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소심하기 짝이 없는 은밀한 저항

- 호흡(비정규직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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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비정규직 예술가가 가차없이 쪼잔하고 소심해지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마음 먹은 후 그는 지난해 겨울 동안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사람모양의 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아주 은밀하게.

사건의 계기는 광화문광장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광화문광장, 휠체어를 끌고 한 남자가 이순신 동상 앞에 선다. 남자는 가방에서 준비된 피켓을 펼친다. 순간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바라본다. 하지만 순식간에 남자는 휠체어를 탄 채로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연행된다. 걸을 수가 없던 남자는 발버둥칠 수 조차 없었다. 남자는 사라졌고 광화문 광장의 사람들은 다시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너무 억울한 일이 있어 1인 시위라도 해야 한다면, 이곳 저곳 항의할 장소를 찾아 다녀도 쫓겨나기만 한다면, 시위를 하는 모습을 매섭게 째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면, 감시하는 눈이 많아 저항을 하다가 잡혀갈 것이 무섭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말을 해야 한다고, 저항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하지만 너무 바빠서 행동할 시간이 없다면, 배려심이 많아서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시위를 하고 싶다면, 이 세상에 내가 서있을 곳 하나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렇다면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니, 나는 무얼 할 수 있는가?


촛불아바타의 모습-흰색의 초심이 마치 뿔 난 사람을 연상케한다.

그리하여 2010년 6월 5일 광화문광장에 아주 작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함께 은밀한 저항을 해줄 스파이도 모집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많은 스파이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자기를 대신해서 시위를 해줄 아바타를 만들어주길 바랬다. 10일 동안 총 137명의 촛불아바타가 시위를 했다. 어떤 아바타는 시위를 시작한지 10초도 안돼서 연행되기도 했다. 생각보다 광화문광장에서 감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사복경찰에서부터 환경미화원까지 5~7명 되는 사람들이 감시를 하고 있었다.)

광화문광장에서의 은밀한 저항을 하는 마지막 날 20여명의 아바타들은 집단 분신을 했다.(촛불아바타의 머리에 불을 붙인 것이다.) 어떤 아바타는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는 피켓을 들고 미대사관앞에서 항의를 하기도 했고 어떤 아바타는 광장을 돌려달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집단분신이 일어나던 중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바타들을 주시하고 있는 경비(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유니폼을 입고 광화문광장을 관리하고 있었다.)아저씨가 입으로 불을 다 꺼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바타들은 손끝 하나도 건들이지 않고 불이 켜지면 입 바람으로 끄고 불이 켜지면 손바닥 부채질을 하면서 끄기 시작했다. 그 경비아저씨 왈. “광장에서 촛불만은 안돼요!”

몇 십 분에 걸친 실랑이 끝에 아바타들은 자진 철수를 해야 했다. 137명의 아바타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바타는 단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연행되거나 버려지거나 실종되거나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고 말았다. 아바타를 신청했던 스파이들은 이 은밀한 저항에 만족감을 표했다. 스파이들과 비정규직 예술가는 다음을 기약하며 광화문광장의 은밀한 저항에 대한 점거일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7월말, 우리는 보다 더 치사하고 쪼잔하며 소심한 저항을 위한 스파이를 더 많이 양성하고자 [아지트R]을 만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러한 아지트를 위해 공간을 내주겠다는 인천의 한 대안공간을 알게 된 것이다. 7월 24일부터 8월22일까지 우리는 ‘은밀한 저항’ 2탄을 진행하고자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파이를 지원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은밀한 저항을 끈질기게 해나갈 것이다.

누군가는 물었다.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고 작은 사람들로 저항을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화 좀 내야겠다. 도대체 서울, 어디를 가야 마음껏 저항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뭐가 그렇게 화가 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요즘 같은 세상에 화 안 나는 사람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요?” 가타부타 화나는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다만 공기 좋은 파란 지붕에 사시는 분은 어떨지 모르겠다.



분신을 하고 있는 아바타-광화문광장은 서울시장의 정원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스파이를 신청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설명서



은밀한 저항의 2탄 소심한 스파이양성을 위한 '아지트R'의 로고



지난 10일 동안의 점거일지-아바타들은 갖가지 이유로 연행되거나 실종됐다.



점거인들

– 비정규직 예술가 호 흡

응답 4개

  1.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강수미, hoheup. hoheup said: RT 은밀한 저항프로젝트가 수유너머 weekly에 기사가 실렸습니다. http://suyunomo.jinbo.net/?p=4793를 확인해보세요~ […]

  2. 호흡말하길

    은밀한 저항 2탄 프로젝트 참여는 트위터를 통해 하실수 있습니다.http://twitter.com/hoheup 혹은 @hoheup로 팔로우하시면 됩니다.
    아지트R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을 스페이스빔으로 오세요!

  3. 단단말하길

    진작 알았으면 스파이 좀 심어두는 건데…..ㅋㅋ
    니들이 수고가 많다~~~~^^

  4. 동욱말하길

    광화문광장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 몰랐군요. 흐흐흐. 계속 좋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잘 보고 있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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