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우울증, 자기를 향한 증오의 방향을 되돌려라

- 박정수(수유너머R)

입추, 처서가 지나고 백로가 오고 있습니다. 더위가 식고 일교차가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의 가을기운이 인간의 몸에도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우리 뇌 속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의 분비량이 줄어들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울증을 ‘영혼의 감기’라고 하나 봅니다. 누구나 걸리지만, 가볍게 앓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급성 질환으로 발전하여 인간관계의 파탄이나 자살로 치닫는 사람도 있고, 만성화되어 정동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프로작, 이펙사 등 항우제가 감기약처럼 팔리고 있지만 이미 우리사회의 풍토병으로 자리잡은 우울증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우울증의 유병조건은 계절이나 유전이 아니라 감정노동이 일상화된 신자유주의적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슬프다고 다 우울증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신자유주의적 환경은 대상상실이나 관계단절에서 비롯된 슬픔의 빈도와 강도를 어느 때보다 높여놓았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잃고 구직의 희망을 잃고 치열한 경쟁 속에 인간관계마저 상실할 위험요인이 도처에 널렸습니다. 이것 말고 다른 선택지들이 도무지 안 보이는 현실에서 그나마 삶의 근거를 제공해온 것들을 상실할 때 세상은 프로이트 말마따나 ‘텅 빈 것’처럼 공허해집니다. 소중한 대상을 잃었을 때, 그 대상에 대한 ‘애증’을 표출하는 적절한 애도만 거치면 슬픔은 새롭고 풍부한 자아 형성의 밑거름이 됩니다. 신자유주의는 그런 애도의 여건들을 파괴했습니다. 새로운 대상 선택의 가능성들을 파괴하고 애도의 터전인 공동체를 파괴했습니다. 하나를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결사항쟁의 자세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환경에서 애도를 통한 자아의 풍요로움은 권장사항이 아닙니다.

분노할 일은 많은데 분노할 여건과 통로는 줄어든 신자유주의적 환경에서 우리 뇌 속의 세로토닌신경은 과부하에 걸렸습니다. 일부 서비스업종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에서 증오의 감정을 억제하고 거짓 미소를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세상과 대상에 대한 증오가 억압될 때 증오는 자아 자신을 향합니다. 우울증은 상실된 대상을 향해 표출되었어야 할 분노가 자아를 향할 때 발생합니다. 대상의 상실과 인간관계의 단절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신자유주의적 환경이야말로 우울증의 풍토입니다. 항우울제는 미봉책일 뿐만 아니라 정당한 애도와 분노를 억제하는 마취제입니다.

세로토닌신경이라 부르든 자아라고 부르든 감정을 조절하는 기관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불안감, 좌절감, 상실감, 슬픔의 감정을 유발해 놓고 조절기관의 감정노동만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우울증은 그런 과도한 감정노동의 착취에 대한 자아의 정서적 파업입니다. 더 이상 그런 무리한 감정노동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피해는 자아 자신에게 돌아가지만 언제까지 자기만 파괴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대중적 우울증에는 무리한 감정노동의 세상을 파괴할 증오와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응답 4개

  1. 달타냥말하길

    글 잘 읽었습니다.

  2. 21세기 아줌마말하길

    이런…정수샘 사진이 너무 못나왔네요. 원래 훨씬 귀여운데…늙은 아저씨처럼 나왔어요…흐억..

    • 북극곰말하길

      저 사진은 정수샘이 열심히 김치를 담고 계신 모습이랍니다. 비록 보이지 않는 1cm에 있지만, 그것까지 감안해주시면 훨씬 더 멋지게 보입니다. ㅎㅎ

    • 마리오말하길

      핸드폰 받는 모습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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