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엄마

- 매이아빠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요즘 매 주 장애인 인권활동가들과 미신고장애인시설 인권실태 조사를 나가고 있다. 지난 주 고양시의 한 장애인시설을 보고 느낀 게 많다. 지적장애인들과 무의탁 청소년들이 함게 생활하는 곳이었는데, 아무리 재활용처리사업과 병행한다고 해도 주거환경이 너무 끔찍했다. 컨테이너 건물 주변에는 분리중인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건물 안에는 쥐들이 연신 들락거리고 있었다. 방 안에는 라면상자들과 옷가지가 쓰레기와 먼지덩어리 사이에 어지럽게 널려 있어서 웬만한 불결함에는 눈도 꿈쩍 안 하는 나도 혀를 내 두를 지경이었다. 내가 면담한 한 지적 장애인은 소통이 꽤 되는 분이었다. 등이 가려운지 연신 긁어대면서 하시는 말씀이 가관이었다. 외출 외박은 금지되어 있고 아침에 빵 한 개 먹고 나서부터 점심 때 라면, 저녁 때 학교 급식 잔반 얻어다(일명, 푸드뱅크) 먹고 하루 종일, 어떤 때는 밥 늦도록 재활용품 분리작업을 해야 했다. 일하기 싫어 도망치다가 이틀 동안 방에 감금되었던 사람도 있고 심한 욕설과 체벌, 지독한 잔소리는 일상 다반사였다. 도망치다가 그 길로 차에 실려 인근 정신병원에 수용된 정신장애인도 만났는데, ‘간첩’에 대한 피해망상을 제외하고는 또렷한 정신을 가진 분이었다. 그분에 따르면 도망치다가 잡혀서 컨테이너 박스에 가두고 밖에서 용접을 해버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시설생활은 이 지경이었지만 시설장은 지역사회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지자체로부터 무의탁 청소년을 위탁받고, 지역단체들로부터 재활용처리사업과 푸드뱅크 사업을 지원받고, 자원봉사자를 지원받거나(비행학생 강제봉사, 자원 학생 봉사, 심지어 사법연수생들의 정기적 자원봉사까지), 학교나 종교단체, 지자체 교육단체에 강연을 나가 매달 3,4백만원을 벌고 있었다. 조사 중간에도 자원봉사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비결은? “시설이 열악하니까. 그래서 다들 도와주고 싶은 거지” 맙소사! 지역사회의 후원을 위해 시설을 열악하게 유지해 왔다니! 하긴, 개인신고시설로 전환한 곳 중에는 주거환경을 개선했더니 후원금과 자원봉사가 끊겼다는 시설도 여럿 있다고 하니 참으로 빌어먹을 동점심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우리 조사원들은 시설 폐쇄를 결정하고 당장 생활인들을 다른 곳으로 전원조치하기로 결정했다. “명예롭게 자진 폐쇄하게 해 달라,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는 시설장의 호소에 ‘너무나 인간적인’ 복지부 직원과 지자체 담당자들은 그러자고 했고, 우리 조사원들은 “단 이틀만 시간을 줘도 시설장은 장애인들과 가족들을 회유, 협박하여 우리를 ‘침략자’로 만들고 결사항쟁의 전열을 가다듬는 걸 자주 봐 왔다”며 공무원들을 설득시켜 당일로 장애인들을 다른 시설로 전원조치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저항하던 시설장도 막상 장애인들이 서너 명씩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는 현실 앞에서 체념한 듯, 혹은 후일을 기약한 듯 순순히 따랐다. 그런데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고 휴머니즘적인 성품과 교양을 갖춘 ‘사모님’은 그렇지 못했다. 울며불며 “너네들이 인권을 알아? 몇십 년을 한 가족처럼 지낸 사람들을 이렇게 이별할 시간도 안 주고 떼어 놓는 게 인권이야? 너네들이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아? 무슨 약을 먹는지 뭘 좋아하는지 알기나 해?”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한참 그 얘기를 듣던 한 활동가가 “사회복지를 전공했다는 분이, 장애인들을 강제노동시키고 감금하고 폭행하고 방치한 게 잘했다는 거냐?”고 대거리를 하자 잠시 할 말을 잃은 사모님은 이렇게 소리쳤다. “난, 사회복지사가 아니야. 난, 이 애들 엄마야!”

활동가들도 전원조치를 시키면서 마음이 불편한 듯 했다. 다만 조금 더 위생적이고 관리감독을 받는다지만 생활인들의 자율성과 자활교육이 전무하기는 마찬가지인 규율시설에 보내는 게 유일한 대안인 현실에 가슴 아파 했다. 그나마 기초생활수급도 못 받는 분들은 가족 말고 갈 데가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일군의 장애인들을 법인시설로 이전시키고 돌아온 활동가의 말이 기억난다. “그곳이라도 별로 다를 건 없어요. 너무나 ‘시설’스럽고(감옥의 배치) … 그분들 인계하고 돌아서는데 시설 운영자가 등 뒤에 대고 그러더군요. ‘걱정 마세요. 이제부터 제가 애들, 엄마처럼 잘 돌봐 줄게요’ 라고. 공포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많은 시설 생활인들이 여성 관리자나 운영자를 ‘엄마’라고 부른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호해주고 관리해주고 대변해주는 여자, 그 앞에서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닌 양육대상일 뿐인 여자, 자유의지와 평등한 관계를 요구할 수 없는 여자, ‘예’ 라고만 응답해야 하는 여자, 그들에게 ‘엄마’란 그런 존재의 명칭이다.

확실히 엄마는 ‘특별한’ 존재다. 관용구 습득에 재미를 붙인 매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말은 우연히 아내가 한 말 ‘아빠한테는 나쁜 딸, 엄마한테는 귀여운 딸’이다. 아내한테는 항상 애정을 갈구하며 예쁘게 보이려 하면서도 나한테는 ‘싫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이래라 저래라 요구만 하는 매이에게 아내가 한 말이 정곡을 찔렀나 보다. 양육하고 보호하는 일이라면 나도 아내 못지 않게 한다. 아니, 더 한다고 자부한다. 신경이 예민한 아내는 피곤하거나 짜증날 때는 심하다 싶을 만큼 무심한 표정을 짓거나 갑자기 노골적인 신경질을 부리기도 하지만, 튼튼한 나는 항상 웃는 얼굴로 돌봐 주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매이는 엄마만 예뻐한다. 수시로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입도 예쁘다고 한다. 쪽쪽 입도 잘 맞추고 심지어 혀로 얼굴을 핥기까지 한다. 그러면 아내는 자지러지듯 웃는다. “아빠는?” 하면 시큰퉁 있다가 “아빠에게는 나쁜딸” 하며 까르르 웃고 만다. 너무 억울해서 밥에다 반찬을 얹어주며 “이거 아빠가 했어. 엄마는 반찬 못해” 하고, 번쩍 들어 어깨 위에 올려 놀리면서도 “이건 아빠만 할 수 있어. 엄마는 못해” 라며 아빠의 특별함을 주장해도 엄마만큼의 사랑를 받는 건 역부족이다.

엄마에겐 특별한 게 있다. 젖을 먹고 만지면서 쌓아온 ‘몸정’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몸을 나누고 살을 부비고 쾌락을 나누면서 끈적해진 모정에는 아빠의 돌봄 노동이 대체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매이에게 ‘엄마’는 양육자도, 보호자도 아닌 ‘연인’이다. 몸의 쾌락을 나누는 자, 그래서 남들은 뭐라든 더할 수 없이 예쁘고, 만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존재, 그게 ‘엄마’다. 아이가 커서 엄마 아닌 다른 대상을 연인으로 삼게 되면 ‘엄마’란 이름은 텅 비게 될 것이다. 그 자리를 뭘로 채울 것인가는 순전히 아내 하기 나름이지만, 시설생활자들이 부르는 ‘엄마’의 내용은 아닐 것이다. 후원자, 동거인, 친구, 선배, 동료시민, 과거의 연인…뭐 이런 것들과 합종연횡하는 내용이 채워지지 않을까? 분명한 건 양육자, 보호자, 대변자가 엄마의 본래적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고양시의 시설 사모님은 자신의 이름을 잘못 찾았다. 엄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응답 7개

  1. 박경내말하길

    제게 있어 엄마란 단어는..
    사랑하고 존경하고 닮고 싶고 감사한 존재인 동시에
    트라우마와 저주, 복수의 대상이기도 했어요.
    ‘엄마는 연인’이라는 표현이 정말 와 닿네요..

  2. 름달말하길

    발바닥에 글 퍼가놓고 흔적 남기는 름달.

  3. 름달말하길

    발바닥 홈피에 글 실어가도 될까요?

  4. 알라말하길

    저희 집에서도 목마 태워 주고, 같이 놀아 주고, 씻겨 주고, 먹여 주는 건 아빠인 데도..오직 찾는 건 “엄마”랍니다. 가끔 “난 오늘 니 엄마 안 할란다” 하고 엄마 파업해도 찾는 건 “엄마”예요.
    딸한테 뽀뽀 한 번 못 받아서 슬퍼하는 아이 아빠를 보니 밑 문단 완전 캐공감입니다.

    매번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얻었는데, 특히나오늘 글은 여러 번 생각하게 되네요. 제발 “엄마”라는 말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는 누군가의 폭력으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에효…

  5. 나무말하길

    저의 엄마는 누가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딸뜰에게 권하면, “우리 애들은 이거 안 좋아해요”라고 거절하셨지요. 아마 그렇게 믿으셨을거에요. 하지만 저와 동생은 그게 먹고 싶었다지요. “너에게는 이게 좋아”라며 사랑의 이름으로 속박하지 않아야 아이의 사랑 자체가 될 텐데요. 저, 잘 할 수 있겠지요? 흠.

  6. 매이엄마말하길

    늙은 엄마들이 하시는 말씀. 다 큰 아들은 “사랑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고, 다 큰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래요. 매이에게 더 이상 연인이 아니게 되어도, 엄마는 여전히 매이를 연인처럼 생각하겠지요? 짝사랑엔 소질이 없는데….걱정이네요.

  7. 안티고네말하길

    역시 남자아이건 여자아이건 1차적 대상은 “엄마”로군요~
    글 잘 읽었어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