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제925차 수요시위- 정직한 말을 하라는 겁니다.

- 안티고네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수요시위
어느덧 강산이 거의 두번 바뀔 시간이 흘러 925회를 맞았다.

2010년. 7월 6일.
젊은 나도 견디기 어려운 더위였지만
925회의 시간 동안 추위도 더위도 견뎌오신 할머님들은 거뜬해 보이셨다.
오히려 그게 더 마음 아플 정도로.

“오늘은 혹시 저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 문이 열리려나,
우리가 편지를 보냈으니 오늘은 혹시 답이 오려나. 실낱같은 기대를 안고 오지만
오늘도 쓸쓸한 마음만 안고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있어서 힘이 납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하셔서 괜찮습니다.”

“본래 위안부라고 밝힌 여성들이 약 300명이었지만
현재는 83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분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사과 받을 이 사람들이 남아있을 때에,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직한 말을 해서 우리 앞에 회개하라는 겁니다.
배고파서 밥 달라는게 아닙니다.
진실의 말을 해서, 앞으로 더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겁니다.

전쟁없는 나라, 평화의 나라는 무엇일까요.
흔히 전행은 여성이나 아이들, 약자의 문제라고 하지만
전쟁이 나면 남자들은 군인이 되어 많이들 죽습니다.
…해방의 나라,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길원옥 할머님 발언 중에서

국가폭력, 전쟁, 역사청산. 이처럼 크고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싸우면서도
이 분들은 웃으며 싸워야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체득하신듯 했다.

마침 한국노총 의료노조에서 전통공연을 준비했다.
사진 찍는답시고 잠깐 무릎 꿇는 것도 힘들만큼 뜨겁게 달궈진 거리에서
고운 한복 차려입고 버선발로 사뿐사뿐 춤을 추신 분.

이어진 아리랑 소리 한 자락에
흥이 한껏 오르신 할머님은
“나도 잘한다”며 은근히 입맛을 다시셨다.

“우리가 여기왔다 그냥 갈수가 있나
노래부르고 춤을 추며 놀다가 갑시다

가세가세 놀다나 가세
저 달이 떳다 지도록 놀다가 가세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흐으으응 아라리가 났네”

가끔 들려 사진이나 찍어가는 주제에,
성명서를 낭독할 즈음이 되자 괜히 눈물이 질금거려졌다.

국가폭력과 전쟁범죄의 상흔을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맞은편에서 고스란히 드러내며
“이제 지쳐서 그만두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진정한 사과를 받을 때까지 멈추지 않으실 그분들.
18년의 시간이 꽉 차고 19년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계신 할머님들의 주장은
당신들이 정당한 배상, 응당 할머님들이 받아야 할 몫을 받겠다는게 아닌지도 모른다.

위안부 할머님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고 계신 지금,
‘시간이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은
사과와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응어리질 원한의 감정이다.
한일 양국 간에, 그리고 전쟁이라는 국가폭력의 이름으로 깊이 새겨질 원한 말이다.
할머님들의 수요시위는
피해자가 먼저 용서의 손을 내밀때에 어서 이 손을 잡으라는 구원의 손길일지도 모른다.
사과를 받겠다는 게 아니라 용서를 주겠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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