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미안하다, 같이 살라고 해서…

- 오항녕

32살. 내가 결혼한 나이다. 그렇게 늦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제때 한 결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실 내 결혼 시기에 대해서는 뭔가 억울한 느낌 같은 걸 가지고 있다. 앞으로 할 얘기에 조금은 민감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어서 마음에 걸리지만, 얘기를 하려다보면 어쩔 수가 없을 듯하다.

강의시간에도 학생들과 이런저런 생활 얘기를 하는 편이고, 가끔 답사를 겸해서 술 한 잔씩 나누기 때문에 자연 내 경험 얘기를 할 때가 많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학생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살라고 권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주로 공부하는 시대인 조선사회에는 대개 15-20세에 혼인을 했다. 평민이든 양반이든 큰 차이가 없다. 실제로 군역(軍役)을 지는 정병(正兵) 대상자의 나이가 15세-60세였으니, 일단 15세가 넘으면 성인으로 인정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나이가 지나면 적절한 시기에 관례(冠禮)를 했고, 혼인을 했든 안 했든 일단 어른의 반열에 들어선다.

이는 자본주의 이전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대체로 농경사회에서 공통된 경향을 보였다. 알고 보니 농경사회만이 아니라 사냥을 하는 종족들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혼인할 수 있는 어른이란 어른 노릇을 할 수 있는 몸의 조건에 따라 결정되었을 것이다. 내 기억에, 논에서 벼 한가마를 질 수 있으면 고등학생 때라도 막걸리 한 잔은 얻어먹을 수 있었다. 과도기였을 것이다. 새마을운동=경제개발계획으로 장기지속하던 조선의 생활양식이 뒤집어지고 결혼 연령이 늦추어지는 한편, 농업사회에서는 아직 그 나이에 대한 어른 대접이 유지되었던 것.

한때 나는 뭔가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생리적으로 보나, 정서로 보나 혼인 등 ‘포괄적 동거(同居) 연령’이 늦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20대가 지나면 신체 기능이 떨어지므로 당연히 생식을 통해 건강한 후세를 가질 확률이 갈수록 낮아질 것이며, 그런 신체의 역동성을 발휘한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하면 마음 역시 편안하기 어려운 법이다. 알렉산더나 남이 장군의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까지 올라갈 것도 없이, 신간회를 비롯한 민족해방투쟁의 주역들이 20대였다. 20대가 사회의 중심이 되지 못할 이유가 뭔지 난 ‘역사학자의 양심을 걸고’ 도무지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동거를 권하는 데는 내 불행했던(?) 경험도 한 몫 했다. 그 여자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아내와의 생활보다 더 행복했을지 어떨지를 묻는 것은 바보같은 질문이다. 분명한 것은 혼인연령이 이렇게 늦추어진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무려 6년씩이나 ‘같이 살기’를 유예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고 연애에 필수적인 원만한 성생활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다소 성에 무지했던 내 또래의 인식도 인식이지만(이것도 음모다!), 포괄적 동거를 사회적으로 유예해야하는 처지들은 갈 곳조차 많지 않았다. 모텔은 익숙하지도 않았고 돈도 없었으므로, 친구의 하숙집과 자취방을 빌리든지 아니면 캠퍼스 벤치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논리와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사랑하면 같이 살라[同居]고 권했다. 수유연구실을 드나들던 ‘동거하는’ 젊은 쌍에게는 책도 사주고 밥도 사주며 마음속으로 격려했다. 같이 살아야 싸워도 풀기가 쉽다. 헤어진 많은 남녀가 같이 살았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헤어진다 해도 서로 확실한 이유를 갖고 헤어질 것이다. 난 정말 첫사랑은 미숙해서 깨지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첫사랑에 눈뜰 나이는 10대 후반, 늦어도 20대 초반인데,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흠씬 사랑을 하고 싶어도, 리듬이 맞는지 살아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으니 깨지는 것이다. 아쉬움만 남긴 채로. 그리고 첫사랑은 깨지는 것이라며 짐짓 낭만적인 어조로 사기를 치는 것이다. 이 어찌 음모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긴 음모는 아니다. 근대국가의 통제시스템과 자본의 저임금(중고등학생과 성인의 노동생산성은 차이가 없다. 그런데 임금은 반이다) 메카니즘이니까.

그런데 지금 후배들에게 ‘같이 살라’고 권유한 내가 미안해지고 있다. 내가 과외 아르바이트해서 한 달에 30만원을 벌 때, 등록금이 50만원이었다. 지금 내 후배들의 아르바이트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30만원인데, 그마저도 전문성 등의 이유로 구하기 어려운데, 등록금은 그때보다 딱 10배 올랐다. 그런데도 내가 얼마나 나이브했나 하면, ‘한국사회의 생산력이면 여러분들 둘이 아르바이트해서 충분히 같이 살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강변했다는 것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독과점/저임금/비정규직)의 혼동!

더욱더 가관이었던 것은, 같이 살라는 내 말에 벙찌는 학생들을 보면서 속으로 역시 내가 의표를 찔렀어, 하며 한 건한 듯한 기분을 즐긴 것이다. 내가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선배 또는 선생이라는 듯이 뿌듯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단(四端)을 가진 나는 그들이 벙쪘던 것은 내가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라 얼토당토않아서였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마 의심이 맞을 것이다. 둘이 벌어도 같이 살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아예 같이 벌기조차 어려울지도 모르는 게 미래일 것이기 때문이므로.

앞으로 이 미안한 마음을 갚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내 전철을 밟지 않고 아름답게 사랑하게 될 수 있도록. 그렇지 않고는 음양(陰陽)의 연기(緣起) 속에서 누구도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어느덧 소수자가 계급, 계층을 경계를 넘어 곳곳에서 유령처럼 흘러 다닌다. 자, 15세가 넘으면 사랑하는 이와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건배!

– 오항녕(수유너머 구로)

응답 7개

  1. 이야기캐는광부말하길

    20대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의 중심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에 동의하고 갑니다. ^^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柔貞, JIHYE KIM. JIHYE KIM said: 흥미롭네요- '사랑할 기반이 없어 첫사랑이 깨진다' RT @urisum 포괄적 동거 연령이 점차로 늦어지는 이유를 생각하며. 이번주 수유너머 Weekly 칼럼 <미안하다, 같이 살라고 해서…> http://suyunomo.jinbo.net/?p=4698 […]

  3. 나무말하길

    선생님, 존경합니다! 저는 ‘아들 빨리 짝지워주기’가 목표라지요!

  4. 고추장말하길

    ㅍㅎㅎ 오항녕 선생님 칼럼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음양의 연기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서! 정말로 훌륭한 비전이십니다.

    • 여하말하길

      ㅎㅎㅎ 이거 정말 우리 집사람이 알면 안 되는 정본데… 아무튼 고추장께서 그런대로 볼만하시다니 그걸로 일단 넘어가고…^^

  5. 말하길

    같이 살아야 헤어질 때도 확실한 이유를 갖게 된다……탁견이십니다. 15세가 넘으면 사랑하는 이와 같이 살수 있는 세상을 위해 건배! 멋진 칼럼 감사합니다.

    • 여하말하길

      벌써 올라왔어요?… 이런! 아무튼 난 좀 억울하긴 하지만, 내가 억울하다고 후배들까지 억울해선 안 될 듯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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