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화학적 거세, 과학인가 응보인가?

- 황진미

최근 아동성폭행 문제로 온 사회가 들썩 거린다. 비분강개 속에는 애들에게 성폭행을 하다니, 어쩌다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냐고 개탄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아동성폭행이 최근에 생겨난 일이거나 갑자기 늘어난 현상은 결코 아니다. 80년대 중반에 가톨릭계 여고에 다녔던 나는 30살 정도의 수녀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한다. 수녀님은 요즘 여학생들이 성에 대해 일찍 눈을 뜨고, 음란한 말들을 입에 담는다고 개탄하면서 “세상에 국민학생 여자아이가, 공원에서 오빠들이 빤스를 벗기고 음부를 만졌다”는 ‘말을 하더라’며 “우리 학생들 중에는 그런 (발랑 까진)아이들이 없기 바란다”는 당부를 했다. 지금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 초등학생은 10대 청소년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이고, 피해를 진술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말은 ‘음란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자, 발랑 까진 아이가 내뱉는 충격적이고도 이해할 수 없는 언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1. 그동안 ‘개념이 없었던’ 아동성폭력

오랫동안 성-폭행은 ‘폭행’보다 ‘성’에 방점이 찍혀 이해되었고, 순결이데올로기 하에서 성폭행 피해자는 ‘더럽혀진 몸’이거나 ‘음란한 여자’로 낙인찍혀 피해사실을 적극 구명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강도신고를 입막음하기 위해 성폭행을 저지르기도 할 정도로 성폭행은 신고 되지 않는(신고할 수 없는) 범죄였다. 야한 옷차림으로 밤길을 다니는 등 유혹적인 여자에 의해 성욕이 자극된 남자가 다소 강압적인 방식으로 성욕을 해소했다는 식의 강간통념이 여러 버전으로 변주되었다. 이러한 강간통념 하에서 아동성폭행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는 요부, 음란, 유혹 등과 연결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아동을 성폭행 한다는 것은 ‘아주 미친 욕망’이 되어야 하며,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1991년 9세 때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21년 후 살해하며, “나는 짐승을 죽였다”는 말을 남긴 ‘김부남 사건’으로 아동성폭력문제가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괴담수준의 특별한 사건이었을 뿐 사회적 이슈가 되진 못했다.

그러나 성폭력이 ‘유혹하는 여자와 성욕을 참을 수 없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약한 상대를 힘으로 무력화시키고 상대로부터 성을 착취하는 행위’라는 것이 인지되면서, 차츰 성희롱을 포함하는 성폭행의 여러 문제와 아동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비로소 가시적인 인식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최근 아동성폭행 사건에 대한 뉴스가 줄을 잇는 것은, 없던 범죄의 행태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아동성폭력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피해의 심각성이 알려졌으며, 피해자와 부모에 대한 잘못된 비난이 잠식됨으로 인해 아동성폭력의 신고율이나 기소율이 차츰 높아지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한편에서는 아동성폭력에 대한 공분으로 지나치게 국가형벌권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번호, 박노자 선생님 인터뷰) 산재나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 등 수많은 죽음이 있는데, 왜 아동성폭력 살해사건만이 유독 강조되느냐는 질문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수많은 성폭행 피해 여성과 아동의 고통과 죽음이 비가시적인 영역에서 침묵 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다행이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관심의 방향이다.

2. 사회보호법의 악몽 혹은 생 정치의 도래?

아동성폭행은 뉴스에 나오는 강력사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08년 1,958건의 아동성폭력 사건이 신고 되었으며, 10%미만의 낮은 신고율을 감안하였을 때 한해 약 2만 명(하루 평균 55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 사건에 대한 냉정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강력사건에 의해 촉발된 공분은 엄벌주의로 치닫는다. 2008년 전자발찌와 치료감호제의 도입에 이어 2010년 4월 15일자 개정 법률로 신상공개가 강화(이름, 사진, 세부주소, 직업을 인터넷에 최장 20년 동안 공개하고, 이웃에게 우편으로 알려줌)되었으며, 전자발찌를 30년까지 연장착용하게 하였다. 여기에 2010년 6월 29일 통과된 법률에 따라 2011년 7월부터 16세 미만의 사람에게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성도착환자로 재범의 위험이 인정되는 만 19세 이상의 사람에게 ‘초범자라 할지라도 당사자 동의 없이’ 징역형 후에 별도로 최장 15년 간 법원의 선고에 의해 성충동 억제약물을 주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한국은 전자발찌, 치료감호,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등 ‘아동성범죄예방 4종 세트’를 구비하게 되었다. 이들 ‘4종 세트’ 중 각 항목은 외국에서도 실시되지만, 오랜 논의를 거쳐 징역형을 피하기 위한 조치나 재범방지를 위한 교정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나라마다 한두 가지씩 적용되었지, 우리나라처럼 ‘풀 4종 세트’ 가 ‘징역형+알파’의 방식으로 적용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플로리다 주 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아동성폭력에 대한 공분을 지렛대로 국가형벌권이 강화되는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새어나온다. 전자발찌 부착대상에 살인죄를 추가한 것이나, 신상공개의 대상에 성인대상 성범죄도 포함시킨 것 등이 그 우려를 가중시킨다. 이러한 우려는 과거 비슷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1980년부터 2005년까지 존속되었던 사회보호법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 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별도의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사회복귀를 촉진하고 사회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라는 취지와는 달리, 시국사범을 탄압하고, 과도한 처벌을 합리화하며, ‘치료’의 의미는 사라지고 ‘격리’만이 강화되었던 경험이 떠오르는 것이다. 특히 지난 정권까지는 국가사법권의 강화가 시민사회를 압박하는 형태로 작용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지 않았지만, 최근 민간인 사찰 등을 비롯하여 국가권력의 오남용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은 설득력을 지닌다. 이에 덧붙여 사법권이라는 거시적 권력의 강화보다 정신의학이 사법의 문제를 대체하는 미시권력의 강화를 우려하는 예민한 목소리도 있다. 화학적 거세가 과학의 이름으로 담론을 장악하고, 가치판단의 문제가 통치과학의 문제로 치환되는 ‘생 정치(bio-politics)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히는 불길한 전조라고 파악하는 시선이 그것이다.

3. 99명을 풀어주고 1명에게 ‘독박’을 쓰게 하면?

엄벌주의의 논의에서 간과되는 문제가 있다. 처벌의 강도보다 확실성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아동 성범죄의 신고율은 10% 미만이며, 신고된 범죄 중 기소율은 40%이고1, 기소된 사건 중에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는 것은 다시 절반이하이고, 유죄선고를 받더라도 80%가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풀려나고 있다2. 이렇게 신고율이 낮은 이유는 아동이 보호자에게 피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거나, 부모가 인지했어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포함한 2차, 3차 피해자가 될 것을 우려하여 덮어두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아동성범죄의 70%는 ‘아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 가족이나 친인척, 이웃, 교사, 목사, 선배나 또래 아이들 등이 가해자일 경우 대부분 신고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겨우 신고가 이루어져 경찰조사가 진행되더라도 진술능력이 떨어지는 아동의 진술 외에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확보가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기소되거나 유죄를 입증받기 어렵다. 또 아동성폭행의 경우 신체적인 특성상 강간보다는 강제추행이 주로 이루어지는데(78%), 강제추행에 대해서는 법정형량도 낮은데다 정상참작3 등에 의해 집행유예나 단기형량이 내려지기 일쑤이다. 이는 아동성추행이 피해자에게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이 종합적으로 사정되지 못한 결과이다.

결국 지금 이대로라면 100명의 아동성범죄자가 있다면 강화된 형량과 여러 가지 후속조치의 적용을 받을 사람은 1명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99명을 사회에 풀어놓고, ‘재수 없이 걸린’ 1명에게 신상공개와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를 모두 적용한다고 해서 범죄가 얼마나 예방될지 기대하기 어렵다. 엄벌주의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조치들이 아동성범죄가 다른 어떤 범죄보다 처벌이 무거운 ‘반사회적인 범죄’라는 경각심을 높이고, (잠재적인) 범죄자들에게 공포심을 주어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강한처벌이 곧바로 범죄감소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강력범죄율이 낮지도 않으며, 성범죄자 1,400명을 추적한 캐나다 연구에 의하면 전자발찌를 착용한 군의 재범률이 채우지 않은 군의 재범률보다 높다는 통계도 있다. 고대 어느 나라에서는 강간이 많아지자 강간범은 무조건 사형이라고 형량을 높였더니, 강간을 한 다음에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피해자를 반드시 죽이고 사체를 암매장하여 결과적으로 강간은 줄고 실종이 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100명 중 99명을 놓치고 1명에게 ‘사회로부터 영원히 추방’하는 갖가지 처벌이 마련되어 있는 근 미래 한국 상황에서 이 전설이 현실화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4. 화학적 거세가 아동성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화학적 거세를 통하여 성욕을 억제하는 것이 과연 아동성폭력 문제에 적절한 해법일 수 있을까? 아동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실시겠다는 것은 두 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첫째, 아동성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은 ‘주체할 수 없이 강한 성욕’ 때문이라는 것, 둘째, 호르몬치료에 의해 성욕이 약화되면 성범죄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첫째 아동성폭력은 물론이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까지도 ‘성욕의 강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욕의 잘못된 사용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노출증, 관음증, 가학 피학증 등의 소위 ‘변태’나 심지어 동성애까지도 과도한 성욕의 결과라는 오해가 존재한다. 이러한 오해의 바탕에는 성욕은 단일하고 무차별적인 욕구로 ‘정상인’들은 그것을 억압하며 살지만, 억압하지 못할 정도로 강도가 세거나 억압하는 능력이 모자라면 온갖 ‘변태’나 성폭행 등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단순도식이 깔려있다. 그러나 성폭행은 역사․문화적 성 관념(남성 우월적이고 도구적인 성 인식, 강간통념, 폭력에 대한 둔감,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등)의 산물이며, 각종 ‘변태’ 역시 성욕의 강도가 아니라 방향이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성범죄자들은 성욕이 특별히 높은 자들이 아니라, 성욕을 어떠한 방식으로 행사해야 하는지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로,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성폭행인지를 모르는 성인지 왜곡과 자기 합리화 등이 발견된다. 아동성폭행범의 경우는 더 심하다. 이들은 성적 자부심이 낮고, 성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성년자이거나 고령이며, 성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성인과의 관계 맺기에 실패하여 다루기 쉽고 자신의 열등감을 만회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폭력적으로 성욕을 해소하고자 한다. 성인대상 성범죄자로 복역 후 여전히 교정되지 못한 성인지 왜곡을 지닌 채 사회에 복귀하여, 검거되지 않을 대상과 방법을 찾느라 범행이 쉽고 저항이나 신고를 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둘째, 호르몬 치료로 성충동이 약화되더라도 얼마든지 성폭행을 저지를 수 있다. 성폭행은 성기삽입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호르몬에 의해 발기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성적 판타지가 일어나는 것을 봉쇄할 수는 없다. 발기를 일으키는 성기의 신경과 혈관, 남성 호르몬의 농도가 모두 정상이라도 발기가 일어나지 않는 ‘심인성 발기부전’의 예에서 보듯이, 인간의 성욕은 기계적인 욕구가 아니라, 정신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다면적인 욕망이다. 노름장이의 손가락을 자르면 발가락으로 화투를 친다는 말이 있다. 도박중독은 손가락의 중독이 아니라 뇌의 중독이며, 성 범죄자에게 주입되어야 하는 것은 발기를 억제하고 여성처럼 가슴이 부풀게 하는 성호르몬제가 아니라 왜곡된 성인지를 교정하고, 적합한 대상과 적합한 방법으로 성행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인지치료이다. 물론 화학적 거세를 찬성하는 전문가들조차 화학적 거세가 해법이라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가해자의 성욕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들이 성욕을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성욕을 빼앗는 것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항변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항변 뒤에 이들이 성욕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조치들이 함께 구상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화학적 거세는 범죄예방의 기대효과는 불명확한 반면, 경제적 비용4이나 의학적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진정으로 범죄예방이 목적이라면 신고율과 기소율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과 성인지 왜곡을 교정하는 지속적인 치료가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대중적 공분에 편승하여 급조된 화학적 거세법안은 ‘과학적 예방’ 의 탈을 쓰고 있지만, 기실 ‘감정적 응보’를 반영하고 있다. “아동성폭행범들? 짤라 버려!”라 부르짖고 싶은 것이 진정한 속내라면 차라리 ‘물리적 거세’를 말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텍사스 주 등 그 좋아하는 ‘선진국’의 예도 있거니와, 우리는 지금 대의나 명분 따위는 실용의 가치에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인 ‘레알’ 신자유주의, 이명박 ‘실용정부’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황진미 (영화평론가)
  1. 표창원. ‘아동성폭력 재범방지정책들에 대한 검토’ <아동성폭력 재범방지정책과 인권> (2010년 7월 15일 국가인권위원회 토론회 자료집) []
  2. 2006년 아동성폭력범의 징역형은 18.9%에 불과했으며, 벌금형이 35.4%, 집행유예가 45.6%였다. (김은주. 「소아기호성 성범죄자의 특성 및 관리에 관한 연구」 2007). []
  3. 가해자가 어리거나 고령이어서, 초범이거나 반성하기 때문에, 피해자와 합의했기 때문에, 혹은 술이나 약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등의 사유이다. 2010년 4월 15일 개정 법률에 의해 음주나 약물에 의한 감경은 없도록 조치되었다. []
  4. 주사제 약값만 1인당 연간 3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것으로 예상되며, 매월 병원을 방문하게 하는 관리비용도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첫해에 약 100명으로 시작하더라도 신규대상자는 매년 늘어날 전망이며, 최장 15년간을 정하는 법률에 따라 누적인원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현재 증권가에서는 이들 약물을 생산하는 제약회사의 주식을 유망주로 추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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