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달팽이공방의 1년을 되돌아보며

- 제비꽃달팽이

수유너머N 엠티를 다녀왔습니다. 점심 삼계탕, 저녁 삼계탕+삼겹살볶음 이라는 고단백의 식사를 마친 뒤 심하게 체하는 바람에 음주가무는커녕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1박 2일을 보냈습니다. 함께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엠티 장소에 도착한 점심시간부터 자정이 되도록 지난 1년간의 수유너머N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이러저러하니까 앞으로 잘해보자, 와 같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엠티에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니 달팽이공방이 떠올랐습니다. ‘수유너머N이 생김과 동시에 만들어진 달팽이공방의 1년은 어떠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워크샵, 세미나, 사람들과의 관계, 잘된 점과 잘못된 점, 앞으로의 달팽이공방 등 무수한 내용들이 있을 텐데 유독 ‘일상예술세미나’가 떠올랐습니다. 일상예술세미나는 작년 9월 북아현동 수유너머N에 달팽이공방을 열었을 때에 야심차게 준비했던 세미나입니다. 세미나의 주된 목표는 그간 해왔던 비누만들기나 화장품만들기, 빵과자만들기 같이 ‘만들기’에 이론을 가져다주자, 만드는 활동을 더 강화할 수 있는 지식들을 배우자, 였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 나라의 민속공예를 배워 자신의 생활에 적용한 윌리엄 코퍼스웨이트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중세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집하여 직접 염소젖 버터를 만들어 먹고 옷감을 짰던 타샤 튜터의 ‘타샤의 정원’, 전 세계 식량종자를 모조리 휩쓸고 단일화 하고 있는 거대 기업 몬산토의 어두운 부분을 만천하에 드러낸 ‘몬산토’,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쓴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와 같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세미나 초기에는 다들 의욕이 충만하여 열심히 하는가 싶더니 이내 시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미나 반장을 맡았던 졸린 달팽이만 열심히 읽어오고 다른 세미나원들은 쉽게 빠지거나 참석하더라도 책을 읽어오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달팽이공방 사람들의 게으름이었습니다. ‘느리고 대충대충 간단하지만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달팽이공방 사람들이지요. 엄마 뱃속서부터 졸다가 늦게나왔다는 소문이 들리는 사루비아 달팽이, 달팽이공방 활동과 동시에 취직한 발 빠른 달팽이, 이것저것 찔러대고 놀러 다니느라 정신없는 제비꽃 달팽이, 엄청난 성실함을 자랑하나 급작스런 2세의 출현으로 주춤하는 졸린 달팽이까지. 일상예술세미나는 주어진 일들, 하고 싶은 일들에 밀려 2순위, 3순위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렇다면 달팽이공방 사람들이 불성실하고 나이브한 탓이렷다? 그렇다고만 하기에는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100%의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일의 순위가 자꾸 밀려나는 것은 그 일 자체의 매력과 재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재미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텍스트에 대한 흥미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은 모두 우리가 고른 것이고,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고 중요한 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저자가 쓴 다양한 내용의 텍스트들이었고, ‘정보전달’의 특성을 강하게 띤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내용을 한데에 엮어 내거나 모아낼 능력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세미나의 내용들이 산만하게 느껴졌습니다. 재미가 없는데 굳이 책을 잡고 앉아 있어야 되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눈앞에 있는 책상 대신 주방의 식탁이 떠오르고 책 대신 밀가루와 버터가 떠올랐습니다. 몸이 근질근질 했습니다.

지금 달팽이공방에서는 일상예술세미나 외에 천연비누와 화장품, 우리밀 빵과자를 만드는 워크샵과 영국의 공작운동가이자 좌파사상가인 윌리엄 모리스 원전 읽기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상예술세미나와 달리 이 두 활동은 잘 진행되고 있는데요. 비누와 화장품, 빵과자의 수요가 많았던 남산 시절과 달리 수요가 많지 않고 주방 등의 환경도 열악한 현재의 상황에서 달팽이 공방이 DIY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 워크샵입니다. 무엇보다 워크샵은 달팽이공방 활동의 주된 활동인 ‘만들기’ 라는 점에서, 외부에서도 사람들이 와서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긴장된 상태로 적극적으로 해나가게 되지요. 윌리엄 모리스 읽기의 경우 일상예술세미나와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특정 사상가가 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인데다 영어로 된 원서여서 읽어나가는 데 일관성이 있고 매력적일 수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수유너머N이 이사를 합니다. 작년 이맘때 월세가 저렴한 공간을 찾아 헤매다 찾은 북아현동은 올해 말부터 재개발에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위치 좋고 깨끗한 공간을 찾다가 신촌과 홍대 사이에 새 공간을 얻었는데요. 오늘 오전 원고 마감 후, 새 공간의 까페가 될 곳 그러니까 달팽이공방의 주요 활동공간이 될 곳을 인테리어 하러 갑니다. 가는 길에 졸린 달팽이와 함께 이야기해보아야겠습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우리도 엠티 한번 가자고, 엠티가 힘들다면 소풍이나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좋으니 어디든 가서 달팽이 공방의 1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활동을 해 나가면 좋을지 함께 머리 맞대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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