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건강법

여름나기

- 담담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났는데 이놈의 더위는 그칠 줄 모른다. 찌는 듯한 더위라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걸어다니다 보면 온 몸의 육수가 줄줄 흐른다. 앞으로 이런 더위가 한 달은 더 간다고 하니. 아이고야. 여름이 다 끝나가는 시기라서 약간 뒷북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번 호에서는 여름나기와 관련해서 썰을 좀 풀도록 하자.

약간 뒷북인 감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도 덥다. ㅡㅡa

뭐, 이렇게 징징대지만 기실 여름은 더워야 정상이다. 여름이 덥지 않고 밍숭맹숭 하다면 여름이 아니리라. 여름은 봄에 피어오른 새싹이 무언가를 맺어나가는 열음(實)의 계절이자, 세상 밖으로 문을 여는 열음(開)의 계절이다. 오행상으로 보자면 화(火)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때로 모든 것이 타오르는 불처럼 발산하고, 무르익어 가는 계절이다. 이 때 덥지 않으면 비정상!

사람의 인생으로 따져보면 여름은 이제 청춘의 시기에 들어선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때, 청춘이 화끈하지 않다면 그것이 어찌 청춘이랴! 요즘 애늙이가 많은 것 역시 여름이 여름답지 않아서, 즉 화끈하게 젊음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 시기에 안으로 안으로 움츠려 드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닐런지. 뜨겁지 않은 여름, 미지근한 여름은 마치 애늙은이같은 청춘이랄까?

그러나 요즘 여름의 문제는 밖에는 덥지만 안에는 춥다는 점이다. 밖에 점심 먹으러 잠깐 나갔다와도 땀이 등줄기에 송글송글 맺지만,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혹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순간 내 몸 안으로 차가운 기운(寒氣)이 ‘엄습’한다. 그야말로 이 갑작스런 공격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한사가 내 몸 안을 갑자기 침입하는 순간 정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뜨거운 밖을 돌아다닐 때 열려있던 모공에 그야말로 직빵으로(?) 찬 기운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마치 휴전협정을 맺은 상태에서 뒤통수를 후려맞는 격이랄까? 한사가 이렇게 갑자기 몸 안에 쳐들어오니 몸 안의 밸런스는 자연히 깨지게 되고, 그러니 몸 상태는 더더욱 메롱이 된다.

씽씽 불어라~ 하지만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땀을 식혀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연아한테는 미안하지만 에어컨은 가급적이면 피하시는 것이..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는 모르쇠다. 그저 시원한 것만을 찾는다. 땀이 나면 에어컨이나 선풍기로 식혀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대중 교통수단에서는 조금만 더워도 ‘이 놈의 지하철은 왜 이리 더운거냐’며 투덜대기가 일쑤다. 사무실이나 방 안은 어떤가? 에어컨 바람은 내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그야말로 무차별적 살상(?)무기가 되고 있다. 그래놓고 또 안에서는 춥다고 겉옷을 준비해 다닌다.

냉방병 뿐만 아니라 에어컨 바람 같이 인공적인 찬 바람이 몸에 좋을 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만무하지 않겠는가! 에어컨으로 인해 눈이 뻑뻑하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것 역시 에어컨으로 인한 바가 크다. 에어컨이 습기를 제거하다 보니 눈은 갈수록 뻑뻑해지고, 피부는 갈수록 건조해진다. 뭐, 청소 안한 에어컨이 안 좋은건 두말하면 아이유의 잔소리. 전지구적으로 크게 보자면, 이 에어컨으로 인해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으니 악순환이야말로 이런 악순환이 없다.

한여름에 날씨가 더워지면 몸의 바깥은 뜨거워지나 몸의 안쪽은 오히려 차가워진다. 이는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몸 바깥이 따뜻해지니 안쪽은 차가워지려고 하지 않겠는가? 물론 여기서 뜨겁다, 차다는 것은 실제로 온도가 높다, 낮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동양학에서 말하는 한열(寒熱)의 개념이다. 이는 마치 한여름의 우물물이 시원한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가 감전되었을 때 물 같은 걸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 안이 차가워진 여름에 몸 안에 차가운 것을 끼얹는 것은 몸을 망치는 행위란 것.

따라서, 여름에 찬 것을 마시거나 덥다고 배를 뒤집어 까고 자고나서 쉽게 배탈이 나거나 설사를 한 경험들은 다들 있으시리라. 여름에 팥빙수나 성질이 찬 과일은 그래서 많이 먹는 것은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 그러니 덥다고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 역시 몸에 좋지 않다. 냉장고에서 꺼내 실온에서 잠깐 두거나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음양탕을 마셔주는 것이 더 좋고. 이는 여름에 차디찬 것을 먹는 것은 몸의 내부는 외부의 뜨거움을 상쇄하기 위해 차가워져 있는데, 거기에다 차가움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열치열(以熱治熱)’, ‘이한치한(以寒治寒)’이란 말이 단순히 극기훈련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성질이 따뜻한 닭고기, 인삼, 대추 등을 함께 달여서 차가워진 속을 데우는 것이 삼계탕이고, 한겨울에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동치미 국물에 성질이 찬 메밀국수를 말아 먹은 것은 겨울에 뜨거워진 속을 식히려는 것이 냉면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반대다. 여름에는 날이 덥다고 냉면을 찾고, 겨울에는 춥다고 뜨거운 국물 음식 먼저 찾는다.

이열치열! 그러나 이열치열이 단지 덥게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따뜻한 성질의 것을 먹어 차가워진 속을 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복(三伏)에 개를 의미하는 복(伏)자가 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그저 복날에 먹었던 개고기가 단순히 영양가가 높은 고단백질의 고기를 먹는 차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름에 땀을 흘리는 것은 전에도 말했듯이 진액이 손실되는 것이다. 개는 땀구멍이 혓바닥에만 있어서, 여름에 헥헥대며 혀를 길게 뻗고 있는 것들은 다들 보았으리라. 그런 점에서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땀구멍을 막아서, 즉 고섭 작용을 통해 진액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영양성분을 먹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기운을 먹는다는 것이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을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다. 이는 먹거리와 약이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때, 약이나 먹거리를 먹을 때 그 성색기미를 알아야 한다. 즉, 어떤 영양분이 아니라, 그 음식과 그 약의 그것이 자란 장소, 색깔, 맛등이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음식이 어디에 좋은지를 다루는 본초학 역시 음양오행의 이치 안에, 또한 자연이라는 상식의 수준 안에 있다.

삼계탕 드시다 한번들 보신 일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황기.

삼계탕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황기의 약성을 살펴보자. 사진에서 보듯이 황기는 길쭉한 뿌리로 되어있다. 본초문답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황기는 뿌리가 수척에 이를 정도로 깊고 긴데도, 황기를 캘 때는 호미로 파는 것이 아니라 손힘으로 땅에서 뽑아낸다. 이것은 그 뿌리에 잔뿌리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를 보면 황기는 곧바로 직행하는 약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뿌리가 성겨서 수기를 잘 통하게 할 수 있기에, 땅속 황천의 수기를 싹까지 바로 빨아올린다.” –<본초문답>

뿌리는 물을 밑에서부터 쭉 빨아들여 잎과 줄기등 위로 올리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뿌리를 먹는다는 것은 그 기운을 위로 올리는 성질이 있다. 칡의 뿌리가 땅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서 땅속의 수기를 덩굴까지 빨아올리듯이, 갈근을 먹으면 몸 속의 진액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황기 역시 사람의 원기를 끌어올려 안에서 몸을 보호하는 바깥층으로까지 기를 퍼뜨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나무를 뒤집어 생각하면 쉽다. 뿌리를 먹는 것은 뿌리의 성질과 같이 기와 정을 위로 끌어올려주며, 줄기는 뿌리에서 잎, 열매로 물을 끌어올리고, 아래로 영양분을 보내는 통로의 성질과 같이 조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열매는 떨어지려는 성질과 같이 몸 아래로 내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같은 식물이라도 그것이 열매를 먹느냐, 줄기를 먹느냐, 뿌리를 먹느냐에 따라 그 성질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자라났는지도 그것의 성질에 영향을 미친다.

암바(?)거는 닭. 덥다고 쳐져 있지만 마시고, 삼계탕 한 그릇들 하시고 원기회복들 하시라

날이 덥다고 좀비처럼 축축 늘어져있지만 말고, 여름을 활기차게 나자. 마트에 가면 황기나 대추 같은 것 들어간 삼계탕 셋트 같은 것도 파니, 직접 푹 고아서 삶아드시는 것도 좋은 방법. 건강한 여름을 나야 건강한 가을, 건강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 활기찬 청춘을 보내야 아름다운 중장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청춘을 위하여 왕성한 여름나기를!

– 이 글은 <동의보감>과 당종해의 <본초문답>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응답 2개

  1. 물파스말하길

    매번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뒷북 컷과 암바생닭 컷에서 자빠졌어요. 센스쟁이 담담님 ^^+ 저는 채식을 하는데요, 저같은 사람이 여름철 기를 보하려면 뭘 먹으면 좋을까요? 그리고 질문, 이건 “폐” 편에서 해야하는데 예전에 쓰신 글이라 여기에 댓글을 답니다. 앙드레선생님께서 대장암이셨다는데, 폐렴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폐/대장이 서로 표리를 이루니, 대장암인데도 폐렴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 거라 이해해도 되는지요.

    • 담담말하길

      채식을 하신다니 여름나기에 좋은 것으로 맥을 살린다고 하는 ‘생맥산(生脈散)’이 있어요. 동의보감에는 생맥산은 ‘원기를 내는 묘약’으로,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물 대신 마시면 좋다고 나와있습니다. 인삼, 맥문동, 오미자를 1:2:1의 비율로 끓이면 되시니 검색해 보세요~~ 쉽게 구해서 끓여드실 수 있으실거에요^^ 앙드레 김 선생님은 폐와 대장이 같은 金기운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대장이 안 좋아지면 폐도 안 좋아지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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