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나의 술 이야기 1

- 김융희

탁주와 더불어 반 세기

나는 술을 많이는 마시지 않지만 아주 애주가이다. 특히 탁주인 막걸리는
거의 매일 한 잔씩은 들고 있다. 저녁 식사와 더불어 한 잔의 막걸리는
나의 좋은 동반자로써 거의 반 세기를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우리 집에는
항상 막걸리가 준비되어 있다.

요즘은 막걸리의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거의 외면인 채 우리의 전통주로써 그 명목만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 항상 막걸리를 두고 들기란 결코 쉽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집을 떠나 지방 외출을 하거나 여행을 가게 되면 맨 먼저 그 지역의
막걸리 맛을 보곤 한다. 그런데 그 막걸리를 들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결코
쉽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막걸리를 취급하는 업소를 찿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 이야기이다. 볼 일이 있어 경기도 여주를 갔었다.
나는 볼 일을 마치고 막걸리집을 찿아 나섰다.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지역 전통시장의 허름한 서민식당에 가면 대게는 있었다.
특히 탁자 한 두엇 놓고 싸구려 식단의 노동자를 상대로 영업하는
할머니 식당엘 가면 반드시 막걸리가 있었다. 아예 안주로 열무김치를
식탁에 놓아 두고 사기그릇에 따라 주면서 그릇 수로 술값 계산을 하였다.
막걸리는 열무김치 안주로 사기그릇에 따라 마신 것이 가장 맛있다.

그런데 여주에서의 그날, 온시장 뒷골목을 다 뒤져도 그런 형태의 식당은
있었으나 막걸리가 없는 것이다. 그 당시는 인기가 없어 막걸리를 파는
집이 그리 많지를 않았다. 땀 흘리며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외면하였든
것이다. 할 수 없어 읍내의 간이 상점인 구멍가게를 모두 흩고 다녔으나
찿을 수 없다. 변두리인 신륵사 입구까지 모두 찿아 나썼으나 그 어디에도
막걸리는 없었다.

나는 찿기를 포기하고 허탈한 채 기진 맥진 시외버스 터미널로 왔다.
서울행 버스의 출발을 한참 기다려야 했다. 너무도 출출하고 허탈하여
소주라도 한 잔 할까싶어 터미널 뒷길 식당을 들렸다. 그런데 이게
왠 떡인가! 그렇게 찿아 해맸던 막걸리가 그 식당에 있는 것이다.

텁텁하면서 짜릿한 막걸리를 들이키고 나니 기분도 새로워졌다.
그간 막걸리를 찿아 해멨던 이야기를 하면서 그토록 귀한 막걸리를
어떻게 이집에서만 취급하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별달리 흘린 이야기처럼
가끔 외지의 버스 승객이 들러 찿는 술이기에 먼 곳에서 가져다 두기는
하였지만 별로 찿는 사람이 없어 잘 나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막걸리를 찿는 사람은 거의가 서울손님들이라 알려준다. 이 지역이 아닌
먼 곳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맥주잔인 유리잔이지만, 어떻든 마시게 되어 다행이다.

“이곳은 도자기 생산지요 관광지임으로, 도자기 공장에서 버리는 뒤틀린
머그잔을 가져다 막걸리잔으로 사용하면서 눈에 뜨인 곳에 쌓아 놓으면,
막걸리도 더 팔리겠지만, 도자기 머그잔이 많이 팔릴 것“이라며 나는 식당
아줌마에게 권했던 기억도 새롭게 떠오른다.
나는 맥주 잔인 유리 잔으로 막걸리를 마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막걸리를 찿지 못한 곤욕을 몇 차례 겪으면서, 이후 나는 막걸리를
휴대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예 막걸리통을 넣은 가방을 기저귀가방처럼
갖고 다닌 것이다. 그 버릇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좀 무거운 것을 제외하면 참 여러가지 유용한 역할로 좋은 구실도 많은 것이
나의 막걸리 가방이다.

내 막걸리 가방은 언제 어디서도 거침없이 열린다. 여럿의 술자리에서도,
또는 술자리가 아닌 식사중이라도 분위기에 맞춰 꺼내 반주로 들기도 한다.
이 때의 분별력은 매우 중요하다. 주착 바가지의 애주가란 망신살이기 때문에
주착은 정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술과 늘 가까이 함께 지낸 내가 아직까지
별다른 대과없이 보낼수 있음을 늘 감사한다.

나의 막걸리 가방은 예삿 가방이 아니다. 그동안 나의 막걸리가방이
큰 일을 했다고 자평하며 나는 사실이 그렇타고 굳게 믿고 있다.
“막걸리보다 더 좋은 술이 있음 나와봐, 우리 술은 좋은 것이여!“
막걸리가방을 열 때마다 던진 나의 구호이다. 우리 술인 막걸리를
PR하는 전도자 역할을 수 십년 동안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요즘 막걸리의 인기가 열풍이라며 많이들 마시고 있다. 그것이 나와
우리가 아닌, 이웃 일본의 아가씨들로부터 불붙었다는 거북스럽고
씁쓸한 이야기도 있지만 어떻든 내가 좋와하는 우리 술이 확고하게
인정을 받아 열풍을 일으키고 있음은 흐뭇한 일이다.
막걸리는 정말 좋은 술이다.

오늘은 나의 막걸리 반세기 인연을 알리는 것으로, 막걸리 예찬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여러분의 많은 막걸리 애용을 바라며….

응답 2개

  1. bada말하길

    선배님
    저도 막걸리 가방을 본 기억이 있지만,
    그토록 애용하신 줄을 몰랐슴다.
    또한 막걸리 협회 홍보부장님이신 줄도 미쳐 몰랐어요^^*
    더위가 가기 전에 막걸리 한 잔 하시지요?

  2. 말하길

    하하, 선생님과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은 그 막걸리를 얻어 먹을 수 있는 기회까지 얻습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뭐든 한가지 사물에 깊은 애착을 갖는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그만큼 인생의 깊이가 깊어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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