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외디푸스 컴플렉스?

- 매이아빠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예쁜 구두 신을거야. 매이는 여자니까” “아빠, 개똥 좀 치워! 아빠는 남자잖아.” 요즘 매이의 말 속에 부쩍 남자와 여자가 따라붙는다. 과연 매이는 남자와 여자를 어떻게 구별할까? “매이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여자” “왜?” “예쁘니까” 엥? “그럼, 엄마는?” “엄마도 예쁘니까, 여자” 안 예쁜 여자도 있다는 말이 목까지 치밀었지만 참고, “그럼, 아빠는?” “응, 남자” “왜?” 뭐라고 대답할지 기대됐다. 잠시 생각하다가 매이는 “응, 멋지니까” “고마워, 그럼, 최문기는?” “최문기도 멋지니까 남자야” 매이에게 예쁜 것과 멋진 것은 미적인 범주가 아니라 성적인 범주였다.

좀더 시험해 보려고 “그럼 몽이는? 몽이는 남자야, 여자야?” 라고 물었다. “응, 남자” “멋지니까? 그럼, 하니는?” “하니는 예쁘니까 여자” 이번엔 동화책을 펼쳤다. 중세 유럽의 여러 연령층의 남녀들이 각양각색의 표정과 복장을 하고 등장하는 그림이 있었다. “이 사람은?” “남자, 멋지잖아” “이 사람은?” “여자.” 매이는 익숙하지 않은 인종의 괴상한 얼굴에서도 남성적(멋진) 감응과 여성적(예쁜) 감응을 분별해 냈다. 마침, TV에서 방귀대장 뿡뿡이를 하고 있었다. 뿡뿡이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아내 말에 의하면 뿡뿡이는 처음 나왔을 때는 중성이었지만, 중간에 (분홍색에 꽃을 꽂고 목소리가 더 가는) 뿡순이가 합류하면서부터는 남성이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뿡뿡이는 어려우니까, 그 전에 쉬운 것부터 물었다. “매이야, 뽀로로는 남자야 여자야?” “남자”, “그럼 페티는?” “여자” “그럼 에디는?” “남자” “그럼 루피는?” “여자” 다 맞췄다. “그럼, 매이야, 뿡뿡이는 남자야, 여자야?”

아내와 나는 매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짜잔형 나왔다. 멋지지?” 대답하기 곤란하면 매이는 딴청을 피운다. 정말 궁금해서 “응, 짜잔형은 남자야. 그럼 뿡뿡이는?” 하고 다그쳤다. “응, 몰라” 역시 어렵다. 하늘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땅은? 의자는? 곰돌이 인형은? 남성과 여성을 돌출된 성기의 유무가 아니라 그 형태에서 느껴지는 리듬과 정서로 구별하는 매이는 그것들의 성을 어떻게 인식할까 궁금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음양오행의 지혜도, 기독교적 우주관도 내면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에게 만물의 성을 구분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하긴, 왜 꼭 만물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해야만 하나? 들뢰즈는 n개의 성이 있다고 했는데.

프로이트는 네살박이 한스에게 성은 물줄기를 내뿜는 돌출된 기관의 있고 없음으로 나눠진다고 했다. 그래서 꼬마 한스에게는 마차를 끄는 숫말과 마찬가지로 증기기관차도 남성이다. 거대한 덩치에 (자신의 살부 충동대로) 벌렁 넘어지기도 하며 물이 나오는 돌출부를 가진 것이 꼬마한스에게 남성(아버지)의 감응을 주는 것이다. 매이에게 나(아버지)는 번쩍 들어서 안아주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청소하고 개똥치우고 먹을 걸 만들어주는 존재이지만 남근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감응되지는 않는다. 나의 벗은 몸을 몇 번 보기도 했지만 자기나 엄마의 생식기와 비교 하면서 나의 생식기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작 거리며 “똥꼬에 뭐가 들어갔어. 간지러워” 라고 하긴 하지만 아직 리비도적인 흥미는 못 느끼는 눈치다. 아직까지 매이에게 성은 프로이트 말처럼 남근의 유무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인상의 거침(멋지다)과 부드러움(예쁘다)으로 나눠진다.

프로이트 말대로라면 매이는 한창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가질 나이다. 외디푸스기를 세 네 살로 잡은 이유 중에는 동생이 태어날 무렵인 것도 있다. 항문기의 똥에 대한 관심이 몸에서 배출되어 나오는 ‘아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와 함께 몸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남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동생은 없지만 매이는 요즘 아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 공주인형 놀이는 시들해졌고 대신 아기인형 놀이를 주로 한다. 자그마한 강아지 인형을 안고는 엄마가 매이에게 했던 것처럼 어르고 야단치고 재운다. TV 보면서 누워 있는 나와 아내 사이에 강아지 인형을 갖다 놓고는 엄마 한 손 내 한 손 ‘아기’ 팔을 잡게 하고는 넘어지지 않게 잘 보라고 하기도 하고 일어나서 ‘아빠 다리’를 하고 그 위에 ‘아기’를 눕히고 자장자장 재우라고 한다.

연구실에서 생후 6개월된 ‘새미’(현식이 아들)를 봤을 때 매이는 언니들이 동생에게 으례 보내는 싸늘한 질시의 시선을 보내는 게 아닌가? 어른들이 갓난아기에게 관심을 집중하는데에 본능적인 위기감과 질투를 느끼는 것 같았다. 어제는 천둥소리를 유난히 무서워하는 몽이가 벌벌 떠는 것을 아내가 안고 쓰다듬었더니 매이가 “매이도, 매이도” 하면서 엄마 손을 붙잡는다. 그리고는 “매이만, 매이만” 한다. 내가 “매이야, 엄마가 몽이 예뻐하는 게 싫어?” 하고 물었더니 주저 없이 “응” 한다. “왜, 몽이가 천둥소리를 무서워해서 위로해주는 거잖아. 매이도 몽이 좋아하잖아.” 그랬더니 “싫어” 한다. 요즘 매이는 아내가 몽이나 하늬 안고 있으면 기어이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엄마로부터 떼어내려고 한다. 아내는 “그러면 욕심쟁이야”라고 나무란다. 매이는 일부러 눈을 흘겨뜨며 식식대더니, 아내가 무시하자 시무룩하게 구석에 쪼그려 있다가 “엄마, 미안해, 잘못 했어요” 라며 동정심을 유발한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엄마한테 버림받지 않고 밀착된 자리를 뺏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요즘 매이는 결혼에도 관심이 많다. 아내랑 버스를 타고 가다가 원빈과 신민아가 키스하는 커다란 캔커피 광고판을 보고 큰소리로, “와, 둘이 뽀뽀하네, 사랑하는 거야? 사랑? 그럼 둘이 결혼해?”라고 소리처서 다른 승객들의 헛웃음을 자아냈다고 한다. 그저 왕자와 공주가 뽀뽀하는 것으로 끝나는 그림책에 영향을 받은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그보다 결혼에 대한 관심이 구체적이었다. 목욕을 하고 나온 엄마에게 수건으로 면사포나 드레스를 만들어주면서 “이렇게 해야 아빠가 좋아하지, 아빠랑 결혼해야 되잖아” 하고 웨딩컨설턴트처럼 말하는가 하면, 거실에 누워 TV를 보는 아내에게 “엄마, 아빠랑 결혼해”하고 뚜쟁이처럼 말한다. “응, 벌써 했는데?” 하고 심드렁하게 답해도 매이는 계속 요상한 미소를 띠우며 엄마 아빠랑 결혼할 것을 집요하게 종용한다. “왜?” 했더니, “응, 엄마, 아빠 좋아하잖아. 좋아하면 결혼하는 거야” 그런다. 나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아내를 흠칫 보았다. 아내는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말없이 있더니, “매이야, 한번 했으니까 이번엔 다른 사람이랑 하면 안될까?”하고 작게 웅얼거리는게 아닌가. 응? 나는 관심도 돌릴 겸, 외디푸스 컴플렉스도 떠 볼 겸 “매이야, 결혼하는 게 뭐야? 아기 낳는 거?” 하고 물었다. 매이는 “아니, 아기는 아니고, 좋아하는 거. 매이는 공주니까 최문기 왕자님하고 결혼할 거야” 한다. 도대체 프로이트가 말한 여자 아이의 결핍감과 남근선망은 언제 오는 거야? 오기는 오는 건가? 나는 외디푸스 컴플렉스 생각은 그만 두고 매이가 결혼하는 장면을 머리에 그리며 아내에게 좀 더 애정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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