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근심이 많은 마음이여 빨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하구나

- 정경미

시경에는 생기발랄한 연애시도 많지만 근심이 가득한 노래도 많다. 시경에서 휘파람은 흥겨운 가락이 아니라 답답한 마음을 푸는 한숨소리에 가깝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는 마음속 깊은 시름을 노래에 실어 보내는 것이다. 근심 중에서 가장 큰 근심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아픔일 것이다. 가난 때문에, 전쟁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아픔을 노래한 시가 시경에는 많다. 그런데 외부적인 조건, 상황 때문에 헤어진 연인들의 아픔은 달콤하다. 그때의 이별은 두 사람의 사랑을 오히려 절실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정말 쓰라린 이별은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별, 두 사람 사이 믿음이 깨어져서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된 경우이다. 이런 경우 ‘나’는 ‘그’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된다.

시경에는 이렇게 버림받은 여자의 노래가 몇 편 있다. 「곡풍谷風」은 가난한 시절 고생을 함께 했던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 여자와 즐기는 남편을 원망하는 노래이다. “누가 씀바귀를 쓰다 하는가 냉이처럼 달구만!” [誰謂茶苦 其甘如薺] 소박맞은 여자의 쓰라린 심정에 비하면 씀바귀는 쓴 것도 아니라고 하는 표현이 재미있다. 「氓」은 실 사러 온 남자한테 어리숙하게 빠져서 결혼했다가 고생만 실컷 하고 쫓겨나는 여자가 “아, 여자들이여 남자에게 빠지지 말기를/남자가 빠지는 것은 그래도 할 말이라도 있지만/여자가 빠지는 것은 말할 데도 없더라” [于嗟女兮 無與士耽/士之耽兮 猶可說也/女之耽兮 不可說也]라고 탄식하고 있다. 「곡풍谷風」,「맹氓」과 함께 버림 받은 여자의 노래로 「백주柏舟」가 있다. 이별에도 단맛과 쓴맛이 있다. 이별 중에도 가장 쓰라린 이별의 맛, 버림 받은 여자의 노래 중에서 한 편-「백주柏舟」를 감상해 보자.

汎彼柏舟 亦汎其流 두둥실 떠있는 잣나무배 하염없이 떠내려가네
범피백주 역범기류
耿耿不寐 如有隱憂 불안에 잠 못 이루네 깊은 시름 때문에
경경불매 여유은우
微我無舟 以敖以遊 내가 술이 없어 즐기고 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미아무주 이오이유

「백주柏舟」는 시경詩經 패풍邶風에 나오는 시이다. 패풍은 패邶 지역에서 불려졌던 노래를 말한다. 패 지역은 상商나라 말기 주왕紂王이 도읍으로 정했던 조가朝歌(殷墟. 지금의 하남성 지방)의 북쪽 지역으로, 나중에 위衛로 통합된다. 조가의 북쪽을 패邶라고 하고, 남쪽을 용鄘, 동쪽을 위衛라 했으나 후에 패邶 · 용鄘이 모두 위衛로 통합된다. 따라서 시경의 패풍, 용풍은 모두 위풍이라 할 수 있다. 은殷나라 때부터 불려지던 위풍은 시경에서 가장 오래된 가요이다.

「백주柏舟」는 ‘잣나무 배’라는 뜻이다. 재질이 단단한 잣나무는 ‘변함없는 사랑’을 뜻한다. 그런데 이 잣나무로 만든 배가 강물 위에 둥실 떠서 정처없이 하염없이 물결 따라 떠내려간다. 이건 어떤 상황일까? 배에는 돛이 있고 닻이 있다. 돛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닻은 돌아올 곳을 정해준다. 그런데 강물 위에 정처 없이 떠가는 배는 돛도 없고 닻도 없는, 가야할 곳도 돌아올 곳도 없는, 버림받은 처지를 뜻한다. 즉, ‘두둥실 떠있는 잣나무 배/하염없이 떠내려가네’ [汎彼柏舟 亦汎其流]라고 하는 이 시의 첫 구절은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했으나 기실 그렇지 못한 상황, 사랑이 변해서 버림받은 여자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범피백주汎彼柏舟 역범기류亦汎其流’ 할 때, 앞의 ‘범汎’은 강물 위에 배가 두둥실 떠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이다. 뒤의 ‘범汎’은 ‘흘러가다’는 뜻의 동사이다. 이, ‘범피백주 역범기류’는 동양문화권에서 이미지가 끊임없이 차용되고 있다. 판소리 심청가 중 ‘범피중류汎彼中流’(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가라앉지 않고 떠내려가면서 주위 풍광을 읊은 대목)도 「백주柏舟」의 첫 구절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경경불매耿耿不寐’ 할 때 ‘경耿’은 깜박깜박,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집과 같이, 마음 속 근심 불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여유은우如有隱憂’ 할 때 ‘은隱’은 ‘깊은’ ‘많은’의 뜻이다. ‘미아무주微我無酒’라고 할 때 ‘미微’는 ‘비非’의 뜻으로 쓰였다. ‘이오이유以敖以遊’에서 ‘오敖’는 ‘유遊’보다 더 크게 노는 것이다.

我心匪鑒 不可以茹 내 마음 거울이 아니니 다른 사람은 헤아릴 수 없네
아심비감 불가이여
亦有兄弟 不可以據 형제가 있다 하나 의지할 수 없네
역유형제 불가이거
薄言往愬 逢彼之怒 가서 하소연하다 노여움만 샀네
박언왕소 봉피지노

버림받은 나의 처지는 둥실 강물에 떠 하염없이 흘러가는 저 잣나무 배와 같다. 깜박깜박, 마음속 떠나지 않는 불안 때문에 잠 못 이루네. 나의 이 괴로움은 술을 마셔서, 사람들과 어울려 놀아서 잊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술로도 유흥으로도 풀리지 않는 깊은 시름에 나는 빠져 있다. 버림받은 여자의 근심을 누가 알아 주리요. 내 마음이 만약 거울이라면 속속들이 잘 보여줄 텐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혼자 끙끙거리며 속을 끓일 수밖에. 가깝다고 하는 형제들에게 가서 하소연해 보아도 이해와 도움을 얻기보다 노여움만 샀다. 그들은 버림받은 여자의 괴로움을 헤아려주기보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버림을 받느냐고 오히려 지탄을 하는 것이다. 버림받은 것만 해도 서러운데 버림받은 것 때문에 구박까지 받다니! 이야말로 이중고가 아닌가!

我心匪石 不可轉也 내 마음 돌이 아니니 굴릴 수 없고
아심비석 불가전야
我心匪席 不可卷也 내 마음 돗자리가 아니니 말 수도 없네
아심비석 불가권야
威儀棣棣 不可選也 모습은 의젓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지
위의체체 불가선야

내 마음이 돌멩이라면 마음대로 굴릴 텐데. 내 마음이 돗자리라면 마음대로 말아둘 텐데. 내 마음 돌이 아니니 마음대로 굴릴 수가 없다. 내 마음 돗자리가 아니니 마음대로 말아둘 수가 없다. 내 마음을 내 맘대로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내 마음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데 나를 버린 ‘그’의 마음을 내가 어쩌리요. 내 마음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의 마음을 내가 어찌 내 맘대로 움직이겠는가. 그의 변심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왜 날 버리니. 하지만 버리면 버림받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이렇게 이 구절에는 ‘나’를 버린 ‘그’에 대한 원망과 체념이 동시에 들어 있다. 그러나 체념 뒤에는 또 일말의 원망이 떠나지 않는다. ‘위의체체威儀棣棣 불가선야不可選也’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모습은 의젓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지. 이 구절은 “허우대는 멀쩡해도 못 믿을 놈이야”라는 뜻이다. 나를 버린 그를 원망하는 대신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수긍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한 마디 욕은 해야 성이 풀리겠다!

憂心悄悄 慍于群小 시름은 깊고 깊어 여러 소인들에게 미움만 받노라
우심초초 온우군소
覯閔旣多 受侮不少 근심이 많다보니 수모도 적지 않네
구민기다 수모불소
靜言思之 寤辟有摽 가만히 생각하니 잠에서 깨어 가슴을 치노라
정언사지 오벽유표

근심이 많다는 것만 해도 서러운데, 근심이 많다는 것 때문에 뭇사람들에게 미움까지 받는 이중고!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피하는 것이 소인이다. 가련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면 그보다 나은 자신의 처지에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전염병을 피하듯 가련한 처지의 사람을 피한다. 그의 괴로움이 자신에게 짐으로 더해질까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을 이 시는 ‘근심이 많다보니 수모도 적지 않네’[覯閔旣多 受侮不少]라고 하였다. 이렇게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고,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는 이 시의 화자는 혼자 괴로워하다가. 얼마나 괴로웠던지 자다 일어나 자기 가슴을 친다. 도대체 얼마나 답답하면, 괴로우면, 자다 일어나 자기 가슴을 치게 되는 것일까. ‘오벽유표寤辟有摽’ 할 때 ‘표摽’라는 글자. ‘가슴칠 표’ 자가 정말 가슴을 치네!

日居月諸 胡迭而微 해여 달이여 어찌 번갈아 이지러지는가
일거월저 호질이미
心之憂矣 如匪澣衣 마음의 근심이여 빨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심지우의 여비한의
靜言思之 不能奮飛 가만히 생각하니 떨치고 날아가지 못함을 한할 뿐
정언사지 불능분비

‘일거월저日居月諸 호질이미胡迭而微’는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을 뜻한다. 해와 달처럼 환하고 밝게 빛나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다른 것에 가려져서 점점 줄어들고 사라지게 되는 것. 이것은 버림받은 여자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렇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 비탄에 빠져 혼자 괴로워 자다 일어나 자기 가슴을 탕탕 두들기던 이 시의 화자는, 시의 마지막에 와서 마침내 이렇게 탄식한다. “근심이 많은 마음이여 빨지 않은 옷을 입은 것과 같구나”[心之憂矣 如匪澣矣] 흥興 · 비比 · 부賦 중에서 비比에 해당한다. 근심이 많은 마음을 빨지 않은 옷에 비유한 것이 절묘하다. 살다 보면 마음에 이런 저런 얼룩이 생긴다. 버림받은 여자의 비탄이란 지워지지 않는 얼룩의 옷과도 같다. 존재 자체가 하나의 오점汚點이 된다.

누가 이 여자의 근심을 씻어 줄 것인가. 얼룩진 옷을 깨끗하게 빨아 햇볕에 개운하게 말려줄 것인가. 모두 여자의 근심이 혹여 자신에게 옮을까 피하려고만 하는데.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는 근심을 여자는 노래에 실어 보낸다. 이 노래는 수천 년의 세월을 흘러가면서 여자의 근심을 씻어준다. 여자의 근심이 그 여자 혼자만의 근심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한숨이 다른 누군가의 눈물과 만나 새로운 노래가 되어 흘러가도록 한다.

*「백주柏舟」를 모시서毛詩序에서는 “인仁하면서도 불우不遇함을 읊은 시詩이다. 위衛나라 경공頃公 때에 인인仁人이 불우不遇하고 소인小人이 군주의 측근에 있었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이 시의 화자를 간신에게 모함을 받아 군주에게 내쫓긴 충신으로 본 것이다. 한편, 주희朱熹는 이 시를 ‘부인이 그의 남편에게서 소박을 맞고 자기를 잣나무배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라고 하여, 군신君臣의 관계가 아니라 부부夫婦의 관계로 풀이한다. 주희의 해석이 오늘날 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응답 1개

  1. 말하길

    근심많은 마음을 빨지 않은 옷을 입은 것에 비유한 거, 정말 무릅을 딱 치게 만드는 표현이예요. 눅눅하고 찜찜하고 벗고싶긴 한데 대안이 없고, 그러다 보면 그냥 계속입게 되는….근심도 만성화되면 몸에 붙어서 불편한 줄 모르게 되나 봐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