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웃기는 정권의 ‘공정한 사회’

- 이진경

나는 맑스주의자라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만큼, 부르주아지들의 계급적이고 편파적인 사고나 행동에도 사실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부르주아지가 계급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야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들의 당파성과 계급성을 인정해주고 시작해도, 도대체 이놈의 정권은 웃음 없이는 신문을 읽을 수가 없게 한다. 아무리 계급적이고 당파적이라고 해도, 그런 계급적 기준에 따라 자기들이 만들고 지키라고 요구하는 법이나 규칙 정도는 자기들도 따르거나, 정 안되겠으면 따르는 시늉이라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정권은 다르다. 자신의 당파적 관점을 넘어서 파당적 입장을 여러 가지 대조의 수사학을 통해 극명화함으로써 자신의 계급적 관점마저 해체하고 전복하는 해체적 유머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음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웃기는 정권’이다.

10년 동안 못 챙겨먹은 이권 챙겨먹기로 작정한 거야 이미 공공연한 거지만, 정권 초기도 아니고 이미 후반기도 한참 지난 마당인데도 아직도 멀쩡한 자리 빼앗아 제 식구 챙겨 멕이는 짓이 끝도 없다. ‘영포회’인지 뭔지 그 엄청난 수의 회원들 모두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이권을 챙길 때까지 계속하려는 모양이다. 알고 보니 그것도 유머를 위한 것이었다: 이 정권 문앞에 한 자리 얻으려고 줄을 섰다 들어간 사람이 지금까지 3킬로미터쯤 되는데, 아직 10킬로미터가 더 남았다는…^-^ 이처럼 이권을 배분하며 권력을 행사하던 정권 실세란 분은 다시 유머를 위해 때 아닌 민간인 사찰을 하다가 급기야 그 사찰을 여당 내부로까지 돌림으로써, 자기 꼬리를 먹어들어가는 뱀처럼 약간은 유치한 유머를 구사한다. 운이 없어 불법사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지만, 이걸 받은 검찰도 예전처럼 그저 엄숙한 표정만 짓고 있는 썰렁한 존재가 아니다. 차일피일 미루며 증거파기의 시간을 기다리다 “역시나, 여러분들 예상하셨듯이 하드디스크를 다 파괴해서 증거자료로 추정될 만한 것은 다 지워졌다”면서 예상된 대사를 하여, 우리를 실망케 한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지원관실의 온전한 파일을 검찰이 사실은 확보해서 모두 열람했다는 증언을 뒤에 배치하고, 그 증언의 효과를 확실히 하기 위해 그 증거자료를 야당 국회의원에게 넘겨주는 반전을 통해 유머의 새로운 단계로 비약한다. 검찰의 연기는 여기서 우리의 안이한 통념을 깬다. 우리는 기껏해야 증거인멸을 방조하는 것 정도 밖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용의자를 대신해 증거를 인멸하고 무효화해준 것이다!

하긴 이 분들은 지난 용산 사건 때, 재판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조사한 기록마저 대량으로 꼬불치고 철거민들을 기소하여 턱도 없는 형을 구형했던 분덜이다. 법관의 명령을 법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정면에서 까고 반박하는 것, 이것만큼 법을 웃음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이는 사실 유머보다는 반어의 방법이긴 하다. 법을 지나치게 잘 지키는 것이 우스운 결과에 도달하는 것을 통해 법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유머’의 방법이라면, 이처럼 법을 엄격히 지킨다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위반하고 반박하는 것은 법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반어적인 테크닉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법을 안 지키면 엄벌하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처럼 유머 없는 고지식함도 없다 할 것이다. 이런 유머의 감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 같은 범법행위 없이는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지만, 그와 동시에 수천명의 국민들은 위장전입으로 처벌한 현 정권의 정책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회적 약자에게만 준법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법치주의가 아니다”라는 법제처장의 쓴소리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현 정권의 유머는 총체적이다. 발표를 기다렸다는 듯, 아니 기다리지도 않은 듯, 대통령이란 분은 바로 그날 박영준을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임명했다. 헉, 서…설마 그렇게까지 법을 우습게 만들 줄은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으로 부족했다 싶었는지, ‘왕차관이란 말을 이용해 나중에 한 마디 덧붙인다: “왕씨 차관이 어딨노, 내는 그런 넘 임명한 적 읍다. 일 열쉬미 하면 실세지.” 푸하하!! 그 말은 맞다. 자리와 이권을 나눠주는 일 열심히 하는 넘이 실세라는 건 틀림없으니까. 유머와 진실이 적절해 배합된 절묘한 한 마디였다고 할 것이다. 사고 친 분이나, 조사한 분이나, 그걸 영전시켜 격려하는 분이나, 장단도 잘 맞고 궁합도 잘 맞는다. 다만 너무 노골적이고 뻔뻔스러워 재미보다는 쉬 염증이 난다는 게 아쉽다.

판사들도 그에 질세라 유머의 대열에 동참한다. 같은 날, 용산 사건 관련으로 기소된 전철연 남경남 의장에게 7년이란 중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검사는 9년을 구형했다는데, 이거야 ‘법치주의’ 유머의 일종임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런데 대개 이 정도 구형하면 “5년은 때리란 말인가 보다”고 예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선고한 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김용대 부장판사)는 그 예상을 뒤집고 7년이나 선고했다. 그러나 이것이 유머이길 이해하려면 선고의 이유를 들어보아야 한다. 중형을 구형하고 선고하고 한 것은 전철연의 지역 철거대책위에서 벌인 ‘죄’가 전부 의장의 책임이라는 이유에서였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 철거대책위와의 관계는 수평적이라서 중앙이 결정하지 않는다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조직에 관련된 모든 일을 ‘중앙’의 의장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랫것들의 잘못이나 죄, 불법행위에 대해 윗선이나 ‘몸통’의 책임을 묻지 않는 이 정권의 행태에 대해 풍자하기 위한 것임을 모른다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단지 유머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판결에 따라 수평적 조직은 물론 결코 수평적이라고 할 수 없는 권력자들의 비리에 대해 이런 식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아마 공무원들 세계에 비리는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판사는 자신의 유머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약간 걱정했던 것 같다. 그래서 7년을 선고하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피고가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고난의 시간을 보낸 것을 알고 있다….개인적으로 피고인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도심내 재건축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인 철거대상 세입자들이 반강제로 이주하고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것의 개선을 주장하는 피고인의 주장은 경청할만하다.”

이런 유머가 개별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판사들이 재판에서 구사하는 문학적 유머의 또 다른 사례를 우리는 같은 날 신문에서 발견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김우진 부장판사)는 골프장 대표에게 돈을 받았다는 한나라 현경병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돈을 달라 해서 받았지만 차용증서는 없었고, 1억이란 거금을 계좌이체도 아닌 현금상자로 받았으며, 재산신고 때도 채무로 신고하지 않았고, 준 사람은 “이자나 변제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불법정치자금이나 뇌물임이 분명해 보일 이 돈에 대해, 이 판사님은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정치자금이나 뇌물로 오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이라고 해석하면서 통념에 반해 채무로 봐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당혹스런 유머를 구사한다. 판사와 변호사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발생하는 ‘치환’의 기술을 통해 판사와 변호사의 구별불가능성을 드러내는 해체주의적 유머.

한편 이포보 농성자들에 대해 서치라이트와 사이렌 소리로 끊임없이 피곤하게 하고 수면을 방해하는 한 경찰의 치졸한 방해공작은 유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쫌스럽고 짜증나는 것이었지만, 이런 조치를 중지시켜줄 것을 요구한 것에 대해 “긴급구제조치가 필요없다”고 했던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현정권의 유머정책에 비추어 일관성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러한 결론이 경찰이 내린 것이라면 통념에 비추어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인권위가 그런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을 거의 없었을 것이기에, 그리고 별 것도 아닌 일에 대해서조차 ‘인권위’라는 이름에 반하는 방식의 반어를 구사한 것이란 점에서 수준있는 유머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모처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결정된 안동 하회마을에 대한 우려나, 문화재 가득한 공주 부여 지역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유적 가치 떨어지면 개발 가능”하다고, “유적 유구의 가치가 주민생활 안전 보호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면 조사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고 응수했던 문화재청의 유머지수 또한 남다른 것이었음을 빠뜨려선 안될 것 같다.

이 모든 유머는 단순히 웃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개그가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은 법적용이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통념이나 통치자의 행위를 일반 대중의 평균적인 행위와 동일시하는 형식적 통념에 대한 비판 속에서 계급적 당파성을 확고하게 각인시키려는 명확한 주제를 갖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오해할까 두려웠던 것일까? 이명박은 8.15 사면을 하면서 비리정치인이나 선거사범, 경제사범은 전원 풀어주면서 촛불이나 용산, 파업과 관련된 사람은 단 한명도 풀어주지 않았다. “비리 기업인들의 광복절”이라는 한 신문기사의 카피는 이를 잘 요약해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하면 잡아넣은 운동권 인사들을 반복해서 풀어주던 전두환 정권의 사면정책은 뜻밖에도 평균적인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이 모든 유머의 총괄은 이 8.15 경축사에서 했던 이명박의 경축사다. 이토록 웃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위신이나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쥐덫에 치이게 되는 것조차 무릅썼던 대통령이, 전체 연설의 열쇳말로 ‘공정한 사회’라는 말을 깃발에 적어 넣었단 얘기를 듣고 웃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이는 공정성에 대한 통념을 뒤집어,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대우받고 법 또한 공정하게 적용되리라고 하는 통념을 완전히 해체하면서, 공정한 사회란 법을 어겨도 되는 자와 어겨선 안 되는 자가 공존하는 사회로 재정의하는, 정말로 웃기는 유머러스한 개념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제 그것은 파당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절대로 쓸 수 없는 새로운 단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웃자. 웃길 때마다 웃자. 그러면 이 짜증나고 경멸스런 정권의 시간도 웃으며 통과할 수 있을 게다. 그러나 웃으면서, 웃을 때마다 잊지 말고 생각하자: 이 웃음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응답 3개

  1. 정중규말하길

    웃기는 정권을 눈 앞에 두고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까닭은 그들의 그 ‘웃기는 짓’이 우리의 삶을 할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정권 아래 서민들의 삶은 한없이 아픕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Moosung Kim, HEEKYUNG KIM and eunseon park, Young-Choon, Ahn. Young-Choon, Ahn said: 유머는 고통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나와 똑같은 상처를 입었던 그녀가 말한 적이 있다. 오늘 타임라인도 웃음으로 이겨내야 할 세상 얘기로 가득하구나. 이진경 선생의 심오한 메타 유머가 오늘 힘이 된다. http://j.mp/a2Uu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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