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자르는 듯 다듬은 듯 쪼는 듯 가는 듯

- 정경미

유가儒家의 이상적인 인간형을 군자君子라고 하다. 군자는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 · 신信과 같은 덕성을 몸으로 구현하고 있는 존재이다.

군자는 어질다. 자기의 삶을 완수하고 천하와 삶을 함께 한다. 인仁이란 낳고 낳는 덕[生生不息之道]이다. 어진 이는 끊임없이 베푼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때라도 늘 무언가 줄 게 있다. 군자는 의롭다. 치우치거나 막힌 상황을 원활하게 소통하게 한다. 군자는 자기 배려에 충실하다. 내 것이 아닌 욕망, 부추겨진 욕망에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Let it be!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차이를 존중하고 상대방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준다. 군자는 지혜롭다. 지혜는 밝은 마음이 온전히 빛나도록 하는 것이다. 군자는 욕심이나 고집이 마음의 밝은 덕을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심신을 갈고닦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딪치는 사건마다에서 부지런히 묻고 배우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한다.

군자는 약속을 잘 지킨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약속을 지키고, 또 약속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질문이 던져졌을 때 성실하게 대답하는 것. 나아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 이것은 벗에 대한 진실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런 군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시경의 시가 「기욱淇奧」이다.

瞻彼淇奧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보니
첨피기욱
綠竹猗猗 푸른 대나무 우거졌네
녹죽의의
有匪君子 빛나는 군자여
유비군자
如切如磋 깎아 놓은 듯 다듬어 놓은 듯
여절여차
如琢如磨 쪼아 놓은 듯 갈아 놓은 듯
여탁여마
瑟兮僩兮 치밀하고 굳세며
슬혜한혜
赫兮喧兮 빛나고 의젓하시니
혁혜훤혜
有匪君子 멋진 군자여
유비군자
終不可諼兮 아무래도 잊을 수 없어라
종불가훤혜

시경 위풍에 나오는「기욱淇奧」은 유가의 이상적 인간형-군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든 시이다. 이 시에서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이 나왔다. 끊을 절切, 다듬을 차磋, 쫄 탁琢, 갈 마磨. 보석을 만드는 과정을 나타낸다. 바위의 거친 부분을 잘라내고, 보석의 모양을 만들고, 디테일을 완성하고, 표면의 결까지 곱게 다듬는 과정. 바위를 보석으로 갈고닦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이 ‘절차탁마’라는 말을 성형수술을 해서 외모를 가꾸는 뜻으로 쓴다고 한다. 각진 턱을 깎아서 갸름하게 만들고[切], 뭉툭한 코를 오똑하게 세우고[磋], 쌍꺼풀을 만들고[琢], 얼굴의 주름을 펴서 피부를 매끈하게 만든다[磨]. 그러나 「기욱淇奧」에서 ‘절차탁마’는 군자의 수련 과정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바위를 보석으로 갈고닦듯 군자는 끊임없이 배우고 인격을 연마하여 성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거 꼭 해야 돼? 성형수술로 몸 만드는 것만 해도 ‘뼈를 깎는’ 고통인데 정신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난 있지··· ‘위대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 성인이라고 하면 십자가를 진 예수, 살이라고는 하나 없이 뼈만 앙상한 프란체스코의 모습 같은 금욕과 고행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친구들에게. 시경에 나오는 군자의 모습에는 유가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더 풍부한 <삶>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기욱淇奧」의 다음 구절을 보시라!

瞻彼淇奧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보니
첨피기욱
綠竹靑靑 푸른 대나무 우거졌네
녹죽청청
有匪君子 빛나는 군자여
유비군자
充耳琇瑩 아름다운 옥돌 귀막이
충이수영
會弁如星 관의 구슬 장식 별처럼 반짝여
회변여성
瑟兮僩兮 치밀하고 굳세며
슬혜한혜
赫兮喧兮 빛나고 의젓하시니
혁혜훤혜
有匪君子 멋진 군자여
유비군자
終不可諼兮 아무래도 잊을 수 없어라
종불가훤혜

군자는 끊임없이 배워서 내면의 덕을 닦듯 외모도 아름답게 꾸민다. 말을 가려 들으란 뜻에서 하는 귀막이에 옥돌 장식을 했다. 눈은 떴다 감았다 조절할 수 있으니 볼 것 안 볼 것 가려 볼 수 있다. 입도 싫으면 닫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귀는 무방비로 열려 있다. 소리를 가려 듣기란 참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 중에는 가려 들어야 할 말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군자는 말을 가려 들어야 한다는 뜻에서 귀막이를 했다. 옥돌을 조그마한 발[簾]처럼 귀 윗부분에서 아래 귓불까지 늘어뜨려서 귀 전체를 덮는 것이다. 그러면 얼굴을 움직일 때마다 옥돌 귀막이가 딸랑딸랑 흔들렸겠지? 요즘 우리가 하는 귀걸이보다 화려하다. 그리고 모자의 스티치 부분을 따라 박은 구슬이 별처럼 반짝인다. 모자를 쓴 것만 해도 멋을 부린 건데, 거기 반짝이는 구슬 장식까지!

신라시대의 화랑들은 여자보다 예뻤다더니. 시경의 군자도 ‘절차탁마’라고 했을 때 떠올리게 되는 금욕적인 고행자의 모습과는 다르다.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위해 몸을 혹사하는 게 아니라. 고귀한 덕德은 아름다운 신체로 표현된다.

그래, 조금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질투가 나지.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질투심이 사라진다. 그에게서 흘러넘치는 아름다움이 나에게까지 전해져서 나도 같이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그와 나는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것 같다. 아름다움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 같다.

모자의 구슬 장식이 별처럼 반짝이는 모습. 부분을 통해 군자의 전체 모습을 표현했다. ‘군자의 모습이 빛난다’라고 해도 되는데 ‘모자가 빛난다’라고 한다. ‘모자가 빛난다’라고 해도 되는데 ‘모자의 구슬 장식이 빛난다’라고 한다. 이렇게 부분을 통해 전체를 표현하는 방식. 대유법적 표현 방식이 시경에는 많다. 다 보려고 하면 오히려 전체를 놓친다. 하나를 자세히 보면 그 속에 전체가 다 들어 있다. 그리고 다 말하는 것보다 여백을 통해 침묵의 긴장이 살아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시의 묘미이기도 하다.

瞻彼淇奧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보니
첨피기욱
綠竹如簀 푸른 대나무 우거졌네
녹죽여책
有匪君子 빛나는 군자여
유비군자
如金如錫 금과 같고 주석과 같으며
여금여석
如圭如璧 홀과 같고 둥근 옥과 같아
여규여벽
寬兮綽兮 너그럽고 여유 있으니
관혜작혜
猗重較兮 수레 옆에 기대셨네
의중교혜
善戱謔兮 우스갯소리도 잘 하시지만
선희학혜
不爲虐兮 지나치지는 않으시지
불위학혜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 우거졌네’ 반복되는 이 구절은 시경의 가장 일반적인 표현 방법-흥興이다. 복숭아꽃 만발한 봄날의 모습과 시집가는 아가씨의 모습을 함께 노래함으로써 시집가는 아가씨의 모습이 만발한 복숭아꽃처럼 화사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 흥興은 두 가지 다른 차원의 장면이 서로 조응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시에서는 물가 대나무 숲의 청청한 모습이 군자의 씩씩한 기상을 표현한다. 대나무는 곧고, 푸르고, 무성하다. 군자는 누구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에 따라 사는 자유인이다. 이 뜻은 곧고 분명하다. 외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비난이나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 씩씩한 기상! 그리고 대나무는 한 그루만 따로 있지 않고 무리를 지어 숲으로 있다. 덕은 외롭지 않다[德不孤](논어, 이인)고 했던가. 군자는 항상 벗과 함께 배우고, 배움을 통해 더 큰 삶을 이룬다[以文會友 以友輔仁](논어, 안연).

군자는 치밀하고[瑟], 굳세며[僩], 빛나고[赫], 의젓하고[喧], 관대하고[寬], 여유[綽]가 있다. 이렇게 충만한 내면의 덕은 외모로 나타나서 ‘유비군자有匪君子’라고 했다. ‘비匪’는 문채가 난다는 뜻이다. 내면의 덕이 외모로까지 뿜어져나와서 빛이 나는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 보면 빛이 난다. 『대학大學』에서 말하듯, 공부란 내 안의 밝은 덕을 밝히는 것[在明明德]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덕이 밖으로까지 뿜어져나와서 풍채가 의젓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 이 시에서 군자는 그런 사람이다.

여러 가지 덕성을 갖춘데다 얼짱, 몸짱이기까지 한 군자는 귀하기가 금과 같고 주석과 같다. 청동기시대에는 주석도 금과 마찬가지의 귀금속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군자가 느긋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수레에 기대 미소를 짓고 있다. 요즘으로 치자면 핸섬한 보이가 스포츠카 문에 살짝 팔꿈치를 기대고 서서 살인미소를 날리고 있는 모습. 순진한 소녀들 쓰러진다.

고귀한 덕성, 아름다운 외모, 여기에 한 가지 더! 군자는 유머가 있어야 한다[善戱謔兮]. 이건 요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남자 친구의 조건으로 유머 감각을 중요하게 꼽는다. 유머는 상황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다. 유머가 없으면 진지함이 엄숙함으로 경직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된다. 유머는 마음이 통한다는 뜻도 된다. 마음이 통하니까 별거 아닌 일에도 웃게 된다. 이 유머가 정도를 지나쳐 사람을 불쾌하게 하지 않는다면[不爲虐兮] 가히 군자라 할 만하다.

이런 군자를 한 번이라도 만나면 그의 아름다운 모습과 넉넉한 인품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의 끝 구절은 ‘멋진 군자여 아무래도 잊을 수 없어라[有匪君子 終不可諼兮]’라고 노래하고 있다. 못 잊어 우리는 각자 그리워하는 군자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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