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찢고 하이킥

이제야 그를 ‘조금’ 이해할 것 같다

- 윤미

“한 사람”에 관한 다큐를 몇 개월간 찍었고 또 몇 개월이 지나서야 그때의 기록들을 다시 찾아보고 있다. 당시엔 그 사람의 깊은 속마음까지 엄청 많이 알게 될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카메라를 매개 그리고 무기 삼아 나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진실을 발견하리라 자신했다. 또 그게 다큐의 힘일 것이다. 정치적 병역거부를 한 현민이 감옥을 갔고 나의 촬영도 끝났다. 시간이 흘렀다. 객관적으로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촬영분의 녹취록을 밑줄 박박 그으며 읽고 있다. 웬 걸. 읽을수록 뜨끔하다. 상대에게 했던 질문들, 우리의 대화를 다시 보며 부끄러워진다. 이제야 내 시선의 한계가 보여서다. 여전히 내가 깨지 못 한 틀이 보여서다. 그래 이건 첫 다큐를 찍은 이후 깨달은 내 한계와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다.

용감하게 난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와 ‘만나겠다’고 작정했다. (누군가와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한 사람을 잘 안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지만) 막연히 다큐를 찍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찍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소개받은 사람이 현민이었다. 그것도 ‘병역거부자’ 현민. 다큐를 찍기에 좋은 소재였다. 악착같이 발굴하는 수고 없이 나는 운 좋게 기회를 얻었다. 현민의 경우 기존의 병역거부자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어떤 대의나 명분 때문에 병역거부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아니, “그런 이유로 병역거부를 한다고 말하진 않겠다” 고 했다. 어떤 주의자로 비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저 스무 살부터 십여 년 간 고민한 자신의 끙끙거림을 풀어놓고 싶다고 했다. 영웅 말고 그냥 스물아홉 살의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도저히 군사 훈련을 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 그런 그 자신에 대해 수백 번도 더 질문하고 의심하면서, 그럼에도 총의 느낌과 탄약의 냄새는 견딜 수 없을 거란 확신, 그리고, 이게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걸 공부로 배웠고 그걸 내 언어로 풀어내고픈 욕심. (사실 나는 이 문장을 쓰면서 망설이고 있다. 여전히 그의 병역거부 이유를 한 문장으로 써버리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고민이 앞선다) 그는 몇 줄짜리 소견문을 읽는 기자회견 말고 이십 대에 자기가 맺은 관계들을 불러 모으는 파티를 하겠다고 했다. 무려 열 장짜리 글을 썼고 사람들에게 그 글을 읽어줬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병역거부를 지지하기 위해 모였다. 하지만 글을 본 누군가는 이리 말했다. 결국은 그냥 가기 싫다는 거 아니냐고, 그 한 마디로 압축되는 거 아니냐고.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한 활동가는 웃으며 농담처럼 그랬다. 자기도 솔직히 현민이가 왜 병역거부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현민 스스로도 그 질문들에 대답하느라 많이 시달렸을 것이다. 왜 병역거부를 하는 거냐.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더 많이 풀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묻지 않고 그저 지지하거나 혹은 쉽게 병역거부의 이유를 단정 지었다. 차라리 전쟁에 반대한다고, 국가의 폭력에 저항한다고, 거부한다고, 그리 말하는 게 더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결코 이게 더 편한 길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이유에 익숙하니까, 설득이 더 쉬웠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식의 언어를 만들고 싶었던 건데 근데 그게 기존의 운동의 언어나 정치적 언어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근데 나는 이것도 다른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현민)

나 역시 종종 그에게 “왜 병역거부를 하는가” 를 물었다. 처음엔 흔히 인터뷰를 시작할 때 하는 육하원칙에 의한 질문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질문에 더 집요하게 매달렸던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나 본인도 알지 못 하는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였고 또 한 측면은, 계속 불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에게 속 시원한 ‘답’을 원했다. (나는 그 답의 내용까지 짐작해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냥 가기 싫은 거 아닌가; 라고 단정 짓는 태도와 뭐가 달랐을까) 문제는 내가 그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는 것, 그 질문을 뚫고 현민의 독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 질문으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난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에 그 질문을 맴돌기만 했다.

사실 다큐를 찍으면서 난 종종 답답했다. 많은 이야기를 해도 왠지 허해지는 느낌. 뚜렷한 게 없다는 느낌. 그래 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설명을 그에게 원했던 거다. 아니다. 그는 설명했지만 내가 ‘그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질문은 그에게 답을 찾기 위해 묻고 또 묻다 같은 말이 맴돌기도 헛돌기도 하다가 가끔 어떤 질문은 냉소처럼 비치기도 했겠다. 사람은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하기 마련이고 그건 행동이다. 행동하는 이유의 지점을 계속 물어댄다면, 내 행동이 납득이 안 되나 싶어 스스로가 부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을까.

“어떻게든 뚜렷한 이유를 찾겠다고 한 나의 마음”이 아쉽다. 매달려 있던 그때는 안 보이던 게 좀 거리가 생기니까 보인다. 현민이 거부하고 싶었던 언어의 틀을 갖고 난 집요하게 그에게 질문했던 것 같다. 그의 이유 없음 혹은 너무 많은 이유를 부여잡고 이게 뭘까 하며 고민하기보다 어떻게든 캐물어서 명확한 즉 내가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이유를 찾으려고 애쓴 나의 모습 말이다. 병역거부자 현민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그 지점을 부여잡고 흔들어대지 못 해봤다는 생각에 많이 아쉽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새로운 질문들을 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그는 자신의 고민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는 기존의 병역거부운동의 언어가 아니라,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나의 언어, 새로운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아둥거렸을 것이다. 현민은 병역거부와 병역기피의 경계를 흐리고 싶단 말을 몇 번 했다. 도덕적으로 무장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고민들이 이런 말들에서 묻어난다.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현민이 이런 말을 하더라. 자기가 최근 읽은 지인의 책에서 ‘그냥, 약간, 조금’, 이런 문체가 좋다고 했다. 그런 표현이 그 사람의 단정하면서도 ‘백퍼센트 이것’ 이라고 말하지 않는 일말의 신중함 같은 게 문체에 나타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이 군더더기가 아니라,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이다. 이젠 이런 디테일들이 여사로 보이지 않는다.

진작하지 왜 이제야 병역거부 하느냐고 말에, “나는 이거 8년 동안 고민한 거야.” 라고 말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스스로를 소심하고 찌질하고 많이 망설인다고 말하면서, 그런 자신을 다 끌어안고 어떤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와 닿는다. 그래, 현민이 그리 말했었지. 한끝차이로 용기와 비겁이 갈리더라고. 군대를 안 가는 것이 비겁하다면서도 군대 아닌 감옥을 간다니 용기 있다 한다고. 그래서, 그런 그는? 용기 있는 걸까, 비겁하고 소심한 걸까. 이런 거다, 저런 거다 말할 수 있긴 한 걸까?

아마 감옥에서 현민은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잘 기록해두고 싶다던 그의 바람처럼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글로 표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겠지. 어쩌면 예전에 비해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는 변해가는 스스로도 긍정하면서 제 마음에서 생기는 균열이나 틈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있을 거다. 내가 아는 현민이라면 말이다.

– 윤미

응답 2개

  1. 말테말하길

    저는 현민씨를 잘 모릅니다. 딱 두어번 정도 봤던 것 같아요. 매니큐어를 하고 있던 인상적인 모습과 함께…. 그런데도 이 글을 읽으니, 뭔가가 뭉클하게 전해져오는 게 있네요. “왜 병역거부를 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고 “왜 병역거부를 하느냐”고 묻는 사회에서 그의 말은 어쩌면 작고 웅얼거리는 속삭임 같은 것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현민씨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곳’에서의 삶을 견뎌내면서 온몸과 맘으로 부딪치고 있을 그 시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민노씨. 민노씨 said: 초강추 RT @julymon 이제야 그를 ‘조금’ 이해할 것 같다 ≪ Weekly 수유너머 http://ht.ly/27T8l '병역거부와 병역기피의 경계를 흐리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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