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공예운동은 실패한 것인가?

- 사루비아

일상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공예는 근대 산업화 이후 오랫동안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며, 기계와 비교해 경제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전근대적이라고 평가되었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가 만들어 내는 대량생산품에 반대하고 수공예에 의한 아름다움을 창조하여 인간 감성을 회복하자는 새로운 예술운동을 주창하였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돈 버는 것에만 사용하는 것을 몹시 한탄했다. 자신의 노동이 ‘일상의 예술 창조로서 즐거움의 표현’이 되고,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만 지니고 정작 자신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제작자와 사용자의 행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본과 기계의 노예 상태로부터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공예정신이라고 믿었다. 그는 끊임없이 삶을 위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예술과 같은 삶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맑스 아님. 윌리엄 모리스이다.

그는 공예정신에 맞추어 벽지, 가구, 태피스트리,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는 ‘윌리엄모리스 회사’를 세운다. 그는 공장에서 찍어낸 동일한 상품이 아니라 생활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정성이 가득한 물건을 만들고, 공장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일, 하기 싫은 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중세의 장인과 같이 여기기를 원했다. 공예운동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고, 실제로 삶을 혁신하려고 했다.


윌리엄모리스 회사에서 만든 ‘상품’들.

윌리엄모리스는 1880년대에 이런 자신의 생각을 담은 소설『에코토피아 뉴스』를 쓴다. (이 소설은 몇 년 전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어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 소설의 원제는 News from Nowhere. 이 책은 주인공이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지 200년이 지난 미래를 1주일간 여행하면서 경험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에코토피아뉴스 표지 사진과 박홍규 사진 넣어주세요> 이 책에서 나오는 22세기의 풍광은 오히려 유럽의 중세와 비슷하며 도시인지 시골인지 그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곳에서 사람들은 자연과 이웃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자연친화적이며, 삶과 노동이 즐겁다. 이 책에서 놀라운 점은 화폐가 없다는 점이다. 대신 이웃이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고 필요한 물건만을 소비하는 ‘사용가치’가 극대화된 시장이 있을 뿐이다.

<에코토피아 뉴스> 표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소설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던 윌리엄모리스의 공예운동은 실패했다고 평가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라 공방과 수공업의 형태로 일관했던 공예운동의 생산물들은 일상을 예술처럼, 예술을 일상처럼 대중의 삶을 개혁한다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모리스의 공방에서 생산한 공예품은 공장의 기계 생산품과 마찬가지로 판매를 목적으로 하였는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모리스의 공예품이나 기계 생산품이나 상품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것이었다. 오히려 공예품이 사치품으로 다가왔다. 모리스의 공예를 통한 사회 개혁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이처럼 공예의 상업화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의 예술을 위한 공예는 쓰임을 강조하는 공예가 되어야 할 터인데 윌리엄 모리스는 그 쓰임이 교환가치로 이루어지는 상업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공예의 실질적인 가치는 판매를 통한 이윤창출이 아닌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적 도구와 환경을 스스로 가꾸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고유한 육체적 노동에 의하여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데 말이다.

요즘 포털 사이트 등에서 메인에 항상 걸려있는 소개되는 블로그 중의 하나는 DIY관련한 것들이다. 블로거들은 팔기 위한 물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서 사용하기 위해 혹은 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든다. 그들은 가구와 같은 덩치 큰 물건을 만들 때 드는 약간의 수고로움 정도는 기꺼이 감수한다. 만들고 나서 제작의 뿌듯함이 그것을 상쇄시켜주기 때문이다.

‘윌리엄 모리스의 공예운동’은 과거에는 실패했지만, 요즘 불고 있는 ‘우리들의 공예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누군가의 선동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닌 우리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상품으로 팔기 위한 것이 아닌 사물에게, 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들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에코토피아 뉴스>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에코토피아 뉴스의 원제는 News from Nowhere이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그의 아이디어는 과연 아무곳에도 없는(NO Where)인가? 아니면 지금 여기(Now here)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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