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 BLUSE)

- 홍진

공연 첫날은 마을 주민들에게 개방한 무료입장. 시끌벅적한 통화와 난무하는 담배연기 사이에서 장년의 오빠가 눈을 반짝이며 공연을 보고 있다. 옆에서 애를 안은 언니가 자꾸 가자고 칭얼댄다. 아쉬운 듯 몇 번을 돌아보며 결국 부인과 함께 터덜터덜 돌아가는 아저씨. 공연장 한쪽에서는 학급 반장 같은 언니가 일어나 떠드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적한다. “너! 너! 조용히 해!” 서슬 퍼런 호통에 객석 한쪽이 좀 조용해진다. 근데 공연 중에 이래도 되는 거 맞나? 잠시 후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누군가는 바로 아까 그 아저씨, 식구들을 데려다주고 홀로 돌아왔다.

3년 전 가난한 이주노동자(농민공)들의 마을인 북경 피촌皮村 에서의 천막연극 후 공연장은 헐리지 않고 마을 주민들의 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당시의 연극은 북경의 장펑(천막) 연극 집단인 린临에 힘을 실었다. 대만의 창작집단인 하이비즈海笔子 역시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장펑이 움직이며 사람들을 모으고 바꾼다. 그 사람들이 북경의 장펑에서 다시 모였다. 장펑의 틀 안에서 북경만의 새로운 공연이 탄생한다. 텐트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텐트가 이미 중국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 《우야방핑방乌鸦邦平方》은 북경 인민대 순바이孙柏 교수의 대본이다. 비전문배우들의 반 박자 서툰 연기를 보며 장펑의 자유를 즐긴다. 그 부족한 공간이 참여를 이끈다. 노련하진 않지만 힘이 있다. 굳이 정의하자면 이런 날것이 예술에 더 가까울 테다. 정치 활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중국의 현실에서 예술을 접점으로 한 중국의 지식인들과 국제적인 예술 활동가들의 만남은 특별한 에너지를 갖는다.

둘째 날 아침, 바람이 심하게 불어 지붕이 위태롭다. 급하게 보수작업을 하던 중, “쿵”하는 아찔한 소리가 났다. 천막 옆 낡은 화장실 지붕이 무너지며 전문통역을 맡고 있는 한빙 언니가 추락했다. 통역사가 저긴 왜 올라갔나 싶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모든 사람들이 공구를 손에 들고 일을 하고 있다. 대만과 홍콩에서 온 촬영팀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유럽의 환경캠프인 에코토피아에서도 자유롭고 느긋한 개인들이 모여 독특한 캠프를 구성한다. 하지만 온 힘을 합쳐 한 방향의 짧은 공연을, 축제를 함께 완성한다는 점에 있어서 장펑에서의 시간은 농도가 짙다. 내손에도 어느새 공구가 들려 있다. 아무도 조직하지 않는다. 하나의 약속만 있을 뿐이다. 내일은 몇 시에 모이자.

본격적인 삼일간의 공연이 시작되자 북경의 지식인들이 줄줄이 피촌을 찾는다. 앞에 앉은 언니의 이마에는 매직펜으로 유한계급이라고 씌여 있다. 극중 일본어 대사를 자상하게 옆에 앉은 2:8 가르마의 아이에게 속삭이며 통역해 준다. 아이가 모기에 물릴 때마다 핸드백에서 모기 패치를 꺼내 자국에 붙여준다. 극중 재미있는 풍자가 나오면 우아하게 웃는다. 전날 밤의 시끌벅적한 마을 주민들이 머릿속을 교차하여 지나간다. 모든 관객이 나름의 재미와 감동을 얻을 것이다. 힘든 조건에서 북경을 찾은 중국 각지의 스텝들을 생각해보면 참 드라마틱하다. 중국은 흥미로운 땅이다.

극이 끝날 때 즈음 까마귀들은 사라지고 합창과 함께 천막의 검은 지붕이 날개를 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그 상상력에 환호한다. 열심히 줄을 당겨 날개를 움직이는 것은 천막 뒤쪽의 스텝이지만 장펑이 대단원의 막을 연기한다. 장펑 장펑. 이친구 이거 나랑 같이 손잡고 한국의 철거 건물인 두리반에 가야겠는데. 거기 들렸다가 다시 4대강 삽질하고 있는 팔당에 가야겠는데. 당신의 자유로움으로 다시 사람들을 불러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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