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3

- 김융희

어떻게 이런 일이……

실용과 편의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낮은 곳을 골라 조심스럽게 흐르는 물길은 강 줄기가 구불거려서는 안
된다며 똑바로 흐르도록 전국의 강들은 정비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며,
적당히 오르내리며 때로는 굽이도는 신작로 역시 똑바로 곧아야 한다며
산을 자르고 뚫는 토목공사로 온 국토가 갈려 찢기고 있는 요즘이다.

매사 모든 작업도 편리한 기계화로 일사천리 진행된다.
우리집 앞의 도로는 해마다 몇 차례씩 잡초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행정처인 군청에서 실시한 듯 한데, 이역시 기계 작업으로 전기낫의 굉음과
함께 작업하는 관경을 지난, 지지난 해에도 몇 차례나 보아왔다.

금년에도 도로 옆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음을 본다.
우리 집 앞길 관리는 심고 베는 등의 작업을 내가 직접 해오고 있다.
내가 보지 못한 사이에 모두 잘려 버린 몇 차례의 경험도 있었지만,
가능한 자연에 거실리지 않게 잡초 속에 민들레, 쑥도 어울리고
크로바 무리속에 망초도 함께 하고, 엉겅퀴도 있으며, 가을에 필 어린
코스모스도 자라고 있는, 자연스러운 길거리인 것이다.

이른 봄이면 냉이를 시작으로 여러 나물싻들이 봄소식을, 이어 노랗게
민들레가 피면 보랏빛 닭쌈꽃이 덩달아 깜찍하며, 여름을 알리는 개망초,
엉겅퀴는 너무 무성하여 때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한곳에 무리지어 두면
여름에 흰 설경도 보고(개망초 하얀꽃이 무리져 피면 흰 눈처럼 보인다)
기세 넘친 씩씩한 장관의 보랏빛 꽃 엉겅퀴도 본다.

요즘은 후덕한 호박꽃이 피어 풍성한 여름을 알리며, 조금 있어 가을이면
파아란 하늘 아래 어울린 코스모스가 피어 하늘거릴 것이다.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동네 협조를 얻으면, 우리 마을 이름을
“들꽃 마을” 마을 길은 “민들레 길”로 선포할려는 나의 계획이다.
마음 같아선 어서 명명식을 갖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우리 집앞 민들레 길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싱싱하게 자란 풀들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맥을 못추며 비실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여러 날 비가 내리지 않아선가? 처음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이 그만, 부푼 꿈과 기대도 사라진 허망으로 황당하다.

풀들이 맥을 못춘다 했더니 차츰 푸른 빛이 노랗게 변하면서 시들고 있다.
길을 따라 한참을 가면서 살펴보니 온통 도로변 모든 풀들이 똑같았다.
도로 관리를 한다며 제초제를 뿌린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기낫으로
무성하게 자란 풀만 잡아 주었는데, 금년엔 제초제를 뿌려 풀을 제거시켰다.

뿌린 제초제로 모든 풀들이 고사하고 있다. 여기는 잘 정비된 도싯길이 아니다.
산촌의 한적한 시골길인 것이다. 가끔은 칙나무 순이 뻣쳐 내리기도 하며,
때로는 꿩가족들이 산책을 나오기도 하는 그야말로 오지의 자연도로인 것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도 각자 자기를 지키며 또 어울리며 잘 자라주고 있는 풀들이
왜 이처럼 제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의 모든 생물이 완전 고사된 폐허의 거리에서도
봄이 되면서 맨 먼저 싹을 틔우며 자란 식물이 쑥이였다고 들었다.
그처럼 생명력이 강한 쑥마저도 지금 갈색으로 변해 죽어가고 있다.
가을이면 꽃길로 변할 코스모스의 어린 싻들은 벌써 자취를 감춰 사라졌다.
제초제가 지나간 곳에는 시들고 죽어 문드러진 풀의 잔해만이 몰골스럽다.

제초제를 뿌리면 다시 자란 풀은 제초제를 양분으로 더욱 무성하다고 흔히
농부들은 농담을 한다. 원폭 아래서도 다시 살아준 모진 생명들이기에,
제초제로 죽어간 저 풀들은 곧 다시 돋아나게 된다. 제초제는 일시적 생명
정지 작업일 뿐인 것이다. 이같은 제초제의 피해로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정지된 생명력은 다시 살아나지만 제초제는 제거되지 않고 잔류물로
생명채 내에 남는다. 양분이 된다는 농담이 진담일 수도 있는, 인체에 미치는
농약의 피해 우려가 바로 이 잔류 농약 때문인 것이다.

이곳엔 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봄나물을 뜯는다. 제초제가 뿌려진 각가지
풀들이 내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물과 함께 자랄 것이다.
그러면 냉이 민들레도 케며 쑥도 뜯을 것이다. 제초제가 뿌려지고 그
잔류물이 베어 있을 오염된 나물의 피해는 전혀 알 수 없는 채….
우리는 이런 나물을 먹고 살아야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식품이 이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지인을 만났더니 그의 형수가 별세하여 고향에 다녀왔다고 한다.
나도 아는 분이기에 사망원인을 물었더니 암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날이 늘고있는 현대병이다.

매사를 쉽고 편리하게 살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늘어만 가는
암과 같은 현대병과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응답 1개

  1. 행인1말하길

    깊이 공감되는 글입니다. 어디 가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아예 해소해 버리려는 짓거리들이 판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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