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동쪽에 있는 몸이 서쪽 땅을 슬퍼했지

- 정경미

시경을 통해 우리는 역사 기록으로는 모두 전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과 그 속에서도 끊이지 않는 웃음과 작은 설레임들을 만난다. 문서로는 다 전하지 못하는 ‘문서의 바깥’을 만난다.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네. 나 동산에서 돌아올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시경 빈풍에 나오는 「동산東山」이라는 시는 주공의 정복전쟁 때 동쪽의 전쟁터에서 서쪽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어느 병사의 노래이다.

상商나라의 마지막 왕은 주紂이다. 주는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 걸桀과 함께 폭군으로 유명하다. 주紂는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만들어[주지육림酒池肉林] 매일 주연을 즐겼다고 한다. 그의 애첩 달기妲己는 또 어떠한가. 뜨겁게 달군 구리기둥에 기름칠을 해서 죄수들보고 건너보라고 한다. 당연히 미끄러질밖에. 그러면 그 밑에는 이글거리는 화염구덩이다.

이때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 세 명의 충신이 간언을 한다. 미자가 이러다가는 나라가 망한다고 정신 차리고 정사를 돌보라고 하자 주왕은 “내가 태어난 것은 천명인데 하늘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면서 안 듣는다. 미자는 은나라를 떠난다. 기자는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자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면 곧 옥잔을 사용하게 될 것이고, 옥잔을 사용하면 먼 지방의 진귀하고 기이한 물건을 모두 사용하려 들 것이다. 궁실의 사치가 바로 이 작은 것 하나에서 시작한다”고 간하였으나, 주왕은 이 말도 역시 듣지 않았다. 기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다 잡혀서 노예가 되었다. 비간 역시 사력을 다해 주왕의 잘못을 깨우쳐 주려고 하였으나 주왕은 노하여 “나는 성인의 마음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정말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하면서 비간의 심장을 열어 보았다.

이렇게 사치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잔인 포악한 정치를 하고, 충신의 간언을 듣지 않으니 주왕의 상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이때 주왕의 상나라를 정복하고 세워진 나라가 주周나라이다. 원래 주나라는 상나라의 작은 제후국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배층의 무능과 부정부패로 민심을 잃으면서 상나라의 세력이 약해지는 동안 작은 제후국에 불과했던 주나라가 힘을 키워 상나라를 정벌한 것이다.

상나라 유민들의 반발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에 주 무왕周武王은 상나라를 정벌한 뒤, 주紂의 아들인 무경武庚으로 하여금 은허殷墟에서 상나라의 유민들을 다스리게 했다. 전 왕조의 후손과 유민들을 말살하지 않고 배려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는 반란의 싹을 남겨 놓는 일이어서 무왕을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무왕은 아우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 곽숙霍叔을 무경이 다스리는 지역에 파견하여 은나라 잔존 세력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이때 무경이 다스리던 지역을 패邶(주나라 도읍의 북쪽), 관숙이 다스리던 곳을 용鄘(주나라 도읍의 남쪽), 채숙이 다스리던 곳을 위衛(주나라 도읍의 동쪽)라 불렀다. 이들을 ‘삼감三監’(세 군데 관리지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후에 무경은 주공周公이 어린 성왕을 대신해 섭정을 한다고 관숙, 채숙, 곽숙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성왕은 이들을 평정하고 강숙康叔을 위衛 땅에 봉하면서 패와 용 지역까지 함께 다스리게 하였다.

이러한 상말주초商末周初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경의 시로 「동산東山」이 있다.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건국될 시기,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누르기 위해 주나라는 몇 년 동안 정복전쟁을 벌인다. 이때 병사들이 흘린 피로 황하강이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이 정복전쟁을 주나라의 지배층은 천명을 받들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성전聖戰]’이라고 명분을 과시했지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이름 없이 죽어야 했던 수많은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난리’에 불과하다.

日出而作 해가 뜨면 일하고
日入而息 해가 지면 들어가 쉰다
耕田而食 내 밭을 갈아서 먹고
鑿井而飮 내 우물을 파서 마시니
帝力何有我哉 임금의 힘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렇지 않은가. 백성들에게 태평성대란, 요순시대 어떤 농부가 땅바닥에 막대기를 두들기면서 불렀다는 노래 ‘격양가擊壤歌’처럼 나라가 있는지 없는지, 왕이 누군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다. 왕이 강력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시대는 난세亂世다. 상말주초가 바로 그런 시절이 아니었을지. 폭군暴君 주왕紂王 VS 성군聖君 무왕武王. 역사는 이렇게 두 사람을 대비시키지만, 백성들에게는 주왕 때나 무왕 때나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주왕 때는 사치 방탕한 궁실 먹여살리느라 등골 빠지고, 무왕 때는 천명天命을 받드는 위대한 나라 만들기 위해 부역살이 하느라 목숨이 간당간당.

에효, 차라리 태어나지 말 것을! 잠들어 깨어나지 말았으면! (「兎爰」) 이때의 고달픈 심정은 시경 왕풍王風의 여러 시편들에서 잘 나타난다. 「서리黍離」에서 망국의 설움을 ‘마음이 술취한 듯하다[中心如醉]’라고 하였다. 「중곡유퇴中谷有蓷」에서 전쟁 때문에 남편과 헤어진 여자가 가뭄에 바짝 말라가는 익모초와 같다고 하였다. 「갈류葛藟」에서는 난리통에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을 ‘남을 아버지라 부르네, 남을 어머니/형이라 부르네’라며 탄식하고 있다.

이러한 왕풍의 시편들과 함께 시경 빈풍豳風에 나오는 「동산東山」이라는 시는, 주나라 초기 정복전쟁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역사에서는 그 전쟁을 ‘천명을 받드는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하지만, 실제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고달픈 현실’일 뿐이다. 부역에 끌려가서 힘든 일을 해야 하며, 징병에 끌려가서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한다. 난리통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삶의 터전을 잃고 고달픈 유랑민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럴듯한 대의명분으로 치장된 역사의 이면에 이런 고달픈 현실, 생생한 삶의 현장을 잘 보여주는 시경의 시로 「동산東山」을 함께 감상해 보자.

我徂東山 悼悼不歸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네
아조동산 도도불귀
我來自東 零雨其濛 나 동산에서 돌아올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아래자동 영우기몽
我東曰歸 我心西悲 동쪽에 있는 몸이 서쪽 땅을 슬퍼했지
아동왈귀 아심서비
制彼裳衣 勿士行枚 옷을 지으며 다시는 행군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네
제피상의 물사행매
蜎蜎自蠾 烝在桑野 꿈틀꿈틀 뽕나무 벌레는 뽕나무 들판에 있는데
연연자촉 증재상야
敦彼獨宿 亦在車下 나는 혼자 웅크리고 잠들거나 수레 밑에 있기도 했지
돈피독숙 역재차하

동산東山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태항산太行山의 동쪽에 있는 산을 가리킨다. 주공의 정복전쟁에 끌려간 병사는 지금 동쪽의 전쟁터에서 서쪽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저 조그마한 뽕나무 벌레도 뽕나무 들판에 있는데, 즉 자기가 있을 자리에 있는데, 나는 멀리 고향을 떠나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이역만리 먼 곳에서 나는 왜 혼자 한데서 웅크리고 잠들어야 하나. 수레 밑에 피하나. 나는 왜 적이 아닌 사람들과 싸워야 하나. 병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갑옷이 아닌 평복을 만들어 입으면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한다. 이처럼 병사가 몸은 동쪽의 전쟁터에 있지만 마음은 서쪽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동쪽에 있는 몸이 서쪽 땅을 슬퍼했지’라고 표현했다.

我徂東山 悼悼不歸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네
아조동산 도도불귀
我來自東 零雨其濛 나 동산에서 돌아올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아래자동 영우기몽
果臝之實 亦施于宇 외 열매는 처마 밑에 뻗어 있으리
과라지실 역시우우
伊威在室 蠨蛸在戶 쥐며느리 방안까지 들어오고 문에는 거미줄이 늘어졌겠지
이위재실 소소재호
町畽鹿場 熠燿宵行 앞마당은 사슴 놀이터가 되고 밤길에는 반딧불이 날겠지
정탄녹장 습요소행
不可畏也 伊可懷也 걱정되지 않네 오직 그리울 뿐
불가외야 이가회야

이제 병사는 ‘내가 없는 동안 고향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한다.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네’ ‘나 동산에서 돌아올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이 구절은 반복되면서 시의 흥취를 더한다. 그 다음 구절은 앞에서 보여준 시상을 새롭게 전개한다. 앞에서 병사는 전쟁터에 있는 자신의 처량하고 정처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는 병사가 없는 고향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주인이 없는 빈 집에는 풀이 무성하고, 그 풀에서 자란 열매가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자 처마 밑에까지 치렁치렁 뻗어 있다. 쥐며느리가 방안에까지 들어오고, 문에는 거미줄이 늘어졌다. 앞마당은 사슴 놀이터가 되고, 밤에는 반딧불이 날아다닌다. 주인이 없는 빈 집은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폐허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병사는 ‘걱정되지 않네 오직 그리울 뿐’이라고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수레 밑에 웅크리고 잠들기보다는 비록 황폐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병사는 노래하고 있다.

시경을 읽으면 동식물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고 한다. 이 시에도 지금 우리들에게는 잊혀진 동식물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자촉自蠾’은 뽕나무 벌레, ‘과라果鸁’는 담쟁이와 비슷하게 생긴 넝쿨풀, ‘이위伊威’는 쥐며느리다. ‘소소蠨蛸’는 조그맣고 다리가 긴, 문설주에 거미줄 치기를 좋아하는 갈거미를 가리킨다.

그리고 시경에는 재미있는 의성어, 의태어가 많다. ‘연연蜎蜎’은 벌레가 꿈틀꿈틀하는 모양이고, ‘습요熠燿’는 반딧불이 반짝거리는 모습이다. 시경의 이러한 의성어, 의태어들은 표의문자의 한계를 넘어 한자의 음성적인 효과를 살려 의미로만 전달할 수 없는 노래의 풍부한 느낌을 살려준다. 어떤가. ‘연연’이라고 하면 정말 벌레가 꿈틀꿈틀하는 것 같지 않나. ‘습요’라고 하면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지 않나. 언어가 의미만 전하는 게 아니라 풍부한 느낌을 함께 전하기 때문에. 시경의 시들은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 ‘아조동산 도도불귀’ 이렇게 소리내어 읽으면, 그리고 이 소리를 또 귀로 들으면서 읽으면 훨씬 생동감이 있다. 수천 년 전에 이 노래를 불렀을 어느 병사의 심정이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다.

我徂東山 悼悼不歸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네
아조동산 도도불귀
我來自東 零雨其濛 나 동산에서 돌아올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아래자동 영우기몽
鸛鳴于垤 婦歎于室 황새는 개미둑에서 우는데 아내는 집에서 탄식하며
관명우질 부탄우실
洒掃穹窒 我征聿至 집안 청소하고 쥐구멍 막을 때 출정했던 내가 돌아왔노라
쇄소궁질 아정율지
有敦瓜苦 烝在栗薪 데굴데굴 쪽박이 밤나무 땔감 위에 뒹굴고 있네
유돈과고 증재율신
自我不見 于今三年 내 이것을 못 본 지 어느덧 삼년이 되었구나
자아불견 우금삼년

동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날씨는 궂어서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날씨가 흐려져 비가 오려고 하면 구멍에 사는 동물들이 먼저 안다고 한다. 그래서 개미가 둑에 나와 있는 것을 황새가 보고 잡아먹고 그 위에서 운다. 집에는 쥐가 있다. 날이 궂으면 쥐구멍에서 나온 쥐들이 찍찍거리며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닌다. 아내는 쥐구멍을 막고 집안 청소를 하면서 남편을 기다린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날, 날씨가 화창해야 할 텐데 왜 부슬부슬 비가 올까. 여기서 우리는 삼년 만에 귀향을 하는 병사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삼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않는가. 그런데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과연 고향이 나를 반겨줄까. 아내가 떠나버린 게 아닐까. 집은 폐허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귀향을 하는 병사의 심정은 설레임 반 걱정 반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이렇게 모든 것이 불확실한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는 병사의 막막한 심정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라 하겠다.

我徂東山 悼悼不歸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네
아조동산 도도불귀
我來自東 零雨其濛 나 동산에서 돌아올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아래자동 영우기몽
倉庚于飛 熠燿其羽 날아오르는 꾀꼬리 날개가 곱기도 하구나
창경우비 습요기우
之子于歸 皇駁其馬 아내는 시집올 때 누런 말, 갈색 말을 탔었지
지자우귀 황박기마
親結其縭 九十其儀 장모는 친히 향주머니를 매주며 이런저런 예식을 차렸지
친결기리 구십기의
其新孔嘉 其舊如之下 신혼 때 몹시 행복했지 오래 된 지금이야 말해 무엇하리
기신공가 기구여지하

마침내 병사는 집에 돌아왔다. 밤나무 땔감 위에 뒹구는 쪽박을 본 지가 삼년이 되었다니 병사가 부역 간 동안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병사의 마음은 밝아진다. 내가 고향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집은 잘 있을까. 아내가 나를 반겨줄까. 이런 걱정으로 날이 흐렸는데 ‘날아오르는 꾀꼬리 날개가 곱기도 하구나’라는 표현에서 고향에 돌아온 병사의 마음이 밝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사는 아내가 시집올 때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내는 시집올 때 누런 말, 갈색 말을 탔었지’ 옛날에는 결혼식이 얼마나 성대한가는 신부가 타고 오는 말을 보고 가늠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얼마나 멋진 차를 타고 오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황마, 박마를 타고 왔다는 것으로 보아 아내가 시집올 때 결혼식이 아주 성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장모가 아내에게 향주머니를 매주며 이런 저런 예식을 차린다. 옛날에 여자 예복의 반은 악세서리라고 한다. 향주머니를 비롯하여 허리에 차는 것, 귀에 꽂는 것, 머리에 꽂는 것 이렇게 다양한 장신구들을 장모가 직접 챙겨준 것으로 보아 아내는 주위 사람들의 넘치는 축복 속에서 시집을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신혼 시절을 회상하면서 병사가 신혼 때 행복했던 것처럼 출정에서 돌아온 지금도 다시 행복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으로, 이 시는 끝을 맺는다.

주공周公의 정복전쟁을『서경書經』에서는 ‘천명天命’이라고 한다. “너희들이 능히 공경하면 하늘이 너희에게 복을 주고 동정할 것이지만 너희들이 능히 공경하지 않으면 너희들의 땅을 소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 또한 너희들의 몸에 하늘의 벌을 내릴 것이다.”(『서경書經』「다사多士」) 주공은 이렇게 말했다. 즉 상나라가 하늘의 뜻을 저버려서 나라를 잃었고 이제 주나라가 천명을 받들어 널리 올바른 정치를 펼칠 것이니, 만백성이여 주나라를 믿고 따르라! 이 말은 대단히 그럴듯하지만 한편 정복자가 자신의 침략을 합리화하고 피정복민들을 점잖게 협박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나라가 하늘의 뜻을 받아 널리 덕을 밝힌다는 명분으로 벌였던 정복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돌이 유랑민의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던가.

역사 기록 이면의 생생한 삶의 현장은 시경의 노래들로 전한다. 전쟁터에 억지로 끌려간 병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 「동산東山」, 오랜만에 돌아와 보니 나라는 망하고 옛 살던 터에는 피와 기장만 무성하더라는, 망국민의 설움을 노래한 「서리黍離」, 전쟁 때문에 남편을 잃고 가뭄에 바짝 마른 익모초처럼 비탄에 빠진 여인의 슬픔을 노래한 「중곡유퇴中谷有蓷」, 난리통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슬픔을 노래한 「갈류葛藟」같은 시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주공을 따라 정복전쟁 나간 병사의 노래「동산東山」은 고달픈 전쟁터에서의 생활 속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심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시경을 통해 우리는 역사 기록으로는 모두 전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과 그 속에서도 끊이지 않는 웃음과 작은 설레임들을 만난다. 문서로는 다 전하지 못하는 ‘문서의 바깥’을 만난다.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네. 나 동산에서 돌아올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그래서 병사는 집으로 잘 돌아갔을까? 고향의 아내는 집을 잘 지키고 있었을까? 문에 가득한 거미줄 걷어내고. 쥐구멍을 막고. 그리고 어느 날 사슴 놀이터가 된 마당에 커다란 군화 발자국. 마침내 병사가 마당에 들어섰을 때. 아내가 반겨주었을까? 혹시 전쟁에 지친 남편의 모습을 못 알아보는 건 아닐까. 오랜 방랑 끝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아내 페넬로페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그러나 신혼 때 다정했던 것처럼 아내는 새롭게 병사를 맞아줄 것이다. 그리고 병사는, 다시는 전쟁에 끌려가지 않으리라, 허황하고 거창한 명분에 속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고향에서의 평범한 삶을 더없이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응답 2개

  1. 라일락벤치말하길

    의 반복구가 자꾸 읖조려지네요 맛깔나는 해설도 잘 맛보고 갑니다

  2. 말하길

    성군이든 폭군인지 신경써야 하는 시대는 난세다. 성군과 성전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통렬한 비판, 그리고 시경에 나오는 동식물과 그네들의 저마다 다른 움직임과 소리들에 대한 설명, 잘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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