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가 만난 사람들

조각가와 소설가의 불편한 동거

- 모기


글을 읽고 쓰는 소설가와 동적인 작업 그것도 철판을 두드리거나 절단하고 용접하고 긁어대는 조각가가 한동네에서 서로 마주보고 산다면 어떨까?

생각 만해도 쉽지 않은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갈 텐데 그 조각가의 작업실이 소설가 소유의 집 앞 창고를 사용하고 있다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서울에서 서이천 톨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바로 앞에 보이는 한적한 마을 입구에 <부악문원>이란 곳이 있다. 이곳은 소설가 이문열씨가 살고 있고 후진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언제나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기만 이곳에 조각가 최태훈씨가 같이 살아가고 있다.

가진 건 없지만 패기와 열정, 좋은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로 미술계에 인정받고 있는 조각가를 도와주기 위해 소설가 이문열씨가 자신의 창고를 작업실로 쓰게 해줬다.

그 뒤부터 조각가 작업실은 부악문원에 있는 문하생들이 가끔씩 내려와 술도 마시고 공부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피난처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그것은 이문열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시를 앞두고 다른 어느 때 보다 밤낮으로 연장을 돌리며 작업에 몰두해 있는 작가가 은근히 걱정도 되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소음으로 방해를 받지 않을까 해서 문제가 없는지 물어보았더니 오히려 당당하게 “너무나 조용한 이곳에 작업하는 소리가 그들에게 활력을 준다”고 한다. 그것이 조각가만의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는 인생의 척도가 이질감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조각가의 건강한 노동의 현장이 선비 같은 기품으로 공부를 하는 문하생들과 소설가에게는 또 다른 호기심과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조각가 최태훈씨는 부악문원 앞 창고 작업실에서 이문열씨의 배려와 문하생들의 무언의 지지속에 미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알리는 성공적인 전시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시이후 더 바빠진 조각가의 열성적인 작업 때문에 주변에 있는 동네 주민들의 원성과 민원제기로 이문열씨와 조각가는 더 이상 같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조각가는 그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몇 해가 지나 보금자리를 찾지 못해 전전하던 조각가는 더 이상 동네에서 쫒겨나지 않을 자기 땅을 사 자리를 잡았고 미술계에서 성공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반면 이문열씨는 문학계뿐만 아니라 그를 추종하고 아끼는 독자들과 시민들 사이에서도 크게 반발을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치적 발언과 사설로 인해 수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보수우익을 자칭하면서 정치적 권력과 보수언론에 밀착해 그동안 쌓아놓은 문인으로서의 이미지에 큰 상처를 받고 있다.

세월이 지나 꺼낸 두 사람의 사진을 추억하며 그때 보았던 조각가의 순수한 열정과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고 다정했던 모습의 소설가를 다시 만나고 싶다.

글.사진 모기

응답 2개

  1. 고추장말하길

    이문열씨를 위클리에서 보게 될 줄이야^^ 정말 모기 선생님의 카메라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형상들이 들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대단하세요. 황금알을 품은 암탉배를 가르듯 한 번에 보고 싶기도 하지만, 역시 선생님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맛보는 걸로 만족족해야겠죠? ㅎㅎㅎ

  2. 모모말하길

    세상살이가 그저 평범한 생각들도 이루어져 있다면
    위 두분의 한동네 동거는 참 아이러니 일텐데…
    소음과 정적이 요구되는 상황…
    이문열작가…
    대학졸업논문으로 선택해 서점에서 참많은 책들을 구입했던
    경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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