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장애등급제로 삶의 여탈권을 행사하려는가?

- 박경석

1. 들어가며

장애등급심사에 떨고 있는 장애인들!
2010년 7월부터 장애인연금이 시행된다. 비록 대상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급여액은 실질적인 소득보장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그것조차 접근이 쉽지 않다. 기존 중증장애수당 대상자가 아닌 신규 해당자들은 장애등급심사를 받아 1급 또는 2급으로 재판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1급 장애인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는 본인이 신규 해당자라 하더라도 신청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칫 등급이 하락하는 날에는 활동보조가 중단될 테니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의 최대쟁점중 하나는 무상급식이었다. 야당과 진보정치세력이 보편적 무상급식을 전면에 내세우자 보수세력은 해묵은 색깔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포퓰리즘(populism)’이라 매도하기도 하고 엉뚱하게 ‘부자급식’을 들먹이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선거 며칠 전 “국민의 70~80%를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정책은 한정된 재원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며 노골적으로 무상급식 반대를 밝히기도 했다. 결국 6.2 지방선거는 이명박정권 심판과 보편적 무상급식의 승리로 끝났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 정부의 보편적 복지에 대한 태도이다. 현 정부가 무상급식에 대해 그토록 게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것은 단지 비용문제만이 아니라 그것이 갖는 ‘보편주의(universalism)’가 선별적 복지의 만리장성을 허물까 두려웠던 것이리라.

장애인복지는 더욱 심각하다. 지금의 장애등급심사는 복지제도 시행에 앞서 복지의 보편성을 제거하기 위해 장벽을 더욱 공고하게 쌓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엄중 수색하고 선별하는 형국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애등급심사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자 본질은 결코 등급판정에 대한 ‘의료적 형평성’ 여부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의도하는 바, 의료적 기준에 의한 장애등급으로 서비스 여탈을 결정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며, 장애인복지 시스템의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차별구조인 ‘장애등급제’가 강화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2. 장애등급심사의 현황

장애등급심사 확대
보건복지부는 2007년 4월부터 중증장애수당 신규신청자를 대상으로 장애등급 위탁심사를 진행하였고 2009년 10월부터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신규로 신청하는 1급 장애인에 대해 장애등급 위탁심사를 진행하였다. 2010년 1월부터는 신규로 1~3급 장애등록을 신청하는 경우에도 장애등급심사를 확대하였고 지난 4월에는 장애인복지법 및 시행규칙 등의 일부개정을 통해 장애등급심사를 국민연금공단에 위탁 운영하도록 하여 법적 근거도 정비되었다. 현재 신규로 장애등록을 하는 경우와 신규로 장애수당, 장애연금, 활동보조 등 사회서비스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장애등급심사를 반드시 받아야 하며, 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에는 2년 이상 서비스를 이용한 장애인도 장애등급심사를 받도록 지침이 개정되었으나 비용과 절차 등의 문제로 아직 실행되고 있지는 않은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는 1~6급 전체 장애인에게 등급심사를 확대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장애등급심사의 절차

위 도표와 같이 장애인등록신청자는 의료기관에서 발급받은 1~3급에 해당하는 장애진단서와 진료기록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하여야 하고, 국민연금공단의 장애등급심사센터에서는 제출한 서면자료를 가지고 기록의 일치여부와 장애등급 판정기준 부합여부를 검토하여 장애등급을 결정하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장애상태만을 진단하고 최종 장애등급부여는 국민연금공단에서 결정하는 방식의 제도개선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등급심사결과, 36.7%의 등급하락
지난 6월 17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7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총 92,817건의 장애등급심사 결과 장애등급이 유지된 경우는 60%이며, 상향조정된 경우는 고작 0.4%였고, 등급이 하향된 경우는 무려 36.7%인 34,064건이었다.

등급하락의 원인은 장애진단서와 진료기록지상의 장애상태가 상이(74.3%)하거나 장애등급 판정기준 미부합(14.0%)으로 법령에 맞지 않는 장애등급을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나 두 유형이 전체 사유의 88.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보건복지부는 이를 일선 의료기관에서 부여한 장애등급이 장애인복지법령에서 정한 장애등급판정 기준에 비하여 후하게 부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장애등급심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는 기존의 장애등급판정제도에 일관성과 형평성이 결여되어 있고 부적정한 장애판정 사례가 많아 복지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애등급심사는 장애등급판정 기준에 의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장애등급 부여로 장애인복지 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장애인복지를 지속적으로 확대・강화할 수 있는 기반 조성에 기여”한 것으로 자평하면서, “꼭 필요한 장애인이 좀 더 많은 서비스를 받게 하기 위하여는 장애등록제도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시행된 장애등급심사로 무려 36.7%의 장애인의 장애등급이 하향조정된 결과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는 무슨 대단한 허위와 부정을 적발이라도 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실제 전문브로커까지 동원된 허위장애진단 사건이 발생하는 등 소위 ‘가짜 장애인’의 존재는 보건복지부의 이러한 주장과 장애등급심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3. 장애등급심사가 폭로한 장애등급제의 문제점

장애등급제는 장애의 사회적 관계를 무시한 행정편의적 구조이다
장애등급제는 세계적으로 일본과 한국 등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서, 사회환경적 측면을 포함하여 장애인의 욕구를 파악하는 장애인복지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행정상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획일적으로 의료적 기준만으로 장애등급을 매기고, 그것을 낙인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차별적이고 전근대적 발상이다.

미국 켈리포니아주의 지역센터(Regional Center), 호주의 센터링크(Centerlink) 등의 통합적 전달체계 모델은 개인의 욕구와 환경에 기초하여 필요한 서비스를 사정(assessment)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는 개인별 지원프로그램이 그 핵심인데 반해, 한국의 장애인복지는 획일적 의료기준과 가구소득기준으로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1급은 되고 2급은 안되고, 기초생활수급자는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고 하는 따위의 선별적 복지, 그리고 개인의 삶의 환경과 욕구가 고려되지 않은 획일적 복지체계는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을 구조화하는 기계장치이다.

예산의 논리는 인권을 잠식한다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장애등급제, 정확히 말하자면 장애등급에 의한 ‘서비스 여탈’이라는 폭력적 시스템에 있다. 이 기계장치는 결국 예산에 의한 서비스 제한, 예산에 의한 권리제한을 위한 것임도 두말할 여지가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마땅히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장애인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는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의 권리를 철저히 부정하고 쥐꼬리만한 예산의 울타리 안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한국의 장애인복지는 장애인을 등급으로 분류하여 낙인을 찍어놓고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를 ‘효율성’과 ‘형평성’의 논리로 은폐해왔던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에 대해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장애등급과 가구소득기준에 의한 서비스제한은 정부가 장애인에 대하여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그것이 합리적인 것인 양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과 자립생활패러다임이 확산되고 장애인권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그에 걸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적 장애등급제를 강화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장애등급제 강화의 목적은 사회서비스에 대한 규제강화와 예산삭감이다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심사의 목적이 예산의 절감이 아닌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한 정당한 조치임을 주장하고 있다. 장애인연금의 경우 장애등급심사에서 탈락자가 많으면 예산 범위 내에서 지급대상을 확대하여 다른 장애인이 수급하도록 계획되어 있어 장애등급심사와 관계없이 총 예산이나 대상자수는 변동이 없다고 한다. 또한 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에도 전체 대상자를 3만명으로 정하고, 대기자 명단을 별도로 하여 65세 초과 등 기존 이용자 중에서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람이 생기면 순차적으로 대기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이러한 주장은 의도와는 달리, 장애등급심사가 장애인의 권리를 철저하게 예산의 범위내로 제한하고 규제하기 위한 방향임을 스스로 명확히 밝히고 있는 데다 당장의 예산절감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느라 중장기적 예산절감 효과를 위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스스로 중증장애인의 절대수를 줄여 장애인복지예산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를 부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장애등급심사, 아니 장애등급제의 강화가 진정 자신들의 주장대로 예산절감이 목적이 아니라면 즉각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인 복지를 시행하면 될 일이다.

장애인연금을 1,2급 장애인으로 제한하지 말고 장애로 인해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빈곤에 내몰린 모든 장애인에게 지급하고, 일상생활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면 될 일이다. 보편적 복지시스템 하에서 장애등급제는 애초에 실질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어 장애인에게 쓸데없는 낙인찍기임이 명백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뇌병변장애인의 인권은 어디에?
장애등급심사 확대시행에 앞서 2009년 10월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판정기준의 부분적 개정을 예고하고, 2010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장애등급판정기준을 적용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개정된 장애등급판정기준은 곧바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터무니없이 장애등급이 하락되어 사회서비스로부터 배제당하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보건복지부는 뇌병변장애인의 등급기준은 4급까지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일상생활 동작수행에 대부분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정도의 사람을 2급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활동보조서비스는 1급으로 제한하고 있어 2급 이하에 대해서는 정부가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개정된 등급기준에 의해 특히 뇌병변장애인의 등급하락 사례가 속출하고, 장애계는 물론 학계로부터도 비난이 커지자 보건복지부는 뇌병변장애등급기준의 개선책을 내어 놓았다. 그 내용은 보행이 불가능하거나 양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에 1급으로 판정하고 언어장애를 고려하는 정도의 내용이었는데, 이 역시 뇌병변장애인에게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하였다.

지난 6월 18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실시한 모의장애등급심사의 결과는 지금의 현실과 이후 벌어질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의로 시행해본 장애등급심사 결과 전체 23명의 뇌병변장애인 중 기존 장애등급이 유지된 경우는 6명에 불과하였고, 모두 1급에서 1급으로 유지된 경우였다. 나머지 17명은 평균 2.94계단씩 등급이 하락되는 극심한 하락률을 보였다. 이중에는 기존 1급에서 등급이 하락되어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된 경우도 4명이나 있었다. 즉, 1급장애인의 등급하락률은 40%이다. 이렇게 등급이 하락되어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길 위험에 처한 예비 피해자들의 현재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시간은 평균 월100시간이었고, 이들은 오히려 평균 월5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 확대를 희망하고 있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1급장애인에게만 신청자격을 부여하며, 인정조사표라는 별도의 조사를 통해 서비스 양을 판정하고 있다. 등급이 하락되어 서비스가 중단될 위험에 처한 예비 피해자들은 대부분 활동보조 필요도 조사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 나온 최중증장애인들인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활동보조서비스가 시행된 것은 1974년이었는데, 당시 대상자는 ‘전신성장애인’으로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위주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뇌병변장애인의 특수성과 욕구를 무시하고 ‘형평성’이라는 논리로 획일적 장애등급체계 속에서 역차별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제가 은폐하고 있는 것 – 활동보조서비스의 권리
장애등급제라는 차별적 기계장치를 걷어내고, 장애인이 어떤 사회적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지 살펴보자. 2008년 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는 전체 장애인중 14.5%인 약 35만명이 일상생활의 대부분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 뇌병변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등의 비율이 매우 높아 1급 뿐 아니라 2, 3급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상당수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장애등급제가 은폐하고 있는 것 – 기본소득의 권리
2009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819천원으로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2008년 기준 3,370천원)의 54.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애인 가구의 월 평균 소득분포를 보면, 50~99만원이 24.8%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100~149만원으로서 16.3%를 차지하고 있다. 50만원 미만이 12.3%로서 전체 장애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월 150만원 미만의 소득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의 68.5%가 현재 장애로 인하여 월평균 15만 9천원을 추가로 지출하고, 중증장애인의 경우 월평균 20만8천원을 추가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장애인들의 71.6%가 스스로 하층에 속한다고 응답하였다.

올해 7월부터 장애인연금제도가 시행된다. 그 액수의 문제를 차치한다 해도 고작 전체 장애인중 13%에만 해당되는 연금답지 않은 제도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경증장애인의 실업률이 7.7%로 국민 평균 3.3%의 두 배가 넘었고 경증과 중증장애인의 빈곤율 차이가 10%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1,2급 중증장애인으로만 연금대상을 제한하고, 고작 월수입 50만원의 기준액과 월최대 15만1천원의 연금지급액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 아닌 생색내기로밖에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약50만 명의 중증장애인 중 19만 명만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으로서 장애수당을 받았지만 연금제도가 시행되면, 전체 수급대상은 약32만5천명으로 늘어난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인구중 장애급여 수급자의 비율인 ‘장애급여 수급율’은 여전히 비참한 수준이다.

* 장애급여 수급율 : 전체 인구중 장애급여 수급자 비율
한국(2006년) 1.1%. 룩셈부르크(2005년) 17.1%, 영국(2004년) 7.0% 등.

장애등급제가 은폐하고 있는 것 – 장애인의 환경과 욕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장애인의 삶은 의학적 몸상태 뿐 아니라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예를 들어, 같은 시각장애 1급의 등록장애인이라도 점자와 흰 지팡이 등을 사용하여 일상활동을 하는 사람과 보조인이 없으면 거동조차 어려운 사람은 전혀 차원이 다른 서비스의 욕구를 가질 수 있다. 장애여성, 학령기 장애인, 탈시설인 등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 따라 서비스의 요구는 다를 수 있고 한 사람의 욕구도 변화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동안 한국의 장애인복지는 양적으로도 곤궁했을 뿐 아니라 그 전달방식 역시 행정중심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한 사람의 욕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파악하고 지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발달장애인에 대한 복지전달체계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개인의 욕구를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개인의 삶을 지원하는 선진적 복지체계의 구축이 아닌, 장애등급심사 강요는 자립생활패러다임에 역행하는 행정편의적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장애등급심사의 폭력 – 비용부담
장애등급심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장애인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장애인등록 진단비용에 대해서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신규로 등록하는 경우에 한해 발달장애는 4만원, 다른 장애는 1만 5천원이 지원되지만, 비수급자는 본인이 부담하도록 되어있고, 장애등급의 조정이나 재판정 등에 소요되는 진단비용은 모두 장애인의 부담으로 정하고 있다. CT, MRI, 근전도 검사 등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경우가 많고 보험적용도 되지 않아 장애인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 행정지침 개악의 피해를 장애인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심사의 폭력 – 심사기간 동안 서비스 자격제한
기존 등록장애인이 서비스를 신청해도 장애등급재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서비스 자격이 제한된다. 현재 1급 등록장애인이라면 활동보조서비스를 당연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함에도 신규로 서비스를 신청할 경우 장애등급심사를 통해 등급 재판정이 나올 때까지 기존의 장애등급이 인정되지 않고, 서비스 신청자격이 인정되지 않는다.
2~3개월의 기간이 소요되곤 하는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탈시설 장애인과 같이 긴급지원을 요하는 경우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꿈꾸던 장애인들에게 하루 한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적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일방적 행정지침으로 인해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의 꿈이 처참히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심사의 폭력 – 심사과정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공단이 노하우를 갖춘 공신력있는 조직이며, 직접 대면심사보다 장애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진료기록과 검사결과 등으로 보다 정확한 심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객관성과 형평성을 재고하겠다는 장애등급심사에 있어서도 그 집행과정에서의 문제점은 매우 심각했다. 일부심사 의사들의 판정이 높은 하향조정률을 보이는 등 등급심사의 객관성도 의심스러우며, 서류가 미비되었다는 이유로 자료보완이 아니라 등급하락을 결정한 사례는 애초에 등급하락을 목적으로 한 등급심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일선의 의료기관에서도 장애등급심사로 인한 혼란은 심각했다.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고,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어이없는 판정이 잇따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일선의 의사의 과실일 뿐이며 매뉴얼을 하달하여 객관성을 높이겠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는 ‘대소변 조절’의 정도와 ‘양팔기능 손상’의 정도 등을 둘러싸고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4. 장애등급심사의 피해사례

1) 제주도에 거주하는 33세 뇌성마비 1급 장애여성 Y00씨

– 피해자는 2007년부터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해오다, 월60시간의 서비스로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서비스시간 재판정을 신청하였음.
– 복지부는 서비스시간 재판정을 위해서는 장애등급심사를 받을 것을 강요하였고, 장애등급심사 결과 2010년 3월에 장애등급 2급으로 하락되어 활동보조가 4월부터 중단되게 됨.
– 피해자가 복지부홈페이지에 남긴 글에는 “저는 대소변을 가리고, 밥을 입으로 씹어 먹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안되고, 앉아있기는 하지만 걸을 수 없고, 도움 없이는 이동조차 못하는 중증장애인”이라며 “중증장애인들은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도 없단 말입니까”라고 억울함을 토로함.
– 피해자는 보행, 식사, 화장실, 신변처리 등의 기본적 일상생활에도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임. 장애등급심사 과정에서는 보조인이 2인 이상 필요한지, 용변을 조절할 수 있는지, 음식을 튜브로 먹는지 등 어이없는 기준을 제시하였음.
– 피해자가 이의신청을 하고, 피해자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자 장애등급심사센터에서는 재심을 통해 장애등급 1등급 판정을 다시 내려 사태는 일단락이 됨. 복지부에서는 장애등급판정기준을 오해한 의사의 개인적 과실이라는 입장.

2) 인천시에 거주하는 43세 뇌성마비 1급 장애여성 C00씨

– 1급장애인인 피해자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여 자립적으로 살기 위해 활동보조를 신청하였고, 장애등급심사를 강요받게 됨.
– 장애등급심사 결과 2급으로 장애등급이 하락함에 따라 활동보조 신청자격을 상실함.
– 피해자는 전신성 뇌성마비장애인으로 보행이 가능하지만,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어 일상생활에 많은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임.

3) 대구시에 거주하는 10세 뇌성마비 1급 장애아동 K00군과 D00군

– 대구시에 거주하는 장애아동 K군과 D군은 각각 월6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여 외출과 학습 등에 도움을 받았으나 장애등급심사 결과 2급으로 하락되어 활동보조 중단됨.
– K군의 경우 보행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2급으로 판정되었으나, 학교에서도 보조교사가 반드시 필요한 중증장애아동으로 최근 활동보조인이 없는 상태에서 학교 친구들에게 밀려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함.
– D군은 보행을 못하며 항상 옆에 보조인이 필요한 중증장애아동이나, 4월부터 활동보조 중단됨.

4) 대구시에 거주하는 52세 중복장애남성 H00씨

– 피해자는 중복장애 1급(지체장애3급, 정신장애2급)으로 2008년부터 월6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여 살아왔으나, 장애등급심사 결과 등급이 하락되어 2010년 4월부터 활동보조가 중단됨.
–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되어 병원에서 매월 약을 타는 일도 어렵고 사회생활을 전혀 못하고 있는 상황임.

5) 전남 여수시에 거주하는 지체장애 1급 장애남성 P씨

– 피해자는 2007년부터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해오다, 최근 몸상태가 악화되어 자주 병원에 가야하는 등 월120시간의 서비스로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서비스시간 재판정을 신청하였음.
– 복지부는 서비스시간 재판정을 위해서는 장애등급심사를 받을 것을 강요하여,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음. 피해자는 기초생활수급자임에도 장애재판정 검사비용은 보험적용도 되지 않아 9만원 이상의 비용을 부담하였음.
– 피해자는 하지기능장애로 제5-6 경추골절 및 경수손상. 2개월에 걸친 장애등급심사 과정에서 MRI, 휠체어에 앉은 사진 등 자료 보완.
– 피해자는 3월 중순에 신청하였으나, 5월 28일자로 장애등급 2급으로 재판정 통고.
– 6월 8일. 피해자의 장애등급 하락문제로 국민연금공단 광주지사앞 항의 기자회견과 항의 방문 진행. 광주MBC 등 언론에 보도됨.
– 6월 9일 피해자가 서울의 장애등급심사센터 본사에 방문하여, 이의신청 제기하고, 경위파악과 사과요청 진행.
– 장애등급심사센터에서는 피해자가 받은 근력테스트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 피해자가 근력테스트를 받은 병원은 근력테스트 기관도 아니며, 그 조사도 근력테스트가 아닌 말초신경 테스트라고 함. 피해자는 근전도검사가 필요한데, 근전도 검사결과가 없어서 2급으로 판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함.
– 피해자는 이러한 경위와 자료보완의 기회를 장애인당사자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2급으로 판정을 한 부분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며 사과를 요청하였으나, 장애등급심사센터는 사과요구를 거부하고, 판정 결과에 불만이 있으면 이의신청을 하라는 형식적 답변만 거듭함.
– 장애인에게 제대로 공지를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광주지사로 사과를 받고, 이의신청을 하고, SEP검사(체성감각유발전위검사)를 받음. SEP검사는 약10만원이 소요됨.
– 이후 장애등급심사센터로부터 1급판정을 받아 사건은 일단락이 됨.

6) 경기도 양주시에 거주하는 중복, 희귀난치성 장애남성 G씨

– 피해자는 선천성할로우5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성 심장장애와 지체장애, 척추협착증을 가지고 있는 중복장애인임. 심장장애2급, 지체장애4급으로 등록되어 있었음.
– 2009년 5월, 면사무소에서 장애등급심사를 해야한다고 하여, 총액으로 수백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관련 서류를 직접 제출하였음.
– 장애등급심사 결과 희귀난치성장애는 장애등급심사에 관련 기준이 없다며 심장장애는 등급외 판정을 받고, 지체장애4급만 판정됨.
– 피해자는 그동안 중증장애인으로서 국가 및 지자체로부터 월17만원의 장애수당을 받아왔으나, 장애등급심사결과 장애등급이 4급으로 하락됨에 따라 장애수당이 월3만원으로 하락되어 심각한 생활의 불편을 겪고 있음.
– 장애인연금 및 수당은 노동의 기회상실과 사회적추가비용의 보전이라는 목적, 그리고 활동보조서비스는 거동이 불편한 부분을 지원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정부는 행정기준을 우선시하여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하고, 소득보장이 필요한 장애인의 현실을 무시하고 있음.
– 피해자는 지난 2월에 심장장애로 인해 갑작스런 뇌졸중까지 더해져 현재는 일상생활 거동에도 불편을 겪고 있는 상황임. 새롭게 장애등급을 받으려할 경우에도 장애등급심사 강요로 인한 비용과 기간의 문제, 그리고 희귀난치성장애에 대한 기준의 문제 등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임.

7) 서울시에 거주하는 뇌병변 장애남성 K씨

– 피해자는 현재 뇌병변 2급으로 등록된 장애인.
– 식사, 대소변, 위생, 옷입기, 이동 등 일상생활 모든 면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1급으로 판정받아 활동보조를 받고자 하였으나, 장애등급심사 결과 2급이 됨.
– 현재 동사무소를 통해 무료도우미서비스를 1주일에 3일 받고, 나머지는 유료로 사람을 구해 도움을 받고 있음.
– 바델지수 기준으로는 1급이 나오기 어려운 상태이나 활동보조서비스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임.

응답 3개

  1. 이야기캐는광부말하길

    장애인 등급제도 안에 담긴 진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심각한 문제이군요. 잘못된 제도때문에 피해자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ㅜ

  2. 코난말하길

    ‘장애인에 대한 보편적 권리’가 아닌 ‘예산에 따른 권리’가 등급제에 의해 벌어지고 있군요!! 이런!!

  3.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NeXT, NeXT and JUHWANKIM(김주환), claudine. claudine said: [ weekly 수유너머 ] 선별적 복지, 그리고 개인의 삶의 환경과 욕구가 고려되지않은 획일적복지체계…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장애등급제, 정확히말하자면 장애등급에 의한 ‘서비스 여탈’이라는 폭력적시스템 http://suyunomo.jinbo.net/?p=5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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