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외갓집 가는 날

- 졸린 달팽이

지난 2주 동안 네 살 난 첫째와 2개월 조금 지난 둘째를 데리고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4시간 정도 걸리는 창원으로 친정 나들이를 다녀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로 간 게 아니면서 지난 2주 동안 컴퓨터 근처는 가보지도 못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위클리 원고를 연이어 펑크를 내버리는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이런 핑계가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편집자님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절대로 고의적인 것은 아니었다구요!)

보통 큰애는 낮 동안 어린이집을 다니기 때문에 남편이랑 둘이서 둘째를 돌아가며 보며 각자의 일을 해왔었다. 그러다 한꺼번에 두 명의 아이를 돌보려다 보니 아무리 친정엄마가 도와 준다하더라도 전혀 혼자 있을 틈을 낼 수가 없었다. 둘째가 태어난 후로 한층 더 떼를 쓰는 첫째가 늘 안아달라며 보채는 바람에 큰애를 업은 채로 서서 둘째를 안고 젖을 먹이는 등 엄마 역할을 24시간 톡톡히 해내며 마치 해병대 극기 훈련을 다녀온 기분이기도 하다. 덕분에 가지고 간 책 한권, 이메일 하나 열어보지 못하고 2주 동안 아이들과 부대끼며 하루하루 보내고 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25,6년 전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외가가 서울이었던 나는 방학이 되면 다른 친구들과는 반대로 동생과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방학을 보냈다. 외할머니가 서울 시내에서 떨어진 도봉구(지금은 노원구) 공릉동에 사셨는데 동네 대부분이 한옥이었고 주민들도 외가 쪽 친척들이 대부분이라 내가 살던 마산보다 훨씬 시골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시골서 하던 놀이들을 나는 서울에서 하는, 조금은 묘한 체험이었다.

외할머니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바로 부엌이었다. 부엌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두 개가 부뚜막 위에 걸려 있었다. 아침밥을 다 먹어갈 쯤 나오는 구수한 숭늉 한 대접과 오후 간식거리인 누룽지가 나오는 가마솥은 당연히 동생과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눈여겨 보던 곳이었다. 물론 따끈따끈한 떡이나 삶은 고구마를 발견하는 곳도 가마솥 안이었다. 추운 겨울에는 아침에 세수를 하러 마당에 나오면 할머니가 가마솥에서 데운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떠오셔서 세숫대야 담아 주시곤 했다. 그리고 마당 한 가운데는 펌프가 있어서 우리들의 주요 놀이기구역할을 했다. 여름에는 오전 중에 펌프질을 해서 물을 끌어 올려 커다란 고무 대야에 받아놓고 뜨거운 햇볕에 물이 데워지면 그 안에 들어가 물장난 하며 오후 내내 놀다가 마당 한 켠에서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열매를 따 먹으며 할머니집 주변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방학을 보냈었다. 지금까지도 나에게 외할머니집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가끔씩 꿈에 나타나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나의 아이가 이번에는 서울에서 창원 외할머니집에 와서, 한옥이 아닌 아파트 베란다에서 할머니가 물을 받아놓은 고무 대야에서 놀다가 벌거벗고 아파트 안을 뛰어다니는 걸 보며 모든 조건이 예전과는 많이 바뀌어 좀 아쉽게 느껴졌지만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게 한낱 나의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지금 이 아이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심 속 아파트 안이면 어때? 매미가 뜨겁게 울어대는 한 여름, 아이는 외갓집에 와서 신나게 놀고 있는 중이다.

응답 1개

  1. 사루비아말하길

    ㅋㅋ린이는 신나게 놀다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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