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가면형 우울증: 억압된 분노의 행방

- 황진미

구원을 둘러싼 종교와 윤리의 모순을 그린 영화 <밀양>, 세련된 화면 속에 도시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핸드폰 분실을 계기로 촉발되는 두 남자의 극한 대립을 그린 스릴러 <핸드폰>. 주제는 물론 줄거리, 장르, 화면 질감, 작품성 등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세 영화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한 가지 공통점은 가면형 우울증, 일명 ‘스마일 마스크 신드롬’을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 <밀양>의 그녀, 가면형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성격의 소유자

<밀양>의 신애(전도연)는 남편과 사별 후 아들과 함께 밀양으로 내려온다. 밀양은 남편의 고향이었지 그녀와는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지만, 그녀는 남편을 추억한다는 듯 그곳에 정착하려 한다. 하지만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했던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바람을 피웠고,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과부가 되어, 가진 돈도 없이 낯선 곳에 정착해야 하는 곤궁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친동생에게까지 “남편은 나를 사랑했다” 거짓말을 하고, 이웃에겐 “나, 불행한 사람 아니다”고 정색을 하며, 큰 유산이라도 받은 양 “좋은 땅이 있으면 사겠다”고 허풍을 떤다. 이는 물론 업신여김을 당할까봐 자기방어 차원에서 그리하는 것이다. 유복한 싱글 맘 인양 과시하며 동네사람들과 신나게 놀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아들이 유괴되었다는 협박전화를 받는다. 끝내 아들은 살해되고 그녀는 부서질 듯 위태롭지만, 다시금 그녀의 ‘불행을 부인(否認)하고 행복을 가장(假裝)하는 허세’가 발동한다. 그녀는 주님의 영접으로 인간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용서를 해낸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녀는 정말 성령이 임한 사람처럼, 믿을 수 없을 만치 화사한 미소로 주님의 은총을 찬양한다. 하지만 그것도 스스로 믿고 싶은 자신이었을 뿐, 혼자 집에 돌아와 캄캄한 부엌, 씽크대에 서서 밥을 우겨넣는 그녀는 여전히 목이 메는 상태였다. 그녀가 자신의 용서를 확신시키고자 면회를 갔을 때, 그녀는 다시 한번 무너진다. 유괴범이 이미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에 그만 정신을 놓아버리고 그녀는 실성한다.

그녀가 남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불행하지 않은 여자’였다면, 굳이 돈이 있는 양 허세를 떨 필요도 없고, 그랬다면 아들도 유괴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아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죄인을 용서한 신자’였다면, 유괴범이 자신의 용서와는 무관하게 주님의 용서를 얻었다는 것에 그토록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불행과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아닌 듯, 괜찮은 듯, 자신은 그 정도 고통도 더 높은 인격으로 극복이 가능한 듯, ‘쎈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불행을 직면하기가 두려웠고, 자신의 분노를 어떻게 발산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살인범을 만났는데도 드잡이 질을 하긴 커녕 무서워 눈길을 피하고, 장례식 장에서 시어머니가 부당한 비난을 퍼붓는데도 망연자실 듣고만 있었다. 그녀는 감정을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상처받은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도덕, 교양, 당위, 위신, 고상함 등에 의해 억압되어 있었다. 사랑받는 아내, 행복한 여자, 교양 있는 중산층, 죄인을 용서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적절하게 분노를 터뜨리고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누르고 누르다가 드디어 하느님에게 화를 내고, 하느님에게 복수하는 심정이 되어, 간통을 저지르고 자살을 시도하고 미쳐버린다.

<밀양>의 그녀는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영혼을 지녔다. 지극히 현실타협적인 송강호 캐릭터와 극적으로 대비되어, 그녀는 이상주의적이고 결벽적인 인격이 빠지기 쉬운 오류를 잘 보여준다. 그녀처럼 어떤 이상적인 자아상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고, 자신의 본성을 뛰어넘는 도덕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며, 현실의 불행을 부인하고 행복한 듯 가장하며 사는 사람은 ‘가면형 우울증(스마일 마스크 신드롬)’에 걸리기 쉽다. 이 증후군은 일종의 우울증으로, 겉보기엔 우울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스마일’가면을 쓴 듯 웃으며 생활하기 때문에 남들은 물론 자기 자신도 우울증인줄 모른다. 증상은 주로 여기저기가 아프거나 소화불량, 식욕부진, 두통, 불면증, 전신무력감 등의 신체화 반응이 주로 나타난다. 이런 환자들은 주로 내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등을 다니면서 호르몬 검사, 내시경 검사를 비롯해 이런저런 검사를 하지만 특별한 이상을 찾을 수 없는데, 심리 검사나 상담을 해보면 자존감이 낮고, 자책, 후회, 절망 등이 가득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그녀, 가면형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작업 환경

<밀양>의 신애(전도연)가 가면형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개인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예라면,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유나(엄정화)는 가면형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직업적 상태를 잘 보여준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청담동과 홍콩의 야경을 배경으로 엄정화, 박용우, 한채영, 이동건 등 ‘때깔 좋은’ 배우들이 펼치는 볼거리 가득한 로맨틱 코미디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직 볼거리에만 치중하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꽤 심각한 갈등을 보여주는데, 부부동반 모임에서 알게 된 두 커플이 다른 쪽 배우자와 사랑에 빠져, 결과적으로 ‘스와핑(부부교환)’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서로 알게 되는지 조마조마하여 보는 이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상류사회의 부부 ‘한채영-이동건’ 커플은 처음부터 썰렁한 관계이지만, ‘엄정화-박용우’ 부부는 애정이 넘치는 부부였다. 다만 그들은 호텔리어와 패션컨설턴트라는 겉으론 화려한 듯 보이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쪼들리는데다가 시댁과 친정의 짐까지 짊어져야 하는 고충이 있다. 특히 엄정화의 입장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그녀는 상류층 고객을 상대로 그들에게 맞는 스타일의 옷을 골라주는 일을 하는데, 고객들과 대비되어 그녀의 상대적 빈곤감은 더욱 커진다. 그녀는 자신이 파는 옷의 ‘샘플’을 입고 다니며, 비가 오면 젖을까봐 오히려 옷을 벗어야 한다. 그녀는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도 않는다. 사적인 만남도 고객접대의 차원이다. 처음 부부동반 모임에 나간 것도 이동건과 안면을 트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깍듯한 예의와 세련된 매너에 영어 섞인 말을 구사한다. 이는 물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 수단이기도 하지만, 마치 배우가 된 듯 자신의 언어(모국어, 일상어)가 아닌 업무상의 말을 대사처럼 읊조리며, 최대한 자신의 업무를 자아와 분리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고객인 이동건이 번번이 자신을 무시하는 걸 겨우 참았던 그녀가 우연히 만난 사적인 자리에서 이동건이 자신의 영어 쓰는 버릇을 공격하자 화가 치민다. 그녀가 그에게 갖는 감정은 이중적이었다. “젊은 놈이 부모 잘 만나” 높은 자리에 있다고 고깝게 보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의 거만한 행동이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자신이나 남편과 대비되어 부럽고 멋지다고 선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언제나 고객에게 최고의 친절로 응대해 온 감정노동의 스트레스에 그를 향한 이중적 감정이 객기를 불러일으켜 급기야 대형 사고를 치기에 이른다.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서비스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노동의 강도와 피로감이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느껴진다. 고객이 아무리 ‘밥맛’이라도 자기 자신의 감정은 없는 듯 매뉴얼대로 행동하며, 자존심이 짓밟히는 상황에서도 연극하듯 대답한다. 수많은 서비스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분열 직전 상황까지 자신을 몰아넣는다. 세일즈맨, 텔레 마케터, 백화점 매장 직원 등 고객응대의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감정과 분리된 가면 같은 웃는 얼굴로 고객을 대하다가, 사소한 일에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급격한 감정상태에 빠지거나, 반대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고 그저 사람이 싫고 말이 싫고 웃는 게 싫을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심하면 자살까지 하는 사례들이 보고 되고 있다.

3. <핸드폰>의 그들, 감정노동으로 황폐해진 영혼들

<핸드폰>은 감정노동 종사자의 황폐해진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매니저부터 시작해 연예기획사 대표가 된 승민(엄태웅)은 사채 빚에 시달리면서도 방송PD에게 연일 술 접대를 해가며, 신인 여배우를 스타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여배우가 거액의 CF촬영을 앞두고 섹스동영상을 첨부파일로 보내며 협박전화가 걸려오는데, 그는 그만 실수로 핸드폰을 잃어버린다. 거래처 등 사업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데다 더구나 공개되면 끝장인 섹스동영상이 저장되어 있으니, 승민은 핸드폰을 빨리 찾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핸드폰을 주은 사람은 그에게 전화예절이 없다고 나무라는가 하면, 자신이 지목하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핸드폰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상대의 급한 마음을 이용해 남에게 폭력을 사주하는 이 변태 사이코는 누구인가? 대형마트에서 매장관리 일을 하며 어머니 병원비를 걱정하는 이규(박용우)이다. 그는 매일 막말을 퍼부으며 억지요구를 해대는 손님들에게 ‘죄송합니다, 고객님’하며 머리를 조아리며, 서비스의 이름으로 굴욕감을 참아낸다. 이른바 ‘감정노동자’로서 영혼을 착취당한 그는 자신이 익명의 존재이자 관계의 우위에 놓이는 순간 가학적으로 돌변하여, 그동안 자신에게 폭언을 퍼붓던 고객 등에게 승민을 통해 앙갚음을 하려한다. 처음엔 무심코 거만하게 전화를 걸던 승민도 상대가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자 특유의 접대기질을 발휘하며 최대한 그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핸드폰을 돌려받고자 한다. 그런데 섹스동영상이 유포되자 분노가 폭발한 그는 이규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의 녹음된 음성을 조작해 인터넷 고객게시판에 올려 해고시켜버린다. 충성을 다한 직장에서 짤리고 어머니도 돌아가시자 자포자기가 된 그는 승민의 아내를 붙잡는다.

영화는 감정노동으로 황폐해진 한 사이코에 의한 가정의 파괴를 그리는 게 아니다. 승민 부부는 이미 금이 가고 있었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한 승민은 상대남자에게 청부폭력을 행하고, 아내가 임신한 것을 알자 격분해서 제 손으로 아내를 죽인다. 집은 불타고, 아내의 죽음은 ‘미친 사이코’ 침입자에 의한 것으로 해결되지만, 뒤늦게 태아가 자신의 아이인 것을 안 승민은 오열한다. 직접소통의 도구인 핸드폰이 손에 들려있지만, 정작 부부 사이에도 소통이 부재하여 제 자식을 밴 것도 모르고 죽여 버리는 역설을 통해,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며, 첨단의 도구는 오히려 소통의 장애가 되어버리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핸드폰>에서 황폐해진 감정노동자는 이규뿐 아니라, 승민이기도 하다. 기획사 대표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뿐, 사채 빚 독촉에 시달리며 대박이냐 쪽박이냐의 살얼음판에서 접대로 날밤을 새우는 그의 영혼이 황폐해지지 않을 리 있겠는가? 또한 이규를 괴롭히던 그 미친 ‘고객님’들 조차, 그들의 노동현장에서는 또 한명의 감정노동자였을 것이다.

영화는 섹스동영상유포나 인터넷 불만글로 노동자를 해고시키는 것에서 보듯이, 개인과 다중이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정보화 사회를 보여주면서, 정작 삶의 안정성과 유대는 급속도로 파괴되어가는 모습을 신랄하게 비춘다. 익명의 분노와 증오가 네트워킹 되고, 자신의 불안과 적대를 서로에게 투사하며, 상품화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서비스의 이름으로 상품화되어 유일하게 인간적인 ‘친절’의 외양을 띠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만인은 만인에 대해 늑대가 되어간다. 소비자인 만인은 비정규직 감정노동자인 만인들에게 늑대 ‘고객님’이 되고, 늑대네티즌(개티즌?)이 되어 물어뜯는다. 익명의 공간에서 으르렁거리다가도 내가 드러나야 하는 곳에선 또 누군가가 나를 음해하여 삶의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얼른 마스크를 꺼내 쓴다.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미쳐가는’ 스마일 마스크 신드롬은 신자유주의시대에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가장 주의를 요하는 신종 직업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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