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바쁜 현대인들

- 김융희

일상생활에서 “바쁘다”는 단어는 가장 자주 사용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대인들 참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일이 있어 바쁜건지, 마음이 바쁜건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주위의 모두들, 바빠 죽을 지경이라며 아우성이요 성화이다.
별 볼 일이 없을 듯 싶은 사람들도 바쁜 일상엔 거의 예외가 없는가 싶다.

바쁜 일상사는 나를 두고 봐도 수긍은 간다.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닌
것들로, 내가 지금 바쁘다는 꼭 집힌 것도 없는, 그렇타고 한가하여
마음에 여유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들로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특히 누군가 특별한 약속이나 시간을 앗아갈 낌새면, 바쁘다는 핑계는
미리 거절의 방패막이로 쓰이기 일쑤다.

모처럼 친구의 전화이다. 별다른 일이 없는 우리는 평상의 잡담들 뿐이다.
금년 여름은 더위가 유별나다며 불평이다. 요즘 날씨가 장마에 더위로
짜증스러워 죽겠단다. 유별난 더위라니 할 말은 아니지만, 어느 여름이
시원한 때가 있었을까? 당연한 여름 무더위려니 여기며 지내는 나는,
뙤약 볕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죽을 지경의 그렇게 짜증스럽지는 않다.

나는 지금도 밤이면 창문을 닫고 두터운 이불을 덮는다.
북쪽에 위치한 산중이라 이곳에서의 여름 더위는 그냥 견딜만하다.
오늘 낮 냇물에 미역 감으며 무더위를 식혔던 일로 약을 올리며
친구에게 이곳에 와서 세족이라도 하면서 한 잔 나누자고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그이려니 와서 지내 보라며 적극 권했다.

그의 답변은 시간이 없다며, 여름엔 꼼짝 않고 집에 있음이 제일이란다.
할 일이 많아 이 더위에 지쳐 죽을 지경의, 그토록 바쁜 그에게 별다른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으니, 나는 갑자기 민망하여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뭐가 그리 바쁠까? 그의 일상에 나의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요즘 무슨 일거리가 생겼나? 분명 전화 말머리에서 별 일 없다 했는데…

어떻든 바쁘니까 바쁘다 했겠지 싶어 흘려버리고 싶은데,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 생각 저 생각… 바쁜 일상들을 생각하다 보니
언젠가 장영희 교수의 ‘아이작 싱어’의 “바보들의 천국”을 인용한
에세이가 생각나기도 한다.
“어느 부호의 개으른 외아들은 일하는 것이 죽는 것 보다 싫어, 놀고 먹는
천국엘 갔다. 천국에서의 그는 먹고 놀며 빈둥거리는 생활이 점점 싫어지고
결국엔 빈둥거림이 죽는 것 보다 싫어서 죽고 싶다고 하자 천국엔 죽음도
없다는 천사의 말에 그는 실망하면서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상에서의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닌 열심히 일하는 재미에서 새롭게 삶의 가치를 찿는다.”는
아첼의 이야기 말이다.

무었인가 할 일이 많아 바쁜 것은 좋은 일이다. 바쁜 일로 아랑곳 더위도
잊고 지낼 수 있다면 분명 보람있는 일로, 금년 무더위가 좀 기승을 부리기로
결코 죽을 지경의 짜증스러움은 아닐 것이다. 지금 현대인들 일상의 바쁜
일들의 대부분은 바쁜 것이 아닌 마음의 조급증 때문은 아닐까?
또, 전혀 엉뚱한 일들로 바쁨을 자초하는 일들은 없을까?

근래 있었던 일이다. 전철 남영역이나 숙대입구역에서 수유너머 연구실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거리이다. 마을 버스가 있지만 돌아 다니기에 15분정도 걸린다.
시간도 비슷하거니와, 장거리 탑승으로 운동겸 걷는 것이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아 지금까지 나는 주로 걸어 다녔지만, 그날은 약간 무거운 짐이 있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5분을 넘지 않는 버스가 오늘은 10분을 넘게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15분, 20분, 걸었더라면 벌써 연구소에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감감, 버스는
나타나지를 않는다. 계속 기다리면서 지금이라도 그냥 걸어갈까 생각도 해본다.
버스가 금방 나타날 것만 같고, 또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아깝기도 하려니와
결국 오기까지 생겨 계속 버틴 것이 30여분이 넘어서야 만원으로 설 자리도
없는 버스를 겨우 탈 수 있었다.

평소 15분이면 가는 버스길, 20분도 넘게 걸려서 겨우 연구실에 도착했다.
승객들의 짜증스런 항의에 도로가 막혀 버스도 어쩔 수 없었다는 기사의 신경질적
푸념이다. 어떻든 20분 거리를 한 시간에 왔으니, 나의 일들 또한 많은 차질이다.
좀 빨리, 그리고 쉽고 편리하겠다 싶은 일이 완전히 뒤틀린 것이다. 차질을 바로
잡으려니 나는 조급하게 서두르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짜증스럽게 말이다.

이처럼 현대 문명은 “좀더 빨리 그리고 편리하겠다”며 쉬임없이 전진을 계속하지만
우리는 다시 그 문명에 얽메어 불편과 짜증의 일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속열차, 제트여객기와 같은 비교 할 수 없는 속도로 문명의 혜택을 입고 있는
현대인들이 문명의 혜택도 별로인 채 느리게 살았던 옛날 사람들 보다 훨씬 바쁘게
살면서 아우성인 것이다.

복잡 다양한 삶의 우리들, 일상생활을 좀더 단순화하여 매사를 너그럽게 생각하고
포용하는 느린 삶의 태도가 절실하다는 느낌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다.

응답 1개

  1. 박카스말하길

    글을 읽다보니 좀 더 천천히 걷다보면 생각도 유연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급한 젊은이에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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