쳐서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시경의 시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노래한 것이지만 그것이 삿되지 않다. 진실하다. 그 진실한 감정이라는 것은 때로 기괴하고 도덕에 반하기도 하지만 억눌린 마음을 풀어주고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자기 해방의 노래가 시대의 경계를 넘어 감응하고 소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경은 사邪가 아니라 사무사思無邪인 것이다.

뜻은 너무 좋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시경은 그런 ‘건전가요’가 아니다. 시경은 오히려 발칙한 불량가요에 가깝다. 그러나 삼천 년 전의 노래가 아직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는 것!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는 시경의 바로 이러한 감응感應과 소통疏通의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시경의 진솔한 노래들은 우리들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기쁜 마음은 정말 기쁘게, 슬픈 마음은 정말 슬프게, 화가 나는 마음은 정말 분통이 토지게··· 어떤 마음이든 깊이 헤아리고 편안하게 풀어주는 노래의 힘! 이것이 바로 불량가요 시경의 힘이다.

시경을 읽으면 좋은 점

① 可以興 : 감흥이 일어난다
시경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시를 읽으면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② 可以觀 : 정치를 잘 하게 된다
가이흥可以興이 감성 쪽의 작용이라면, 가이관可以觀은 지성 쪽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생략된 내용과 깊은 속뜻까지 헤아려야 하는 시의 독해 과정은 삶을 바르게 통찰하고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게 하는 힘을 길러준다. 이는 정치를 올바로 하는 능력과도 통한다.
③ 可以羣 : 무리와 잘 어울리게 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래 전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멀리 있는 사람의 느낌과도 교감을 하는 것이다. 천지만물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경을 읽으면 관계를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④ 可以怨 : 잘못을 싫어하게 된다
시는 너와 나 사이 마음이 통하는 것, 흐름이다. 그런데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종종 이 흐름이 막힌다. 마음이 막히니까 생각도 막히고 말문도 막히고 기가 막힌다! 시는 이런 불통不通의 상태를 소통疏通의 상태로 만든다. 통하였느냐?
⑤ 邇之事父 遠之事君 : 사람의 도리를 알게 된다
시경을 읽으면 가까이는 아버지를 잘 모시고, 멀리는 임금을 잘 섬기게 된다. 즉 사람의 도리를 올바로 알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시경에는 반反도덕적인 내용이 많지만, 그러나 윤리적이다. 시경을 읽으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이치로서, 공생의 지혜로서 사람의 도리를 체득하고 실천하게 된다.
⑥ 多識於鳥獸草木之名 : 동식물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
시경에는 풀 이름, 나무 이름, 새 이름, 물고기 이름, 곤충 이름, 여러 가지 생활용품이나 장신구의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시경 사전이 따로 있을 정도다. 그래서 정학유丁學游는 시경에 나오는 동식물을 정리하여 『시명다식詩名多識』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공자는 이렇게 시경을 읽으면 여섯 가지 좋은 점이 있다고 했다. (논어, 양화)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정치를 잘 하게 되고,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된다. 잘못된 일과 불쾌한 일을 빨리 알아차려서 고치게 된다. 사람의 올바른 도리를 알고 행하게 된다. 동식물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 시경을 읽으면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데, 아들아, 너는 왜 시경을 안 읽니? 시경 안 읽으면 담장을 마주한 것과 같다!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논어, 양화) 공자는 이렇게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경 읽으라고 닦달을 하기도 했다.

자, 그럼 우리, 앞뒤가 꽉 막힌 담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 생생불식하는 마음의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천지만물과 하나가 되는 우주적 신체가 되기 위해서, 신나게 시경을 함께 읽어 볼까요?

응답 3개

  1. 연초록말하길

    공연히 어려울 것 같아서 미루어두다가 마음 먹고

    처음 글부터 읽으려고 들어왔습니다.

    아니, 이렇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다니 계속 따라가면서

    읽게 될 것 같네요.

    기가 통하였느냐!! 예라고 대답할 날을 상상하면서

  2. 여하말하길

    우와! 표지에 나온 선생님 사진 죽이네요. 포스터야, 포스터!!! 예술!!! 그리고 우리집에 있는 시경 표지는 언제 저렇게 스캔하셨나요?^^.

  3. 매이말하길

    와, 나, 불량가요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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