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진의 사진공감

임종진의 사진공감 INTRO

- 임종진

사진을 한다는 것

한겨울 지리산 새벽 눈꽃…
티베트 땅 드넓은 광야를 찢겨내 듯 나부끼는 바람의 향연…
호기심 가득한 함박웃음으로 기분을 풀어주는 어느 동네 아이들의 눈빛…
세상 어느 것 하나라도 사진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이 그 앞에 서야 합니다. 하다못해 방안 책상 위에 뒹구는 몽당연필 한 자루를 찍으려 해도 그렇습니다. 이렇듯 사진은 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창’ 중에서 몸을 들여야만 가능한 행위입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서의 대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볼 것인가. 프레임 앞에 놓인 대상을 대체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하는 자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봄(Viewing)은 그렇게 자신을 향한 물음을 통해 하나의 형상으로 구현됩니다.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한 컷의 사진 안에는 새로운 존재가 빛을 머금고 탄생합니다. 결국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존재하는 인식에 의해 사진은 형성되고 증명됩니다.그래서 사진은 눈으로 대상을 보되 실은 자신의 내면으로 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두어 걸음 더 내면으로 들어가는 다가서기를 통해 사진은, 좀 더 온전한 모습으로 그 가치를 하나 더 얹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느리게, 깊게 다가서는 사진. 긴 호흡으로 셔터를 누릅니다. 이는 자신에게 여유를 주는 것만이 아니라 프레임 속 대상에게 저를 소개하는 손짓입니다. 주고받는 교감이자 서로의 존재를 알리는 적극적인 몸짓입니다. 그렇게 머묾이 있는 길 위에서 무엇 하나 가벼이 보지 않으려 합니다. 프레임으로 타인의 삶을 오래도록 지켜보다가 그저 스스로 갖게 된 작고 느슨한 시선, 매달려 뽑아내지 않는 그런, 시선들입니다.

사진을 함께 읽는다는 것

전공과는 다르게 사진의 재미에 빠져 놀던 학창시절이 있었습니다. 기회가 닿아 오랜 기간 현장을 지키는 사진기자로서의 삶이 뒤를 이어 있었습니다. 그저 아프고 먹먹하기만 했던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이 그 시작점에 있었고 역시 운이 닿아 단절의 땅 북한을 여러 차례 둘러보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이라크를 찾아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인 삶들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사이 이 나라의 수없이 많은 어느 타인들의 고단한 하루들을 가까이 목도해 왔습니다. 어느 즈음부터 기자로서의 시선에 버거움을 느끼고 나서는 홀가분한 몸으로 신발 끈을 조이고 조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2008년 가을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캄보디아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1년 조금 넘게 머물다 돌아왔습니다. 결국 기억으로 남은 작고 소중한 시간들이기에 더욱 그 시간의 흐름이 아쉬운 듯합니다. 돌아오니 왠지 헛헛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쌓인 기억들. 품고만 있기엔 그 헛헛함이 더욱 깊어질까봐 이렇게 하나씩 들추어 꺼내봅니다. 어느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 눈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봅니다. 만약 그들의 삶이 비루하거나 세상 한 구석에 처박힌 무엇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형상이기에 그저 눈으로만 보고 가벼이 판단하고 말았던 스스로를 다시 돌아봅니다. 어설픈 동정심과 가벼운 눈짓만으로 어느 그들의 삶을 마치 다 아는 양 재단했던 지난 시간들을 아프게 들추게 됩니다.

이제 외양만을 바라보던 얕은 소견을 걷어내려 부끄러이 기억들을 꺼내봅니다. 어떠한 외양을 지녔다하더라도 존중되고 이해되어져야 할 삶. 내게 있어 중요한 오늘 하루와 마찬가지로, 어느 그들의 의미 있는 하루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이 가진 삶의 가치가 작아 보이지만 더없이 귀한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생각들이고 또한 누구나 스스로 존중받길 원하듯이 어느 타인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라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들입니다. 단지 눈으로만 보는 것을 넘어 어느 그들의 삶을 읽어드리려 합니다.

임종진

월간 <말>과 <한겨레신문> 등에서 사진기자를 지냈다. 2004년 이후 매년 드나들던 캄보디아에 눈이 꽂혀 2008년 다시 캄보디아를 찾아 15개월 동안 머물며 무료사진관을 운영했다. 최근 귀국해 지난 4월 캄보디아-흙, 물, 바람’전을 열었다. 작가적 관점으로의 사진보다는 ‘쓰임’의 도구로서의 사진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충무로 작업실 ‘달팽이사진골방’과 홍대 상상마당에서 대상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중시하는 내용의 사진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응답 5개

  1. 이상엽말하길

    종진아… 너의 에세이가 기대된다.
    수유와의 인연, 사진가들이 더 많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인문과 사진은 찰떡궁합이거든. ^^

  2. 조영옥말하길

    아! 임종진님께서 찍었던 북한사진으로 사진전을 많이 했었는데
    북한의 아이들 처자들..환한 모습들이 생각납니다. 왜 이렇게 아득하지요. 그렇게 힘차게 뻗어나던 통일의 기운이…..임종진님이 새삼스럽습니다. 그리고 기대됩니다.

  3. 민지말하길

    ‘사진이라는 인연의 고리’가 수유너머 위클리와도 맺어졌군요.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 막달레나공동체와도 사진으로 인연이 있으시지요. 저는 직접 뵌적은 없지만, 세탁기 냉장고 같은 집기들을 살뜰히 챙겨주셨을 때, 참 섬세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사진가이실 거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잖아요. 사진은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의 교감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

  4. 여이루말하길

    임종진 작가님 사진을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매주 여기서 새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겠군요.
    그것도 글과 함께!

  5. 말하길

    기대돼요. 시대와 공감하는 좋은 사진, 많이 많이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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