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2

- 김융희

농사꾼 마음의 이해를 바라며…

여름을 접어들면서 농촌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 집에도 벌써 가까운 이들이 몇 차례 다녀갔다. 방학이 시작되고
본격 휴가철이 되면 방문객도 늘고 더욱 바빠질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는 한촌인지라 계절의 혜택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산나물이 나는 봄철엔 나물 채취로, 밤이 익어 떨어지는 가을이면 밤 줍기를
위한 인근 도회의 꾼들이 잠깐 나들고 있으나, 본격 여름철이면 고개 넘어
동막골 유원지를 찿는 피서객들의 차들로 집앞이 제법 분주살 스럽다.

요즘도 긴팔 두꺼운 옷을 버리지 못하고 밤에는 두툼한 이불과 더불어 지내는
이곳의 기온 탓에, 겨울엔 추워 매우 지내기가 어려운 곳이란 생각만으로 외면해
겨울철은 찿는 이가 거의 없다. 추운 한겨울, 따끈한 실내에 고구마라도 삶아 놓고
둘러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독서를 즐기는 기분도 즐겨 봄직하다.
아직은 마련해보지 못했으나 오는 겨울에는, 혹한에 눈이 펑펑 쏟아져 쌓이는 날
꼭 자리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여름이면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을 소주잔 기울이며 즐기는 기분, 녹음아래
옥수수 함지박 둘러앉아 설레 부체질로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독서도 좋을 듯.
작년에는 자리를 마련하고 가까운 친지들 초대를 했으나 관심도 호응이 별로…
그저 바쁘다는 대답 뿐이었다. 현대인들의 일상이 그런 삶으로 몹시도 바쁘나 보다.

가끔은 군사 훈련으로 작전 차량의 왕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외는 거의 인적이
없어 매우 한가로운 적막의 한촌. 이런 비철이면 산새들이 공중을 날고 가끔은 노루나
산토끼의 방문이 있을뿐, 너무 할 일 없는 집 지킴이 건우와 분이는 무료를 참지 못해
저희들끼리 하늘을 보며 짖기도 한다.

조금 전에도 잠깐 도로에 나갔더니 까투리 가족들이 노닐고 있었다.
이곳 꿩, 산토끼, 노루 고라니, 맷돼지, 청솔모 산새들,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서로의 무료를 달래는 그리움 탓이리라. 나역시 때로는 그들이 그립고 기다려진다.
정성드린 작물에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다행히 우리 집엔 건우와 분이의 기세로
그들의 접근 불가, 전혀 피해가 없다. 그래 그들이 밉지 않겠지!)

모두가 그리움 뿐, 인정없는 이런 분위기에서 한촌의 우리 집을 찿아 주는
방문객들이기에 우리는 반가울 뿐이고, 그래서 외롭지 않는 여름이 좋기도 하다.
우리집도 제법 찿는 이들이 점점 늘어 인원이 많을 때면 좁은 공간이 불편해서
금년에는 약간의 공간을 늘리며 시설을 보완도 했다.

지난 주말에도 고대산 등산을 마친 지인들이 십여 명 들려 갔다.
금년 여름들어 다섯 번째의 손님 맞이였다. 그들이 머문 자리도 나에겐
농삿일 잡초처럼 일거리를 남겨준다. 그래도 조금도 짜증스럽거나
힘들지 않다. 잠시라도 함께했던 즐거웠던 일들이 그리움으로 머물 뿐!

그런데, 나를 언짢게 만드는 섭섭한 일이 하나 있다.
그 섭섭함을 그러려니 여겨 그냥 지나칠려 했지만 아무래도 말은 해야겠다.
농촌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농심을 이해하여 달라는 부탁의 말이다.
땀흘려 키운 작물엔 정성이 함께 한다. 그 정성은 지울수 없는 사랑으로
오래도록 함께한 것이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분들은 주객이 따로 없다. 누구나 우리 집에 오면 먹거리를
같이 준비하여 함께 먹는다. 지금 철에는 장포에 내려가 상추도 꺽고 고추 오이
호박 가지를 함께 마련해 음식을 만들고 같이 나눠 먹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꼭 상처가 남는다. 함부로 다뤄 짖밟힌 야채들,
고추 가지 토마도 등 가지가 꺾이고 부러지고, 호박 참외도 줄기가 잘려 있다.
그들이 애처럽고 속상하다. 그러나 그냥 두고 볼 뿐, 어쩔 수도 없다.
좀더 조심하며 사랑해 주었으면 한다.

나도 먹을려고 따다 놓은 작물이 미처 못먹고 버린 경우도 있고,
때론 거두지 못해 버려진 작물도 있다. 그러나 상해서 먹을 수 없어 버리긴 하지만
싱싱한 작물을 함부로 버리지는 못한다. 그데로 두어 완전히 시들고 상하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작물을 가꾸는 농사꾼의 마음씨이다.

이번 주말에도 방문객을 보내고 쓰레기를 치우면서 버려진 멀쩡한 풋고추며
오이 조각을 곱게 씻어서 내가 먹었다. 먹지도 않고 함께 잘렸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진 수박 조각은 참아 챙길 수 없어 마음이 쓰였다.
먹고 버린 수박 껍질을 보면서 우리 수유너머 식당을 떠올리기도 했다.

한사코 지키는 식당 룰, 절대로 버리지 않는 음식 찌꺼기며, 마지막엔 접시 훔친
식빵 조각을 디저트로 들고, 수박은 붉은 살이 남지 않아야 한다고 써서 붙여두고
룰을 지키는 우리 연구실 식구들이 그리웠다.

나의 농심이 지나친가요?

얼마 전 여러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연구실에서 익힌 알뜰한 식사를 했더니 나더러 스님이 식사하는
것 같데요. 약간의 놀림 비슷한 말투 같았으나, 나는 기회다 싶어
수유너머 식사 태도를 큰 소리로 알렸드랬습니다.

뭐래도 언제나 옳은 일은 실천되야 하고, 농심은 존중되야 하는 것.
우리 연구실 식구들 모두들, 늘 앞장서며 힘내요. 바른 삶을 위하여…

응답 2개

  1. 고추장말하길

    연천에 혼자라도….다시 한 번 찾아뵙고 싶군요. 가끔 군인들 지나가는 것 말고는… 가끔 바람이나 잠시 머물다 가는 곳…

  2. 행인 1말하길

    농촌의 고적함에 대한 초반부는 거의 이상의 관촌수필을 떠올리게 하네요. 너무 심심해서 하늘을 보고 짖는 개들이라….산짐승들조차 외로움 때문에 서로를 그리워할 지경이라. 도심에서는 잘 느끼기 힘든 고적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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