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짜깁기 괴물, 화학적 거세법

- 박정수(수유너머R)

이번호 동시대반시대 주제는 화학적 거세입니다. 원래 명칭(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 치료에 관한 법률)을 두고도 다들 ‘화학적 거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세’라는 단어가 주는 복합적인 느낌 때문일 것입니다. 성폭력에 응당한 ‘성적 보복’이라는 느낌도 있고, 그런 정신이상자는 ‘씨를 말려야’ 한다는 인종개선의 느낌도 있고,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무리의 ‘기세를 꺾어놓겠다’는 위협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확실히 ‘거세’의 의미와 느낌은 콤플렉스를 이룹니다. 프로이트에게도 ‘거세’란 생식기의 절단, 충동의 억제, 권력에 반하는 기세의 제거, 잠재력의 둔화(im-potentia) 등 복합적인 의미를 띄고 있습니다. ‘거세’에 대한 반응도 복합적입니다. 거세(위협)는 공포와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예속에의 욕망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화학적 거세법에 대해서도 공포와 환영의 정서가 복합되어 있는 듯합니다. 전체주의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보복의 쾌감과 안전에 대한 열망도 가집니다.

‘컴플렉스’의 문제는 복합적인(심지어 양가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결정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중처벌인가 하면 치료라고 하고, 치료 효과가 의문스럽다 하면 공포의 필요를 얘기하고, 독재인가 하면 과학이라 하고, 의학의 자격 없는 권력행사를 탓하면 엄정한 법질서를 얘기합니다. 각자 보고 싶은 대로 보라는 만화경입니다. 소아성폭력에 흥분한 대중들은 신체형의 쾌감을 느끼고, 소심한 자유주의자는 의학치료의 합리성을 보고, 인종주의자는 인종개선의 효과를, 여성주의자는 남성성에 대한 각성효과를 기대하라는 식입니다. 논리적으로 일관되지도 않고 현실적 실효도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모두를 만족시켰다는 표정입니다. 그러니 어디에 초점을 맞춰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지 모호합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화학적 거세’를 조명해 보려 했습니다. 오랜 만에 수유너머 남산에 강의하러 오신 박노자 선생님께는 정신의학적 통제와 규율의 확산이라는 관점을 부탁드렸습니다. 거세법의 역사에서 덴마크와 같은 복지국가가 선두인 까닭을 물었더니 복지국가는 세금을 낼 정상인과 사회 안전에 위협이 되는 비정상인에 대한 철저한 구별과 인종주의적인 의료-규율 권력의 확산에 있어 나치즘 뺨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지 듣고 싶어 의사를 물색하던 끝에 시네꼼을 연재하는 분이 의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나서 잠시 자리를 옮겨 동시대반시대 원고를 부탁했습니다. 이런 경우 의사라고 ‘의학적 관점’을 요구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화학적 거세법의 어긋난 핀트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99명을 풀어주고 1명을 독박 쓰게 하고 성욕의 잘못된 사용법은 그냥 두고 성욕의 강도만 억제하겠다는 반-성폭력법안들은 교정-치료의 효과보다는 차라리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노린 것처럼 보입니다.

편집진에 있다가 잠깐 황진미 선생님의 자리로 옮겨간 서동욱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오렌지>(1971)를 통해 사드적 범죄자의 폭력과, 그의 신체와 무의식을 정신의학적으로 장악한 국가권력의 폭력 사이에서 은밀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음을 고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추장이 각종 성범죄 대책 속에서 생체권력이 확산되고 있음을 섬뜩하게 폭로했습니다. 푸코가 야유했던 것처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회에 대낮같이 밝을 것을 요구하는 권력, 모든 이들에게 잠재태 없는 현실태로만 존재하도록 명령하는 사회보다는 차라리 성폭력이 존재하는 사회가 낫다는 ‘위험한’ 주장을 감행했습니다.

커다란 투명 반구 안에 갇힌 듯한 습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루한 공안정국도 그렇고, 여러모로 답답한 계절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시원한 사유를 펼쳐 보여준 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소낙비처럼 시원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응답 2개

  1. 민지말하길

    고추장님의 글이 “모든 이들에게 잠재태 없는 현실태로만 존재하도록 명령하는 사회보다는 차라리 성폭력이 존재하는 사회가 낫다” 는 주장이었나요? 흠 다시 꼼꼼히 읽어봐야겠군요 -.-;;;

    • 정수말하길

      뒷부분은 제거 덧붙인 것입니다. 물론 성폭력, 아니, 모든 폭력은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폭력의 잠재성을 제거하고 생체권력의 통제 하의 현실태만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성폭력과의 진정한 싸움은 욕망의 재배치를 위한 대중 자신의 삶정치 속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그 싸움은 지금은 잠재적으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화학적 거세법은 그 잠재적인 대중의 삶정치마저 억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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