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4

- 김융희

결실을 위한 준비

올여름 무더위를 한고비 넘기는 어제는 처서였다.

기상대 일기예보에서도 처섯날은 많은 비와 함께 지금껏 기승을 부린 늦더위도 한풀 껶이겠다고 했다.

계절의 질서는 어김없다 했더니, 비는 틀림없이 많이 내렸지만 더위는 여전이다.

처서는 농사꾼에게 의미있는 중요한 절기이다.

이 날을 중심으로 가을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겨울 준비로 가을이면 꼭

해야할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것은 김장이다. 그 김장용 무, 배추는 처서를 두고

전, 후 5일을 기준하여 심는다. 또한 씨를 뿌리는 일은 이것으로 마지막 끝내기가

되는 것이다.

나도 어제는 종일 비를 맞아가면서 무, 배추를 심었다.

세찬 비를 맞으며 음습의 무더위로 짜증을 무릅쓰며 땀을 흠뻑 흘렸다.

농작물은 비에 약하지만 우중에 잡초는 제 세상이라 날뛰며 무성하다.

그런 비가 두 달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제초제를 쓰지 않는

우리 집 잡초는 올여름내내 줄곧 신나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

지금 무, 배추를 심는 곳도 내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기계를 불러 두 번이나 갈아 엎고 노타리(두둑)를 쳤지만, 아직도 흙속의

무성한 잡풀이 기세를 부려 차양비닐을 덮는 일에 계속 저항을 하고 있다.

그리 넓지 않는 공간을 이런 저런 장애물들로 일의 진척은 지지부진하여

하루는 더 땀을 흘려야 할 것 같다.

우중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던 나비들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칠 팔 마리는 된 듯 싶은데, 마치 안식처가 마련되어 신난다는 듯

경사처럼 맴돌며 날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지금,

결코 반갑지 않는 불청객으로 벌써부터 그들에 대한 걱정에 착잡한

마음이다. 파아란 배추잎에 펑펑 구멍을 내며 고사시키는 배추벌레가

저놈의 나비알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국지성 폭우, 햇빛이 나다가도 갑자기 구름이 덮치며 쏟아덴 장대비이다.

무더위에 습도로 숨막힐 듯 후덮지근한 날씨가 짜증스럽다. 땀을 흘려도

작업은 진척되지 않는데, 벌써부터 배추벌레를 알리는 나비들이 계속

주위를 맴돌고 있다. 장대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며 금방 햇빛이 쨍이다.

평소라면 반가울 햇빛이지만 나를 약올린것만 같아 오늘은 오히려 얄밉다.

줄곧 쭈그리고 앉았다가 일어서서 허리를 편다.

돌배나무 가지에 새가 날아와 앉는다. 비들긴가 했더니 수꿍새이다.

금새 수꿍 숫꿍하고 울어덴다. 우는 소리가 아닌 노랫소리이이라 생각된다.

좀체 접근을 삼가며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수꿍새가 가까이서 울어데니 고마웠다.

이런 일들로 나는 자연이 좋와 늘 그 곳에 다가가며 더불어 함께 살고있는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햇빛으로 산빛이 더욱 푸르고 상쾌하다.

평온하고 푸른 들판에 미풍이 살랑거리며 불어온다. 막힌 숨통이 트인다.

웃자란 코스모스를 보니 머지않아 꽃이 피어 하늘거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코스모스에 이어 남몰래 피었다 지는 작은 들국화의 은은한

아름다움도 기대된다. 결실의 가을을 알리는 밤송이도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짜증을 멀리 한 채, 여러 가을의 향연에 나는 홈뻑 도취되 있으려니,

고마운 쑤꿍새는 노래를 멈춰 떠나갔고 다시 구름이 햇빛을 가리우며

다가오고 있다. 나도 다시 주저 앉아 작업을 계속한다.

조그만 여린 싻이 잘 자라서 노오랗게 알이 꽉찬 탐스런 통배추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한 번이라도 더 도닥거리면서 흐르는 땀을 씻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읽찍부터 시작된 작업, 일이 계속되어야 하는데

더 급한 일이 있다. 벌써 보냈어야 할 원고를 지금에야 써서 보내야겠다.

그러고 보니 택배용으로 따아둔 고추등, 작물이 며칠 째 그데로 놓여있다.

역한 냄새가 벌써 상해서 못먹게 되었나 보다. 이처럼 손길이 못미쳐서

버렷던 것도 벌써 몇차례이다. 따아주지 않아 열린 채 덩굴에서 상해버린 고추,

오이, 호박등.

이런 꼴이라면 심기를 위해 땀흘려 고생하며 뭐하러 그리 애쓰는 걸까?

어차피 소득이 아닌 나 홀로 먹거리를 위해서라면 훨씬 줄여도 될텐데….

그러나 아무리 홀로 먹거리로는 많다해도, 남아 버린다해도….

글쎄, 잡초가 만발한, 작물이 없는 빈 장포를 어찌 바라볼 수 있으며,

이토록 긴 여름을 생각난 정다운 이들에게 무엇으로 소식을 전하며

관계를 이어간단 말인가? 땀흘려 애쓰는 결과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대충의 농사 소식을 이렇게 전함으로 원고를 마치고, 또 빨리 장포에 내려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오늘은 두둑을 만들고 정리해

무우씨를 심어야 한다. 겨울철 추운 긴 밤을 잘 갈무리해 둔, 달고 부드러운

무우를 꺼내어 깍아 먹을 것을 생각하니 공연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의 조급으로 설치는 불안이 여러분에게는 미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설픈 농사꾼의 경망의 수다에도 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라며, 들꽃마을에서

응답 1개

  1. 아이자말하길

    여강 선생님

    자연과 함께하는 몸과 마음

    절기따라 씨 뿌리고 거두는 일
    고온다습의 여름속에
    가을 겨울을 준비하는 손길

    건강도 살피시며,
    밭이랑 넘나드시기를

    멀리서 두 손 입에대고 화이팅 합니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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