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2호] 만두를 빚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달팽이들이 사는 길

만두를 빚다

경인년 새해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먼 길을 떠나려는 달팽이들의 옴팡진 계획은 예년에 비해 몸서리치도록 매섭게 다가 온 겨울 한파 때문에 무산되어 버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강릉에 가서 바닷가를 거닐며, 횟집에 들러 모처럼 회식도 하고, 눈썰매도 타고 커피거리도 거닐며 시간을 보내자던 꿈같은 계획은 결국 햇살이 좀 따스해지는 3월로 미뤄졌다. 달팽이 여행사를 이끄는 발 빠른 달팽이의 어머님이 계신 강릉집에 머룰 작정이었건만 어머님께서 극구말리셨다고 한다. 혼자 생각해도 3살 된 아이와 6개월 된 임산부가 낀 이 여행대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셨을 것 같다.

그리하여 1월 16일 토요일, 달팽이들은 섭섭한 마음을 다잡고 만두 빚기에 착수했다. 이 또한 발빠른 달팽이가 집에 있는 신김치를 처치해야겠다며 새해가 오기 전부터 잡아놓은 계획이기도 했다. 만두 빚기는 아직은 좀 멀게 느껴지는 설날을 기다리며 명절 기분을 잔뜩 만끽하기에 좋은 일거리였다. 서울 근교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들을 따라 경상도로 이사를 가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겨울 방학 때가 되서나 서울 외갓집에서 이모, 삼촌들, 사촌들과 빚던 만두의 기억이 마구 밀려와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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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지역에선 설에 만두를 빚는 일이 없어서 추석 때 송편만 만들어 본 나에겐 엄마가 늘 하던 말이 떠올랐다. “옛말에 송편은 살이요 만두는 속이라고. 송편에 속을 너무 많이 채우면 안 돼.” 그렇다면 꽉 찬 만두의 맛의 비결은 만두소가 될 텐데, 결정적으로 만두소 만드는 법을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이 우리들 중에 없었다. 모두 만두 빚는 것만 해봤지 만두소는 전적으로 각 집안의 어머니들의 담당이었던 거다. 그래서 요리책들을 뒤져 대충 공통되는 양념들을 준비해 봤다. 고기를 먹지 않는 친구를 배려해 고기대신 다양한 야채들로 김치만두와 야채만두 두 가지를 만들기로 했다.

오후에 있을 강좌 시간 전에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달팽이공방의 식구 모두 총출동하여 만두 만들기에 돌입했다. 모양도 둥글게 끝을 오므린 왕만두와 군만두에 어울리는 길쭉한 모양 두 가지. 그러나 최대 난점은 만두가 터지지 않도록 살살 만두피를 다루는 게 아니라 옆에서 온몸을 던지며 방해 공작을 벌이는 딸아이였다. 만두소와 만두피를 뺏고 뺏기는 2시간의 치열한 접전을 벌이면서도 150여개의 만두를 빚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과는 거둔 것 같다고 자축하며 맛을 보기위해 몇 개를 집어 찜통에 넣고 쪄보기로 했다.

일단 김치만두는 맵지도 짜지도 않게 간이 적당하게 맞았고 야채만두의 경우 마늘향이 좀 강하게 다가왔다. 돼지고기와 함께 들어가는 마늘을 별 생각 없이 넣었더니 결국 다른 야채들과의 조합에 실패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만둣국을 끓였는데 찐 만두와는 다르게 마늘내가 그리 심하지 않아 다행스럽기는 했지만 만두피와 만두속이 분리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만두 빚기를 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만두 빚기의 끝은 만둣국을 끓여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혹시 만둣국 끓일 때, 만두의 해체를 막는 비법을 아시는 분 계시면 달팽이 공방에 연락주세요. 만두의 온전한 형태가 남아있는 만둣국 끓이기에 도전해 보고 싶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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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달팽이들의 멋진 만두 빚기 솜씨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훼방꾼의 흔적을 보여주는 증거사진만 있네요.

글/ 졸린 달팽이 (달팽이 공방 카페 http://cafe.daum.net/snailworld)

응답 1개

  1. 상미말하길

    하하, 맛있게 보았어요. 비법은 아니지만 매사에, 특히 요리에 얼렁뚱땅인 제가 택한 방법은 속을 적당히 ‘적게’ 넣는 거랍니다. 만두피 맞붙일 때 물을 묻히는 걸로는 잘 안 되더라고요^^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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