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밥상에서 차별하지 마

- 매이아빠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매이가 처음으로 차별을 경험했다. 매이를 아주 예뻐하는 매이의 사촌언니 생일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거기서 준 할인권을 이용하러 근처 커피숍에 갔다. 테이블 별로 할인혜택을 받으려고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아 주문도 따로 했다. 우리 식구는 커피와 주스를 시켰고 옆 테이블의 언니네 식구는 음료수와 함께 커피 전문점에서 따로 구워 파는 빵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옆 테이블에 빵을 주고 돌아가자 매이가 왜 우리 테이블에는 빵을 안 주냐며 깜짝 놀라 소리치는 것이다. 저건 주문한 사람만 주는 거고 우리는 안 시켰다고 얘기했지만, 주문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자본주의적 생리를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매이는 계속 캐물었다. 우리도 똑같이 앉아있는데 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냐고 계속 따지는 것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언니네 빵을 좀 나눠 주면서, 맛있으면 우리도 시키자고 달랬지만 매이의 얼굴은 차별을 받았다는 불쾌한 기억이 가시지 않는지 분한 표정으로 발그레 상기되어있었다. (결국 똑같은 빵을 두개나 사서 나왔다.)

매이가 정색을 하며 따지는 것이 여간 잠망스러운게 아니어서 어른들끼리 히죽대다 생각해보니, 매이에겐 먹는 거 가지고 차별받는 경험이 처음이었던 모양이다. 아직 이유식을 할 때였던 10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닌 매이에게 식사는 언제나 공동식사였다.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까지 같은 밥과 반찬을 상 옆에 두고 식판에 떠놓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율동까지 섞어가며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아멘~선/생/님/ 먼저 드세요~친/구/들/ 맛있게 먹자, 잘 먹겠습니다~” 꾸뻑하며 밥먹는 것에 익숙해진 매이로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커피숍도 으레 배급제이려니 생각했던 모양이다. 매이에겐 가족 식사의 개념도 거의 없다. 엄마 아빠의 게으름 탓으로 아침은 안 먹고 어린이집에 가 오전간식으로 첫 식사를 하고, 점심과 오후간식을 먹고 집에 데려온다. 평일에 교대로 엄마 아빠 중 한명은 10시 넘어서 들어오고, 한명이 매이와 저녁을 먹어야 하지만, 번거로운 마음에 매이를 데려오기 전에 혼자 연구실, 도서관, 식당 등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매이에겐 생선 한토막을 발라 밥 숟가락에 얹어주거나 김에 싸서 몇 숟갈 먹이는 게 고작이고, 그나마도 귀찮으면 그냥 쇠고기를 볶아주거나 치킨, 달걀, 떡볶이 떡, 옥수수, 과일 등등으로 때우는 게 다반사다.

그런 까닭에 어린이집 선생님은 매이가 편식도 안 하고 골고루 잘 먹는다고 칭찬하시지만, 정작 나는 매이가 반찬을 골고루 먹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아내는 그런 모습을 일요일마다 본다고 한다. 어린이집의 운영주체인 영주교회가 일요일이면 어린이집의 윗층 강당에서 유아부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 후 상을 펴고 간단한 공과공부(거의 공작시간?)를 하고, 곧이어 그 상위로 밥있는 식사가 공수된다고 한다. 한국 기독교에 비판적인 아내가 매이를 데리고 매주 교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순전히 밥 때문이다. 교회 부녀회 소속 봉사자들이 솜씨를 발휘한 따끈한 밥이랑 된장국, 김치, 나물무침 등 소박한 반찬과 과일 몇 점이 상에 오르고, 예배에 참석했던 아이들과 부모들이 다 함께 아무 차별 없이 먹는다고 한다. 그때도 매이는 누구보다 맛나게 먹어서 ‘타의 모범’이 된다며 아내는 흐뭇해한다. (아내는 공짜 밥을 먹은 것도 모자라, 남은 반찬들을 깨끗이 수거해 모은 비닐봉지를 집에 가져와서, 일요일 저녁마다 내가 먹는다. 과연 재료는 소박하지만 깔끔한 솜씨가 돋보이는 맛이다.)

매이에게 자고로 밥이란 혼자 먹거나 가족끼리 먹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공동으로 마련된 밥상에서 먹는 것이다. 매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학교급식이 매이의 주 식단이 될 것이다. 어린이집과 교회의 급식에 익숙해진 매이는 아마 학교급식도 잘 먹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급식은 어린이집이나 교회의 급식과는 다를 것이다. 업체를 통해 운영되는 학교급식은 어린이집처럼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을 터이고, 교회처럼 공동체를 위한 봉사심을 담아 밥상을 차리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의 쟁점이었던 친환경무상급식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까지는 영리업체의 논리에 따라 비용이 절감된 위험한 밥상이 차려지고 급식비를 낸 소비자와 무상으로 얻어먹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존재할 것이다. 그때도 매이는 지난번 커피숍에서처럼 시장의 논리로 밥상의 식구를 차별하는 학교에 항의할까?

애나 어른이나 먹는 것 가지고 차별받는 것이 제일 서럽다. 학교 다닐 때 옆에 앉은 친구의 ‘고귀한’ 소시지 반찬과 내 도시락의 ‘천한’ 오뎅 반찬을 비교하며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하물며 가난해서 얻어먹는다는 지적질을 당한 아이의 심정은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프다. 또 무료급식자라고 왕따 당한 아이의 부모 심정은 어떨까? 어렸을 적에 100원만 달라고 하루 종일 엄마의 몽둥이 사정권 언저리를 맴돌며 조르던 기억이 난다. 해도 해도 안 되면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네거티브 공격법을 사용하곤 했다. 바로 나의 상처로 엄마의 상처를 후벼 파기. “우리 집은 가난해서 먹고 싶은 것도 못 사주지?” 부모는 가난 때문에 자식이 받는 상처에 가장 아파한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터득한 것이다.

지난 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개진되었다. 처음 무상급식 주장을 들었을 때 70년대의 기억이 있는 나는 언뜻 ‘밥공장’이 떠올랐다. 그때 도덕시간에 북한은 동네나 직장마다 밥공장이 있어서 개인의 취향이나 가족애는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밥을 지어 배급하는 끔찍한 사회라고 배웠다. 그때 식으로 말하자면, 매이는 돌도 지나지 않아 부모의 품에서 떼어져 ‘탁아소’에 맡겨진 채 엄마가 지어주는 밥 대신 ‘밥공장’에서 ‘배급’해주는 밥을 먹어 왔던 것이다. 그 때의 도덕 선생님이 불쑥 나와 “무상급식은 북한의 밥공장과 같다. 빨갱이 짓이다”고 말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기다려지기도 하고. 그럼 난 이렇게 말해줘야지. (<개콘>의 변기수 톤으로) “괜찮다~”

또 386세대의 끄트머리로 대학에 입학하여 ‘평등한 분배’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학습 받았던 나는 무상급식 얘기를 들으면서 계급을 무시한 정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가난한 계층과 부자 계층을 똑같이 대하는 건 결국 부자 계층을 이롭게 하는 형식적 평등에 지나지 않기에 실질적 평등을 위해서는 가난한 계층에게 선별적인 혜택을 주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난한 집 아이만 공짜로 먹는 것이 친구들 사이에 차별의식과 모멸감을 일으킨다는 심리적인 설명도 경제적인 복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적 당위를 뒤집기엔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 지난 선거에서 이 논리는 한나라당에 의해서 내세워졌다. 아이러니 하게도 80년대 운동권 논리와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그들이 ‘부자급식’ ‘포퓰리즘’ 운운하며 무상급식에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무상급식이 평등 분배에 어긋나는 것인지 잠시 헛갈려했던 나도 매이에게 어린이집과 교회 밥을 먹여보니 알겠다. 무상급식은 몫의 평등이 아니라 감각의 평등을 위해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무상급식은 단지 가난한 자의 몫을 키우는 게 아니라 밥상 공동체의 감각을 키우는 것임을. 어떻게 하면 빵을 똑같이 나눠 가지고 가서 각자 먹게 할까를 궁리하는 정책이 아니라, 각자 가진 빵을 들고 와서 하나의 밥상을 이뤄 다 같이 먹는 정책임을. 단지 가난한 집 아이의 차별 ‘의식’을 없애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학교에 같이 밥 먹을 때만이라도 부자와 빈자의 ‘차별’을 실제로 없애기 위해서 무상급식이 꼭 시행되어야 한다는 ‘반상의 도리(?)’를 깨달은 것이다.

한나라당이 그토록 무상급식을 반대했던 진짜 이유는 뭘까? 설마하니 진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늘리기 위해서일 리는 없을 테고, 혹시 학교급식 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시장의 논리와 계층적 차별의 논리를 망각할까봐 걱정돼서였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무상급식은 ‘레알’ 해볼 만한 것이다. 이 살벌한 자본주의 하에서도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앵무새 몸으로 울게’, 아니 알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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