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방송에서 못한 말

- 오항녕

지난 4월 전주대로 자리를 옮기고나서 그 좋은 방학도 없이 동료 학자들과 위백규(魏伯珪)라는 호남 학자의 문집 《존재집(存齋集)》을 번역을 하고 있는데, 매주 수/목요일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 7시까지는 합동 검토시간을 갖고 있다. 그동안 나온 논문들을 보면 위백규에 대해 ‘호남 실학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번역하느라 그의 문집을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위백규의 문집은 지방 학자가 충실하게 성리학을 공부했을 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는 자료이다. 해서, 조만간 나는 이 분을 놓고, 성리학의 변이(變異)라는 사실(史實)의 측면과, 실학 개념의 해체라는 인식(認識)의 측면을 엮어 곧 글을 하나 만들어보려고 한다.

지난 금요일도 태풍이 지나간 따뜻한 날씨 속에서 예의 검토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프로그램에서 전화가 왔다.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이 자기 딸을 특채한 일 때문에 네티즌 사이에서 현대판 음서(蔭敍) 제도라고 비판하고 있으니, 음서제도에 대해 역사학자의 소견을 듣고 싶다고. 그런데 ‘현대판 음서제도’라는 말속에는 이미 음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들어 있다. 사람들이 행정고시의 폐지와 정실(情實) 인사를 두고 음서제도를 떠올린 모양이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던 주제이기도 해서 승낙했다.

인터뷰 요청받은 시간은 2시 반쯤이었는데 방송이 7시 28분부터 8-9분간이란다. 작가에게 질문지를 메일로 달라고 했다. 잠깐 몇 마디 나누다가 역사학자가 보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말해달란다. “천한 짓이지요.” 했더니, 웃는다. 그런데 웃음에 경계가 묻어있다. 이 분이 방송사고나 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묻어나는 웃음이다.

4시 반에 작가가 보낸 질문지를 받았다. 약간 조정이 필요할 듯했으나, 상의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답변을 조정하는 수밖에. 한나라당 아무개 의원이 상피제 운운했다는 내용 중 이름만 질문지에서 뺐다. 방송 전, 작가가 전화를 걸어 준비상황을 물으면서 다시 ‘방송 수위’에 대해 당부한다. 조금만 낮추어달라고. 거봐라, 내 말이 맞았지.

방송이 시작되었다. 간단히 음서제도를 정의하는 대화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조상의 음덕(蔭德)이라고 하는데, ‘음(蔭)’이란 그늘, 덕택이란 말이다. 음서제도(蔭敍制도)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5품 또는 3품 이상을 지낸 관리의 자손이나,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의 자손을 우대해서 관원, 즉 공직자로 임용하는 제도였다. 보통 음보(蔭補), 문음(門蔭), 음사(蔭仕), 음직(蔭職) 등으로 부른다. 음서는 사회나 문명의 여러 차원 중에서 국가 차원의 일이다.

음서는 그 사회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여 보답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먼저 공음(功蔭)이 있다. 나라나 사회에 공을 세운 집안 어른 덕에 관직에 간단한 시험만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독립유공자, 민주화유공자에 대한 보상 방식에 음서가 들어갈 수 있겠지만, 민주화유공자는커녕 독립유공자의 자손들도 생활보호대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또 고위 관료의 경우도 오랫동안 나라 살림에 기여한 공을 인정하여 그 자손을 특별채용하는 음서의 대상이 된다. 참 실감하기 어렵다. 이 사회에 그런 존경받는 고위공직자가 없어서 그런가? 만일 그런 존경받는 공직자가 있다면, 난 찬성할 것이다.

관료제가 발달했던 고려와 조선에도 음서제가 있었다. 고려는 귀족제 성격이 강한 사회였다. 귀족제 사회란 왕족에 버금가는 벌열(閥閱) 등이 여럿 있는 사회다. 그래서 음서제가 훨씬 강했는데, 그렇다고 부정적인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교라는 깊이 있는 사상, 종교가 함께 기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말기로 오면 어느 사회, 문명이나 그렇듯이 음서제의 말폐가 생긴다.
한편 조선시대는 사림, 학자, 양반, 관료라는 말이 떠오르다시피, 이들이 주축이 되어 사회를 끌어갔다. 우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사회는 어떤 원칙과 질서 속에서 움직여야하는 지에 대한, 요즘 말로 하면 인문, 사회학적 비전이 있어야 했고, 실제로 그걸 정책으로 만들 수 있는 경륜이 있는 인재를 요구했다. 따라서 절대적인 학습량이 요구되었고, 문장이나 토론을 못하면 정부에서 자기 몫을 다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음서 수혜자라도 과거시험을 보았다. 흔히 청요직(淸要職)이라고 하는 중요하거나 명예로운 자리는 음서만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으니까. 법적으로 제한하여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낄 수가 없게 만는 것이다. 요 부분! 조선사회의 작동 메커니즘을 해석할 수 있는 포인트 되겠다.

분명히 음서제도에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측면이 있다. 수월하게 관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족들이나 양반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법이 된다. 과거제도를 비롯한 제도는 자체로 체제를 유지하는 측면이 있다. 제도의 보수성이다. 과거제도도 그렇고 현재의 고시도 제도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음서제도는 과거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사회 보상의 영역을 보완의 성격도 있다.

김미화씨가 “‘상피제(相避制)’에 빗대서 특혜논란을 비판했던데, 상피제, 이건 또 어떤 제도인가요?” 라고 묻는다. 성균관 같은 학관(學官)이나 병조의 군관(軍官)을 제외하고, 의정부(議政府)·의금부(義禁府)·이조(이曹)·병조(兵曹)·형조(刑曹),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 승정원(承政院)과 사관(史官), 장예원(掌隸院)·종부시(宗簿寺) 같은 관청에서는, 집안의 고모나 조카의 남편, 사촌자매의 남편, 이모의 남편은 상피한다. 똑같은 제한이 처첩 집안에도 적용된다. 쉽게 말해 같은 관청에 근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정부는 잘 알 것이고, 의금부와 형조는 범죄사건을 다루는 관청이다. 이조와 병조는 인사(人事)를 다루는 관청이다. 사간원과 사헌부는 감찰과 언론 기관이다. 승정원은 비서실이고, 사관은 모든 국정을 기록하는 자리이다. 장예원과 종부시가 상피 대상이 된 이유는 모르겠다. 병조의 당상관(요즘으로 치면 ‘별’들)이나 내금위장(內禁衛將. 청와대 경호실장)은 동일한 관청이 아니라도 상피한다. 그러니 지 애비가 장관으로 있는 데에 지원서를 내지는 못한다.

마지막에,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공직인사제도나 특혜논란을 보면서 넌지시 생각해볼 한 것들이 있으면 짚어달라고 한다. 이번 사태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가지 문제가 섞여버렸다는 점을 보아야 할 듯하다. 먼저 행정고시 폐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공직의 문호를 열려고 행정고시를 폐지하는 것은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는 현 정부에서만 나온 얘기도 아니다. 워낙 공무원 사회가 폐쇄적이고 부처이기주의가 심해지니까 외부 전문가를 채용하여 조직에 활력을 넣자는 취지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직위도 있다. 나도 두 차례에 걸쳐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특채되어 두 차례에 걸쳐 5년을 근무한 경험이 있다. 또 조선시대에도 과거시험만으로는 훌륭한 사람들이 정부에 들어올 수 없으니까, 천거제도를 활용했다. 그러므로 행시 폐지, 이런 식으로 갈 것이 아니라, 공직의 어떤 부분에 전문성이 중요한지를 하나하나 짚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맹형규 장관은 2011년까지 30%, 2015년까지 50%를 전문가로 채용하겠다고 했는데, 이게 아마추어라는 거다. 거듭 말하자면, 수치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 전문성이 필요한지, 그 전문성이 공무원의 재교육으로 되는 성격인지, 외부에서 특채할 자리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 정말 국정(國政)이 뭔지 모르는 거 같다.

다음, 지 자식 임용문제. 자신이 장관으로 있는 관청에, 자식이 지원했고, 또 유일하게 선발되었다는 사실은 공직자 윤리까지도 갈 것 없이 사회적 양식의 문제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짓이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좌절되었다는 것이다. 행시 폐지는 정책적인 합의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게다가 제 자식을 임용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까지 벌어지니까, 국민들은 당연하게도 행시폐지=특채에서 음서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 즉 기득권의 재생산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안을 엉키게 만들어 문제의 성격을 어지럽게 만들면서 생산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짓, 이런 짓이 국가경영 차원에서 발생할 때 쓰는 말이 바로 ‘국정의 난맥상’이란 말이다. 난맥(亂脈), 어지러울 난, 맥락이라고 할 때 맥!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번 일을 조선시대 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방송이라 차마 하지 못했다. 여기서 하고 가자. “상것들!”

응답 1개

  1. 지나가다말하길

    천한 짓만 골라하는 상것들이 관료를 독식하고 있다니! 시원한 일갈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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