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가격파괴 축제

- 유재건(그린비출판사 대표)

추석 지나고 9월말쯤이면 우리 출판사에서 책이 한 권 나온다. 출판사가 이제 더 이상 책을 안 내기로 했다면 모를까, 맨날 내는 게 책인데, 뭐 새삼스럽다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 그건 내용도, 가격도, 프로모션도, 유통 방식도 기존과는 좀 색다른 방식의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책에 담아 세상에 내보내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모를 독자가 사주면 그걸로 고맙게 생각하고 끝내고 싶지 않았다.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도 사람들이 뜨겁게 관심을 보일 만한 핫이슈여서, 저자의 문제의식을 출간 이후로까지 쭈욱 밀고가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화폐와 교환되고 나면 그만인 일반적인 유통방식에서 벗어나 화폐 뒤에 은폐된 저자-독자-출판사의 관계를 드러내고 싶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비록 책 나오기 전 보름 동안의 이벤트(축제) 기간 동안만이지만, 책 가격 결정권을 우리 손에서 놓아버리기로 했다. 쉽게 말해 독자들이 직접 가격을 정함으로써 “부르는 게 값”인, 그런 ‘가격파괴’ 축제를 벌이기로 한 것이다. 경쟁적으로 가격을 깎아주는 그런 ‘가격파괴’ 말고, 말 그대로 원가니, 비용이니, 이익이니 그런 거 고려에 넣지 않고, 독자가 내고 싶은 대로, 천원을 내도 좋고, 만원을 내도 좋은, 그런 ‘가격파괴’ 말이다.

라디오헤드Radiohead _ 자신들의 정규앨범 를 자유롭게 다운로드 받게 하고, 다운로더가 직접 가격책정 지불하는 '실험'을 하여 화제가 되었던 라디오헤드

여기 값이 1만원인 책이 있다고 하자. 독자들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아니, 뭐가 이리 비싸” “뭐, 기냥저냥” “아니 이렇게 좋은 책을 이렇게 싸게 팔아도 되는 거야”(출판사로서야 가장 소망스런 경우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이 세 가지 반응 가운데 출판사는 어떤 걸 가격 책정의 준거점으로 삼아야 할까. 20년 넘게 출판을 해오지만 아직도 그걸 잘 모르겠다. 내 오랜 경험에 따르면 가격은 사용가치와 원가 사이에서 결정되는 것 같다.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가격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에 의해 결정되어야 마땅하거늘, 책은 가치관과 세계관이 반영된 지식상품이어서 그런지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가 가격 결정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쉽게 말해 누구에게는 공짜로 줘도 받고 싶지 않은 책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몇 만원을 주고라도 사고 싶은 게 바로 책이라는 상품이다. 그만큼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온도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게다가 제 새끼 이뻐하지 않는 부모 없다고 출판사는 제가 만든 책의 사용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책값 결정이 쉽지 않다. 사용가치를 따르자니 원가가 놀라고, 원가를 따르자니 사용가치가 서운해 해서다. 가격은 결국 사용가치보다는 작고 원가보다는 큰, 그 사이 어디쯤에서 결정된다. 정교한(응?) 수식으로 표현하면 “사용가치>가격>원가”가 된다. 결국 출판사는 원가를 기반으로 산정한 가격을 바탕으로 ‘시장 평균가격’과 예상판매량과 독자들의 저항감(예상되는 사용가치)을 고려하여 최종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_ '매개'의 '매개'를 거치는 전달을 넘어서는 'commun-ication'

우리는 난이도가 높긴 하지만, 원가가 아닌 사용가치에 기반한 가격을 매겨보고 싶었다. 원가를 넘어, 개별 독자들이 제각각 느끼는 만족도, 그 사용가치에 충실한 책값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직접 물어보면 안다. 그가 왜 이 책을 샀는지, 그가 생각하는 만족도에 따른 적정 책값은 얼마인지. 누군지 모르는 익명의 다수에게 우리가 만든 소중한 책을 뿌리기보다는 우리 책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대일로 책을 건네고 싶었다. 금액은 천원이라도 좋고, 만원이라도 좋다. 느낀 만큼 지불하면 된다. 물론 그 모든 내용은 블로그나 웹사이트에 전부 공개될 것이다. 자신이 공감한 책에 공정하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가능한, 그런 실험과 도전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결과를 알 순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 출판사를 지지해 주는 독자들과 함께 새로운 책의 세계를 만들어가 보고 싶다.

어떻게 할 거냐고? 방식은 간단하다. 그린비출판사의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출간 전 사전판매를 하는 거다. 미리보기 형태로 책의 목차와 내용 일부를 보여준 다음 독자가 부르는 값으로 예약 판매하는 거다. 이벤트 기간이 끝나고 책이 출간되면 주문자 주소지로 책을 배송해 주는 방식이다. 판매대금은 지식을 선물할 수 있는 또 다른 축제의 종잣돈이 될 것이다. 아, 나중에 시중 서점에서 이 ‘가격파괴’ 놀이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게 좀 서운하긴 하다. 알다시피 책은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하에서 모든 책의 뒷표지에는 바코드와 함께 ‘값 ○○○원’이 표시되게 되어 있다.

어떻게 화폐를 순환시킬 것인가?, 어떻게 화폐에 대항할 것인가?, 어떻게 삶을 재창조할 것인가?!

아, 이쯤에서 잘난 척 그만하고, 책의 정체를 밝혀야겠다. 책의 제목은 바로바로~~바로~,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다. ‘돈의 달인’은 돈을 잘 다루는 사람이겠다. 근데, ‘호모 코뮤니타스’는? 착 와서 안기지 않는다. 제목에 대해 저자 고미숙은 이렇게 말한다. “돈의 달인이란 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돈에 ‘먹히지’ 않고, 돈을 통하여 삶을 창조하는 걸 의미한다. ‘코뮤니타스’란 라틴어로 공동체라는 뜻이다. 화폐는 탄생 이래 늘 공동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화폐가 공동체적 삶의 다양성을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세기 사회학자들은 코뮤니타스를 특별히 ‘화폐에 대항하는 공동체’라고 명명하였다. 화폐의 ‘식성’에 에 맞서 삶의 창조성을 지켜내고자 한 것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재테크에 대한 책이 결코 아니다. 이런 주제들에 대한 정보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정보가 부족해서 자본의 노예가 되고, 재태크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용법이다. 경제와 삶, 화폐와 일상을 구성하고 재배치하는 용법! 이건 어디서도 배울 수가 없다. 아니, 우리 사회엔 이 배움에 대한 욕망 자체가 부재한다, 그래서 결국 두 개의 양극단을 오가게 된다. 돈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으로 삶을 불태워버리거나 아니면 ‘무소유’라는 초월적 장으로 도피해버리거나. 이 책은 이 양변을 떠나 제 3의 길을 찾고자 하는 갈증의 소산이다. 다시 말해, 자본에 포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산정으로 도피하지도 않는,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를 실험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화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 책 너머로 ‘더욱 커다란 지혜의 세계’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작은 이벤트는 돈의 척도에 균열을 내는 ‘즐겁고 유쾌한’ 반란의 축제일 수도 있겠다. 아니, 꼭 그러길 바란다.

응답 10개

  1. 연초록말하길

    오랫만에 위클리에 들어왔는데 이런 신선한 이야기를 만났네요.

    그렇지 않아도 길담에서 얻은 gblog4호 정말 재미있게 읽고 나서

    출판사에 전화했었습니다.그런 적이 처음인데 1,2,3호 받아볼

    수 있는가 하고요. 재고가 있는가 알아보고 연락준다던 직원의

    소식이 감감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제 글을 읽은 아는 분이

    3호의 여분이 있다고 가져다 주어서 오늘 그 책 역시 잘

    읽고 1,2호는 그린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라도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왜 그녀는 연락을 해주지 않았을까? 아직도 남는 의문

    없으면 없다고 연락해주었더라면 더 깔끔한 인상으로 남았으련만

    하는 의문,그래도 바빠서 한 사람 한 사람 개별독자에겐

    반응할 수 없는 것일까?

    그건 그렇고 그린비 책의 독자로서 이번 기획에 참여해보고

    싶네요.

    • 이민정말하길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전화를 받고 연락처까지 받았는데, 그만 저의 나쁜 기억력 때문에 이렇게 늦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네요. 없는 것을 숨기려고 했거나 일부러 연락을 늦게 드릴 생각은 정말 없었습니다. ㅠ_ㅠ

      오늘 통화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지블로그를 매호마다 신청해야하는 불편함은 앞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ㅠ_ㅠ

  2. 조영옥말하길

    아! 멋집니다. 화폐, 그것도 지폐가 생기면서 돈이 추상화되고 그래서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구도를 만들었다더군요.
    돈- 좋으면서도 싫은 것- 그래서 외면할 것이 아니라 알아야 극복이 될 것 같군요.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 값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ㅋㅋ

  3. aleph말하길

    실제로 실행하기 힘든 기획인데 역시 그린비군요! 저도 가격파괴 축제에 동참하렵니다~ 고샘책도 넘 기대되구요..^^

  4. 여하말하길

    돈과 공동체의 길항 – 동네가 일반적인 사회에서 상평통보가 힘을 못썼지요… 노예와 초월이 아닌 길. 일상에서 주인이 되는 길. 유가가 반길 책이군요.^^ 기획도 음, 좋아요!

  5. 고추장말하길

    허걱! 그런 기막힌 기획을… 아, 때 한 번 해볼 것을….ㅋㅋ 그나저나 사장님 사진 정말 맘에 들게 나왔네요..ㅎㅎ

    • 유재건말하길

      그러게요^^ 추장님 책 나왔을 때 제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요 ;;

  6. 말하길

    와, 정말 멋진 기획이네요. 역쉬 그린비~ 고샘 책, 너무너무 기대되요. 이거 출판계의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되겟는데요, 고미숙 저, , 2010, 돈 내고 싶은 만큼, 그린비. 와~ 대박.

    • 유재건말하길

      과분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글구 이번 고샘 책, 기대 많이 하셔도 좋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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