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아 그리워 전전반측하노라

- 정경미

‘전전반측輾轉反側’이라는 말이 시경 「관저關雎」에서 나왔다. 아니 도대체 왜! 밤에 잠이 안 온다는 것일까. 하루종일 고달프게 일한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낮에 빈둥거리고 놀기만 하니 밤에 잠이 안 오는 거 아냐? 아니면, 요즘처럼 날씨가 무더워서? 하지만 이 시에서 전전반측하는 건 백수의 직업병도 아니고 열대야 때문도 아니다. 그리움 때문이다. 어디에 있을까 나의 반쪽은? 군자는 요조숙녀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짝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니 밤새 잠 못 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이 시에서 전전반측은 이렇게 짝을 만나지 못한 싱글의 고독한 몸부림이다.

시경 주남周南 편에 나오는 첫 번째 시, 시경의 첫 시는 「관저關雎」이다. 주남은 주周나라 남쪽, 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지역을 말한다. 시경의 열다섯 국풍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편이다. 소공召公이 다스리던 지역은 소남召南이라고 한다. “문왕의 교화를 입어 덕을 이루어서 사람들이 모두 그 성정의 올바름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 말에 나타난 것이 즐겁되 너무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상함에 미치지 않는 것이다.”(『시경집전』) 주희朱熹는 시경을 해설하면서 주남, 소남을 정풍正風이라 하고, 나머지 열국의 시는 변풍變風이라 하였다. 주남 소남의 시는 감정을 진솔하게 노래하되 감상으로 흐르지 않는데, 나머지 국풍의 시들은 치우치거나 과장된 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경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주남, 주남 편에서도 첫 번째 시라는 것만으로도 「관저關雎」는 시경의 ‘대표 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關關雎鳩 在河之洲 광광 우는 저구새 강가의 모래섬에 있도다
관관저구 재하지주
窈窕淑女 君子好逑 아름다운 숙녀여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요조숙녀 군자호구

「관저關雎」는 쉽게 말해서, 어디에 있을까 나의 반쪽은? 하면서 짝을 찾는 노래이다. 강가의 저구새가 짝을 찾아 광광 우는 것을 보고 내 짝은 어디에 있는가 군자에게 어울릴 요조숙녀를 찾는 노래이다. 뭐야, 결국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노래 아닌가. 그게 뭐 대단하다고 공자님께서는 시경의 첫 머리에 이 시를 두신 거지? 이렇게 묻는 이를 위해 한漢나라 때 광형匡衡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배필의 즈음은 생민의 시초요, 만복의 근원이니, 혼인의 예가 바루어진 뒤에야 품물이 이루어져 천명이 온전해진다.”[配匹之際 生民之始 萬福之原 婚姻之禮正然後 品物遂而天命全](『시경집전』) 즉,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일은 저속하고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이다!

그렇다! 짝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부부夫婦 · 군신君臣 · 부자夫子 · 형제兄弟 · 붕우朋友 등의 다양한 관계 중에서 부부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남녀의 결합은 모든 관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남녀가 만나야 자식을 낳고, 이 자식들이 어울려 형제가 되고 친구도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결혼 적령기가 되었는데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우환이었다. 집안의 걱정거리일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근심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자는 서른 살, 여자는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 허락 안 받고도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지방 군수가 부임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노총각 노처녀 결혼 시키는 일이다. 가난한 노총각 노처녀를 위해 저금리로 결혼 자금을 대출해 주기도 했다. 결혼 안 한 노총각 · 노처녀가 많으면 그 지방 군수는 벌점을 받았다. 음양의 조화가 만물의 시초인데 그 이치가 어그러지면 천지만물의 순환이 조화롭지 못하고, 그러면 나라도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 흠··· 이쯤 되면··· 어디에 있을까 나의 반쪽은? 이렇게 자신의 반쪽을 찾는 구애가求愛歌가 점잖으신 공자님께도 왜 그다지 중요했는지 수긍이 좀 가시는지.

參差荇菜 左右流之 들쭉날쭉 마름풀을 이리저리 물길 따라 따노라
참치행채 좌우유지
窈窕淑女 寤寐求之 아름다운 숙녀를 자나 깨나 구하도다
요조숙녀 오매구지
求之不得 寤寐思服 구하여도 얻지 못하니 자나 깨나 생각하네
구지부득 오매사복
悠哉悠哉 輾轉反側 아 그리워라 잠 못 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유재유재 전전반측

‘전전반측輾轉反側’이라는 말이 이 시에서 나왔다. ‘전輾’은 반 바퀴 구르는 것이고 ‘전轉’은 한 바퀴 완전히 뒹구는 것이다. 즉, ‘전輾’은 왼편으로 누웠다가 오른편으로 누웠다가 하는 것처럼 돌아눕는 것이고, ‘전轉’은 천장을 보고 누웠다가 바닥에 엎드려 누웠다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전반측’은 좌우로 돌아누웠다 앞뒤로 엎뒤락뒤치락 한다는 뜻이다.

아니 도대체 왜! 밤에 잠이 안 온다는 것일까. 하루종일 고달프게 일한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잠 잘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지 잠이 왜 안 와? 게을러서 그런 게지.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낮에 빈둥거리니까 밤에 잠이 안 오는 게야. 아니면,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날 열대야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건가? 그건 좀 이해가 된다. 낮 동안 달구어진 건물에서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힐 땐, 게다가 모기까지 극성으로 덤빌 때는 아무리 피곤해도 잠 못 자고 뒤척이는 거 맞다.

하지만 이 시에서 전전반측하는 건 백수의 직업병도 아니고 열대야 때문도 아니다. 그리움 때문이다. 어디에 있을까 나의 반쪽은? 군자는 요조숙녀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짝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니 밤새 잠 못 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이 시에서 전전반측은 이렇게 짝을 만나지 못한 싱글의 고독한 몸부림이다. 흠···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영화의 제목을 빌리자면 ‘주남의 잠 못 드는 밤’ 이렇게 이 시의 제목을 지을 수도 있겠다. 주연은 탐 행크스 대신 군자, 맥 라이언 대신 요조숙녀. ^^

군자에게 어울릴 요조숙녀를 찾는다고 했는데. 군자君子는 어떤 사람인가? 또, 요조숙녀窈窕淑女는 어떤 여자를 가리키는가? 군자는 유가儒家의 이상적인 남성상이다. 군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은 시경 위풍의「기욱淇奧」이라는 시에 잘 나온다. 이 시에 따르면, 군자는 인물이 훤하고[赫], 태도가 의젓하고[咺], 진중하고[瑟], 위엄 있고[僩], 관대하고[寬], 너그러우며[綽], 외모도 멋지게 꾸밀 줄 알며[充耳琇瑩 會弁如星], 유머가 있으나 지나치지 않으며[善戱謔兮 不爲虐兮], 무엇보다 학문과 인격을 끊임없이 도야하는, 즉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존재이다. 헐! 군자 되기 어렵구만. 요즘으로 치자면 ‘얼짱’ ‘몸짱’은 기본이고 인품과 덕성까지 갖추어야 하니 말이다. 이런 군자에게 어울릴 요조숙녀라면 당연히 얼굴만 예쁜 여자는 아닐 것이다. 그윽할 요窈. 정숙할 조窕. 맑을 숙淑. 요조숙녀. 그윽하고 맑고 정숙한 여자. 군자에게 어울릴 요조숙녀는 내면의 덕에서 우러난 향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여자 만나기 어디 쉬운가. ‘자나깨나’ 구하지만[寤寐求之] 만나지 못한다. 찾는 이를 만나지 못하니 ‘자나깨나’ 그리워한다[寤寐思服]. 이 그리움은 끝이 없어 밤새 잠 못 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전전반측한다.

參差荇菜 左右采之 들쭉날쭉 마름풀을 이리저리 따노라
참치행채 좌우채지
窈窕淑女 琴瑟友之 아름다운 숙녀와 거문고 비파 타고 놀았으면
요조숙녀 금슬우지
參差荇菜 左右芼之 들쭉날쭉 마름풀을 이리저리 다듬노라
참치행채 좌우모지
窈窕淑女 鐘鼓樂之 아름다운 숙녀와 종과 북 치며 놀았으면
요조숙녀 종고락지

‘들쭉날쭉 마름풀을 이리저리 물길 따라 따노라[參差荇菜 左右流之]’ ‘들쭉날쭉 마름풀을 이리저리 따노라[參差荇菜 左右采之]’ ‘들쭉날쭉 마름풀을 이리저리 다듬노라[參差荇采 左右芼之]’ 이 시에서 반복 변주되는 이 구절을 볼 때, 이 시는 마름풀을 뜯으며 불렀던 노래인 것 같다. ‘행채荇菜’는 ‘노랑어리연꽃’(조름나물과의 다년생 수초)이라 부르는 물풀이다. 주희의 해설에 따르면, 뿌리는 물 밑에서 자라고, 줄기는 비녀의 두 갈래 가지와 같으며, 위는 푸르고 아래는 희다. 잎은 자주색이고, 둘레는 지름이 한 치 남짓이며, 수면에 떠 있다. 옛날에는 이 물풀을 뜯어서 나물을 해 먹었던 모양이다. 그 흰 줄기를 삶아서 식초에 담그면 안주로도 맛이 좋다고 한다. 시의 전개에 따라 이 마름풀을 뜯는 과정이 달라진다. 이리저리 물길을 헤쳐가서[流] 물풀을 뜯는다[采].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뜯은 물풀을 다듬는다[芼]. 물풀을 뜯는다든지, 쑥이나 칡을 캔다든지 시경에는 일하면서 노래 불렀던 흔적이 들어 있다.

앞에서, 어디에 있을까 나의 반쪽은? 하면서 짝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해 전전반측하다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와서는 마침내 그리워하던 짝을 만난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라기보다 희망사항이다. 그래서 이 시는 요조숙녀 만나서 거문고 비파 타고 놀았으면, 종과 북 치며 놀았으면, 하고 원망형으로 끝난다.

「관저關雎」를 두고 공자는 “즐겁되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傷]”(『논어論語』, 「팔일八佾」)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나의 반쪽을 구하는 노래. 이것은 자칫 감상에 흐르거나 감정을 과장할 우려가 있지만 이 시는 그렇지가 않고 성정을 조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즐겁되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 시경 주남의 시 「관저關雎」를 두고 했던 공자의 이 말은 이후 동양 예술론의 한 전통이 된다. 자나깨나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밤새 전전반측하는 사람의 외로움은 얼마나 처절한 것인가. 이 시는 진솔한 감정을 적절한 비유와 절제된 리듬을 통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강가의 물새가 짝을 찾아 광광 우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거 참 음란하구나’ 하면서 불쾌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 그리운 나의 반쪽은 어디 있을까’ 하면서 이 시에 공명하게 되는 것이다.

응답 1개

  1. 20세기소녀말하길

    그윽하고 맑고 정숙한 여자라…. 얼짱 몸짱인 군자 만나기는 틀렸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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