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노출의 공포

- 매이아빠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매이야 옷 입자” “싫어, 더워” 날이 더워지면서 요즘 매이는 집에서 발가벗고 지낸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덥다며 옷 벗겨 달라고 한다. 팬티는 입자고 해도 한사코 다 벗겠단다. 날도 덥고 빨랫감도 덜 생기고 집인데 뭐 어떠냐 싶어서 벗고 놀게 뒀다. 그런데 바깥에서도 그런다. 놀이터에서 오줌을 싸서 옷을 갈아 입혀 주려고 하면 홀딱 벗은 상태로 도망친다. 깜짝 놀라서 잡으려 하면 매이는 “아빠, 나 잡아 봐라” 하면서 술래잡기 놀이를 시작한다. 알몸의 여자애와 추레한 중년 남성의 엽기 쇼로 놀이터는 일순간 극장이 된다.

연구실에서는 더하다. 맨발로 뛰어다니는 건 예사고 기회만 있으며 벌거벗으려고 한다. 어제도 그랬다. 유나랑 팥빙수를 먹다가 매이가 그릇을 엎질렀다. 속옷까지 젖어서 다 벗기고 새 옷을 입히려고 하는데 발버둥을 치며 내 손을 빠져나가 복도로 내달렸다. 그 때부터 30여분 동안 나는 벌거벗은 매이와 엽기적인 술래잡기 놀이를 해야 했다. 유나가 타일러도 소용이 없다. 이것만큼 아빠를 술래잡기 놀이에 참여시킬 강력한 유인책이 없다는 걸 알아 버린 듯 벌거벗은 채 연구실을 누볐다. 카페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복도로, 복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급기야 남산 식구들 열공 중인 공부방으로, 그것도 모자라 계단을 내려와 2층 식구들 <에티카> 에세이 발표하는 세미나실을 에티켓 없이 침입하여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그동안 나는 뭘 했냐고? 한두 번 타이르고 잡으려다가 포기해 버렸다. 괜히 내가 잡으려고 하면 그게 더 흥미를 유발할 것 같아서 모른 채 하고 딴청을 피웠다. 시큰둥하게 ‘그게 재미있어?’ 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지만 나의 ‘무시작전’은 실패했고, 매이는 나체의 자유로움을 즐기듯 두 팔을 팔랑거리며 깔깔거리고 돌아다녔다. 놀란 고모들의 신고와 포획, 거듭된 탈출 끝에 ‘인간 놀이기구’ 여일이 삼촌의 회전목마에 얼이 빠진 틈을 타 옷을 입힐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매이의 ‘만행’을 일러바쳤다. 아내는 기겁을 하며 애가 그러는 동안 자기는 뭘 했냐며 윽박질렀다. 자꾸 도망가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하소연과 함께 “뭐, 애가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정색을 하며 따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진짜 개념 없다. 아이의 신체에 대한 담론 지형이 이미 바뀌었다구. 이제 더 이상 아이의 신체는 무성적인 신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성적 판타지를 만족시킨다는 생각을 해야 돼”라고 논박했다.

나는 그 말이 연구실 사람들을 잠재적인 소아 성애증자로 간주하는 말처럼 들려 기분이 나빠서 “설마 연구실 사람들 중에 누군가 매이의 벗은 몸을 보고 성적 판타지를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극히 일부 사람들의 시선에서만 그런 것 뿐이지. 일부 도착적 시선과 그것을 확대하여 정신의학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언론과 권력의 담론놀음에 놀아날 필요는 없는거야” 라고 맞받아쳤다.

아내는 “자기는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다는 사람이 뭐 그렇게 무식해? 동성애 담론이 공론화된 상태에선 과거엔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졌던 동성들간의 노출이나 접촉이 섹슈얼리티적 관점에서 보여지고, 어떤 긴장과 경계가 생기지. 그런데 그런 변화를 보고 누군가가 우리 중 누가 게이라는 거냐, 동성애자는 소수일 뿐인데, 우리 모두를 동성애자로 모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그냥 무식한거 아냐? 동성애 담론에서 진짜 핵심은 다수의 이성애자와 구분되는 소수의 동성애자를 인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도 섹슈얼리티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것이야.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동성애적 성향이 있기 마련이고. 사실 도착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다 그렇지 않아? 패티시즘이나 관음증 같은 것도 소수의 도착증자의 증상이 아니라, 소위 정상적이라는 섹슈얼리티 안에 그러한 성향이 들어있는 거잖아. 소아기호증도 어떤 미친 범죄자들의 욕망일 뿐이고, 다른 사람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고 느낄 수도 없다고 선 그어 버리는 것은 진실도 아니고 사태에 도움도 되지 않아.”

나는 아이의 나체가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을 모두가 해야 한다는 아내의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하다라도, 여전히 억울한 느낌이 들어 다시 반박했다. “소아기호증을 동성애에 비유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어.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에 대한 대응이 몸을 꽁꽁 감싸는 방식이 좋은 거야? 자기 얘기는 마치 여성들의 노출이 성폭력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논리와 닮았지 않아?” 라고 하자 아내는 더 목소리를 높였다.

“뭔 소리야? 성적 판타지 제공이 어떻게 곧바로 성폭력의 원인 제공론으로 이어져? 그 논리는 남자는 성적 흥분을 느끼면, 곧바로 폭력적인 성행위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논리인데, 그게 인정되면 ‘남자인간’은 더이상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되는 거야. 온 우주 중 유일한 이성적 존재임을 자처하는 ‘남자인간’이 그 자격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게 되는거지. 그러니 성적 판타지의 자극을 받아서 성폭행을 했다는 놈은 그냥 그놈 책임인 거고, 피해자 책임론 따위는 더 말할 필요도 없어. 성폭행에서 중요한 것은 자극의 유무가 아니라, 힘의 관계야. 소아 성폭행은 그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고리이고. 누군가는 아이를 보고 성적 판타지를 느낄 수 있어. 어떤 측면에서는 아이의 몸이 섹슈얼리티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 소아에 대한 성적 판타지가 사회적으로 조장되어선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박멸할 수는 없어. 하지만 소아와 진짜로 성관계를 해선 안돼. 설사 아이가 원했다고 해도 그건 성폭력이 맞아. 이 대목이 동성애와 다르지. 아이는 성관계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대등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어. 내가 아이가 벗고 다니는 것을 놔둬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벗고 다니는 아이가 유아성폭행을 유발한다거나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야. 그건 가해자의 책임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어. 내 말의 핵심은 노출이나 성적 판타지의 유발이 자기의지와 욕망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 하고, 욕망의 구조 따위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타인의 성적 시선에 수동적으로 방치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야. 성인여자가 자기 욕망에 따라 과감한 노출패션을 구사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 그걸 보고 금기와 억압의 변을 설파하는 사람들에게는 ‘왜, 꼴려?’ 라고 해 버리면 그만이야.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 자기 몸을 타인의 음란한 시선에 방치해 버리는 것은 부주의한 것이고, 말려야 하는 것이지” 라고 일장연설을 했다.

나는 “자기의지에 의한 것과 무지에 의한 것을 그렇게 선명히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또 그걸 구분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그런 백치 같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겠고.” 라고 시큰둥하게 대구했다. 그러자 아내는 “중학교 1학년때 나처럼 키작은 아이는 가슴도 별로 나오지 않았지만, 키가 크거나 뚱뚱한 아이들은 벌써 굉장히 글래머였는데, 부모의 무관심 때문인지, 본인의 순진무구함 때문인지, 브레이지어를 안 한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어. 그 애 이름이 아직도 기억나네. 공부도 중상이었는데, 얼굴에 주근깨가 많고 어두운 표정에 말수가 적고 친구가 없었어. 4월부터 교복이 춘추복이 되고 체육복이 반팔이 되었는데, 체육 시간에 유두가 다 비치고, 뛰면 가슴이 출렁출렁 리디미컬한 원을 그리곤 했지. 그때 체육선생님이 젊은 남자 선생님이셨거든. 그맘때 성적인 관심이 애들마다 편차가 엄청났었지. 맨날 연습장에 음화만 그리는 애도 있었고. 남자 체육선생님이 그애 가슴을 유심히 봤네, 아니 눈 둘 곳을 못 찾아 쳐다보질 못 하더라 등등 친한 애들끼리 수근거리고, 다들 민망해하면서도 신학기라 그 애와 친한 애가 없어서 본인에게는 아무도 말을 못했었어. 그 때만해도 애들이 좀 순진했지만, 요즘 같았다면 아마 왕따가 되어 일진에게 얻어맞는 상황이 되었으려나?” 라고 실증 사례를 댔다. 나는 그 지점에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매이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자기 결정권, 욕망의 주체가 되는 것과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건 다르다고. 음, 그래. 내가 잘못한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패배와 잘못을 인정했다. 야행성인 아내와 밤중에 복잡한 대화를 어어가는 건 너무 피곤한 노릇이기도 하고.

옆에서 엄마와 아빠의 논쟁을 지켜보던 매이가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엄마, 아빠, 뽀뽀해” 라고 한다. “응? 뭐하라고?” “응, 엄마랑 아빠랑 뽀뽀해” “매이야, 왜? 왜 뽀뽀하라는 거야?” “응, 그냥” 지난주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얼버무리면서 넘어갔는데, 생각해 보니 그때도 지금처럼 나와 아내가 시사에 관해 토론을 했던 것 같다. 나도 그렇지만 토론할 때 아내의 목소리는 싸우는 것처럼 커진다. 매이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배운 것처럼 다투고 나서는 뽀뽀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거듭된 매이의 명령에 나와 아내는 못이기는 척 오랜만에(?) 뽀뽀를 했다.

응답 5개

  1. 아버지말하길

    참..이라는 분 어이가 없네요.
    아직 어린아이를 누가 헉헉 댑니까?
    혹시 자기가 헉헉대서 그런거 아닌가요?
    내가 보기에 귀엽기만 하구만
    이상한 태클 걸지 맙시다. ㅋ

  2. 참..말하길

    그럼 사진을 내려야지 애가 성인이 된 후에 허락 받고 올리던가

    요즘 같이 무서운 시대에 버젓이 애 알몸 사진을 올리나

    10000만 중 한 명이라도 소아성애자가 있어서 댁 딸 보고 헐떡일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당신 어릴 때 홀딱 벗은 사진이나 올리지 21세기에도 이러는 게 난 참 이해가 안 간다 병이지 병 지 똥고집으로 딸을 변태들한테 딸감으로 바치는 거

  3. 트럭말하길

    굳이 ‘야행성인 아내와 밤중에 복잡한 대화를 어어가는 건 너무 피곤한 노릇이기도 하고.’라는 말을 붙이셨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슬쩍…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정말 속시원한 얘기였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여자의 몸으로 성장하기’에 대한 상상력의 한계를 슬쩍 맛보신 게 아닌가 싶네요.

  4. 20세기소녀말하길

    오,,, 어떻게 저 긴 대사를 다 기억하시는 거죠?? 잘 읽었습니다.ㅎ

    • 21세기 아줌마말하길

      그만큼 매이아빠가 매이엄마의 말을 귀담아 듣는 다는 뜻이겠죠? 아내의 말에 귀기울이는 남편이라는 것 만으로도, 매이아빠는 정말 멋지군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