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모과를 던지다

- 정경미

모과는 좀 특이한 과일이다. 보통 과일 열매들은 예쁘다. 먹었을 때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다. 그런데 모과는 울퉁불퉁 못생겼다. 떫고 신 맛이 난다. 그리고 과육이 단단해서 모르고 덜컥 씹었다가는 턱을 약간 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떤 친구는 자동차에 방향제로 놓아둔 모과를 ‘아 맛있겠다’ 하고 먹었다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고 한다. 그래? 그렇다면··· 안쪽은 맛있겠지··· 하면서 한 입 더 베어먹었다가··· 왜 이런 걸 차에 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모과도 모르나? 그리고 한 번 씹어 보고 아니면 말지 끝까지 하는 기질이라니!

또 모과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 어떤 사람이 미끈한 갈색 수피를 보고 이렇게 멋진 나무에서는 어떤 열매가 맺힐까 궁금해서 자기 집 앞마당에 옮겨 심었는데. 가을에 열린 못생긴 열매를 보고는 기절했다고 한다. 홧김에 베어버리려다 문득 전해져오는 깊은 향기에 감동해서 한 입 베어먹으려다 그 떫은 맛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고 한다.

처음엔 모양에, 다음엔 향기에, 나중엔 맛에! 이렇게 모과에는 세 번 놀란다고 하는 이야기. 사람으로 치자면 외모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나 할까. 여튼, 울퉁불퉁 못생기고, 딱딱해서 씹기 힘들고, 씹어 봐도 별 맛이 없는 모과! 그러나 은은한 향이 오래 가고, 절여서 차나 술을 담아 먹을 수 있고, 말려서 약으로 쓰기도 하는 이 모과를 옛날 사람들은 아주 좋아했나 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때 모과를 주었다. 옛날 사람들의 이런 삶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시경의 시가 「木瓜」이다.

投我以木瓜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주었네
報之以瓊琚 나는 그녀에게 옥돌을 주었네
匪報也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니라
永以爲好也 그녀랑 친해지고 싶어서

이 시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내용이다. 이 시에서 우선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먼저’ 모과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시경에 보면 옛날의 여자들이 자기 표현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교 사회의 전통 때문에 우리는 고대의 여성들이 욕망을 억누르며 조용히 순종하며 산 줄 알지만 시경의 시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摽有梅」에서 여성 화자는 매실 열매가 다 떨어지기 전에, 즉 늦기 전에 얼른 와서 자기를 데려가라고 적극적으로 구혼하고 있다. 「將仲子」에서 아가씨는 “우리 집 담장을 넘어오면 안 돼요 돼요 돼요···” 이웃 마을 도령을 거부하는 듯하면서 사실은 애타게 부르고 있다. 「蘀兮」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마른잎처럼 남자가 부르면 반갑게 화답하겠다고 한다. 이처럼 시경의 여성들은 ‘은근히’ 적극적이다.

「木瓜」에서도 그녀는 적극적이다. 그녀가 먼저 모과를 던진다. 그런데 왜 하필 모과일까? 시가 진행되면서 그녀가 내게 주는 것은 모과[木瓜]에서 복숭아[木桃]로, 복숭아에서 자두[木李]로 변주된다. 이에 내가 선물로 주는 것도 경거瓊琚-경요瓊瑤-경구瓊玖로 바뀐다. 그녀가 내게 주는 것 : 모과, 복숭아, 자두. 모두 과일이다. 과일은 여성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내가 그녀에게 주는 것 : 경거, 경요, 경구. 모두 아름다운 옥玉이다. 싱그러운 생명력을 나타내는 여성의 욕망과는 달리 남성의 욕망은 단단하게 빛나는 광석으로 표현된다.

이 시에서 또 재미있는 것은 ‘보답이 아니다[匪報也]’라는 구절이다.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주었네. 나는 그녀에게 옥돌을 주었네.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녀랑 친해지고 싶어서. 이 구절을 읽고 어떤 친구는 “남자 등처먹는 여자네요!”라고 하였다. 꼴랑 모과 하나 주고 옥돌을 받았으니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거 아닌가요?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시는 그녀가 모과를 주어서 내가 옥돌을 준 거, 그것은 보답이 아니다! 라고 반복되는 구절로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선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선물은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선물을 한다. 이것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다. 보상을 바라게 되면 그건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된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기 때문에 선물의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가 없다. 그녀가 나에게 준 모과와 내가 그녀에게 준 옥돌. 이것을 물건값으로 비교하자면 앞에서 이야기한 친구의 말대로 그녀는 ‘남자 등처먹는 여자’가 된다. 그러나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치자면 모과나 옥돌이나 소중하기는 똑같다.

이 시에서 또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주었네[投我以木瓜]’라고 할 때, ‘주다give’의 뜻으로 ‘던질 투 : 投’를 쓴 점이다. 그렇다! 사랑은 던지는 것이다!

아주 멀리 있어도 금방 나를 알아보는 사람.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나에게 빛을 주는 사람. 그래서 마침내 내가 누구인가 알 수 있게 되고, 나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이런 사람을 ‘연인戀人’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인들은 서로 비슷하면서 다르다.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를 통해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서로의 다른 점, 차이이다. 즉 동류同類이자 타자他者인 관계가 연인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하면서 다른 존재. 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이질적인 면도 수용하게 된다. 내게서 모자란 점을 그에게서 채워나간다.

사랑할 때 우리는 강렬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보통 때는 ‘나’라고 하는 습관 속에 갇혀 있다가 우연한 만남을 통해 나의 경계를 넘어 온 세상과 하나가 되는 강렬한 생生의 체험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을 표현할 때 흔히 ‘빠지다’라는 말을 쓴다. fall in love! 그러나 사랑은 맹목적으로 빨려드는 블랙홀이 아니다. 다른 모든 관계의 장에서 고립되는 함정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건강한 신체, 충만한 에너지의 흘러넘침, 나와 너 사이 가로놓인 수많은 경계들을 허물고 소통하려는 생명의 역동적인 순환 운동이다. 나와 너 사이 아득한 간극을 메우고 다리를 놓기 위해서 모과든 옥돌이든 뭐라도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木瓜」에서 우리는 작은 선물을 통해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지는 연인들의 아름다움을 본다.

# 참고 1 : 시경 위풍에 나오는 시「木瓜」 원문과 풀이

木瓜

投我以木瓜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주었네
報之以瓊琚 나는 그녀에게 옥돌을 주었네
匪報也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니라
永以爲好也 그녀랑 친해지고 싶어서

投我以木桃 그녀가 나에게 복숭아를 주었네
報之以瓊瑤 나는 그녀에게 옥돌을 주었네
匪報也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니라
永以爲好也 그녀랑 잘 지내고 싶어서

投我以木李 그녀가 나에게 자두를 주었네
報之以瓊玖 나는 그녀에게 옥돌을 주었네
匪報也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니라
永以爲好也 그녀랑 오래 좋아하고 싶어서

# 참고 2 : 『황금빛 모서리』(문학과 지성사, 1993)에 나오는 김중식의 시 「木瓜」. 이 시에서 김중식은 모과가 꽃보다 멀리 향기를 전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꽃보다 열매가, 생김새보다 향기가 아름다운 모과에서 김중식은 고통을 감내하는 사랑의 깊이를 발견하고 있다.

木瓜

사랑이 고통일지라도 우리가 고통을 사랑하는 까닭은
고통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감내하는 까닭은
몸이 말라비틀어지고
영혼이 꺼멓게 탈진할수록
꽃 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지속적인 냄새를 피우기 때문이다

꽃 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집요한 냄새를 피우기까지
우리의 사랑은 의지이다
태풍이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모과
가느다란 가지 끝이라도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의지는 사랑이다

오, 가난에 찌든 모과여 亡身의 사랑이여!

응답 1개

  1. 행인 2말하길

    모과주고 옥돌받기, 푸하하. 사랑에서의 증여관계. 사랑의 선물을 빙자하여 등꼴빼먹는 여자들에 대한 개콘 들의 외침…암튼 재밌어요. 시경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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