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누구랑 같이 살고 싶어요?

- 박정수(수유너머R)

다음 주에는 추석이 있습니다. 연휴 기간에는 웹진을 열람할 시간이 적을 것 같아서 오늘 업데이트 되는 내용을 두 주 동안 계속 노출하기로 했습니다. 필진 여러분은 모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다음 글을 준비해 주시고 독자 여러분은 새로 업데이트 되는 글을 느긋하게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기회에 놓쳤던 이전 기사 두루 챙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 33호는 추석특집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동시대반시대’ 주제도 명절에 관련된 주제로 잡아 봤습니다. 명절만 되면 우리사회의 전면에 출몰하는 유령이 있습니다. 친족관계의 유령 말입니다. 매스컴은 귀성차량으로 꽉 막힌 고속도로를 실시간으로 중개하고 터미널에서 “엄마, 금방 갈게. 사랑해”, “어머님, 고생 많으시죠. 곧 가서 뵐게요.” “할머니, 맛있는 거 많이 해주세요” 라며 들뜬 표정의 귀성객들을 인터뷰합니다. 마치 친족관계의 유령이 되살아오는 명절이 즐겁다는 듯이.

명절, 즐거우십니까? 제 경우는 죽은 친족의 유령과 친족관계라는 이데올로기적 유령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즐겁지 않은 것 같은데.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형제들과 묵은 원한을 풀거나 은근한 스펙 경쟁 하느라, 가사노동에 감정노동까지 더해져 괴롭고, 미혼의 남자와 여자는 공부는 잘 하냐, 취업은 어떻게 됐냐, 뭐하는 직장이냐, 결혼은 언제 할래, 사귀는 사람 있냐, 어떤 사람이냐 따위의 스펙 확인과 ‘정상화’ 교육에 시달리느라 괴로운 게 제 경험인데 다들 어떻습니까?

그래서 이번 호는 명절 때마다 우리를 괴롭히는 ‘괴담’, 특히 스펙 괴담의 정점에 있는 결혼스펙을 다루기로 했습니다. 먼저, 모두가 알고 있었던, 최근에는 공개적으로 인정하기까지 한 결혼정보회사의 스펙등급화를 취재했습니다. 이 방면에 직간접적 경험이 있고 할 말도 많은 황진미씨가 결혼 매칭시스템의 실상을 보고해 주었습니다. 결혼과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그닥 ‘스페시픽’(specific: 특이)하지 않은 남녀를 중매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성사률을 높이기 위해 같은 급의 ‘스펙’(spec)을 가진 남녀를 소개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의 뜻이 맞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사람을 한우처럼 A급, B급, C급으로 등급매기는 게 기분 나쁘지만 그건 결혼정보회사의 악취미 때문이 아니라 결혼을 ‘취혼’이나 정치․경제적 친족동맹으로 간주하는 남자와 여자들의 욕망 때문일 겁니다. 결혼이 더 이상 19세기 식 낭만적 사랑의 해피앤딩이 아니라 신분질서의 재생산 수단이 되면서 스펙 등급화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회 양극화를 넘어 신분화가 진행되고 있는 이 시대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 다수자의 욕망을 따르지 않는 소수자들은 어떨까요? 최소한 주류우파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마이너리티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선 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오직, 사랑!’을 외치는 자들이 가장 급진적인 소수자일 겁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과 같다는 이들에게 배우자 선택의 기준을 묻는 것은 애당초 어불성설입니다.

실제로 이번 설문에 불만을 토로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걸 하냐. 저들이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 “난, 이런 거 생각해본 적도 없고 하기도 싫다” 라고 말씀하신 분들에게는 저희의 ‘속물근성’을 조금 이해해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운명도 의지하고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말로 할 수 없는 무의식적 욕망도 일종의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운명 같은 욕망의 선택이야말로 정치적이지 않겠습니까? 불꽃같은 연애는 모르겠지만 같은 집에서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의 성향과 취향에 부대끼고 각자의 친족과 부대끼고 경제적인 문제에 부대끼고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에 부대낄 때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이라는 운명 같은 ‘사고’를 친 다음, 사랑에 미쳐 같이 살기로 결심할 때 이 설문내용을 한번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무엇을 포기했고 무엇을 각오해야할지 생각할 기회가 되지는 않을까요?

짧은 기간 기획하고 설문조사 하느라 충분히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수유+너머 사람들과 노들장애인 야학, 발바닥 공동행동, 이주노동자방송국, 빈집 식구들, 참여연대 등 주변에 있는 친구들 100명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과 삶을 공유하고 싶습니까? 친구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설문결과 통계는 우리 위클리 기술편집자 김현식이 수고해 주었고 통계결과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이제 막 사회학 석사논문을 낸 권은영이 맡아 주었습니다. 아, 그리고 개성강한 남녀 6명이 솔직발랄하고 포복절도할 좌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은유샘이 그 현장을 담았습니다. 궁금하시죠? 지금 바로 클릭하세요. 추석괴담에도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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